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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만남
2010년 03월 11일 07시 13분  조회:1188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소중한 만남

살다보면 정말 만나서 소중한 사람이 있다. 채홍간로인님과의 만남이 바로 나의 일생에서는 그저 스칠수 없이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 라고 봐야할것이다. 지난 7월 30일 오후 1시경, 심양주재 한국령사관에서 출근하기를 기다리며 령사관 옆의 커 피숍에 앉아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한 랭커피를 홀짝이며 제발 비자가 실수없이 나와줍 시사하고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홀연 잘 생긴 남자청년 둘이 하얀 염소수염을 기른 로인 한분을 모시고 들어왔다. 로인의 차림새는 좀 초라해보였는데 안에는 때가 올라 거므그레해진 흰색 렌닝그를 입고 그 우에는 진회색의 팔이 긴 셔츠를 입었는데 단추도 채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금방 해지기 시작한 국방색 운동화를 신었었다. 함께 들어온 젊은이들은 로인을 깎듯이 자리에 모시더니 음료를 사다가 권하느라고 분주했다.
“목이 마르지 않수다. 이쯤이야 아무겄도 아니쥬!”로인은 손사래를 치며 젊은이들이 사온 음료병을 사양하다가 끝내는 받아서 제법 세련되게 쪼르륵-하고 빨대를 빠는것이였다.
‘무슨 로인일가?’ 직업적 민감성이랄가 저도몰래 그 로인에게로 호기심이 동했다. 나는 홀짝이다 만 랭커피잔을 손에 들고 내가 앉은 걸상을 그들 쪽으로 당겨갔다.
“벌써 나온지 4년철이웨다. 4년철이지유...”로인은 련속 몇번이나 4년을 들먹였다.
‘혹시 자식들에게 괄시받고 집에서 나온 불행한 로인이 아닐가?’내가 이렇게 속구구를 하고 있을 때 함께 들어온 미소가 예쁜 청년이 물었다.
“어르신, 무엇 때문에 이 길을 택하게 되였는가요?‘ “몸은 늙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할수있다는걸 후대들에게 보여줘야지요. 글구 자기 자신에게 도전도 해보구요.“로인이 이야기 하는사이 거피숍에 있던 다른 상의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어 네 한마디 내 한마디 이야기를 께껴갔다.
흑룡강성 할빈시 교구 농촌에서 한 때는 촌지서 사업까지 해본적이 있다는 채홍간로인은 올해 75세이다. 1998년, 일생을 의지해오던 로친이 세상을 뜨자 과묵해졌던 채로인은 그해 11월에 문뜩 삼륜차를 몰고 세계일주를 해보고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해 로인의 나이 71세, 채로인이 물러선후 역시 그촌에서 촌지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은 채로인을 극구 반대해 나섰다. 만년에 조용히 복을 누리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채로인의 곧은 결심은 꺾을수 없었다. 아직은 움직일수 있을 때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해놓고 싶었던것이다.
“저는 대가정을 가지고 있지요. 아들 둘에 딸 하나. 거기다 손자 다섯에 손녀 하나, 아래에는 또 증손자까지 4대동당이웨다. 헌데 손자 손녀들이 문제지유. 고생이란 뭔지 모른다오.”
17세에 팔로군에 참가했던 채로인은 퇴대후 줄곳 할빈시교구에 살면서 일심정력으로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는데 한생을 받치신 분이였다. 너무나도 연약하게 자라나는 후세대들을 가슴아프게 생각해오던 채로인은 나이 때문에 손에서 일을 놓게되자 자기의 실제 행동으로 후세대들에게 어떻게 고생을 이겨 나가는가를 보여주려했던것이다.
1998년 11월 27일, 채로인은 삼륜차를 몰고 할빈에서 장춘으로 떠났다. 추위가 터지기 시작한 동북의 11월 말, 71세의 나이로 삼륜차를 밟으며 떠난 장춘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들 상상할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채로인의 로정은 오늘까지 끊기지 않고 곳곳에서 기적을 쌓고 있다.
이 4년래 채로인은 일평생 아껴먹고 아껴쓰며 남겨놓은 3만여원의 저축을 몽땅 써버렸다. 그리고 경비를 절약하기위하여 삼륜차에 나무판대기와 이불을 싣고다니며 해가지면 그냥 삼륜차를 세우고 그 우에서 밤을 새우군한다. 그사이 채로인은 6차례나 삼륜차바퀴를 바꾸었고 2개의 안장을 갈았으며 3개의 디딤판을 새로 안장했다. 그리고 서장, 귀주, 해남, 대만, 향항 오문 등 30여개 성 시와 조선, 로씨아, 웰남, 인도 등 나라를 포함하여 7만 5천 ㎞의 길에다 발자욱을 남기셨다. 2000년 12월 서녕으로부터 커얼무까지의 로정은 령하 35도씨에 달하는 저온에서 달렸다 한다.
“오늘 오후 4시면 미국령사관에서 미국행 비자가 나와요. 4시까지 기다렸다 비자를 받아 가지고 상해로 떠나야지요. 8-9일 정도면 닿을수 있을겁니다.“
여생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채로인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미국령사관에서도 로인 의 사적이 실린 신문 몇장을 보고 흔쾌히 로인의 비자신청을 접수했던것이다. 로인은 심양에서 삼륜차를 몰고 상해에 도착한후 상해에서 미국까지는 항운회사에서 면비로 제공하는 려객선에 앉아 미국으로 향발할 예산이라고 했다.
“아직도 8년을 예산하고 있습니다. 8년사이에 미국, 캐나다 등 아메리카 여러곳들을 돌면서 인간의 잠재력이 얼마나 크다는것을 세인들에게 보여줘야하지요. 8년후에도 죽지않고 살아있다면 그때가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구요.”
이야기를 하시는 채로인의 얼굴은 홍조로하여 불깃불깃 해보였고 가끔씩 가다 흔드는 거칠 은 손에서는 인생의 목덜미를 거머쥐고 떳떳이 여생을 살아가고있는 로인의 슬기와 용맹이 보여오는듯 싶었다.
“세상을 두루 돌면서 느꼈지요.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물직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또 여러가지로 방조를 주었지요.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을 너무 어둡게보는게 흠이죠. 나가보면 다 알아요. 이 세상이 얼마나 살맛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채로인의 목소리에서는 진정 생활에 대한 애착이 철철 흘러 넘쳤고 주름살 많은 그이의 얼굴에서는 인생의 주인으로 떳떳이 살아가는 승리자의 당당함 이 력력히 새여나왔다. 나는 넋을 잃고 채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채로인의 말씀은 내가 인생을 사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박한 지침서이고 당당한 채로인의 모습은 내 인생의 드팀없는 지침돌로 되여 내곁을 굳건히 지켜줄것만 같았다.
“오래오래 멋있게 달려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은 로인님을 정말 수요하고 있습니다.”나는 로인의 손을 굳게잡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드렸다.
“이 늙은것이 수요된다니 정말 감사하이. 그말이 고마와서라도 힘을 내야지.”로인은 소탈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로인의 호방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났다. 어쩌면 로인과의 만남은 불평 많은 내 인생을 다시 조명하라고 내려준 숙명적인 배치가 아닐가 하는 야릇한 생각까지도 든다.
그렇다. 살아가면서 이처럼 소중한 만남이 있은것을 나는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채로인처럼 멋진 선배님들의 손길아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하여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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