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기억속의 60년》-대중가요의 전환점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4월27일 09시02분    조회:602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석화

《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특별기획(12)

―중국조선족 대중가요의 참신한 변화를 시도해 온 작사가 석화선생을 만나




 


우리 둘이 정답게 손에 손잡고

높은 산 험한 봉을 맞받아가면

칼벼랑은 비켜서고 넓은 길 펼쳐지리

아, 사랑은 용감히 

아름다운 처녀야 사랑은 용감히

 

우리 둘이 정답게 손에 손잡고

깊은 바다 세찬 파도 헤쳐 나가면 

아름다운 무지개는 금다리로 비껴가리

아, 사랑은 열렬히 

미더운 총각아 사랑은 열렬히…

[길림신문 안상근] 연변가무단의 김응, 리정숙 두 가수가 부른 남녀2인창《사랑은 영원히》는 석화 작사, 고창모 작곡으로 1985년에 창작된 노래로서 중국조선족대중가요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이라는데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지난 4월 26일, 기자는 1980년대부터 대중들이 즐기는 허다한 노래들을 창작하여오면서 중국조선족가요발전에 늘 새로운 변화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사가이며 시인인 석화선생을 만났다. 석화선생은 요즘 우리 민족이 중국에 이주하고 정착한 이래 만들어진 조선족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를 담은 책《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의 집필을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우리 노래에 깊이 심취되여있었다.

《음악은 시대의 절주를 가장 민감하게 담아냅니다.또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새로운 력사를 엮어가는 인민대중들의 사상, 감정과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것이 바로 대중가요입니다》기자의 취재를 접수하면서 석화선생이 허두로 뗀 말이다. 

석화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이 결속된후 당의 개혁개방정책이 심입됨에 따라 진일보 사상을 해방하고 각 분야에서의 전 방위적으로 변화를 촉진하고 발전을 요구하는 것이 시대의 주선률로 되였다. 특히 당중앙 11기3차 전원회의 지침은 온 나라를 변화와 발전의 거창한 시대적 물결에 휩싸이게 하였다.또한 정보화시대에로의 진입과 함께 사회적으로 점차 컴퓨터가 보급되고 디지털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음악분야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고 뚜렷한 표현이 디지털전자음악 즉 미디음악(MIDI:Music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출현이였다. 이 미디음악의 출현은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악기편성을 구성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악기음의 효과를 가능하게 하였고 또한 수많은 그리고 전혀 새로운 음향을 창출할수도 있게 하였다.

이처럼 무한한 가능성과 무궁한 표현력을 가진 미디가 가요의 반주음악에도 적용되면 좋지 않을가? 이렇게 된다면 노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게 아닌가? 당시 작곡가 고창모선생은 미디음악의 다양한 절주와 음향효과로 가요반주음악의 폭을 넓히고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로 노래의 표현력을 크게 높여주는 실험을 대담히 진행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배경으로 탄생된 노래가 바로 석화 작사, 고창모 작곡《사랑은 영원히》였다.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된 작품을 앞에 놓고 방송국음악부에서는 이 노래의 발표에 많이 고심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통음악의 틀이 견고하고 대세를 이루던 때라 새로운 음악형태인 미디음악의 출현이 전통적인 음악창작경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였던 것이다.

전자음악으로 진행된 반주가 기존의 악대반주형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절주형태를 구성하면서 음악의 흐름을 이끌기에 이러한 남다른 표현이 대중음악창작에 충격을 안겨줄수도 있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당시 연변인민방송국음악부 주임직을 맡고 계시던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음악창작실천과정에서 전통과 현실의 충돌중에 산생되는 부정적인 반응은 자신이 책임질것이라고 하면서 이 노래의 발표를 과감히 승인하였다. 마침내 이 노래가 연변인민방송국 《매주일가》로 발표되자 대뜸 광범한 청취자들의 강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중청년작곡가들은 물론 원로작곡가들도 이 노래의 풍격이 새롭고 좋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발표당시 참신한 노래말과 독특한 선률진행 및 절주형태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의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랑은 영원히》는 수많은 방송청취자들, 특히는 수많은 청춘남녀들의 가슴을 크게 울려주었다. 남녀2인창으로 이 노래를 부른 연변가무단의 김응, 리정숙 두 가수는 이 작품의 성공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노래는 지난 세기 80년대 작품으로서 통속가요로 말하면 상당히 일찍 창작된 노래입니다.이 노래는 통속가요라 하지만 석화선생과 고창모선생은 아주 독창적인 창조의식으로 지금의 이 시대와도 맞고 신비감도 있으면서도 황홀한 리상의 경지에로 이끌면서 청년남녀들의 고상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표현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저희들이 일찍 가요록음선집에 이 노래를 수록했는데 우리는 지금도 이 노래를 사랑하면서 음미하기 좋아합니다. 우리 노래가 생명력을 가지자면 모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는것을 파고 들면서 자기개성을 살리고 남들과 다른 매력이 있는것으로 만들자면 굉장한 심혈과 노력을 들여야 하며 또 진실한 인간의 심령을 파고 들어야만이 이런 노래가 나올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

1985년에 창작된 이 노래《사랑은 영원히》는 당시 사회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오며 많이 류행되던 향항, 대만과 한국 등 국내외 대중가요들과 현대미디음악의 표현방식을 훌륭히 접목하고 특히 청년들이 즐기는 현대적인 절주형태를 창조적으로 섭취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노래로 탄생되게 되었다. 이 노래는 우리의 대중음악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되고 발전해 나가는데 기폭제적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중국조선족대중음악이 닫힌 전통과 과거속에서 탈피하여 다양하고 선진적인 새로운 음악세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 노래는 대중가요의 참신한 변화를 시도하는 많은 가요창작자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 작품으로 우리 중국조선족가요사에 기록되게 되였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