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는 문학애호가일뿐… 산보하고 음악 듣고; “‘목포의 눈물’ 가장 좋아해”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0시45분    조회:506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룡남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2) 

원로시인 조룡남 선생님을 찾아뵙고                   
 

 
 

김학철같은 분 모시고… 아쉬움 없어
 
문학에서의 만족… 최선을 다해
 
글짓기는 나의 정보를 세계인과 교류하는것


 
지난번 연길역 동쪽 대주호텔 부근에서 우연히 조룡남시인을 만났다. 산보하고 귀가하는 중이라했다. 건강상태는 작년에 뵙던 모습과 별다름이 없었고 오히려 정신상태나 건강상황이 더 나아진듯 했다. 매일 40여분 산보하고 차를 타거나 도보한다는것이였다. 늘 MP3를 지니고 음악을 들으며 깨끗한 공기를 즐기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여생을 향수하고있었다.

조시인님의 자택에서 나눈 이야기는 20여년전에 처음 시인님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비슷했다. 내용이 다를뿐 분위기나 기분은 여전했다. 늘 잊혀지지 않는 고생의 나날이 화제였지만 불만이 없고 유쾌하고 즐겁고 또 겸손하였다.

《황성의 달》이란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로 인하여 조룡남 나는 독초가 되여버렸어요.”

《황성의 달》 노래는 1902년 일본에서 첫 발표되였다. 조룡남시인은 학생시절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회억하고있다.

“《황성의 달》곡이 흘러나왔다. 당시 한 학생이 흰옷을 입은채 무대에서 독무를 추었다. 춤이 끝나자 일본인 교장이 무대에 올라가 그 학생을 포옹하듯이 끌어안았다. 흥분된 표정이 력력했다. 《황성의 달》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후날 이 점을  심심히 느끼였다. 우리 집 옆은 재봉점이였는데 일본군인이나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바지나 웃옷을 기웠다. 당시 전반 사회가 어려운 생활고를 치르고있었고 일본인들도 그러했다. 주인집에서는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조금씩 주기도 했고 일본인들은 점차 재봉집에 한번 두번 더 자주 모이였다. 이들은 때론 함께 모여 많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나중에는 노래도 하는데 《황성의 달》이였다. 고향에 대한 애수,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거고 그래서 나중에는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

우리 조선민족의 《아리랑》과 비슷하다 할가? 김학철선생이 소속되였던 조선의용대는 늘 일본점령구 부근 지역에서 대일선전공세를 벌이였는데 그때 《황성의 달》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적의 진영에서는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당시 대일선전에는 김염의 녀동생 김위도 참가했었다.

“내가 연변사범학교에 다닐 때 일이였어요. 동반 학생이 길가에서 종이장 하나를 주어왔어요. 《황성의 달》가사가 적힌것이였어요. 원래부터 그 노래에 깊은 애호가 있는지라 나는 흥분에 겨워 그 종이를 가로채다싶이 했지, 일어로 된것이였기에 곧바로 백호연선생을 찾아갔고 노래가사 4절을 조선문으로 번역해달라 청했지요. 그렇게 번역된 가사를 나는 보배처럼 여겨 집에 고이 보관해두었어요.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였거든. 문화대혁명때 집을 수색하면서 나온거야, 당연 조룡남의 독초가 되여버렸어. 일본노래이니깐, 기실 나는 지금도 그 노래가 가지고있는 정서에 늘 젖어있군 해요. ”

지금도 조룡남시인은 맏아들이 구해준 《황성의 달》노래를 즐겨듣고 고이 간직하고있다.



우리들 이야기는 자연히 시와 문학을 외면할수 없었다. 문학과 자신에 대한 조룡남시인의 자세는 겸손함과 솔직함이 짙었다.

