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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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연의 그림앞에서
2013년 08월 07일 10시 02분  조회:2633  추천:0  작성자: 포럼관리자

장정일

보슬비 내리는 하루, 연변박물관에 마련된 한락연회화작품전시회를 다녀왔다. 화가 탄신 115주년을 계기로 중국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유작들이 환고향을 한것이다.

사실 그의 미술전은 두번째의 귀향이다. 1990년 8월에도 열렸었는데 개막전야에 연변일보는 박창욱교수의 한락연 관련 글을 게재하면서 1면엔 “룡정태생의 기이한 별”이라는 나의 단문도 곁들였던 기억이 난다.

먼길을 걸어왔는데도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액자속 그의 그림들은 시간이 멎은듯 여전히 신선감을 풍기고있었다. 고향선배의 체온이 묻어나는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우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다를바 없는 변방산골 출신이였지만 그는 무슨 신통력이 있었길래 혁명과 예술을 병행하는 와중에서도 중심적인 가치를 구현한 거룩한 발자취를 남길수 있었을가?

누구에게나 나서자란 고향이 있다. 태를 묻은 고향에 붙박이로 남아 굳건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외국 이주자로서 만년에 고향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고 혹은 장학사업을 통해 고향을 도우며 떨쳐버릴수 없는 향수를 달래는 사람도 있다.

천애지각을 고향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이래저래 붙박이일수가 없었고 기질도 워낙 유목민으로 살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였을가. 49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생을 한락연은 안식을 모르는 려로에서 살았다.

아마도 중국 본토와 유럽을 전전하면서 프랑스 신인상파 등 서방예술을 탐구했던 화가이자 예술사학자, 탐험가였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한락연은 서북의 오지에서, 그것도 국민당에 의해 령어의 몸이 되였다가 “서북을 떠나지 못한다”는 가석방의 조건부 삶을 강요받은 처지에서 잠자는 천불동 벽화의 가치를 선참으로 발견하였으며 벽화모사와 유화, 수채화 창작으로 생의 마지막을 불살랐다. 서역의 고즈넉한 목장과 사원을, 경마도 하고, 우리처럼 호탕하게 노래도 잘 부르고 물긷기, 절구질도 하는 위그르, 까자흐 남정네와 녀인들을 화폭에 생생하게 남기였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아낸 화가, 사막에 생명을 심은 화가. 서역땅 주어진 력사의 좁은 틈사리에서 발현된 화가의 석전경우(石田耕牛)의 예술창조정신은 실로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예술가는 별과 같아서 나타나는 그 자리가 곧 성좌(星座)의 일부분”이라는 리태준의 말이 신통해보인다.

시인의 “시적재능과 시가활동의 조국은 선과 숭고함과 미이다.”라는 괴테의 말은 더구나 한락연을 두고 한 말로 느껴진다.

한여름 전시장에서 유목민 화가의 “피로 물들인 단청의 길”을 감상하는 나는 사막의 신기루를 마주한듯, 그의 정신의 고향,그의 인간적인 존재의 깊이와 높이에 이끌리고 점화(点火)되면서 화폭너머 넓은 세계를 향해 상상의 나래를 퍼덕인다.

일종 믿음이 새삼스러웠다. 붙박이로 살든 떠돌이로 살든, 적도에 살든 동토대에 살든 그게 무슨 대수랴싶었다. 정신의 고향이 초라하지 않다면, “선과 숭고함과 미”라는 조국을 품고 산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한락연처럼 불확실한 세계에서 방향감각을 찾을수 있고 혼돈속에서 가치의 좌표를 확인하면서 나름대로 뭔가를 이뤄낼수 있지 않을가?

전시실 액자속에서 미소짓는 한락연이 안경너머로 격려의 윙크를 보내고있는것만 같았다.



연변일보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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