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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비오는 날의 그 아픔
2010년 03월 25일 07시 35분  조회:1910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단편소설

비오는 날의 그 아픔

녀인은 미칠것만 같았다.
미칠것처럼 두볼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녀인은 어금이를 꽉 깨물며 머리를 들었다.
후두둑 굵은 비방울이 머리를 치고있었다.
녀인은 머리를 숙이며 손바닥을 쫙 펴서 두 볼을 꼭 눌러주었다. 화끈화끈 볼에서 뿜겨지는 열기가 손바닥으로 옮겨지고있었다.
“힘들어, 정말 힘들어. 힘들어 미칠것만 같아 !”
녀인은 이렇게 속으로 웨치며 두볼을 꼭 눌렀던 손을 스르르 아래로 당겨 툭툭 열나게 높뛰고있는 심장께로 가져왔다. 손바닥에까지 툭툭 하는 심장의 울림이 느껴져왔다. 녀인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빠져들어가는 환각이 머리속을 엄습해왔다. 생각하고싶지도 않은 비오던 그날의 아픈 장면들이 새록새록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다.

그날도 오늘처럼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였었다.
“기어코 떠나야겠어? 정녕 이렇게 떠나야겠어?”
남편은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고 떨리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리 지르는 남편의 눈에서 콩알같은 눈물방울이 두르륵 굴려내려 까아만 코수염우에 자리를 잡았다.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린 코수염을 어루 쓸며 녀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이 그처럼 처량해보일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몸을 돌리며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나니 오히려 가슴이 편해지는듯싶었다. 녀인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얼굴을 돌려 남편을 쳐다보았다. .
“쌍년이!”
별안간 남편이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그녀의 왼쪽 볼을 후려갈겼다. 녀인은 “악~” 소리지르며 왼쪽 볼을 부여잡고 저만치에 가서 너부러졌다.
“쌍년이! 속물같은 년!”
남편이 소리치고있었다. 지옥의 저켠에서 들려오는듯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도 갈리고 찢겨져있었다. 녀인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엉금엉금 남편앞으로 기여갔다.
“여보, 여보. 절 믿어주세요. 믿어 달라구요. 우리 남이를 위해서구 우리 가정을 위해서구 역시 당신을 위해서라구요.”
“뭐야? 쌍년이, 누굴 위해서라구?”
“제발 절 믿어주세요. 제 가슴엔 남이밖에 없구 당신밖에 없구 가정밖에 없다구요. 세상이 다 변해도 저만은 변하지 않을거예요.”
“그렇게 중해? 돈이 그렇게 중해? 기어코 이 가정을 버리고 간다는거야? 가, 가서 돌아오지 말어!“
“여보~ 집 한칸 살만한 돈만 벌어가지고 금방 돌아올게요. 우리도 우리 이름으로 된 집이 있어야잖아요? 여보 믿어줘요.”
“가라니까! 쌍년이!”
남편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쏟아지는 비속으로 씨엉씨엉 걸어가는 남편의 뒤 모습을 바라보면서 녀인은 순간 왼쪽 볼이 터질듯 아파옴을 느겼다. 녀인은 손으로 왼쪽볼을 감싸쥐였다. 푸들푸들 떨려오는 왼쪽 볼의 그 느낌은 으스스~ 심장마저 떨리게 했다. 녀인은 두 손을 심장께로 가져다가 꼭 눌러주었다. 헉헉 숨쉬기 좇아 힘들어졌다.
“구경 무엇을 위해선가? 구경 이 걸음이 옳은 걸가?”
녀인이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남편이 다니던 공장이 부도를 맞은 다음부터였다. 그렇다 할 재간도 없는 남편은 입살이라도 하려고 로무시장에서 일당을 뛰고있었다.
어느 날엔가 녀인은 자기의 생각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안돼? 녀자가 어디로 간다고!”
남편은 첫마디로 반대하고 나섰다. 질그릇과 녀자는 내돌리면 깨여진다는 그 관념을 넘어서지 못하고있는 남편이였다. 하지만 녀인은 남편의 곧은 성미에 매워 그냥 보리고개를 톺을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녀인은 남편 몰래 수소문을 해서 끝내는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손에 쥐게 되였다.
“뭐야? 기어코 간다는거야? 새끼고 남정네고 다 버리고 기어코 간다는거야? 미친 년, 환장을 한 년!”
남편은 하늘이 낮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긴 밤을 팼다.
그 정서는 공항에 와서도 누그러들줄을 몰랐다.
“인천으로 떠나는 아시아나항공이 검표를 시작했습니다. 인천으로 가시는 손님여러분 탑승수속을 다그쳐 주시길 바랍니다.”
녀인은 그때까지도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손으로 꼭 누르며 힘들게 개찰구를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녀인은 또 왼쪽 볼이 찔끔찔끔 앞아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녀인은 설걷이를 하다말고 밖으로 나와 비떨어지는 추녀밑에 쪼크리고 앉았다. 주루룩주루룩~ 거세지는 비방울소리와 정비례를 이루며 왼쪽 볼의 아픔은 점점 심해졌다.
(웬 일일가 왜 비만 오면 이놈의 왼쪽 볼이 이렇게 아파나는걸가? 녀인은 애궂게 왼쪽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옮겨 오른쪽 볼을 만져보았다. 왼쪽 볼에서 오는 통증때문인지 그 순간은 오른쪽 볼도 멍~ 해나는것이 어딘가 좀먹어가고있는듯한 느낌이였다.
(오른쪽 볼까지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할가? 내가 과연 당해낼수 있을가?)
생각만 해도 으스스 소름이 끼쳐왔다.
“이쁜 연변아줌마, 어디 아파요?”
뒤에서 낮지만 자냥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을 쳤다. 녀인은 흠칫 몸을 떨며 머리를 돌렸다. 멋스레 코수염을 기른 깔끔하게 생긴 나그네가 빤히 녀인을 내려다보고있었다. “헉!” 녀인은 저도몰래 숨이 막혀오는듯싶었다.
(어쩜, 어쩜 이렇게도 꼭 같게 생긴 사람도 있을가?)
녀인은 코수염을 기른 사나이의 모습에서 분명 남편의 얼굴을 그려보고있었다. 코수염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굽히고 녀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있었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녀인은 이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도 감히 코수염의 손에서 어깨를 뺄수 없었다. 코수염이 녀인의 얼굴쪽으로 입술을 밀착해왔다.
“이쁜 연변아줌마. 서러운 일이 있으며 나하구 말해요. 힘들 땐 어딘가에 기대는것이 훨씬 편하거든요.”
코수염의 입술이 녀인의 왼쪽 볼에 와 박히고있었다. 녀인은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코수염을 밀쳤다.
“왜 이래? 알면서. 아직 덜 열렸어? 알았어. 알았다구. 천천히 열어봐. 암튼 내 앞에서 넌 열려지게 돼있으니까.”
코수염은 신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는 비속을 걸어가며 나름대로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
“마주치는 눈길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정말 몰라 난 정말 알아…”
이날은 녀인이 “김삿갓정식점”에 온지 한달 열흘이 되는 날이였다.

