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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아동소설집-민이의 산

보금자리
2010년 03월 11일 07시 51분  조회:1498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보금자리


강아지는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녀자애의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리고있었다. 혁이는 그게 너무 서운했다. 마치도 정성을 다해 아껴주고 위해주던 그 누구에게서 졸지에 배반을 당한듯한 그런 기막힌 생각이 가음속 밑자락으로부터 스물스물 괴여올랐다.
(아무리 말못하는 미물이라지만 어쩜 저렇게도 매정하게 나를 배반할수 있단 말인가? )
녀자애앞에서 갖은 애교를 다 부려가며 아양을 떠는 강아지가 정말 방금 자기가 사준 고기를 걸탐스럽게 먹던 그 강아지가 옳은가고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세상에, 세상에 어쩜, 개같은게…”
저도모르게 이런 욕설이 터져나왔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웬 일이냐는듯 머리를 돌려 혁이를 찔끔 째려보았다. 죄꼬만애가 욕은 웬 욕이냐고 나무람하는듯싶었다. 혁이는 홀랑 혀를 내밀었다가 당겨오며 서글프게 픽 웃어버렸다.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스럽게 생각되였다.
혁이는 주먹으로 자기의 입술을 툭 치고는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개같은게?”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그랬다. 저쯤에서 녀자애를 마주하고 서서 꼬리를 저어대는 강아지는 분명 “개같은게!”가 아니라 확실한 개였던것이다.
혁이는 애모뿌게 잘근잘근 손톱여물을 썰며 강아지와 녀자애를 번갈아보았다. 강아지는 좋아서 못살겠다는듯 여전히 꼬리질을 살살 쳐대면서 녀자애의 손을 핥느라 여념이 없었다. 녀자애도 강아지옆에 쪼크리고 앉아서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자식을 반기는 엄마모양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차분히 만져주고있었다.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녀자애의 그윽한 눈길을 먼발치에서도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혁이는 오른주먹을 들어 왼손바닥을 냅다 갈겼다. 왼쪽 손바닥이 사뭇 얼얼해났다. 삽시에 목이 꺽 메여오더니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눈까풀을 두어번 슴뻑거리자 눈굽에서 촉촉한것이 느껴졌다. “흥!” 혁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그때까지도 쓸어주고 핥아주느라 여념이 없는 녀자애와 강아지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몸을 픽 돌려 어정어정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발걸음은 천근돌멩이를 달아맨듯이 무겁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게 생각되였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처음 강아지를 만날 때의 영화같은 에피소드가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
그것은 혁이가 시장에서 치약이며 비누같은것을 사들고 시장문을 나서서 서너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별안간 소머리고기를 파는 로천매대뒤로부터 강아지한마리가 나타났다. 꼬리를 뒤다리사이에 딱 끼고 서서 초조한 눈길로 이사람 저사람을 살피는것이 분명 주인을 잃은 모양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혁이는 그렇게 무심히 강아지를 지나칠수가 없어서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혁이는 강아지가 이슬이 앉은 눈으로 자기를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의 눈길이 아프게 가슴에 맞혀왔다.
(왜, 왜 저 강아지가 나를 쳐다볼가?)
혁이는 못내 강아지가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혹시 길잃은 강아지가 아닐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강아지가 아닐가? 주인을 찾지 못하면 저 강아지는 어데가서 살가?)
혁이는 가던길을 되돌아 소머리고기를 파는 매대옆으로 다가갔다. 아니나다를가 강아지는 그때까지도 소머리고기를 파는 아줌마의 주위를 뱅뱅 돌아치고있었다. 혁이는 강아지곁을 발"摹�� 조여가며 휙휙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에 강아지는 혁이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뒤다리사이에 딱 끼였던 꼬리를 풀며 혁이를 향해 뛰여왔다.
(그래 분명 주인없는 강아지야. 사람손에 익숙해진게 틀림이 없어. 그래서 이렇게 스스럼 없이 아무사람이나 따르는거야.)
혁이는 강아지옆에 쪼크리고 앉아 오른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강아지는 조금도 거부감이 없이 혁이의 손바닥을 핥으려고 혀를 내밀었다. 혁이는 다시 강아지옆으로 조금 다가 앉으며 맘대로 핥아보라는듯 손바닥을 한뼘 더 내밀며 왼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과연 강아지는 따뜻한 혀끝으로 혁이의 손바닥을 싹싹 핥아대기 시작했다. 촉촉한 혀끝이 손바닥을 누비며 돌아가자 뼈속으로부터 간질간질하고 오스스한 느낌이 스믈스믈 괴여올라서 혁이는 저도몰래 으스스 몸을 떨었다.
(어쩜, 어쩜 이렇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걸가? 낯모를 사람을 보면 왕왕 짖어대는게 강아지의 본성일텐데.)
혁이는 생각을 굴리며 두 손으로 강아지를 안아서 천천히 가슴쪽으로 당겨왔다. 강아지는 낑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촉촉하니 젖어오르는 눈길로 혁이를 쳐다보고있었다. 검은 동자가 유난히도 큰 강아지의 눈은 그처럼 깊어보였다. 그 깊은 눈속에 퍼내도 퍼내도 마를것 같지않은 이야기가 담겨져있을듯싶었다. 혁이는 강아지를 가슴으로 꼭 끌어안았다. 강아지는 혁이의 체온을 느꼈던지 머리를 혁이의 가슴으로 밀착해왔다. 혁이도 가슴으로 강아지의 체온을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어쩜, 너도 어쩜 가족이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는게 아니냐? 그래 돌봐 줄 사람이 없는게지, 그런게지?)
혁이는 머리를 숙이고 강자지를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본래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인데 얼마동안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털은 원색갈을 분별할수 없을만치 때가 올라있었다.
(그래, 분명 임자없는 강아지가 맞. 너, 어떻게 살려구… 누가 버렸을가? 아님 누가 잃어버린것일가? 암튼… 누군가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이 너 어떻게 살려구?)
혁이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연신 머리를 쓸어주다가 익은 고기를 파는 매대앞으로 다가갔다. 혁이는 일원짜리 석장을 꺼내서 삶은 고기를 파는 아줌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강아지가 먹을수있게 잘게 썰어주세요?)
삶은 고기를 파는 아줌마는 이상하다는듯 혁이와 강아지를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강아지가 너네 것이냐?”
혁이는 그말에 흠칫하며 삶은고기를 파는 아줌마를 일별하고는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방금 밖에서… 임자가 없는것 같아요.”
아줌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그렇지 하는 모양이였다.
“이 시장바닥에서 돌아다닌지 며칠된단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몰라. 주인을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버릇이 나빠서 쫓겨났는지.”
“강아지가 나쁜버릇이라니요?”
죄없는 강아지를 의심하는것 같아서 혁이는 아줌마의 말에 토를 달았다. 아줌마가 웬일이냐는듯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다가 말했다.
