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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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둥궤'
2006년 06월 28일 00시 00분  조회:7326  추천:69  작성자: 정인갑


'동이', '둥궤'

정인갑


필자가 장가를 못 가 헤매다가 30이 거의 되여 겨우 도문 색시를 얻고 연변에서 살며 부딪친 난관 중의 하나가 언어였다. 평안도 악센트로 말을 하니 '남도치'라고 놀려주고―마치 조선 팔도 중 함경도만 북도인 듯. '-요', '-오' 종결토로 말을 하니 버릇없이 반말을 쓴다고 꾸중하고―'-슴둥?', '-습구마'를 써야 존경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외에도 마선(재봉틀), 사라(접시), 염지(부추), 제사(제가 도리여), 간대루사(설마), 물둥궤(물독) 등 못 알아들을 말이 수두룩하였다. 중년이 다 된 나이에 이런 말을 배운다는 것은, 특히 악센트를 고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하여 함경도 '오랑캐' 말로 남편을 헐뜯는다고 처에게 신경질을 자주 부리곤 하였다.
그후 어학에 대한 리해가 깊어짐에 따라 방언에는 깊은 력사 문화 요소가 깃들여 있음을 알았으며 함경도 방언도 례외가 아님을 터득하게 되였다. 아래에 '동이'와 '물둥뒈'의 어원에 관해 말해 보련다.

여인네들이 물길을 때 머리에 이는 '동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이'의 어원이 무엇이며 이 말이 한자와 관계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어릴 때 많이 부르던 '동이' 관련 노래들이 생각난다.

샘물터에 물을 길러
동이 이고 나갔더니
빨래하던 군인 동무
슬금설쩍 돌아보네
슬그머니 바라보니
그 솜씨가 서툴러서
부끄러워도 물었지요
제가 빨아 드릴까요.

1950∼1960년대 조선족들에게 많이 불린 조선의 노래 '샘물터에서'이다. 군인과 시골 처녀 사이에 눈길이 서로 오고가는 정경이 실감난다.

짜작 밭골 지나서 언덕 넘어 오솔길
물동이 이고 가는 저 처녀 얌전해
시냇물 한 바가지 푹 퍼 줍소서/
실커들랑 그만두지 어찌 그리 가루봄둥?

연변 시골의 익살 궂은 총각들이 처녀들에게 치근거릴 때 부르는, 함경도 냄새가 풀풀 나는 노래로, 어느 노래 책에 기재된 것도 아니고 작사, 작곡자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많이 불렸다.

필자가 이런 노래들을 렬거한 원인은 이렇듯 말소리나, 그 정서나 우리 민족화한 '동이'라는 말이 과연 한자와 관련이 있겠는가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유어는 물레로 솜을 잣는 것처럼 부드러운 소리에 술술 빠져 나오는 감이고 한자어는 칼로 국수를 써는 것처럼 딱딱한 소리에 좀 억지로 나오는 감이라고 필자는 항상 생각해 왔으니 말이다.

조선 중세 문헌에 '동이'를 <物譜>에서는 '동희'라 했고 <同文類解>에서는 '동회'라 했다. 지금의 '동이'는 '동희'나 '동회'의 초성 'ㅎ-'이 탈락되고 또 일정한 어음 변화를 거쳐 생긴 것임이 뻔하다. 중세 조선어의 'ㅎ-'초성이 후세에 탈락된 현상은 비교적 보편적이다. 중세의 '아히'가 지금의 '아이'로, 중세의 '올히'가 지금의 '올이→오리'로, '가히'가 지금의 '가이→개'로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동회' 또는 '동희'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중세 조선인이 한어를 배우는 교과서 <로걸대언해(老乞大諺解)>에서 찾을 수 있다.

<로걸대언해>에서 조선의 우물은 중국의 우물처럼 깊지 않으며 또 물을 중국처럼 남자들이 긷지 않고 여자들이 긷는다고 한 후 '把箇銅盔放在頭上頂水'라고 했다. 이에 대한 언문 번역은 '동회  다가 마리에 노하 믈을 이되(동이를 가져다 머리에 놓아 물을 이되―필자 주)'라고 했다.

즉 15∼16세기 때 중국 한어에서 '동이'를 '銅盔'라 했다. '銅盔' 두 자의 한자음이 '동회', 현재의 '동이'이다. '銅盔' 두 자의 근세 한어 발음이 '둥쿠이'이며 이것이 함경도 방언 '둥궤'의 유래이다. 단 같은 물건을 '동이', '둥궤' 두 가지로 계속 부를 수 없으므로 '둥궤'에 '물독'이라는 새 뜻이 부여되였을 따름이다.
한어에서 '盔'는 질그릇을 의미하며 '銅盔'는 구리로 만든 투구다. 이것이 어떻게 '동이'의 뜻으로 둔갑했는지는 좀 더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낡은 투구를 동이로 활용한데서 생긴 말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인적이 없는 야외에서 병사들이 투구로 물을 길어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또 어릴 대 전기 뚱딴지를 약 찧는 절구로 활용해 쓰는 것, 여인네들이 자전거바퀴 살을 뜨게 바늘로 활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지금도 필자는 커피 병을 차 마시는 컵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품이 풍부한 지금도 그런데 먼 옛날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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