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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아동소설집-민이의 산
울고있는 별
“미나야.”
미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간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자기 또래의 가랑머리 녀자애가 손에 종이쪽지를 들고 서있었다. 녀자애는 무척이나 기대에 찬 눈길로 미나를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미나는 녀자애의 크고 초롱초롱한 쌍가풀눈에서 어딘가 말못할 서글픔을 읽고있었다. 미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봤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설마 저 애가 나를 불렀을가?)
미나는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 녀자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참,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굴리며 미나는 다시 그 녀자애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얘, 방금 네가 나를 불렀니?”
미나의 물음에 녀자애는 까아만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미나는 점점 그 녀자애에게 호기심이 가는것을 어쩔수없었다.
“얘, 넌 누구니?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있니?”
“난 신자라고 부른다. 어제 저녁에 내가 여기를 지나다가 네가 뿌려준 이 쪽지를 주었거든. 그래서 오늘 아침, 여기서 널 기다린거야, 너하구 함께 학교에 갈려구.”
녀자애는 까아만 눈을 슴뻑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미나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얘, 쪽지라니? 참 웃기네. 내가 너에게 쪽지를 뿌려주었다구?”
“그래, 어제 저녁편에 내가 여기를 지나는데 네가 창문으로 이 쪽지를 나에게 뿌려주지 않았니?”
녀자애는 여전히 두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이야기를 하며 미나에게 쪽지를 내밀어보였다.
“낯모를 친구야, 안녕?
난 고독하구 고독하구 또또또 고독하단다. 우리 친구로 사귈가? 싫으면 말구, 흥! 미나가…”
쪽지를 읽어내려가던 미나는 별안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손에 뜬 쪽지가 파르르 떨렸다.
“얘, 너 어떻게 이 쪽지를 주었니?”
깔깔대는 미나를 이상한듯 마라보던 녀자애가 수집은듯 두볼에 약간 홍조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편에 내가 여기를 지나고있는데 갑자기 층집에서 곱게 접은 쪽찌한장이 떨어져 내리는거야, 그래서 깜짝 놀라 머리를 들어 층집을 바라보니 네가 창문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어. 단발머리녀자애, 나는 단번에 너의 머리모양을 머리에 기억해 넣었지. 난 호기심이 동해서 네가 뿌려준 이 쪽지를 주어서 펼쳐보았던거야. 너, 쪽지에다 나하구 친구로 사귀자고 했잖아, 난 그 쪽지를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어제밤, 난 정말 한잠도 못잤어. 얼마나 가슴이 뛰고 흥분되던지…”
“뭐가 그렇게 흥분되고 가슴이 뛰였는데?”
“나에게도 친구가 있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정말 미칠듯이 기뻤던거야,”
“세상에, 어쩜…”
미나는 그 녀자애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어쩜 얼굴에 홍조를 그리며 흥분에 떨고있는 목이 긴 이 녀자애가 측은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어제 오후에도 미나는 학교에서 돌아온후 어머니의 분부대로 피아노선생님과 함께 한시간 피아노련습을 하고 그 길로 영어학원에 가서 두시간이나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날이 어둡기 시작해서야 지친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또 학교에서 내준 엄청난 숙제를 완성해야 했다. 무거워나는 머리를 숙이고 정신없이 필을 놀려가면서 미나는 정말 사는게 너무 힘든것 같았고 자기만이 엄청난 숙제덤이에 깔려있는듯 무지도 외로워났다. 미나는 날리던 필을 던져버리고 무작정 누구에겐가 전화를 넣어 한바탕 수다라도 떨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미나는 몸을 날려 전화기 옆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어머니가 그 기미를 알아채고 눈을 흘겼다.
“공부를 하다가 무슨 전화를 한다고 그러니? 공부하고 상관 없는 전화면 숙제를 다하고 해라.”
“은희에게 할려구요, 숙제를 물어볼려구요.”
“왜 걔하구 숙제를 물어보는데? 선생님이 숙제를 낼 때 넌 뭐하고있었니? 너 오늘 일기도 아직 안썼지?”
“됐어요.”
미나는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쏘아부치고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는 어머니의 잔소리 앞에서 미나는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미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오며 계속 바가지를 긁어댔다.
“미나야, 빨리 일어나 숙제도 하구, 일기도 써야지. 오늘 하루 무엇을 했나? 어떻게 했나? 잘 생각해보구, 한조목한조목 참답게 써야한다. 그래야, 이제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참답게 회보해드리지?”