“너 몰라서 하는소리구나. 강아지들 나쁜 버릇이 많거든. 집에서 기르는 놈들을 말할라치면 습관이 나쁜것들은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요. 심술궂게 전문 침대우에 올라가서 이불에다가 싸대는 놈들도 있거든. 밖에서 사는 놈들은 또 어떻다구. 전문 신발을 물어다가 던지는 괴퍅한 놈들이 없나. 암튼 강아지 한마리 잘못 집에 들이면 웬간히 성가신게 아니란다.”
아줌마는 못된강아지가 자기앞에 차려지기나 한것처럼 시퍼렇게 날이선 식칼로 삶은고기를 탕치며 쉴새없이 궁시렁거렸다. 누르스름한 송곳이에 뻐얼건 고추가루가 달라붙은 아줌마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혁이는 아줌마의 말이 사뭇 불쾌하게 생각되였다. 혁이는 못들은듯 머리를 숙여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아줌마가 건네주는 삶은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안을 나왔다.
혁이는 강아지를 안고 간이서점앞의 조용한곳을 찾아가 앉았다. 땅에 내려서자 바람으로 강아지는 고기냄새를 맡았는지 혁이의 손을 말뚱말뚱 쳐다보았다.
“쯧쯧쯧… 불쌍한것이, 엄청 배가곺았지?”
혁이는먹기좋게 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강아지앞에 헤쳐놓았다. 강아지는 비닐봉지에 코를 대고 두어번 킁킁거리더니 걸탐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너, 며칠 굶은것 같구나, 누구도 너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는모양이구나. 얼마나 돌아다녔니? 주인집은 또 얼마나 바꾸고…)
혁이는 물끄러미 강이지를 내려다보며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강아지가 사래가 들렸는지 머리를 쳐들고 캑캑 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니? 천천히 먹지그러니? 보자보자, 형님이 보자.”
혁이는 중얼거리며 강아지를 건뜩 들어올렸다. 뒤다리가 혁이의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강아지는 암컷이였다. 혁이는 저도모르게 쿡 하고 웃어버렸다.
(뭐? 형님이 보자구. ㅋㅋㅋㅋ… 오빠가 보자구 해야지.)
혁이는 강아지를 땅에 내리워 놓고 손바닥으로 강아지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일은 바로 그때 일어났다. 어디선가 “미아야, 여기 와라.”하는 부름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혁이도 강아지도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파르스름한 운동복을 입은 녀자애가 얼굴에 말간 웃음을 날리며 강아지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었다. 강아지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두어번 꼬리를 젓더니 깡충깡충 녀자애를 향해 뛰여갔다.
혁이는 순간 말못할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아무리 말못하는 미물이지만, 방금내가 사준 고기를 그렇게 맛나게 먹구서는 어찌 이렇게도 매정하게 나를 배반하고 저 애 앞으로 뛰여간단 말인가? )
생각할수록 부아통이 터져버릴것 같았다….
*
혁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비록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그새 퍼그나 많이 걸은것 같았다. 시장을 지나서 건재상점쪽으로 굽어든지도 이슥했던것이다. 혁이는 웬지 가슴이 갑갑하고 초조해났다. 혁이는 선자리에서 연신 두발을 어겨디디며 왼손바닥에 오른주먹을 애타게 부벼댔다. 녀자애앞에서 갖은 재롱을 떨어가던 강아지가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다가왔던다. 해시시 웃음을 던져주며 강아지를 반겨주던 녀자애의 해맑은 얼굴도 눈앞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애가 과연 강아지를 어쩌려는것일가? 혹시 그애네 강아잘가? 아니야, 그럴수가 없어. 주인있는 강아지였다면 그렇게 초라한 몰골일수가 없는게지. 분명 그 강아지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물맛을 본것같지가 않았어. 하다면? 하다면 그애도 분명 길에서 그냥 만난 사일텐데 한순간 재미나보고 또 강아지를 훌렁 던져버리는것이 아닐가? 그렇게 된다면 강아지는 다시 홀로가 될것이지.)
혁이는 생각할수록 불안스러워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접때 시장문앞에서 자기를 쳐다보던 까아만 눈동자가 무던히도 깊어보이던 강아지의 눈길을 다시보는것 같았다. 갈수록 그 눈동자에 분명 깊고깊은 아픔과 절절한 갈망이 묻혀있다고 생각되였다.
(안돼, 이대로는 안돼. 그 강아지가 어쩌고 있는가를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돼. 그 강아지를 그냥 집없이 떠돌이로 시장바닥에 남겨둘수 없어. 집이 없다는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데. 보금자리가 없다는건 행복도 즐거움도 없다는 의미야. 그 강아지가 무엇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 강아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런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데…)
혁이는 자기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기로서도 걷잡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각 가슴속에서 저도몰래 그런 생각이 동지날 팥죽가마에서 뽀얀 김이 서려오르듯 하는것만은 막을 길이 없었다.
혁이는 오던길을 바라고 몸을 픽 돌렸다. 가랑이에서 피파소리가 나게 걸음을 재우치다가 아예 주먹을 불끈 쥐고 앞을 향해 뛰여가기 시작했다.
북안시장어구에서 혁이는 “어!” 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며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강아지를 안고 뛰여오는 파란운동복의 녀자애가 시야에 안겨들었던것이다. 녀자애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감이 깊게 드리워있었다. 녀자애에게 안기워있는 강아지의 눈에도 말못할 공포가 숨겨져있었다. 녀자애는 흘끔흘끔 뒤를 돌아다보며 죽기내기로 뛰여오고있었다.
(웬 일일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건가?)
혁이는 잠간 생각을 굴리며 녀자애의 뒤를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가 녀자애의 뒤로 머리를 빡빡 깎은 한 사나이가 쫓아오고있었다. 사나이가 소리쳤다.
“서라, 게 서라는데.”
모르기는 하겠지만 녀자애와 강아지에게 확실히 무슨 위험이 도래하고있는것이였다.
(안돼, 절대 저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선 안돼.)
혁이는 으스러지게 주먹을 틀어잡고 녀자애를 향해 뛰여가며 소리쳤다.
“여기, 여기로 오너라.”
그소리에 녀자애가 머리를 들며 혁이를 향해 눈길을 날렸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향해 손을 저으며 속도를 다그쳤다. 녀자애는 혁이를 알아본 모양인지 혁이쪽을 향해 뛰여오며 소리쳤다.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뒤에서 사나이가 연신 소리쳐댔다.
“게 서라는데, 서라구.”
“저 사람이 강….강아지를 어… 어쩌면 좋아!”
그새 녀자애는 혁이앞에까지 뛰여와서 강아지를 혁이에게 넘겨주고는 그자리에 폭 주저앉아버렸다. 혁이는 거의 본능적으로 강아지를 받아 가슴에 꼭 안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사나이도 어느새 혁이네앞에 도착했다. 사나이는 독안에 든 쥐들이 뭔 짓이냐 하는 투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지독한 계집애 같으니라구. 서라면 설것이지… 뛰기는 어디를 뛰여. 네가 날 뛰여 이길것 같았어?”
“량심있어요? 아저씨!”
