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령사관에서 비자를 맞은 려권을 받아쥐였을 때는 저녁 7시 10분경이였다. 연길로가는 기차가 저녁 6시반에 있었으니 그날로 떠나기는 나무아미 타불이요, 령사관에서의 너무나도 긴 기다림에 지쳐버린 나는 비자를 받은 기쁨도 심드렁하니 팽개친채 령사관 부근의 호텔로 찾아들어갔다. 카운터에 다가가자 접대원 아가씨가 곱게 웃으며 “주숙을 하시겠습니까? 표준방은 220원입니다.”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순간 등뒤에서 식은 땀이 쫙 돋는듯 싶었다. 자주 외출은하지만 누가 공자로 접대를 하지 않고는 제 호주머니를 털어서 하루밤에 220원짜리 방에들수있다고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나였었다. 급한 와중에도 꾀는 생겨서 한족호텔에온돌방이 없을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온돌방이 있습니까? 우리 조선족은 온돌방에 습관돼서...” 하고 얼버무려버렸다.카운터아가씨는 매우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미안합니다. 여긴 온돌방이 없는데요, 꼭 수요되신다면 서탑가로 가세요, 그곳엔 한국분들이 차린 호텔이 많아요.” 하고 깎듯이 이야기 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얼버무리며 쫓기듯 그 호텔에서 나와버렸다. (어디로 가지?) 잠간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내 수준에 부담이 없는 심양북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생각할수록 하루 밤에 220원이라는 돈을 부담없이 뿌릴수 없는 자신이 미워보였고 처량해보였다.아까 호텔에서 나올때 제 딴에는 꾀를 부려 당당한 모양이라도 보였지만 카운터 아가씨가내 심사를 알아내지 않았을가고 괜히 근심도 해보았다. 정말이지 기분이 엉망이 돼버렸다.심양북역에 도착한 나는 하루밤에 70원씩하는 단칸방을 맡아놓고 가방을 던진 다음 심양북역 2층에 있는 국영 편의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름때에 주글주글 해진 흰색 앞치마를 두른 뚱뚱한 한족아줌마가 누르스름하고 길쭉한 앞이를 들어내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셨어요?” 나도 아는체를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줌마는 저가락통에서 일회용저가락을 쑥뽑아 나에게 넘겨주며 “오늘도 물만두 반근에 맥주 한병인가요?” 하고 물어왔다. 지난번 비자신청 건으로 심양에 왔을 때에도 몇번 그 아줌마의 손에서 물만두 반근에 맥주한병을 받아먹은적이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아줌마가 도전적으로 먼저 그렇게 물어오자 어쩐지 배씸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맥주 안주를 한 접시 올려요.” 하고 큰 소리를 쳤다. 아줌마는 소고기졸임에 오이를 섞어서 만든 랭채 한접시를 가져다 주며 자기가 직접 만든것이여서 맛날것이라고 부산을 떨었다. 나는 묵묵히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꾀죄죄한 차림의 민공들이 한사발에 4원씩 하는 밀가루국수를 먹으며 그처럼 구속없이 낄낄거리는 소리를 귀동냥했다. 등을 내쪽에 돌리고 앉은 친구는 하북성 농촌에서 심양에 들어와 시공대에서 미장공으로일했다고 한다. 근데 북경의 어느 시공대에서 일하는 고향사람이 북경에 가면 돈을 더 벌수있다고 해서 이번에 친구와 함께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25살에 나는 그는올해까지 7년을 시공대에서 전전하는데 겨울까지면 장가갈 때 쓸 돈을 거의 장만한다고으쓱해 했다.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맞으하고 앉은 친구도 돈을 벌어 새 집을 한채 짓겠다며 들떠있었다. 며칠째나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알길없는 그들의 머리칼은 먼지로 하여 뿌옇고 부시시했고 얼굴도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신심가득히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만은 누구못지않게 명랑하고 힘차있었다. 순간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피뜩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엷은 호주머니를 숨기며 날로 심해가는 경쟁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를 살펴가는 자신의 삶이 힘겹고 염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책에선가 보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런 말이 떠올랐다. 허영심을 버렸을 때 인간은 비로서 행복해진다.” 하지만 진짜로 허영심을 버린다는것이 얼마나 힘들다는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사람이란 원체 요사한 동물이여서 견물생심이라는것이 생긴다. 자가용을 몰고다니는 동료들을 보면 괜히 기분이 찜찜해지고 멋진 아빠트에서 사는 친구들을 봐도 괜히 심사가 삐뚤어지는것도 그것때문이리라.그래서 혼자 출장을 나올 때에는 얇디얇은 자신의 호주머니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남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싸구려 음식점이나 려관을 찾아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은 우월한듯한 모습을 보이는것으로 삐뚤어진 자신의허영심을 채우는것이다. 그러면서 또 (너는 원래 량반은 아니였어, 이만해도 괜찮은것이야...) 하고 아Q의 자아승리법으로 자신을 달래보기도 한다. 정말이지 우리 386세대들 치고 누가 고생을 겪어보지못했겠냐만은 농촌에서 병약한 부모님의 손길아래 5남매가 어울려 산 우리집 살림은 너무나도 가난했었다. 생산대에서 모내기를 끝내고 집체로 국수 먹으러 갈 때에도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주는 돈 1원을 타쓰려고 노상 일이 있다며 국수 잡수러 가지않던 엄마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도 있다. 원체 없이 시작한 살림에 설상가상으로 이러저러한 가정풍파를 겪느라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남긴것 하나없이 그달 벌어 그달을 사는 청빈한 샐러리맨 신세이다. 하지만 머리만은잔뜩 약아져버려서 남들 앞에서 한번 통쾌하게 “나 아무것도 없소.” 하고 말하기는 죽기보다도 싫다. 와- 잘먹었다. 래일 아침에는 북경에 도착할수 있겠지?” 그래, 그곳에서 정말 돈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민공들은 손으로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사라져가는 민공들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4원짜리 밀가루 국수 한사발에 만족을 할수 있는 그들,그러면서도 기죽지않고 자기가 바라는 목표를 향해 꿋꿋이 갈수있는 그들이 커보였다.비록 그 목표가 돈을 벌어 장가를 가는것이래도 좋고 새집을 한채 짓는것이래도 좋다. 하냥 사람들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기죽지않고 떳떳이 설수있는 허영심을 던져버린 그들의 소박한 삶이 진정 행복한것이 아닐가? 행복이란 기름진것이여서 잡으려고 하면 하냥 손에서 빠져버린다고한다. 때문에 행복은 잡으려고 하지말고 찾으려고 해야함이 타당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누가 나보다 더 행복한가를 살피기전에 내가 누구보다 무엇이 더 행복한가를 찾아봐야 할것이다... 그날 밤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병굽에 얼마남지 않은 맥주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열심히 마시고 한족아줌마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랭채를 한 저가락 집어 맛있게 씹었다. 실면 때문에 근심스럽던 그 밤을 달콤하게 잘수있을것만 같은 신심이 생겼다...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