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솔처럼 살다가 학처럼 날아간 선비》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5월22일 16시13분    조회:491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화

ㅡ우리 문단의 원로평론가 허호일선생을 그리며

우리 문단의 원로평론가이며 연변대학 조문학부 원로교수이시며 중국에서의 조선-한국문학연구의 기틀을 마련해놓으신 허호일선생님께서 2012년 5월 11일, 84세 천수를 누리고 우리와 세상을 달리하셨다. 누구나 모두 가야 할 길이지만 그렇게 재촉할 필요가 없는 그 길을 선생님은 그대로 총망히 떠나가셨다. 선생님의 가르침속에서 학문의 첫 수업을 익힌 제자로서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하고 한잔의 쓴 술로 선생님을 보내야만 했던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것만 같다.

연변대학 조문학부 추도사에서는 그를 《솔처럼 살다가 학처럼 날아간 선비》라고 높이 평가하였는데《설한풍 불어올 때도 소나기 내릴 때도 세도와 시체, 선화와 거짓 앞에서도 언제나 유혹됨이 없이》 대나무처럼 곧게 한생을 정직과 성실에 바치시면서 유연하게 멋을 따로 지니시고 도고하게 살아오신 선생님의 한생에 대한 지당한 평가라고 생각된다.

허호일선생님은 1929년 10월 9일, 왕청현의 한 농가에서 태여났고 거기에서 소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3월에 연변대학교에 입학하셔 1953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그때로부터 1992년 은퇴를 하시기까지 선생님은 세파에 부대끼면서 후학을 키우는데 몸과 맘과 정열을 다 바치셨고 1950년대 중반부터《시대의 주인공들》,《농촌현실과 우리 문단》과 같은 소설, 평론문들을 발표하시여 중국조선족문단의 형성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셨다.

개혁개방후에는 정판룡, 림휘, 서일권 등 선생님들과 함께《세계문학간사》,《제2차 세계대전후의 세계문학》,《일본문학사》등 교과서를 펴내 우리 문단에 세계문학 관련 지식을 보급하셨고 조선고전명작들인 《리제현작품집》,《가사집》,《홍길동전》등을 편집하시여 학문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셨으며《신경향파문학을 론함》, 《이욱의 시창작을 론함》, 《주몽전설에 반영된 민족문화의식》, 《20-30년대 조선현대문학연구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등 론문들로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연구를 한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셨고《평안왕조귀족멸망의 시대적인 화폭》, 《겐지모노가다리의 사실주의 예술특징 》,《겐지모노가다리와 백거이의 시가》,《가와바다야스나리의 미적세계》,《메이지사회 근대화와 후다바데이 시메이의 우끼구모》,《야마노 우에 오꾸라의 예술풍격과 중국문화의 관련》,《요우시에 미친 안나 카레니나의 영향》등등 일본문학과 중일비교문학의 주옥같은 론문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매 편의 론문들은 언제나 새로운 안목과 높은 학문적인 수준 그리고 예리한 분석과 청신한 관점으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조선족문단 나아가서는 중국문단에서의 선생님의 높은 학문적기여로 말미암아 선생님은 일찍 1978년에 교수로 승진하셨고 중국일본문학연구회, 중국비교문학연구회 등에서 활약적인 학술활동을 하셨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판룡, 리해산 선생님과 더불어 연변대학 박사학위지도소조 성원으로 활동하시면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학술관점과 예리한 안목으로 후학들을 길러내셨을뿐만아니라 향후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지금 우리 문단 나아가서는 중국문단과 평단에서 활약하고있는 김병민, 김관웅, 리암, 채미화, 김호웅, 최웅권, 허휘훈 그리고 저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가와 연구가들의 박사학위론문에는 허호일선생님의 심혈이 깃들어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선생님은 말수가 적으나 예리한 안목으로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해박한 지식과 예지가 넘치는 학문적안광으로 후학들을 키워왔고 후학들에게 학문적인 기초를 닦아주셨다. 만일 저희들이 학술상 이러저러한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지성어린 관심과 추호의 드팀도 없는 학문적인 태도에서 비롯된것이다.

선생님은 학문에서뿐만아니라 인생태도 역시 우리 후학들의 한 전범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추호의 양보와 티끌만한 흠집도 잡아내는 학문적인 선비정신으로 선생님은 평생 비리와 부정과 담을 쌓고 명예도, 사리도 도모하시지 않고 정직하게 그리고 대나무같이 곧게, 소나무같이 깨끗하게 살아오셨다. 바로 그러하였기에 선생님의 영결식때 하늘도 눈물을 흘렸고 산천도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을 바랬을것이다.

선생님과 나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해 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대학원생으로 입학하여 선생님의 문하에서 글을 읽었다. 거기에서 나는 선생님의 학문적태도와 더불어 인생을 배웠고 문학적인 수양을 길렀다. 선생님의 학구적인 태도, 예지로 넘치는 학문적인 안목, 흔들리지 않는 선비정신 등등은 지금도 나의 머리속에 남아 채찍질하고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들을 고무편달할것이다.

선생님, 가시는 그 길이 차고 험난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먼발치에서 선생님을 바래야만 하는 제자들을 널리 용서하시고 가시는 길이 창창만리, 평온하시옵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빕니다. 선생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윤윤진(길림대학 외국어학원 부원장, 박사생지도교사)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