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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60년》-되새겨보는 씨름장의 그 함성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5월16일 08시46분    조회: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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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마동일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 특별기획-《기억속의 60년》


-1962년 연변주씨름우승을 따낸 씨름장사 마동일선생을 만나

196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10주년경축활동 씨름대회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씨름장사가 있었다. 바로 당시 22살밖에 안된 화룡현고급중학교 2학년 학생 마동일이였다.

그번 경축활동에서 마동일은 모든 적수들을 물리치고 개인전 씨름경기 우승을 따냈는데 재미있는것은 그가 그번 경축대회에 씨름선수로 출전한것이 아니라 배구선수로 출전했다가 우연히 씨름경기에 참가하면서 우승까지 하게 되였다는 점이다.

5월14일, 기자는 오랜 기간동안 서란광무국에서 근무하다가 1992년도에 퇴직휴양한후 고향인 화룡에 돌아와 만년을 보내고있는 마동일선생을 만나보았다.

마동일선생은 올해 73세이지만 아직도 헌걸찬 체구와 시원시원한 성품이 겉보기에도 확연히 드러나있었다. 마동일선생과 부인이 퇴직후 화룡에 돌아와서 손수 짓고 오붓이 살고있다는 기와집에서 선생과 마주앉았다.

자연히 우리들의 화제는 선생이 전주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하여 여덟부대되는 황소를 상으로 탔다는 1962년도의 씨름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마동일선생은 씨름선수가 아니라 화룡현 청년배구팀의 배구선수로 그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배구경기에서 성적이 부진해 화룡현 청년대배구팀은 꼴찌를 했고 경축활동막바지에 이르기까지 화룡현에서는 이렇다할 좋은 성적을 거둔 경기종목이 없어 대회 마지막항목으로 남아있는 씨름경기에 기대를 걸고있는 형편이였다.

그런데 당시 씨름경기에는 5명의 씨름선수가 있어야 팀을 조직할수있었지만 화룡현을 대표해 경기에 나선 씨름선수는 겨우 3명뿐이여서 2명의 씨름선수를 더 보충해야 참가자격을 가질수있었다.

그래서 당시 경기대회에 참가한 화룡현운동수들가운데서 두루 씨름할만한 선수들을 뽑아보던중 1958년도 화룡현 서성공사 씨름대회에서 1등을 했고 1959년도 연변중학교팀 씨름대회에도 참가해 2등을 했다는 마동일과 화룡현축구팀의 키퍼까지 두명이 보충되여 화룡현 씨름대표팀을 만들었다.

당시 화룡현 씨름팀의 선수들은 거지반 40대의 씨름군들이다보니 집체씨름에서는 성적이 변변하지 못했다. 이제 남아있는것은 개인씨름경기, 7개 단위를 대표해 매팀에 5명씩 35명선수와 현장에서 개인비교시합에 붙힐 선수까지 더 보태서 도합 60명선수가 개인전에 나섰다.

불꽃튀는 접전이 이어졌던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10주년경축활동 씨름대회

60명선수가 5개 조로 나누어 한조에 12명씩 씨름시합을 벌리는데 같은 조의 11명과 모두 씨름을 해야 하는 힘든 순환식 경기방식이였다. 분조시합에서 키꼴이 장대하고 일정한 씨름기술을 갖고있던 마동일은 상대선수 11명을 모두 가뿐히 이기고 무난하게 조 1위 성적으로 20강에 들어갔다. 20강 경기에서도 마동일은 별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모든 적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9강에 들어갔다.

당시 9강에는 씨름소만 22마리나 탔다는 왕청현의 김창록, 연변대회에서 1등을 5차나 한 지창훈, 그리고 그번 대회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훈춘고중1학년의 18살난 리성기학생 등 만만찮은 상대들이 몰렸는데 젊고 건장한 마동일과 리성기 두 학생씨름군에게 우승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준결승에까지 가면서 마동일은 갈수록 씨름을 잘 했는데 그동안 일일이 씨름하면서 상대방의 씨름기술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잘 파악하고 적절히 잘 운용했기에 기술과 힘, 그리고 전술이 잘 조합된 씨름군으로 어느덧 결승전의 문턱에까지 성큼 다가서게 되였다.

당시 씨름경기를 기재한 1962년도 10월호 《연변》잡지는 당시 결승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 마동일, 지창훈이 서로 손을 쥐고 나서자 관중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두사람은 처음 맞섰다. 그런데 그들은 씨름에서 사제간이다. 지창훈은 그전에 그의 교련원이였다. 그래서 선생은 이번대회 어간에도 학생에게 힘을 모두어 한순간에 폭파시키기에 힘쓰라고 수차 일러주었고 학생은 이 말을 아주 소중히 기억하고있었다.

첫판은 선생이 이기더니만 이번에는 학생이 이겼다.