(또 비가 오는 모양이구나.)
녀인은 아파나는 왼쪽 볼을 꼭 부여잡고 층계를 올라 밖으로 나갔다. 지하에 있어 몰랐지 밖에서는 진작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이고있었다.
“흐읍~”
녀인은 으스스 몸을 떨며 들숨을 마셨다.
“왜 이래? 아줌마, 그 정도 술에 힘들어 할 아줌마가 아니잖아?”
잇달아 밖으로 나온 코수염이 녀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술냄새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녀인은 왼쪽 볼을 꼭 누른채로 머리를 돌려 콧수염을 쏘아보았다.
“연변아줌마는 이게 매력이라니까. 좋아도 좋은 내색 내지 않고 이렇게 째려보는 모습. 으~”
코수염의 입술이 녀인의 오른쪽 볼을 향해 다가 오고있었다. 녀인은 외로 고개를 탈면서 옆으로 한발작 비켜섰다. 코수염은 그러는 녀인의 목을 와락 끌어안더니 뻑 하고 녀인의 오른쪽 볼을 덮쳤다.
“악~ ”
녀인은 단말마적으로 소리지르며 코수염을 밀쳤다.
“왜 이래? 선수끼리…”
코수염의 손이 더욱 우악스럽게 녀인을 가슴쪽으로 끌어당겼다. 녀인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코수염을 밀면서 오른발을 날렸다. 코수염은 억 소리지르며 저쪽에 나가 벌렁 너부러져 두 팔을 허우적 거렸다.
“하하하하…”
녀인은 삽시에 큰 웃음을 터쳐올렸다. 녀인으로서도 자기가 왜 그렇게 웃는지 알수 없었다. 그저 막을수 없는 보물처럼 웃음을 걷잡을수 없다는 생각뿐이였다.
“뭐야? 너 뭐냐구! 마담께 선불금까지 주구 널 데리고 나왔는데 돈값은 해야제?”
코수염이 으르렁거리며 녀인앞으로 한발자욱한발자욱 죄여오고있었다. 녀인은 가까와 오는 사나이의 체취를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쌍년이, 웃어? 정녕 웃는거야?”
코수염이 표독스럽게 소리치고있었다. 이어 코수염의 왼손바닥이 녀인의 오른쪽 볼에 떨어졌다. 녀인은 오른쪽 볼을 움켜잡았다. 오른쪽 볼이 터질듯 아파나기 시작했다.
“아악~”
녀인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 소리지르며 오른손을 쫙 펴서 사나이의 왼쪽 볼을 할켰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반격에 사나이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왼쪽 볼을 움켜잡았다.
“하하하하하…”
우거지상을 하고 왼쪽 볼을 부여잡는 사나이를 보면서 녀인은 밑도 끝도 없이 어디론가 굴러떨어지는듯한 쾌감을 느꼈다.
“너, 너… 지독한 년! 늑대에게 통째로 잡혀먹힐 년…”
코수염이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독설을 퍼붓고있었다.
후둑후둑…
굵은 비줄기가 녀인의 가냘픈 몸을 어디라 없이 내리치고있었다. 녀인은 건듯 얼굴을 쳐들었다.
“하하하하하…”
후둑후둑 하는 비소리에 가슴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리는듯싶으면서도 자꾸 너털웃음이 터지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녀인은 미칠것만 같았다.
미칠것만 같아서 비오는 날이면 이렇게 밖으로 뛰쳐나오군했다. 그때마다 두볼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며 모진 통증이 몰켜오군 했다. 녀인은 왼쪽 볼에서 오는 통증인가싶어 왼쪽 볼을 움켜잡군했다. 하지만 단지 왼쪽볼에서 오는 통증만이 아닌듯싶었다. 녀인은 또 오른쪽 볼을 움켜잡았다. 역시 오른쪽 볼에서만 느껴지는 통증이 아닌듯싶었다.
으윽~
녀인은 어느 쪽 볼에서 오는 아픔이라 딱히 말할수 없는 그 느낌이 무지 고통스럽다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그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래일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문학잡지 <<장백산>>  2010년 3-4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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