녀자애가 발딱 일어서며 오돌차게 소리쳤다. 녀자애의 흥분된 모습에 사나이는 흠칫 놀라는듯 하더니 흐흐흐 찬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량심이라니? 계집애가. 떠돌이강아지를 내가 거두어 주련다는데 웬 소리냐?”
“정말 거두어주려고 그러는가요? 저 다 알거든요. 잡아먹을려고 그러는걸”
“자…잡아먹을려구 그런다구? 맹랑한 계집이,”
“저 아저씨가 아까 지나가며 친구들과 하는 말을 다 들었어요. 잡아 곰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면서 내 앞을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온거 아닌가요? 친구들하구 강아지를 잡아가겠다고 큰소리를 친거죠. 안돼요.”
녀자애는 사나이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사나이도 괜히 녀자애에게 결이났던지 녀자애 앞으로 한발 나서며 손사래를 해댔다.
“그러면 또 어쩔텐데. 임자없이 시장판을 도는 강아지를 내가 고아먹든 구어먹든 너하구 먼 상관이냐? 너하구 사촌이라도 되니? 아님 너의 신랑감이라도 되니?”
사나이는 스스로 자기가 한말에 유머가 흠씬 담겼다고 생각되는지 “하하하하…”하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아저씨!”
혁이는 뭔가를 알것같아서 한발 앞으로 나서며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바람에 사나이는 흠칫하며 혁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허, 강아지! 네가 안고있구나. 얘, 그 강아지를 이리 가져와라.”
사나이는 혁이쪽으로 다가오며 한마디 했다. 혁이는 강아지를 으스러지게 가슴으로 껴안으며 목소리를 높여 더벅거렸다.
“아…안되죠. 어쩜 가…가… 강아지를 잡아 먹을수 있어요?”
“엄청 말이 많네. 자식이! 못 가져와! ”
사나이는 혁이를 후려칠 양으로 주먹을 건듯 쳐들었다. 혁이는 주먹을 피해 뒤로 한발 물러섰다. 사나이는 혁이를 향해 다시 한발을 조여가며 꽥 소리 질렀다.
“빨랑!”
“안돼요.”
“죽어?!”
사나이는 혁이에게 욱 덮치며 오른손을 쫙 펴서 혁이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악!”
혁이는 소리지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순간 녀자애가 사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와 꽂히더니 방금 혁이의 뺨을 갈긴 손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으아~ 악!”
사나이가 연신 돼지멱따는소리를 질러대며 녀자애의 머리칼을 움켜잡아 내동이를 쳤다. 녀자애는 힌들 나가 쓰러졌다.
“도와주세요. 강도가 강아지를 잡아먹을려해요. 도와주세요.”
녀자애가 단말마적으로 소리지르며 기여 일어났다. 그바람에 길가던 사람들이 혁이네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못된 년이, 에잇 재수 없어서!”
사나이가 방금 녀자애에게 물리운 손을 만지며 투덜거리더니 머리를 수긋하고 뺑소니를 쳤다. 멀어져가는 사나이의 뒤모습을 잠간 훔쳐보던 녀자애가 혁이쪽으로 다가왔다.
“고맙다.”
녀자애가 혁이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아까 넘어지며 어데 긁혔던지 왼쪽 볼에 실뱀같은 상채기가 나있었다. 그우로 빠알간 피가 번져오르고있었다.
혁이는 뚫어지라 녀자애를 바라보았다. 상처에서 흐르는 빠알간 피가 예리한 칼끝이 되여 혁이의 가슴을 찢는듯싶었다.
(어쩜, 어른이란 사람이 어린애를 이렇게 망가뜨려 놓을수 있단 말인가? 개고기썰썰이에 량심도 인정도 다 먹어버렸단 말인가?)
혁이는 강아지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채 애써 목소리를 부드럽게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 아프니?”
녀자애는 대답없이 이윽토록 혁이를 지켜보더니 하아얀 얼굴에 살풋이 웃음을 피워물었다. 아까 강아지를 잡아먹으려던 사나이의 손을 물어놓을 때의 그 기염은 어디로 갔는지 입가에 고운 웃음꽃을 피워가고있는 녀자애는 무던히도 갸냘프고 티없이 맑아보였다.
“피가 배여나왔다. 너 얼굴에…”
혁이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또 한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강아지가 떨고있지?”
녀자애가 혁이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아니, 괜찮아. 얜 원래 새하얀 강아지지?”
혁이는 녀자애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잠간 머뭇거리다가 새삼스레 강아지의 털을 쓸어주며 떠듬거렸다. 녀자애가 혁이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서 오른손을 내밀어 강아지의 엉뎅이를 다독이며 머리를 뜨덕였다.
“그래, 하얀강아지지, 원래는!”
“원래는 그렇지. 하얀강아지! 이 강아지, 아마 주인이 없나봐.”
“아마 그렇겠지? 벌써 한 열흘됐을거야. 이 시장판에서 돌아다닌지. 첨엔 그저 주인하구 함께 나온 강아진줄 알았거든. 그땐 털도 새하얀게 여간만 귀여운것이 아니였어. 눈에서 정기도 반짝이구. 근데 하루가 지나구 이틀이지나도 강아지는 여전히 시장마당을 도는거야. 차츰 새하얗던 털이 이렇게 씨뿌옇게 변해가구.”
녀자애는 너무도 안슬퍼서 못참겠다는듯 두손을 내밀어 강아지를 당겨왔다.
“강아지는 누군가의 버림을 받은거야.”
혁이가 별안간 오른발을 탕하고 들었다가 놓으며 소리쳤다. 그바람에 녀자애는 깜짝 놀라는듯 하더니 까아만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그걸 아니?”
“분명해! 잃어버린 강아지라면 진작 주인이 이 곳에 와서 강아지를 찾아갔을게 아니니? 너 아까 말했지. 이 강아지가 이 시장판을 돌아다닌지가 열흘도 넘었다구. 너의 엄마면 너를 열흘씩이나 시장판에서 돌게 하겠니?”
“뭐? 뭐야? 너 말하는것 하구는... 그런건 너의 엄마하구 물어봐라.”
녀자애는 삽시에 차디찬 눈길로 혁이를 치떠보며 성난 왕벌만치나 맵게 혁이를 톡 쏘아주었다.
“어... 너...괜히 그렇다는거지... 성내긴... ”
혁이는 그제야 자기의 말이 빗나갔음을 알았는지 더는 아래말을 잊지못하고 더벅거리며 얼굴을 붉히다가 몸을 외로꼬았다. 녀자애는 여간해서는 놓아주지 않겠다는듯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성내는게 아니다. 너 말하는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그래 뭐? 우리 엄마면 어쩐다구? 흥!”
“아니 난 그저 그렇다는거지. 엄마들은 다 그렇게 자식을 가슴아파 한다 그거지.”
“그럼? 너 그래 난 이렇게 좋은 엄마가 있다 그거니? 그걸 자랑하는거니?”
“아니... ”
“아니면?”