3판2승이라 이제 한판은? 그런데 선생의 안손에 학생이 밑에 들어서 쓰러진다. 용하다. 학생이 땅에 닿는 몸을 홀연히 취올렸으니 관중의 손에는 진땀이 쥐여졌는데 심판원은 호각을 불며 두 팔을 펴며 락판이란다. 이번에는 학생이 선생을 배접이로 마치 대지를 안아 넘기듯 《엑》하고 쓰러 눕히려다가 두몸이 땅이 꺼지도록 모래판을 울렸다. 주심은 가불을 못하고 부심들을 모이라 손짓하였다. 또 락판이라 아뢰자 수만의 관중은 그제사 한숨을 쉬며 박수를 쳤다. 두번이나 락판이고 또 맞붙었는데 주석대에서 총심판장이 달려와서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학생이 넙쩍 안거리를 걸고 부서져라 틀어대는데 오히려 뻗치는 선생의 발단지에서 힘줄이 터질듯 두드러 날뿐 좀체로 꺽이우지 않을것 같더니만 두 장사가 한쪽으로 쏠리며 쓰러졌다. 또 락판이다. 그 다음에도 락판, 락판을 련속 네번을 하고 끝내 마동일이 이겼다.

마동일이 1등을 하였다…

락판 4번에 3판 2승이니 결승전에서 씨름을 도합 6판 한셈이다. 마동일선생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결승전 씨름시합에 락판이 여러번 있게 되는것은 그만큼 결승전이 중요하고 또 단 한판에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재산인 황소가 왔다갔다하는 경기이기에 분명한 승부가름이 아니다 싶으면 락판으로 계산해서 경기의 공정성을 강조했던것 같다고 말했다.

주덕해주장이 직접 우승한 마동일을 소잔등에 앉히고 경기장을 돌았다

마동일선생은 우승후 주덕해주장으로부터 소고삐를 넘겨받았으며 씨름으로 탄 황소에 앉아 경기장을 두바퀴 돈후 연길시내까지 돌았는데 관중들이 장하다고 너도나도 넙적다리를 쳐주어 다리가 시뻘겋게 멍까지 들었다고 한다.

주대회에서 씨름 1등을 한 영예는 고향인 화룡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유선방송을 통해 이미 마동일이 전주 씨름대회1등을 했다는 소식이 고향마을인 화룡현 서성공사 룡포촌에도 전해졌고 그가 다니는 화룡고급중학교에도 알려졌다.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그날 밤도와 연길에 달려왔으며 화룡고급중학교 전체 사생들이 우승하고 돌아오는 마동일을 기차역전부터 시내까지 길게 늘어서서 개선장군처럼 박수치며 맞이했다고 한다.

우승후 고향모교인 화룡고급중학교앞에서 남긴 사진

그때 화룡현에서도 한창 현운동대회가 열리고있었는데 연길에서 돌아온 마동일을 운동대회가 열리는 주석대에 지도일군들과 함께 앉게하는 영광까지 주었다고 한다. 아직 학생이고 순박한 성품이였던 마동일은 너무 송구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는데 미구하여 주석대에서 마이크를 통해 전주 씨름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마동일이 씨름표연을 보여준다고 해서 관람객들이 장내가 떠나갈듯 크게 환성을 올렸다고 한다.

마동일선생의 씨름표연이란 현운동대회에 참가한 씨름선수든 관중이든 누구든지 상관없이 마동일과 씨름 한번 해보고싶은 사람은 모두 나서서 도전할수있다는 뜻이였다. 마동일이 운동장가운데 만들어놓은 씨름장에 떡 하니 버티고 서서 련거퍼 달려드는 20여명의 씨름군들을 모두 0:2로 재껴치우니 관객들마다 대단하다고 박수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은 그 이듬해에 또 있었다. 이듬해 화룡현운동대회가 열려 마동일이 씨름에 참가했는데 단 두판만 씨름하고 1등을 했다. 모두가 마동일과의 대결을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식으로 기권하면서 너무 우습게 우승을 했기때문이다.

마동일이 씨름판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려고 할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씨름대회를 비롯한 여러가지 체육경기들이 꽤 오랜기간동안 열리지 못했던 까닭으로 씨름장수 마동일의 모습을 볼수 없었다.

1970년, 마동일은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산설고 물선 서란광무국에 배치받았는데 그후부터 더구나 연변의 씨름판에서 마동일의 모습을 볼수없게 되였다. 60년대초 연변의 씨름판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춘 마동일의 이같은 잠적에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특정된 시대와 그가 복종할수밖에 없었던 외지사업배치의 영향이 안타깝게 깔려있다.

마동일선생은《과거에도 씨름운동은 전반 운동대회의 포상금가운데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싼 황소를 내거는 대단히 중요한 우리 민족 민속운동경기였다》고 강조,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씨름에 대한 사회중시도가 확실히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져있다》고 말했다. 마동일선생은 지난해 연길에서 있은 전주 중소학교민속항목운동대회에 학생들을 지도하여 씨름경기에 참여한적 있는데 연길같은곳은 씨름훈련장소거나 활동여건들이 충분히 주어져있는것 같더라면서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중시를 돌려 우리의 민속씨름운동경기가 많은 관중들이 환호하고 즐기는 인기 민속운동으로 거듭날것을 바랐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이였던196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10돐을 맞으면서 연길공원인민체육장에서 6만여명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치러졌다는 민속씨름경기의 화려했던 기억, 이제 그 장쾌한 기억이 자치주창립 60돐을 맞는 오늘날의 경기장 함성으로 다시금 터져나올수는 없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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