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기업인41]수를 놓으며 제2창업의 꿈 이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1월20일 08시24분    조회:801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황철호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41)

-청도한성자수유한회사 황철호사장
 



황철호사장이 자수생산현장을 돌아보고있다.
 

 

황철호(黄哲浩) 프로필

나이: 47세

료녕성 안산고중 졸업

청도한성자수유한회사 사장

청도금성투자관리유한회사 사장

청도오크투자천태성분회사 사장

청도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

청도에서 《자수》 하면 황철호사장을 맏이(老大)로 손꼽는다. 청도지역에서는 조선족으로서 제일 먼저 자수를 시작했으며 현재 20개 조선족자수업체가운데서 1위이다. 1995년 이전에는 청도지역에 중국자수회사가 없었다. 한국자수회사들이 밀려들면서 1996년부터 중국기업들이 자수업에 투자하기 시작, 자수회사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결국 한국기업이 청도지역의 자수산업의 창시자라고 할수 있다.

황사장은 청도에 진출하면서 한국자수회사에 근무했는데 그 인연으로 자수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최근에는 자수업이 사양길에 들어서자 투자관리유한회사를 설립하여 제2금융권으로 진출하고있으며 화공제품 생산준비를 다그치고있다. 제2창업의 전성기를 맞고있는것이다.

수를 놓는 일에 몰입

수를 놓은 일이라면 자연 녀성들이 하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황사장은 이 경계를 타파하고 자수업에 뛰여들었다.

료녕성 안산시 출신인 황사장은 1994년 29세의 젊은 나이에 자기가 근무하던 안산강철공장에 사표를 내고 청도로 진출했다. 황사장은 지인의 소개로 한국독자기업인 고려회사에 입사했다. 총경리 조리로 반년 근무했는데 마침 회사에서 고려자수공장을 별도로 세웠다. 황사장은 3년동안 자수공장관리를 담당했다. 여기서 관리방법과 자수기술을 터득하여 1998년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황사장은 이촌에 있는 부도난 복장공장의 낡은 기계 6대를 임대하여 소자본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당시 황사장의 꿈은 《동업종가운데서 가장 크고 잘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것》이였다. 황사장은 임대한 기계로 자수일감을 받아 돈을 버는 족족 설비를 구입하는데 투자했는데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설비 4대를 구입했다.

돈을 벌자 2005년 독자적으로 자수회사를 설립했다. 황사장이 자수회사를 설립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다니던 고려회사의 바이어들이 찾아와 오다를 주며 부탁했다. 그때 황사장은 《남의 담벽밑을 파서는 안된다》며 오다를 거절했다. 후에 고려회사에서 자수를 그만두자 오다를 접수했다. 그래서 황사장은 고려회사 사장과 좋은 친분을 이어가고있다.

황사장은 수를 놓는 일에 몰입하면 《가슴속 아우성이 절로 가라앉고 마음은 평정을 되찾는다》고 말한다.

《열흘 붉은꽃 없다》

손으로 한올씩 수를 놓던 전통자수에도 자동화바람이 불어왔다. 컴퓨터자수기를 도입하여 자동화에 의한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는 업체가 크게 늘었다.

전자자수기는 부착된 컴퓨터에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을 미리 입력, 이 소프트웨어에 따라 자동적으로 수가 놓아지는 첨단제품이다. 말하자면 메이커에서 원하는 모양을 디자인, 이 모양을 테이프에 펀칭, 컴퓨터에 입력시켜주면 컴퓨터가 이 디자인에 따라 수를 놓음으로써 제품의 자동생산이 이뤄질수 있다.

컴퓨터에 의한 자동생산이 이뤄짐으로써 인건비 절감은 물론 종전 재봉틀을 사용해서 수를 놓을 때보다 약 20배가량 생산성이 향상됐다.

따라서 9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업주들이 선물을 사들고와서 오다를 주며 《애걸》하다싶이 했는데 후에는 경쟁이 심해졌고 리윤도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2007년부터는 인건비가 대폭 상승했다.

황사장은 이런 추세를 감안하고 700만원을 투자하여 16대의 외국산 컴퓨터자수기를 구입하여 로동자를 120명에서 90명으로 1/4 감원했다.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에 이어 글로벌위기로 오다가 줄어드는 악재까지 덮쳐 고전하다 부도나는 자수회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청도지역의 일부 한국자수회사들은 동남아로 이전하고있으며 바이어들도 동남아로 거래처를 옮기고있다.

《열흘 붉은꽃이 없다》는 말처럼 자수업도 사양길에 들어서고있다. 반드시 업종을 전환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제2창업의 전성기 맞아

2011년 10월, 황사장은 등록자본 1000만원, 류동자본 1000만원으로 투자관리회사를 설립하여 제2금융권으로 진출했다. 중소기업들이 대출난에 몸살 앓고있는것을 파악하고 대부업회사를 설립한것이다. 리자는 자유화를 실현했는데 신용과 실적이 좋은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낮은 리자로 대출을 준다.

현재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해에 600-700만원의 대출을 해주고있는데 조선족기업이 70%, 한족기업이 30%를 차지한다.

한편 황사장은 한국기업과 손잡고 전자키판(電路板)에 사용되는 유기용접보호제(OSP) 양산준비를 다그치고있다. 전자키판은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공업설비, 가전전기 생산에 필요한 제품이며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60%를 생산하고있다.