어머니의 잔소리는 종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됐어요, 어머니 저녁밥은 안지어요?”
“얘두, 소리는 왜 치는데?”
어머니는 미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겨보이며 아쉬운듯 천천히 주방으로 나갔다. “후!” 미나는 사라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영어공부를 해라, 피아노련습을 해라, 일기를 써라.”
미나는 정말 어머니의 잔소리가 자다가도 벌떡 놀라 깰 정도로 싫고 무서웠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려고 4 년철이나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또 어머니의 잔소리를 거역할수도 없었다. 미나는 가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딘가로 허이허이 끌려가는 어린당나귀를 그려보군했다. 그때마다 새삼스레 코끝이 시큼해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미나였다.
미나는 다시 책상에 마주앉아 일기책을 펼쳐놓았다. 하지만 그날이 그날 같아서 딱히 무엇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미나는 필이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괴발개발 오려나갔다.
“이름 모를 친구야, 안녕? 난 고독하구 고독하구…”
잠간 필을 멈추고 읽어보니 저절로도 허구프고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다. 미나는 책에서 일기장을 쭉 찢어냈다. 마구 꾸겨서 쓰레게통에 던져넣으려다가 갑자기 뭔가 머리를 톡 치는 생각이 있어서 곱게 쪽지처럼 접었다. 미나는 쪽지를 들고 발"摹�� 창가로 다가갔다. 미나는 쪽지를 층집아래에 뿌리면서 혼자서 깔깔깔 웃어댔다.
하지만 기쁨도 한 때, 미나는 저녁을 먹고 다시 어머니의 감독밑에서 일기를 쓰느라고 진작 그 쪽지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있었던것이다.
참, 세상 일이란 재밌기도 한가보다. 바로 그 쪽지가 제발로 임자를 찾아온것이다.
미나는 다시 한번 녀자애를 예리한 눈길로 가늠해보았다.
“얘, 내가 어떤 사람인줄을 알고 그 쪽지 한장에 나하구 친구하자고 왔니?”
“그래, 비록 너에 대하여 잘 모르긴 하지만 난 고독한 사람은 언제나 고독한 리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고독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통할수가 있을게 아니니? 난 정말 나하구 잘 맞는 그런 친구가 생기기를 많이도 바랐었는데…”
“그래? 그럼 너의 어머니도 너보구 영어공부 해라, 피아노련습을 해라, 일기를 써라 하구 달달 볶아대니?”
“아니, 너의 어머니가 그러는 모양이구나. 미나야, 난 네가 참, 부러워…”
“아니라구? 피~ 내가 부럽다구? 애두, 웃긴다. 너 고독하다는게 뭔지 아니? 히히히…”
녀자애는 까르르 웃어제끼는 미나를 흘끔 훔쳐보며 머리를 살풋이 숙이고 발뿌리로 애궂게 땅바닥만 살랑살랑 걷어찼다. 미나는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어딘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꼭 마치 누군가 옆에서 친구해주지 않으면 그 녀자애가 당금이라도 땅속에 잦아들어 버릴것만 같이 갸냘프게 생각되였다. 미나는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녀자애 앞에 손바닥을 쫙 펴들었다.
“얘. 네가 소원이라면 우리 친구하자. 친구가 많으면 좋은거지뭐. 약속!”
녀자애도 활짝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미나의 손바닥에 쨩~ 부딛쳤다. 미나가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친구야, 너 어느 학교에 다니니?”
“난 실험소학교에 다녀!”
“실험소학교라구? 나도 그 학교에 다니는데.”
“알어. 난 널 본적이 있거든.”
“근데 난 왜 한번도 널 본 기억이 없을가?”
“누가 나같은 애를 다 기억하겠니? 얘, 빨리 학교에 가자. 집으로 갈 때, 널 기다릴게.”
녀자애가 미나의 손을 잡으며 재촉했다. 그제야 미나는 그 녀자애를 만나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음을 느꼈다. 둘은 부지런히 학교를 바라고 걸음을 옮겼다.
미나는 생각할수록 아침에 보았던 신자라고 하는 그 녀자애가 궁금증해났다.
(부모들이 공부도 그렇게 강요하지 않는다면서 무엇이 그렇게 고독할가? 그 애는 과연 어떤 가정환경에서 살고있을가?