녀자애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혁이는 너무도 반상적인 녀자애의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도 어딘가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괜히 심술같은 것이 스물스물 머리를 쳐드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혁이는 녀자애앞에 한발 다가서서 강아지를 확 나꿔채려 했다. 녀자애는 더 힘주어 강아지를 가슴쪽으로 당겨다 안으며 황황 타는듯한 눈길로 혁이를 쏘아보았다. 혁이는 얼굴에 픽하고 쓴 웃음을 날리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이 강아지 너의 것도 아니라면서, 아까 난 이 강아지에게 삶은고기랑 사먹였다.”
“근데는?”
“근데 넌 마치도 저네 강아지처럼 이렇게 떡하니 그러안고 잊잖니?”
혁이는 “봐라, 난 이렇게 강아지에 관심이 많다”는 듯이 목소리를 한옥타부 높였다. 녀자애도 만만치 않게 다가섰다.
“쪼잔하게, 남자애가! 까짓걸 가지구. 넌 이 강아지 이름이 뭔지나 알고있니?”
“어? 이름?”
“흥!”
녀자애의 입가에는 “그럼 그렇겠지”> 하는 표정이 찰찰 흐르고있었다. 혁이는 흑 숨을 들이그어 두볼을 홀쪽하게 만들어가며 두 눈을 껌벅이다가 픽 하고 랭소를 했다.
“그럼 넌 이 강아지 이름을 아니?”
“알아!”
녀자애의 대답에 확신이 차있었다.
“너, 방금 안다구?”
“그래.”
“뭔데?”
“미아야, 미아라구해! 곱지 우리 미~아~”
녀자애가 강아지의 머리를 톡치며 해쭉 웃었다.
“어, 미화? ”
“미화가 아니구 미아.”
“그런 이름도 있니? 미야? 도레미야? 크크크”
혁이가 오른손으로 아래배를 북치듯 하면서 무너져내렸다. 웃으워서 못참겠다는 혁이의 거동에 녀자애는 다시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참 너 청력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야? 얜 꽃이 아니구 아라니까? 미아!”
“미아라구? 이상하네”
“뭐가?”
“미아라면 길잃은애?”
“맞지! 길잃은애!”
“아! 맞지, 그래”
혁이가 무릎을 탁 쳤다. 그제야 녀자애의 얼굴에는 다시 엷은 미소가 스쳐지났다.
“미아, 미아! 그래 네가 지어준 이름이니?”
혁이도 녀자애를 향해 히쭉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녀자애가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 그럼 얘와 한집식구가 다 됐구나 뭐! 근데 왜? 아예 얘를 집에 데려다가 네 동생을 만들지 그러니? 만날 쏘세지도 사주구 양고기뀀도 사주면서 말이야, 너랑 한 침대를 쓰면서 말이야!”
혁이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시물시물 웃으며 녀자애를 쓸어오렸다. 순간 혁이는 녀자애가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너나 그렇게 하세요!”하고 바락바락 소리치는 장면을 그려보고있었다. 하지만 녀자애는 어찌된 일인지 얼굴에 그늘을 지으며 오밀오밀 입술을 빨아댔다.
“아차!”
혁이는 자기가 또 무슨 말실수를 했나싶어 가슴이 아릿해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가 녀자애의 눈굽이 촉촉히 젖어올랐다.
“얘, 롱담으로 한 소린데 너 진짜 울보구나. 다신 널 놀리지 않을게, 그럼 됐지?”
혁이가 성근하게 녀자애에게 잘못을 빌었다. 진지해지는 혁이의 얼굴을 보면서 녀자애는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난 진짜 미아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있거든.”
“왜? 너 미아에게 진짜로 잘해주었잖니? 이름도 지어주구?”
“전번에 난 진짜로 미아를 우리집에 데려갔었거든.”
“그래? 얘를 너네 집에 데려갔댔다구?”
혁이는 긍금해서 못참겠다는듯이 녀자애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다잡아 물었다. 녀자애는 차분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 얘가 임자 없는 강아지라고 판단한 나는 지난번에 얘를 우리집에 안아갔댔더랬어. 난 뜨거운 물로 얘를 목욕시켜주었어. 샴푸를 듬뿍 발라서 말이야. 두벌이나 씻어주니 얘의 털이 하아얗게 들어났거든. 얼마나 멋졌다구. 난 얘를 우리 집에서 기르자고 생각했댔어.”
“근데? 근데 왜 또 얘를 떠돌이로 되게 했니?”
혁이는 그 불찰이 마치도 녀자애에게 있는듯이 답잡아물었다. 녀자애가 “호~”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우리집 불여우가 동의 하지 않는거야.”
“불여우라니? 너네집에서 여우도 기르니?”
“길러 꼬리가 아홉개 달린 불여우야.”
녀자애의 얼굴에 가는 실웃음이 스쳐지났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어디 꼬리가 아홉개달린 여우가 있니?”
“흥! 우리 새엄마, 꼬리가 아홉개 달린 불여우보다도 더 요사하거든.”
녀자애가 얼굴에 쓴 웃음을 띠우며 이사이로 내뱉었다. 혁이는 저도몰래 “아!”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런 일이였구나. 너 친엄마는? 돌아갔니? ”
“아냐? 그 불여우가 울아빠를 꼬셔낸거야.”
“그래서?”
“그래서 우리 친엄마라는 사람은 울 아빨 개고생해보라구 내가 세살 때 리혼해버린거야. 서로 날 가지지 않겠다고 차던지기를 하다가 나중엔 법원에서 나를 아빠쪽에 판결했다나봐.”
녀자애는 남의 말을 하듯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자기처럼 불쌍한 애들이 참 많구나 하는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면서 세상은 참 재수없게 생겨먹었구나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너의 새엄마가 강아지를 내다버린거야?”
“아냐, 그 불여우의 말이, 내가 내다 버리지 않으면 마작을 노는 나그네들을 주어 잡아먹게 하겠다는거야.”
“마작을 노는 나그네들이라니?”
“있다. 그 불여우는 맨날 활동실에 가서 마작치기를 하거든. 그곳엔 곰처럼 생겨먹은 나그네들이 참 많아, 쩍 하면 모여서 술놀이를 하는데 개, 돼지 못 잡아먹는게 없대.”
“설마, 애완견까지야 잡아먹을라구?”
혁이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녀자애는 작은 눈을 올롱하게 치뜨더니 한심하다는듯 혁이를 일별하며 머리를 저었다.
“참, 너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자구 그렇게 순진해 빠졌니? 활동실에 다니는 사람들이, 흥 애완견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래. 그 불여우가 말했어. 진짜 잡아먹으라구 불여우가 얘를 그곳 사람들에게 가져다가 줄가봐 내가 가슴 아픈대로 얘를 다시 이곳에 놓아둔거야. 글구 설사 잡아먹히지는 않더라도 미아가 우리집에 맘편히 있을수 없을거야.”
“건 왜?”
“너 몰라,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불여우, 나를 혼내지 못해 안달이거든. 밥먹는걸 봐도 밉대. 물귀신 같대.”
