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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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의 랑만
2019년 10월 14일 08시 50분  조회:1133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불혹의 나이를 넘었다. 때맞춰 다니던 가족 외식도 뜸해졌고 쇼핑하러 다닌지도 오래되였다. 동창들과 번개팅을 즐기면서 스릴있는 모임을 가져본지도 지난해 망년회쯤이였던 거 같다.하이힐은 구석에 박혀 얌전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편안한 샌들과 운동화가 신발장을 가득 채웠다.열정과 모험으로 가득찬 30대를 겁없이 지나치고 나니 차분해지면서 자신은 대체 누구인지 무엇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가끔 생각하게 된다.

갓 스무살을 넘겨 청도라는 낯선 곳에 와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느라 발버둥을 쳤다. 산동사람들의 특이한 높고 칼칼한 억양에 적응하느라 귀를 도사려야 했다.중국을 금방 알아가고 있는 급하고 답답해하는 한국 상사와 현지인들 사이에서 갈등과 서러움도 많이 겪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재간으로 새로운 세상을 넘볼 수 있었다.

십여 년전, 우리도 공장을 가동하고 무역을 한답시고 일본과 한국 등 여러 나라들을 자주 드나들었다. 아침에 별을 지고 나가면 저녁에는 달빛을 이고 퇴근을 했다. 토끼같은 자식들은 년로한 부모님이 허리 아프도록 보살펴주셨고 가족중 듬직한 년장자는 한적한 공장에 거취를 하면서 기꺼이 고독을 씹으며 사업체를 지켜주었다.
산동 각 농촌에서 오구작작 모여든 공인들을 얼리고 달래며 많은 일을 했다.어설프게 국제 형세 운운하면서 외국과 무역을 하고 있는 무역인이라고  난생 처음 명함도 가질 수 있었다.농민의 어진 품성을 이어받아 자기 본분을 지키고 바이어에게나 동료들에게나 신용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온 가족이 심혈을 기울이며 회사를 키워나갔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다.

잘 되는 날에는 엎어져도 떡함지에 넘어진다고 나날이 발전하는 경제형세에 힘입어 유람 성수기 때 인파에 밀려가는 사람들처럼 자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물이 차면 배가 휘우뚱거리며 떠오르 듯 회사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간간히 누렸다. 덕분에 집도 마련하고 애들도 교육을 시키면서 평범한 백성들이 꿈꾸는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 해 나갔다.
하지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사계절이 있어 날씨가 변하 듯 좋은 날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회사경영은 마치 패키지 려행상품처럼 근사한 경치를 보여주다가도 실망스러운 쇼핑을 들이대기도 하였다.

현재 어려워진 경영환경때문에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하루가 멀다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화려한 도시 겉 모습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도시가 발전하고 인프라가 완비해지면서 그에 따르는 물가 상승은 제조업에 큰 저애를 가져왔다. 원자재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 원인으로 인해 제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이 시대 경제흐름을 타야 한다는 재벌들의 껌 씹 듯 쉽게 내뱉는   문구들을 접할 때마다 제조업은 이미 향긋한 빵조각이 아니라 구닥다리처럼 한물 건너갔다고 원치 않은 표정으로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제흐름에서 멀리 떨어져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든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제조업이 이제는 뉘엿뉘엿 지는 저녁해처럼 그림자만 길게 뽑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신선이 바다를 날아넘는 재주가 제각각이 듯 회사들마다 부동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였다. 수심이 깊은 곳에 배가 거뜬히 떠있는 것처럼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여전히 요지부동하게 잘나가는 회사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회사들은 서서히 말라가는 호수 처럼 흉물스러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유능하고 야망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지난 세월 우리가 힘차게 경제흐름의 배에 올라 핸들을 잡았던 것처럼 새로운 력사를 써내려 갈 거라고 생각하면 이젠 정말로 앞서가는 사람이 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어른이 되였나 하는 조바심까지 소롯이 든다. 새로운 아이템과 비젼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게 말처럼 쉽게 안되니 안타까울 뿐이다.무릇 여러사람보다 앞서가야 하는 발자취는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눈에 비춰진 어른들의 모습은 아주 확신있고 견결한 모습이였는데 정작 자신이 어른이 되고보니 흔들림 그 자체다. 어쩌다가 어른이 되였는지 앞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나그네의 코끝에서 너울거리는 담배연기처럼 가슴팍을 들락날락한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화산이 끓는 바다 밑굽처럼 뜨거운 물방울들이 연신 투두둑하고 터진다.
년로한 부모님과 성장중인 자녀들을 볼 때야만이 간신히 안개같은 난국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 자신을 본다.이쯤 되고 보니 주위도 조용해졌다. 흥성흥성하던 모임도 줄었고 열정적으로 조언을 해주던 친구들은 신중하게 경청을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이다.다 어른으로 치닫고 있어서 그런 것일가.

한뉘 농사를 짓던 부모세대가 개혁개방의 신호탄을 알아보고 낯설고 먼 이곳으로 달려왔을 때도 아마 이런 심정이 아니였을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그들은 체면을 가릴 새 없이 회사 식당으로 경비실로 선뜻 들어섰다. 근면한 로동으로 고향에서 오막집을 지키는 부모를 공양하고 자식들의 학비를 벌면서 춥고 비좁은 세집에서 도시에서의 부흥 드림을 꿈꾸었을 것이다.정작 자신들은 새 옷 한벌 제대로 사입지도 않고 맛있는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고향의 까마귀를 봐도 반갑다는 낯 선 곳에서 어른이라는 리유로 힘들고 서러운 타지생활을 이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세대는 우리보다 더 많이 힘들고 흔들렸을텐데 항상 우리에게 확신이 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지런히 일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겁없이 청춘을 고스란히 불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우리가 한 몸으로 변화를 감내해야 할 시기가 왔다. 우리 자식들에게 꿋꿋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선조들이 배고픔을 피하고 항일을 위해 만주벌판으로 이주했을 때도, 개혁개방의 물살에 떠밀려 연해도시에 몸을 맡겼을 때도 그랬듯이 어른들은 힘들다고 포기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한몸으로 이겨내기에 급급했기에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다.

등 뒤에 것을 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생명의 본능이다. 우리는 안정을 원하고 정착하기를 바랄 때만 희망을 갖는다. 희망을 간직한 발자욱은 저도 모르게 힘이 실린다.
청춘은 덥지 않은 여름과 춥지 않은 겨울을 날기 위해 노력했다면 어른은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의 랑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시기인 거 같다.

어쩌다 어른이 되였다.
흔들리지 않는 씩씩한 어른으로 거듭나야겠다.
설령 힘들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랑만을 느끼는 어른이 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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