현재 실험을 끝낸 상태이며 실험제품으로 4톤 생산해놓았다. 월 200킬로그람씩 생산할수 있다. 판매루트를 개척중인데 래년 하반기부터 본격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설에 로동자들 집을 방문하다

황사장은 인성화관리에도 남달리 신경을 썼다. 보통 구정을 쇠고나면 집에 갔던 로동자들의 리탈률이 약 30%에 달한다.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숙련공을 안정시키는것을 절대 홀시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황사장은 설에 로동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따뜻한 사랑 전달하기》 운동을 벌였다.

황사장은 2008년 정월 초하루부터 한주일간 선물을 사들고 로동자들의 집을 찾아갔다. 하루에 한 지역, 10여집을 돌았다. 로동자들을 격려하고 새해에 더 열심히 뛰여줄것을 당부했다. 그때부터 황사장은 한번도 집에서 편안히 설을 쇠보지 못했다.

또한 회사내에 3층 건물 기숙사를 지어 로동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으며 관리자의 경우 방을 제공해주고 식비도 월 500원씩 보조해준다.

한편 장려제도를 실시하여 능력있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황사장의 따뜻한 사랑은 직원들의 마음을 감싸주어 회사를 리탈하는 직원이 극히 적었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초창기때부터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흑룡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편벽한 변강지구에서 청춘을 불태우는 김혜영담임교원의 교육사랑 소학년 5학년 9명 《자식》들에 둘러싸인 《어머니》선생 흑룡강성 학강지구의 라북현(북위 48도 위치)은 흑룡강을 사이두고 로씨야와 마주하고있다. 이곳에 중국조선족학교로 제일 북단에 있는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가 바로 라북현조선족학교이다. 지난 ...
  • 2013-06-26
  • -흑룡강성 가목사조선족기초교육센터 현희교원의 이야기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안고 그녀는 십여년간 민족기초교육에 몸담갔다. 소학교 담임으로부터 정교처 주임직을 겸하기까지 평범한 일터에서 그는 말없이 학생들을 키웠다. 그가 바로 흑룡강성 가목사조선족기초교육센터의 현희선생님이다. 일전 기자일행이 이 학...
  • 2013-06-25
  • 항일구국운동의 선구자   림민호는 1904년 1월 3일 조선 함경북도 회령의 한 빈농가정에서 태여났다. 그 이듬해에 일가는 두만강을 건너 룡정에 이주, 후에 화룡현 동성촌 고성툰으로 옮겨갔다. 1919년 룡정의 3.13반일시위 운동에서 그는 비록 열다섯살에 나는 소년이였지만 친구와 둘이서 천주교 례배당 종루에 올라...
  • 2013-06-25
  • -연변장백호랑이팀 키퍼코치 정영학씨 흔히들 축구에서의 꼴키퍼를 《최후의 보루》이자 《팀의 절반》이라 부른다. 무엇이 어찌됐든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도사려야 하고 온 몸을 내던져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8일,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에서 키퍼코치로 활약하고 있...
  • 2013-06-24
  • 길림성교육계통사덕선진, 연변주우수담임교원인 화룡시제3중학교 김신옥교원의 교육사랑 학생들과 함께라면 늘 즐겁다는 김신옥선생님(가운데). 교육사업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 능수능란한 교수실력으로 30년을 하루와 같이 교단을 지켜온 선생님이 있다. 그가 바로 길림성교육계통사덕선진, 연변주우...
  • 2013-06-20
  • 연무전통태극권 김태익 사부를 만나다 제자들과 함께 수련하고있다 지난 6일 한국 광명시 시민체육장에서 한창 태극권을 수련하고있는 조선족 김태익 사부를 만났다. 2008년 제8차 국제태극권경기에서 태권, 태검 두 종목의 1등 수상자로 현재 한국에서 수십명의 수련자를 가르치고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기...
  • 2013-06-20
  • 손수 흙을 이개여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들, 우리 연변에서도 “흙으로 그릇 만드는 사람”이라고 당차게 밝히는 20대 젊은이가 현재 잔잔한 인기를 구가하고있다. 현재 연길 공원가두 발전 항달1품에서 “와이도자기공방”가게를 운영중인 박룡칠(29)씨, 곱사란 외모와는 달리 그의 손은 도자기를 빚느...
  • 2013-06-20
  • [조글로 기업탐방1] 식당 음식이 다 맛있다는 건 옛날 이야기가 되여버렸다. 우후죽순마냥 얼싸하게 늘어선 음식점가게 간판들을 보노라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맛평가단이 되였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팽창되여가는 우육면, 미선, 윁남쌀국수 등 면들의 치열하고 불타는 전쟁속에서도 조용하면서도 두둑하게 변치...
  • 2013-06-19
  • “저는 컴퓨터나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하여 잘 모르는 무역하는 사람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지난 2003년 조선인력을 활용한 컴퓨터애니메이션제작을 시작하게 된것인데 운이 좋은지 그해부터 국가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국산애니메이션을 방영하여야 한다는 국산애니메이션육성정책이 나왔습니다. 그 정책에 힘입...
  • 2013-06-18
  • 조선어학회 항일투사 ▲ 동덕여고 앨범의 이윤재 이윤재(李允宰, 1888-1943) 선생은 일제시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국어학자였다. 올해는 이윤재 선생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숭덕학교 교원시절에 3·1 운동을 주도하였기에, 평양감옥에서 1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하였다. 수양동우회에서 민족의식...
  • 2013-06-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