녀자애는 말을 마치고 송곳이로 입술을 깨물어 씹기 시작했다. 녀자애가 상심해하는 모양을 보니 괜히 해보는 말같지가 않았다. 혁이는 녀자애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너의 아버진 새엄마가 널 그렇게 대하는걸 모르니?”
“아마 모를거야, 엄마가 새엄마면 아버지도 새아버지가 된다고 했던가. 암튼 그 불여우는 딱 팥쥐엄마 같애. 아빠앞에선 세상에 둘도 없이 날 생각하는것처럼 하다가도 아빠만 없으면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거야.”
“저런, 그럼 아빠게 콱 고발해버리지 그러니.”
혁이는 격분해서 녀자애의 옆으로 한발 다가섰다. 녀자애는 얼굴에 서글픈 웃음을 띠우며 머리를 저었다.
“아빠께? 흥, 아빠가 힘들잖아 그러면. 울 아빠두 참 녀자복이 없는가봐. 할머니 생전에 늘 그렇게 말했거든.”
“참!>
혁이는 긴 한숨을 내쉬며 발부리로 땅을 걷어차고는 혼자말 비슷이 한마디했다.
“할수 없지무. 너네 새 엄마가 싫다면.”
“그렇지무, 난 아직 힘이 없으니까. 이 강아지는 정말 누군가 보살펴줘야 하는건데… 그래서 난 학교에 갔다가 와서는 이 곳에 와서 강아지를 찾아 쏘세지도 사먹이구, 양고기뀀도 사먹이구 그래는거야, 날 엄청 따라, 우리 미아가…”
녀자애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혁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녀자애를 위안해줄 말을 찾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강아지가 널 무척 따르는것 같구나.”
“그렇지? 우리 미아가 날 무척이나 따르는것 같지?”
말을 하며 혁이를 바라보는 녀자애의 얼굴은 그러듯 행복해보였다. 혁이는 녀자애의 그 얼굴에서 새로운 뭔가를 읽어내는듯싶었다.
“그럼 너 미아를 어떻게 할 생각이니?”
“몰라, 그냥 이렇게 돌봐줄수 있을때까지 돌봐야지뭐… 내 힘이 자라는대루.”
녀자애의 목소리는 방금전과 다르게 푹 처져있었다. 순간적인 일이지만 그 시각 상심한듯 해쓱해진 녀자애의 얼굴은 뿌연 먼지를 들쓴 미아의 허연 털에 받침되면서 사뭇 쓸쓸해 보였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삽시에 와그르르 문어져내리려는 눈사람을 보는듯싶었다.
“얘, 우리 미아에게 목욕이나 시켜주자.”
혁이가 녀자애의 다운된 기분을 바꿔주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웃음을 피워물었다. 그말에 녀자애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래, 우리 미아를 목욕시켜주는거야 시원하게…”
“그래, 가자, 연장강변으로, 샴푸도 사가지구 가자. 거품목욕을 시켜주자. 때자국이 쑥 빠지게. ”
녀자애는 손벽을 착착치며 퐁퐁 뛰여올랐다.
참으로 화사한 날씨였다. 게다가 한낮이여서 그런지 개울물이 조금도 차다는 느낌이 없었다. 혁이는 조심스럽게 강아지의 발을 개울물에 밀어 넣었다. 물에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강아지는 죽어라고 물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렸다.
“얘, 그만해라. 너 미아를 다 죽이겠다.”
녀자애가 사처로 튕기는 물을 피하며 혁이의 어깨를 살짝 쳤다. 혁이는 머리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안돼, 그래도 싣겨야지. 때버섯이를 시켜야줘지. 미아를.”
“그래두 미아가 싫다 잖아.”
“참, 너 그러지 말구, 샴푸봉지를 찢어서 가져오너라. 빨랑!”
“응, 알았다.”
녀자애는 바삐 손에 들고있던 샴푸봉지의 왼쪽 모서리를 찢어서 혁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혁이가 샴푸를 짜서 강아지에게 바르려는 순간 강아지는 더 용을 쓰며 물에서 나오려고 힘을 썼다.
“안되겠다. 네가 샴푸를 짜서 강아지등에 발라라.”
녀자애는 혁이의 손에서 샴푸봉지를 받아들고 강아지의 등에 짜놓으려고 샴푸를 든 두손을 강아지를 향해 쭉 뻗쳤다. 상체에 너무 힘을 주었던지 녀자애는 그만 아래다리를 흠칫 떨며 그 맵시로 물에 풍덩 엎어지고 말았다. “앗!” 혁이는 강아지를 들었던대로 물에 떨어뜨리고는 강에 텀벙 뛰여들어 녀자애를 안아 일으켰다. 녀자애는 엎어지며 개울물을 마셨던지 연신 꺽꺽 들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얘, 괜찮니?”
“꺾, 죽는줄을 알았잖아? 꺾… 두모금이나 먹었네, 강물을 저~ 미아가 떠내려간다.”
녀자애가 소리쳤다. 혁이도 개울물을 따라 눈길을 주었다. 아니나다를가 미아가 개울물에 둥둥 떠내려가고있었다. 강아지는 머리를 잔뜩 쳐들고 연신 앞발을 허둥거렸다. 그대로는 위급할것 같았다.
“미아야~ 미아야.”
혁이는 미아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미아야, 힘내 아자아자, 파이팅!”
녀자애도 혁이의 뒤를 바짝 따르며 소리쳤다.
혁이네의 부름소리를 들었는지 강아지는 그와중에도 무시로 머리를 돌려 혁이네를 돌아보고있었다. 혁이는 더 힘을 내서 뛰였다. 물속이라 그럴수록 걸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야, 이대론 안돼”
녀자애가 별안간 뭔가를 터득했던지 강뚝으로 뛰여오르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내 달았다. 얼마를 달리지 않아서 강아지를 따라잡은 녀자애는 다시 강물에 풍덩 뛰여들어 엎어질듯 하며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잡았다. 잡았다. 강아지를 잡았다.”
녀자애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미아야, 너 살았니? 얘, 너 괜찮아?!”
혁이가 두서없이 소리치며 뛰여왔다. 녀자애는 어느새 강아지를 안고 강뚝에 올라서고있었다. 온몸으로 강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녀자애와 강아지를 번갈아보던 혁이는 갑자기 뛰여가서 녀자애를 꼭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니, 너 진짜 괜찮니? 멋졌어. 짱이야.”
“얘!”
녀자애가 몸을 외로 탈아 혁이의 품에서 뛰쳐나오며 외마디 소리를 쳤다. 순간 혁이는 녀자애를 꽉 잡았던 손을 풀며 흠칫 몸을 떨었다. 녀자애는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를 안은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강뚝에 있는 큼직한 돌우에 앉았다. 혁이도 말없이 녀자애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누구도 먼저 말머리를 열지 않았다. 강아지가 몸에 묻은 물을 털어내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렸다.
“와~ 원래는 미아의 털이 이렇게 하얗구나.!”
