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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2010년 03월 11일 07시 07분  조회:1204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이 놈의 하늘은 밑창이 빠졌나?...”
나그네는 중얼거리며 또 소주병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꿀꺾꿀꺾 마셨다. 잠간새에 소주병이 굽이났다. 나그네는 아쉬운 듯 굽이 난 소주병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병사리를 서울역 입구의 콩크리트바닥에 동댕이쳐 박산냈다. 그리고는 무슨 큰일이라도 치룰 듯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푸-”하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벌써 며칠째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얼굴은 땀으로 비물로 검으죽죽 얼룩이져 있었고 옷은 기름 때와 먼지로 주글주글 했다. 부옇고 퉁퉁부은 얼굴에서 근심어린 쌍겹풀눈이 가끔씩 껌벅이고 있었다. 때는 8월 11일 저녁 서울시간으로 6시 20분 경. 잔잔하게 내리는 서울의 밤비를 맞으며 서울의 야경을 걷고싶어 우산을 들고 나섰던 나는 너무나도 이색스러운 풍경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전에도 한국행이 두어번 있었지만 꽉 짜인 스케줄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로 분주하다나니 자신만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서울의 밤길을 혼자 걸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밑창빠진 이 놈의 하늘은 무슨 비가 이 모양이야. 심술궂은 서울 아낙네 같네...” 말씨가 분명 나와 같은 연변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아들을수있었다. 문뜩 어느책에선가 보았던 서울 지하철역의 연변사람들이 떠올랐다. 책을 읽을 때는 설마 하며 믿지않았었지만 진짜로 서울역에서 마주한 나그네를 보고서는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점잖게 받쳐들었던 우산을 겹쳐쥐고 나그네쪽으로 글금슬금 다가갔 다. “중국에서 왔습니까?” 나는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나그네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나그네는 흠칫하고 몸을 떨더니 경계심이 어린 눈길로 나를 건너다 보며 때자국이 얼룩진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바르고 어색한 서울말로 잘라버렸다. “아닌데요.” “미안합니다. 방금 연변말씨를 쓰는것같아서요. 저 연변에서 왔습니다.” 어쩐지 길가던 나그네의 푸념을 옅들었다는 것이 얼굴이 붉어지며 진짜로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러자 나그네가 내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이재 연변에서 왔다고 했소?”하고 물어왔다. “네. 연변에서 왔습니다.” 나는 활짝웃으며 맑은 목소리로 확실하게 대답을 주었다. “막일을 하러 온 분 같지는 않은데.” 나그네는 나의 아래우 맵시를 살펴보며 말했다.네, 대전에서 있었던 아시아 청소년 가요, 댄스축제에 참가하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 내렸습니다.” 나는 나절로도 이상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허허허...내 눈은 못속이지.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는 저도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그네를 다시 한번 응시하며나그네 쪽으로 한발 다가섰다.“반갑소. 댁처럼 눈에 당당한 빛을 띄고 있는 연변사람이 많아야 우리도 서울에서 허리펴고 살텐데...” 나그네는 말끝을 흐리웠다. 하지만 나그네의 눈길은 금방 생기를 띠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하나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픈 상처에 소금을 치는것같아서 차마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었다. “나온지 얼마나 됐습니까?” 나는 나그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물었다. “3년철이라우. 중국 돈으로 7만원을 주구 나왔소.” 나그네는 서울역 입구의 콩트리드바닥에 털썩 들어앉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나그네의 옆에 쪼크리고 앉았다. 나그네는 첨에 건축공지에서 잡일을 맡아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되여 한차례의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후 힘든 일은 할수없어 어느 작은 불고기집에 취직을 하여 손님을 불러들이는 일을 맡았다한다. 손님이라도 많으면 그런대로 마음이라도 편했지만 손님이 안드는 날이면 주인 아낙네의 푸념이 끊길새 없었다. 원래 직성이 곧은 나그네로서는 불고집 주인아낙네의 눈총을 받아내기가 힘들어 한달을 채우기 바쁘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로부터 나그네의 유격전은 끊기지않았고 그새 나그네는 신체도 마음도 다 멍이들고 병들어 날마다 술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지경까지 왔다는 것이다. “벌써 일자리를 잃은지가 한달이 넘소.”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게 무섭지요. 그래서 이렇게 떠돌이를 한다우. 우리에겐 서울 구석구석이 모두 집이라우.” “그럼 밖에서 로숙한다는 말씀입니까?” 나같은 사람이 많소, 여기에.”“신체도 이렇게 망가졌는데 왜 돌아가지 않습니까?”