미나는 하학하자바람으로 신자를 찾아 6학년 5반 교실로 갔다. 교실에서는 몇몇 녀자애들이 한창 청소를 하느라고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신자는 그 속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가버린건가? 갈 때 기다린다 해놓구는, 신용도 없는 애가 아니야? 아니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지…)
미나는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교실창문에 대고 똑똑똑 노크를 했다. 비자루로 바닥을 쓸던 녀자애가 미나쪽에 눈길을 주었다. 미나는 방긋 웃으며 할 말이 있다는 식으로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녀자애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신자를 찾는 다는 미나의 말에 녀자애가 키득키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너 <변소모범>을 찾는구나. <변소모범>이야 변소에 있겠지뭐.”
“그 애가 왜 변소에 있는데? <변소모범>이라니? 또 뭔 소리구?”
미나는 모르겠다는듯 다그쳐 물었다.
“뭘 모르겠다는거니? 변소에서 청소를 하고있겠지. 그 앤 우리 소조에서 변소청소를 책임졌다. 선생님도 그 애가 변소청소를 잘 한다고, 품성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하셔. 우리도 그 애를 <변소모범>이라고 부르구…”
“어쩜, 너희들, 사람을 없신 여겨도 분수가 있지.”
“없신 여기다니? 너,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는구나, 이건 그 애가 자원으로 하는 일이야. 못 믿겠으면 네가 한번 변소에 가 봐.”
녀자애는 별맛이라는듯 미나를 핼끔 치떠보더니 몸을 픽 돌려 바닥을 쓸기시작했다.
“흥!”
미나는 그 녀자애를 향해 아니꼽게 코방귀를 뀌여보이고는 학교 동쪽에 있는 화장실쪽을 바라고 씨엉씨엉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미나는 무심결에 코를 움켜쥐였다. 하지만 신자는 그 냄새에 아무런 감각도 없는지 사뭇 편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변소바닥을 쓸고있었다.
“얘!”
미나가 짤막하게 불렀다. 신자가 비자루질을 하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오, 미나구나. 나가서 잠간 기다려라, 인차 끝난다.”
아니나다를가 5분쯤 지나서 신자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나는 신자의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맡을수있었다. 미나는 어쩐지 가슴이 침침하고 기분마저 찜찜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신자는 미나의 그런 기분을 읽지못했는지 얼굴에 맑은 웃음을 날리며 물었다.
“미나, 넌 언제 당번이니?”
“난 수요일이야. 헌데 신자, 너, 너네 소조의 변소청소를 도맡았다며?”
“그래, 누구도 변소청소를 하기 싫어하니까, 내가 나선거지 뭐.”
“그럼 넌 지린내가 싫지도 않니?”
미나의 물음에 신자는 뭐라고 대답을 하지 않고 어딘가 기대어린 눈길로 미나를 지켜보았다.
“미나야, 너 정말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거지?”
“그럼, 난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성격이야.”
“정말이지?”
“참, 거기에 뭐 거짓이있니?”
“그럼 나의 비밀을 너에게 말해도 되지?”
“너의 비밀?”
“그래, 나만의 비밀이거든.”
“무슨 비밀인데?”
“미나야, 난 어쩐지 변소냄새가 싫지 않단다.”
“애두,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있니?”
미나는 의아한 눈길로 신자를 바라보았다. 마치도 외성인이나 만난듯한 기분이였다. 하지만 신자의 얼굴은 어느 모로 보아도 롱담을 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미나는 다시 한번 신자의 얼굴을 참빗질하며 조용히 물었다.
“너의 아버지, 어머니도 네가 이러는걸 아니?”
“아니, 그들은 몰라. 그리구 알려도고 안할거야.”
“왜서?”
“그저 그런거지 뭐! 가만, 내 가서 가방을 꺼내올게. 우리 집으로 가면서 말하자.”
신자는 말을 마치고 교실을 향해 뛰여갔다.
미나와 신자는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미나는 무시로 신자를 살폈다. 한참이나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신자가 드디여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진 한국에 가서 숱한 돈을 벌어왔거든.”
신자의 뜻밖의 말에 미나는 깜짝 놀라며 신자의 말을 중둥무이 했다.
“뭐?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갔었다구? 그럼 숱한 고생을 했겠네?”
“고생이야 많이 했겠지. 하지만 난 우리 아버지를 하나도 존경하지 않아.”
“왜? 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니?”