무거운 침묵을 깨고 혁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미아의 털은 이렇게 하얗다니까. 눈처럼 새하얗다구. 글치 얘!”
한결 맑아진 목소리로 말을 하는 녀자애의 얼굴이 금시 피여나고있었다. 까아만 머리카락에서 반짝이는 물방울이 녀자애의 하아얀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얘, 나 널 어디서 많이 보았던것 같아!.”
혁이는 저도모르게 엉뚱한 말을 뱉어버렸다.
“뭐? 진짜? 어디서?”
“아니!”
혁이는 순간 말끝을 이을수 없었다. 혁이로서도 자기가 왜 이렇게 엉뚱한 말을 했는지가 야릇하게 생각되였다. 그시각 혁이는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올리미는 은은한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방금 그려낸 그림같은 녀자애의 모습을 보면서 혁이는 머리속에서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엄마의 그림자를 찾아내고있었던것이다.
언제부터였던지 혁이는 머리를 감고 돌아서는 엄마의 두볼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헤아리기를 좋아했다. 까아만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유난히도 반짝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것이다. 저 물방울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가? 어째서 엄마의 볼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저렇게도 반짝이는 걸가? 나의 얼굴에서 흐르는 물방울도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가?
그래서 일부러 머리를 감고 그대로 거울을 마주서서 자기의 얼굴을 비춰보았지만 퍼렇게 바탕이 들어날 정도로 뻑뻑 밀어버린 자기의 머리통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은 밥상우에 쏟혀진 장국만치나 꼴불견스럽게 생각되였었다.
“얘, 너 머리칼이 참 좋다!”
혁이는 녀자애를 향해 또 엉뚱한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녀자애가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더니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한 애가 아니니?”
“아냐, ”
“근데 너 하는 말이 참, 그렇게 듣기는데.”
“그래? 너 엄마의 머리칼도 그렇게 고왔니?”
“정~말!”
녀자애가 발딱 일어섰다.
“아니, 미~안!”
혁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떠듬거렸다.
“너 웬 일이니? 남의 상처에 염장을 지르기로 작심한거니, 엄마소릴 하지 말랬지?”
“미안, 그래 알았어. 엄마말 안하면 될거 아니냐?”
“대는 없어가지구.”
“근데 얘, 울엄마 머리칼이 참 고왔다.”
“너 엄마 머리칼이?”
녀자애가 뭔 말이냐는듯 혁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혁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녀자애의 얼굴이 반짝 빛났다.
“그래, 이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겪으면서두! 난 안예림이야. 열네살이구. 북림소학교에 다녀.”
“난…난 장혁이라구 불러, 나두 열네살인데 도심학교에 다녀.”
“도심학교? 어, 너 부자구나. 그곳은 귀족학교가 아니니?”
녀자애가 일부터 목소리를 한옥타부 높이며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참, 그래 귀족학교지. 엄마, 아빠 없는 애들이 득실득실 모여사는 귀족학교지.”
혁이가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어주었다.
“너, 엄마아빠 없는거야?”
녀자애의 얼굴이 흐려지졌다. 혁이는 천천히 돌우에 다시 주저앉아 머리를 쳐들고 이윽토록 흘러가는 구름떼를 바라보며 혼자말비슷이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너무도 그리운 이름이면서도 너무도 불러본지 오란 이름이기도 했다. 혁이의 머리속에는 떠올리고싶지 않은 그저녁이 클로즈업되여 살아났다.

*
삼촌이 혁이를 객실 쏘파에 불러 앉힌것은 삼촌댁이 차사고를 당해서 보름후였다. 그새 혁이는 삼촌댁의 병수발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뛰여다니는 삼촌을 보면서 늘 뜨거운 가마에 오른 개미를 떠올리군 했었다.
(과연 어떻게 되는걸가? 숙모가 저 맵시로 일어나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것일가?)
밥상앞에 앉아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혁이는 이 문제로 고민했다.
작은 장식회사에 출근하는 삼촌은 밤낮이 따로 없이 회사일에 목매워 사시는 분이였다. 그런 삼촌이 요즘은 삼촌댁의 병수발 때문에 엄청 힘들어하고 계셨다. 그뿐이면 몰라도 하루에 빨래감을 한소래씩 만들어내는 열살짜리와 여덟살짜리 두 사촌동생을 돌보는 일도 쉬운것이아니였다. 혁이는 그런 삼촌의 손등을 씼어먹으며 삼촌집에 달려있는게 무던히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삼촌에게 시끄러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쩐지 옆으로 뒤로 삼촌의 신세를 져야할 일들이 늘 생겨나군 했었다.
삼촌은 몇번 엄마와 전화가 오가는것 같았다. 그런날이면 삼촌의 얼굴에는 더 수심이 끼곤 했다.
드디여 어떤 결론이 난 모양이였다.
그날 삼촌은 피발이 선 눈길로 한참이나 혁이를 바라보다가 “푸~”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너의 엄마하구 전화가 통했다. 어쩔수가 없구나. 너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너를 맡아주자고 했는데, 아줌마가 언제 가야 일어날수 있을지 미결이라고 하는구나. 너도 알다싶이 지금 삼촌의 형편에… 너, 래일부터 도심학교로 가야겠다. ”
삼촌은 여기까지 말하고 머리를 돌리셨다. 혁이는 삼촌이 그때 약간 어깨를 들먹이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설마, 삼촌이 우시는걸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치자 혁이는 순간 코끝이 시큼해나며 자기도 울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학교라면 시내에서 소문난봉페식기숙제학교였다. 1년 학비가 6천원이라는 도심학교는 생활절주가 반 군사화라는것도 들어서 알고있었다. 전에 혁이도 동학들과 모여앉아 도심학교에서는 애들이 아침5시에 일어나야 하고 밤 아홉시에 취침을 해야하며 텔레비죤도 일주일에 두번밖에 못보고 옷도 팬티에서 걷옷까지 모두 스스로 씻어입어야한다는 등 이야기를 하면서 그곳 애들을 위해 눅거리 한숨이라도 몇번 쉬여준적이 있었던것이다.
“혁이야, 첨엔 좀 힘들겠지만 어쩌겠니? 마음을 크게 먹고 한번 그곳 생활을 해보거라.”
삼촌은 애써 목소리를 담담하게 하려고 나오지도 않는 마른기침을 컹컹 짖었다. 혁이는 그러는 삼촌의 창백해진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도심학교에서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벌써 아홉시에 불을 끈 컴컴한 숙소, 이른잠에 습관된 애들이 어지럽게 코고는 소리, 그 소리에 잠을 청할수가 없어 하염없이 창밖의 별들을 세는 자기의 모습, 혁이는 자기의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할것이라 생각되였다.
혁이는 문뜩 삼촌집이 참으로 따스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삼촌집에서의 나날들이 참으로 행복했었다고 생각되였다.