돌아간들 어쩌겠소? 올 때진 7만원 빚도 5푼짜리 장리돈을 맡아왔는데.” 아직 빚은 채 물지못했습니까?” “아직두 한 4만원 남았소.” “집에서는 이런정황을 모릅니까?” “모르는 편이낳지. 벌써 2년째 집에 돈 한푼 보내지 못하구 있소. 집에서는 아마 나를 바람이 나서 서울아낙네들과 뒹군다구 할게요.” 나그네는 잠간 말을 끊고 푸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으로 더부룩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래도 이런 정황이면 집에 돌아가는 편이 낳지 않습니까?” 분명 나그네에게 아무 도움도 없을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무엇인가를 말하지않고는 견딜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정말 막막하오. 돌아가면 올 때 진 빚이 새끼를 치고 기다리겠지. 아들놈도 인젠 장가갈 때가 됐지... 황차 돌아가려고 해도 비행기표는 무슨 돈으로 끊는단 말이오. 나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다오.” 나그네는 어쩜 자기의 처지가 자기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는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려는듯 묻지도 않는 말을 또 한번 했다. “그럼 오늘 밤도 여기서 나시렵니까?” “그래야지. 서울의 땅덩어리가 모두 나의 집이거든, 허허허...” 나그네는 또 처음의 그 상태로 돌아간듯 허탈진 웃음을 뽑아댔다. “몸 조심하십시오.”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긴채 끝내는 나그네의 이름이며 연변에 있는 나그네의 고향이며를 묻지도 못한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비는 여전히 잔잔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산을 펼쳐들 마음도 없었다. 내리는 비줄기에 한몸을 맏기고 어디론가 자꾸 걷고싶었다. 원래 처음 밟는 서울의 밤이라 방향도 알리 만무했다. 우거진 서울의 가로수 아래에서도 높은 빌딩의 처마밑에서도 때자국이 간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잔잔히 내리는 서울의 비를 맞으며 소주병을 손에 들고 있는 나그네들을 가끔씩 볼수있었다. 금방 옆을 스쳐도 연변사투리를 들을 것 같아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이 놈의 하늘은 밑구멍이 빠졌나!” 그때까지도 나그네의 맥지난 푸념이 귀전을 스쳤다. 울고싶었다. 나는 멀거니 비내리는 서울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 한점없는 하늘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무서워 보였다. 순간 온 몸이 오싹해났다. 아니였는데... 연변에서 느껴오던 밤하늘은 이것이 아니였는데... 그럴 것이다. 나그네의 상상속의 하늘도 이것이 아닐것이다. 비록 농사일로 볕에 그을었지만 그래도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안해의 팔을 끼고 큰집에 마실을 다녀오며 보던 사랑의 하늘일것이고 재잘대는 아들놈의 손목을 잡고 고향의 뒤동산에서 별을 세던 시같은 하늘일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그네는 과연 그런 하늘을 찾을수 있을가? 어쩜 그런 하늘을 찾자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치일 것이다. 하다면 이 밤에 나그네가 그리는 것은 무엇일가? 집? 안해? 아들?... 더는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무서움마저 주는 서울의 하늘에 대고 한마디만 소리소리 웨치고싶었다.
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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