“아버진 한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또 한국에서 숱한 나쁜 버릇을 배워가지고 왔거든. 그래도 아버지가 한국에 있을 때가 좋았지. 나와 어머니는 맨날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먹거렸구. 어머니는 방직공장에 출근했었는데 많지 않은 로임으로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벌어 보내는 돈은 꼭꼭 저축했었어. 휴식일이면 나는 어머니와 같이 공원이랑 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하구.”
신자의 얼굴에는 빠알간 홍조가 어리기 시작했다. 가슴속 밑자락에 숨겨두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들먹이는 모양이였다.
“2년이 지나 우리는 아버지가 벌어 보낸 돈으로 큼직한 아빠트를 샀댔어. 집장식을 끝내고 아빠트에 들어가던 날 엄마는 너무도 기뻐서 나를 끌어안고 마구 눈물을 흘렸댔어.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오면서부터 일이 탈리기 시작한거야.”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왜?”
“아버지는 한국에서 돌아와 한달도 넘기전에 벌써 어머니를 싫어했어. 첨엔 그냥 술을 먹으면 어머니를 보고 촌티가 난다는지 공동언어가 없다는지 하고 타발을 하던것이 후에는 술을 먹지 않고도 어머니하고 괜한 트집을 했거든. 쩍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두 하구. 그러면서 어머니하구 리혼을 하자는거야. 첨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달래면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것이 좋아지겠지 하고 바라는 눈치였어. 하지만 아버지는 점점 더 란폭해졌어. 나중엔 쩍하면 집안 기물을 마스구 어머니를 때렸거든. 나중에 어머니도 아버지와 맞써서 싸우구. 난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게 무서웠어. 한번은 아버지가 뿌린 재털이가 빗나가며 나의 허리에 와서 떨어졌어. 나는 너무도 무서워 아버지, 어머니를 피해 화장실에 들어가 숨었어. 화장실에서 비록 퀴퀴한 냄새가 좀 났지만 그래도 그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거든. ”
“그래서?”
“그후로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싸우기 시작하면 화장실에 들어가 숨어있었어. 그렇게 쭉 몇달을 사니 차츰 화장실냄새에 습관되였나봐. 인젠 완전히 화장실냄새에 무뎌졌거든.”
“세상에.”
미나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신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미나를 향해 살풋이 웃음을 띄우느라 애쓰는 신자의 모습은 그렇게도 파리해보였다.
“사람이란 그런가 봐. 언제든 환경에 길들여지게 돼 있는거겠지 뭐.”
애써 담담한체 이야기를 하는 신자의 목소리에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바이러스라도 묻어있는듯 미나는 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울적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그날밤, 미나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낮에 있은 신자와의 대화가 자꾸 떠오르면서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한국에 가서 잘 못 번진거야.”
신자의 그 말이 폭탄으로 되여 조용하던 미나의 머리에 굉음을 울려주고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신자네 아버지처럼 한국에서 잘 못 번지는건 아닐가? 그렇게 된다면 우리집도…”
미나는 생각할수록 삼뭉치처럼 헝클어지는 사색을 정리할 길이 없어 고통스럽게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움켜잡았다..
“얘, 뭐하고 있니? 빨리 숙제를 해야지.”
어머니가 과일을 들고 들어오다가 넋을 놓고 앉아있는 미나를 보고 훈계를 시작했다. 미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도무지 글줄이 눈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나는 신경질적으로 교과서페지를 마구 번져나갔다.
“얘는 어머니가 옆에 있는데도 태도가 이 모양이니 어머니가 없으면 아에 공부를 안할 예산이지? 너 점점 말이 아니구나. 요즘엔…”
어머니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들고 들어온 사과를 깎으며 품을 놓고 참견을 시작했다. 미나는 이글이글 타는 눈길로 어머니를 넘겨다 보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사과를 깎아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미나는 홀연 으슥 몸을 떨었다. 어머니가 사과를 깎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한벌한벌 깎아내는듯싶었다. 미나는 교과서를 확 덮어버린후 어머니의 눈길을 등지고 베란다로 나와버렸다.
미나는 촉촉해 나는 눈길로 저멀리 하늘가에 걸려있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미나는 별이되고싶었다. 별이되여 아버지의 곁으로 날아가 뭔가를 속삭이고싶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어머니에 대하여, 그리고 또 터질껏 같은 자기의 괴로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미나야, 너 참 안되겠구나. 공부는 안하고 정녕 이러기야? 정신을 어디에 두고있는거야? 귀신에게 홀리운 사람처럼.”