삼촌은 대패밥이 묻어있는 옷을 입고 지친 얼굴로 퇴근을 하면서도 늘 손에 구운고구마같은것들을 들고 오셨다. “동생들과 나누어 먹어라.”고 이야기 하시는 삼촌을 보면서 혁이는 몇번이나 아버지를 떠올리군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삼촌에게서 엄청 욕을 먹고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삼촌은 사촌동생들에게 매우 엄하게 대했던것이다. 타일러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커쿨진 주먹으로 이마에 뚝하니 꿀밤을 먹여주면서 “이래도 그냥 고집을 피울래?”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다. 그러다가도 동생들의 발을 씻어주고 나란히 앉아서 그림영화를 볼 때면 저도몰래 사촌동생들이 시샘이 나도록 부럽기까지 했었다.
속으로 (삼촌이 만약 나의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가?)하는 생각을 굴리다가도 사촌동생들에게 속보이는것같아서 스스로 얼굴을 붉힌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만치 혁이는 아버지사랑에 목말라있었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뼈속으로 그리워하고있었다.
혁이의 아버지는 혁이가 네살 나던 해 외국으로 돈벌러가셨다. 그사에 몇번 집으로 돌아와 얼마간씩 있다가군 했다. 아버지는 올쩍마다 혁이를 위해 놀이감을 가양각색으로 많이도 사다주었지만 혁이는 늘 아버지의 눈길이 마치도 자기를 이쁘다고 볼을 간질러 주시던 이웃집아저씨의 눈길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한번 아버지의 품에 안겨보았으면… 아버지의 저 떡 벌어진 어깨우에 올라가 목마라도 한번 타보았으면…하는것이 혁이의 욕심이고 바람이였다.
언젠가 혁이는 용기를 내여 아버지의 등뒤에 가 작은 손을 아버지의 어깨에 올려놓은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 손을 거부하지 않으면 한술 더 떠서 가슴을 아버지의 등에 기대보고 그래도 아버지가 그대로 받아주면 오른다리를 슬쩍 들어서 아버지의 어깨에 걸쳐볼 심산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혁이의 손길이 아버지의 어깨에 닿는 순간 아버지는 흠칫 몸을 떨며 어깨를 픽 돌리더니 두팔을 내밀어 혁이를 끌어안으며 오른손으로 혁이의 엉덩이를 두어번 다독여줄뿐이였다. 혁이는 나름대로 아버지께서 자기의 생각을 알아버린것같아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의 품에서 바삐 빠져나갔다.
혁이가 일곱살나던 해, 아버지는 외국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사망원인좇아 제대로 알지못하는 죽음이라 보상비같은것은 언급할수도 없었다. 실로 청천병력이였다. 어머니는 며칠이고 음식을 전페하고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혁이는 그때 잘 알지를 못했다. 그저 엄마마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가 하는것이 제일 큰 큰심이고 두려움일뿐이였다. 혁이는 하루종일 엄마팔을 부여잡고 “엄마, 죽지마라, 엄마 죽으면 난 누구하구 사니?”를 반복하며 울음바다를 헤여다녔다.
애처로운 혁이의 부름이 힘이 됐던지 엄마는 용케도 자리를 차고 일어나셨다.
이듬해 엄마는 혁이를 외삼촌네 집에 맡겨 놓고 외국으로 돈벌려 떠나셨다. 살아야 한다며 남못지 않게 혁이를 키워야 한다며 여느 사람들의 만류도 마다하고 버럭버럭 외국으로 떠나셨다. 그날 혁이는 외삼촌과 외숙모와 함께 어머니를 바래주러 공항으로 나갔다. 혁이는 외삼촌의 품에서 몸부림을 치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고 푸들푸들 두볼을 떨면서 간신히 걸음을 옮겨 대기실로 들어가고있었다.
어머니가 떠나서 두달 후, 혁이는 외숙모의 손을 잡고 학교붙으러 갔다.
“공부를 잘해라, 누굴 속태우지말구.”
등록을 마치고 나오며 외숙모가 혁이의 뒤통수를 톡 쳤다. 혁이는 어깨를 움씰하며 자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달마다 혁이의 생활비를 보내는것 같았다. 하지만 외숙모는 노상 혁이의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계셨다. “개먹이 소먹이 다 오르는데 혁이의 생활비만은 안 오르는구나.” 하시는 외숙모의 말이 무슨 뜻인지 혁이는 첨엔 모르고있었다. 그냥 자기를 대하는 외숙모의 얼굴이 외사촌동생들을 대할 때와 조금은 다르구나 하고 생각될뿐이였다.
혁이가 열한살나던해 외삼촌도 외국으로 나가게 되였다. 그러자 혁이의 거처가 큰 문제로 되였다. 외숙모가 몸이 아프다며 더는 혁이를 못맡겠다고 나누으셨던것이다.
혁이는 이렇게 되여 삼촌네 집에 옮겨앉았다. 외숙모가 넘겨주는 려행용가방을 끌고 외삼촌네 집을 나오며 혁이는 울고싶다고 생각을 했다. 가방 하나 달랑 끌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삼촌의 손에 끌려 가는 자기가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삼촌은 싫은소리 한마디 없이 혁이를 깍듯이 대해주셨다. 혁이는 혁이대로 그러는 삼촌이 고마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다. 혁이는 삼촌의 눈에 나지말자고 언제나 자기를 단속하군 했다.
엄마는 외국에서 간혹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혁이는 그 전화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전화에서라도 나름대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보고 재롱도 떨어보고싶었지만 엄마는 늘 첫마디로 “삼촌하구 삼촌댁을 애먹이지나 않느냐”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들으면 달아올랐던 흥분도 싸늘하게 식어지군했다.
엄마의 말을 실어다주는 전화줄만치나 엄마의 말도 차갑게 느껴졌다.
“저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혁이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을라치면 엄마는 엄마대로 제 좋은 말만 늘여놓았다.
“너 삼촌댁의 눈에 나면 안된다. 삼촌집에서까지 쫓겨나면 너 어데가 있을려구 그러니? 엄마는 아직도 몇년 더 벌구 가야겠는데. 그래야 너 대학공부까지 시키지그러니.”
엄마의 말을 들으며 혁이는 삼촌집에서 쫓겨나 달랑 가방 하나를 끌고 또 어데론가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자신을 그려보군했었다. 그 생각만 하면 혁이는 가슴이 갑갑해오고 머리가 하얗게 비여지는것 같았다.
혁이는 이렇게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하지만 혁이의 노력과는 반대로 숙모의 차사고 때문에 끝내는 삼촌집에서마저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것이다.
도심학교에 발을 들여놓아서야 혁이는 자기처럼 숙소에서 공부를 하는 애들이 참 많다는것을 알게되였다. 여덟살내기 1학년생들이 젖내나는 손으로 식당아줌마에게서 반찬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모양을 보면서 혁이는 저도몰래 목이 메여왔다. 하지만 이한 생활에 습관된때문인지 여덟살내기들도 아홉살내기들도 한점 흐림이 없이 얼굴에 맑은 웃음을 남실거리며 맛나게 밥을 먹어대고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했던가 혁이도 차츰 밥사발을 작은 구멍에 밀어넣어 아줌마들이 떠주는 반찬을 받아서는 맛있게 먹을수 있게되였다.
이러구러 몇달이 지났다. 혁이는 차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서로 도우며 사는 숙소생활이 친척집에 얹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것보다 휠씬 더 자유롭고 좋다는 생각을 하게되였다. 따라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고 자기만의 생활의 리듬을 잡아가게되였다.
(치약을 사야겠구나, 세수비누도 미루 사야하고, 그리고 팬티도 한장 더 사서 갈아입어야지.)
혁이는 아침에 치약을 힘껏 비틀어 짜며 이런생각을 굴렸다. 이어서 떠오르는 곳이 북안시장이였다.
원래 이런것은 학교의 상점에서 살수도 있었지만 혁이는 늘 뭔가 살것이 있으면 북안시장을 리용하군 했다. 북안시장에 가면 엄마의 체취를 다시금 느껴볼수있을것 같아서였다. 북안시장 2층 옷가게27호는 엄마가 외국으로 가기전에 운영하던 매대였던것이다. 그 시절 혁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늘 엄마의 매대에 들리군 했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혁이는 쪽걸상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실을 가지고 그물뜨기놀이도 하군 했다. 이웃매대의 할머니는 그러는 혁이의 코끝을 눌러주며 “어쩌나? 손님이 이렇게 없어서… 혁이가 뭘루 사탕이랑 사먹누?” 하고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 혁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래도 울 엄만 사탕만 잘 사주는데요.”하고 되받아넘기군했다. 오늘까지도 영화같은 그 장면들은 행복한 추억으로 혁이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요즘에 와서 간혹 엄마의 매정한 전화를 받을 때면 엄마에 대한 미움이 새록새록 서려오르다가도 돌이켜보면 또 가슴이 뭉클하게 엄마가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였다. 혁이는 갈수록 가물가물해지는 엄마에 대한 추억을 잡아보려고 무등 애를 써보기도 했다.
(엄마의 눈이 쌍까풀이던가? 아님 외까풀이던가? 그래 오른쪽 입귀 우에 까만 기미가 있었더랬지…글구 웃을 때 볼에는 보조개가 들어갔었어…)
무시로 달아나버리려는 엄마의 모습을 이렇게 자꾸자꾸 머리속에 잡아넣는 혁이였다. 그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산다는것만으로도 기탁이 되는듯싶었다. 하지만 그 기억이 가슴속 밑자락에 앙금처럼 남아있다는것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심학교에 옮겨와서 어느 어문시간이였다. 선생님께서 “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지어보라고 하셨다.
(가족? 나의 가족?)
혁이는 그 제목을 놓고 무던히도 고민을 했다.
(나의 가족? 과연 나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가족으로서의 행복한 추억이 혁이에게는 별로 없었다. 혁이네 가족에는 늘 아빠의 자리가 비여있었던것이다. 혁이는 한참을 궁리하다가 이렇게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어야 가족이라고 할수있는데…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커서 꼭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애들도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 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합격된 아버지가 되겠다….”
선생님께서 그 작문을 참 잘썼다고 하시면서 동학들앞에서 읽어주셨다. 몇몇 동학들은 킥킥거리며 혁이가 장가들고싶어한다고 웃어주었다. 하지만 또 몇몇 동학들은 머리를 돌리고 눈물을 짓기도했다.
사실이였다. 훌륭한 아버지로 되는게 혁이의 꿈이라면 꿈이라고 늘 생각해오는터였다.
*
“강아지가 불쌍해, 미아가 불쌍하다구. 말도 못하는것이 어디가서 어떻게 살겠니.”
혁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녀자애도 어금이를 꼭 깨물고있었다.
“그래, 이 쬐꼬만 것이 어떻게 혼자 살수있겠어. 누군가 보살펴야 하는건데. 하지만 어쩌니? 우리에게 무슨 힘이있니? 내가 다시 집에 가지고 들어가면 그 불여우가 잡아먹을거야.”
“참, 예림아, 우리 빨리 컸으면 좋겠지? ”
혁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하여 약간 떨려왔다.
“그래. 빨리컸으면 좋겠어.”
녀자애도 속삭이듯 말했다.
“난 장가가서 애들을 낳으면 꼭 옆에서 지켜주겠어. 하루 두끼 죽을 먹더라도 옆에서 애들과 함께 있겠어. 난 꼭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가 될거야.”
“나두 세상에서 젤루 좋은 엄마가 될거야.”
녀자애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머리를 들어 혁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각 혁이의 눈길도 녀자애를 찾고있었다. 둘의 눈길은 허공에서 만나며 반짝하고 빛을 뿌렸다.
혁이가 벌떡 일어섰다.
“예림아. 내 생각이 있다.”
녀자애도 혁이를 따라 발딱 일어섰다.
“어떤생각이? 빨리 말해라.”
혁이는 다시 한번 녀자애를 바라보며 힘있게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박또박 아래말을 이었다.
“우리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자.”
“뭐? 새주인을 ? 미아에게 새주인을 ?” 녀자애의 눈길이 갈피를 잡지못하고 허공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쪽으로 한발다가서며 힘있게 말했다.
“그래, 우리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는거야. 어느책에선가 보았거든.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대. 그래 그런거야, 이 세상에는 꼭 우리 미아를 자기 자식처럼 귀엽게 키워줄 사람들이 있을거야. 우리 그런 사람을 찾아 미아를 맡기는거야.”
“아, 새주인 . 그럼 얼마나 좋겠니? 근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니?” 녀자애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의 물음에 잠시 말거리를 찾지못하다가 힘을 주어 말했다.
“우리 북안시장앞에 미아를 안고 기다리는거야, 맘씨곱고 무던해 보이는 아줌마나 아저씨들을 보고 물어보는거야. 우리 미아의 새아빠, 새엄마가 죄실 생각이 없냐구 말이야. 그럼 우리 미아를 곱게 키워주겠다는 사람들이 꼭 나타날거야”
“와, 너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할수있니? 그래 맞아. 그럴거야. 너 아까 말했지.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들보다 훤씬 더 많다구. 그래 우리 미아, 희망이 있는거야. 우리 미아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있는거야. 행복한 보금자리를 찾을수 있는거야!”
녀자애의 얼굴에 무한한 행복이 넘쳐흐르고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의 얼굴을 흐믓하게 바라보며 얼굴에 흠뻑 웃음을 피워물었다.
“그래, 가는거야. 우리 이길로 가는거야!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는거야.”…
혁이는 강아지를 품에 꼭 껴안고 앞을 향해 힘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녀자애도 혁이의 뒤를 따라 힘있게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혁이의 얼굴에도 녀자애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넘쳐흘렀다.
“예림아, 우리 미아는 참 행복하게 살수있을거야.”
“그래, 우리 미아를 위해 축복해주자. ”
그들은 마주보며 벌씬 웃었다.
이 세상 모든 근심을 다 털어버리고 자기들만의 행복의 보금자리를 찾은듯한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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