어머니가 베란다까지 따라나와서 미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미나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는듯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미나를 흘겨보는 어머니도 그새 많이 수척해진듯싶었다. 미나는 어머니를 보며 괜히 서러워나서 머리를 숙이고 입술을 옥물며 다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날 밤 꿈에 미나는 별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 미나는 별이되여 아버지가 계시는 서울의 하늘우에서 반짝이고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어느 시공현장에서벽돌을 등에 지고 힘들게 층계를 톺고있었다. 아버지는 온몸이 물자루가 되였건만 쉴념을 안했다. 아버지는 간신히 걸음을 옮기면서 연신 손등으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고있었다. 그때 별안간 하늘에서 파아란 망사를 쓴 선녀가 날아내리더니 아버지를 업고 어디론가 훌쩍 살아지는것이였다.
“아버지, 아버지…”
미나는 아버지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여났다.
몇시나 됐는지 무수한 별들이 창문넘어로 미나의 시야에 안겨들었다.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미나는 까닥없이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미나는 조용히 일어나 어머니가 주무시는 침실로 갔다. 지난밤에도 집착에 가까우리 만침 미나의 공부에 신경을 쓰느라 어머니도 지치신 모양이였다. 하~ 벌린 입가에 멀건 침이 흘러내려 자리를 잡고있었다. 미나는 천천히 어머니의 입가에 묻은 멀건 침을 닦아드렸다. 그리고 살며시 어머니의 옆에 누워 오른팔을 어머니의 젖가슴에 올려놓았다. 순간 미나는 저도몰래 코끝이 찡 저려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튿날 저녁무렵,
신자는 피발이 서고 퉁퉁 부은 눈으로 미나를 찾아왔다. 미나와 신자는 천천히 연집강변을 바라고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연집강변에 거의 이를 때 신자가 끝내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미나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끝내 리혼을 한단다.”
“뭐? 리혼!”
미나는 홀연 온몸에 전률을 느꼈다.
“그래,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담판을 했단다. 모든것이 끝났대.”
신자의 목소리는 분명 애절한 울음으로 번져가고있었다.
“신자야, 그럼 넌 어떻게 되는거니? 어떻게 되는거야?”
“몰라, 미나야 난 정말 무서워. 무섭단 말이다.”
신자의 까아만 쌍까풀눈에 맑은 이슬이 그득 담겨 반짝이고 있었다.
“신자야,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정말 리혼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몰라, 난 지금 그저 무서울뿐이야. 미나야 난 어떻게 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을 하면…”
“그래, 신자야 어쩌면 좋니? 우리에겐 아버지가 없어도 안되고 어머니가 없어도 안돼! 아직 누가 없어도 우린 살지못할거야.”
미나는 걸음을 멈추고 파르르 떠는 신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신자의 눈가에서 반짝이던 맑은 이슬이 끝내 신자의 퉁퉁 부은 두볼을 타고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신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념도 못하고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며 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야 고맙다.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신자야…”
별안간 미나도 신자를 따라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나야, 이러자 마! 응? 네가 우니 난 더 무서워.”
신자는 말하면서 미나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미나는 신자에게 손을 맡긴채 여전히 울음섞인 목소리로 한마디한마디 말했다.
“신자야, 우리 아버지도 한국에 가있단다.”
“한국에?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가있다구?”
신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신자는 너무도 놀라는 표정이였다.
신자는 자기의 아버지가 나쁘게 변한것이 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잘 못 가르쳐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듯 했다. 어머니가 억울하게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기가 화장실냄새에 길들여 지기까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기에게 못할 짓을 한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어쩌니? 미나야 어쩌니?”
신자는 너무도 아타깝다는듯 다시 미나의 손을 잡고 두발을 동동 굴렀다. 미나는 불안과 공포에 파르르 떠는 신자의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어느새 망망한 하늘가에 무수한 애기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웃는듯, 우는듯,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며 미나는 으스스 밀려오는 한기를 느꼈다.
저 멀리 남쪽 하늘에서 별찌 하나가 떨어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미나는 차디찬 밤하늘에서 긴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그 별찌가 어쩜 자기들의 차디찬 눈물과도 같다고 생각되였다.
그날 밤, 미나는 별을 쳐다보며 슬프게 슬프게 울었다.
신자도 울고있었다.
별들도 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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