“나 만년에 와서 늘 문학과 자신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거든. 연변이란 울타리에서는 성과가 있다하겠지만 광의적인 범위에서 평가하면 나 아무것도 아니야. 원인은 3가지 있어요.  아는것이 없다는게 첫째 원인이요. 나 명문대를 나온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서를 많이 한것도 아니며 더욱이 외국어를 몰라요, 치명적이지. 독서는 하늘에 이르는 길이라 하는데 나 그렇지 못했어요. 그리고 견문이 빈약해요. 력사적 배경도 있겠지만 지리, 인문, 력사, 철학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해외나 중국 많은 지역을 다녀보지 못한것도 하나의 원인이요. 마지막으로는 타고난 예술재질이 없어요. 실제 생활은 있으나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재간이 없어요. 지금 이 점을 승인해요. 나는 젊은 때의 고생을 전부 보상받았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예술적으로 평가할 때 나는 실패한 인생이지. ”

조선족문단에서 문학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조룡남시인, 랭정하고 부끄럼없는 자아평가를 하면서 인생에 대한 만족을 드러냈다. 2010년에는 시집을, 2011년에는 동시집을 출간했고 금년에는 수필, 래년에는 산문집을 출간한 타산, 지금 원고정리를 다그치고있다.

건강상황이 썩 리상적이지 않는 오늘에도 독서는 필수였다. 최인호의 《상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은 그가 좋아하는 책들이다,

“내 일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지, 그리고 《대지의 항구》, 《황성옛터》도 무척 좋아해요. 사실말이지 추도곡 대신 《목포의 눈물》을 방곡했으면 좋겠어요. 허- 허…”

인생을 써야 예술생명이 있다는 조시인님,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반디불문학사 학생회원들은 그의 집을 찾아와 만남은 갖고 문학적 가르침도 받는다. 조시인은 이들에게 문학명작을 개편한 드라마도 보여주고 작품도 수정하여준다.

아쉬움과의 리별은 욕심을 버리는것.

조룡남시인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모습이겠다.
 
한뫼
 
조룡남 략력

 
중국 훈춘시 출생(1935)
연변사범학교 졸업
훈춘2중 교원, “우파”로 됨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 편집부 (1984)
제7기, 8기 연변주정협 상무위원
시집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등 수십권 출간
중국소수민족문학상 등 수상.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 출신 초교 이중언어강사 김영남씨 대구 팔달초등학교에서 중국 출신 이중언어 강사 김영남(29`여) 씨가 학생들에게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팔달초교 제공   (흑룡강신문=하얼빈) 하얼빈의 조선족 출신인 김영남(29`여) 씨는 지난달부터 팔달초등학교에서 교단에 서고 있다. 한국 대구시교육청에서 ...
  • 2012-05-03
  • 100세 맞은 안 의사 5촌 조카며느리 안로길씨 독립운동 증빙 자료 없어… 현재 성금으로 생계 이어… "생전에 열사관 만들고 싶어" 지난달 24일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 안로길씨가 100세를 맞았다. 이날 안씨가 거주하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작은 아파트에서는 하얼빈 한국인회...
  • 2012-04-27
  • 《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특별기획(12) ―중국조선족 대중가요의 참신한 변화를 시도해 온 작사가 석화선생을 만나   우리 둘이 정답게 손에 손잡고 높은 산 험한 봉을 맞받아가면 칼벼랑은 비켜서고 넓은 길 펼쳐지리 아, 사랑은 용감히  아름다운 처녀야 사랑은 용감히 &n...
  • 2012-04-27
  • 단편영화 《먼 곳은 어디에》 촬영을 지도하고있는 김혁감독. 북경의 3월은 바야흐로 신록의 푸른빛을 대지에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수도 북경의 신흥문화관광점으로 부상한 《798》의 유룬스당대예술중심촬영장에서 20대 조선족영화감독 김혁(金赫,29세)은 한창 《먼 곳은 어디에》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하고있었다....
  • 2012-04-26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창미달'의 김창호리사장   (흑룡강신문=청도) 리수봉 박영만 기자 = 청도창미달전기유한회사는 오락게임기리모콘을 사출하여 일본에 수출하는데 년간 17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굴지기업이다.   창성번영을 의미하는 자신의 이름 중간글자 창(昌)자와 아름다운 제...
  • 2012-04-23
  • 연변해천국제여행사 총경리 노학수   (흑룡강신문=연변) 김명록지사장 = 연변해천국제여행사가 지난 3월 2일에 고고성을 울렸다. 전신은 연변해협국제여행사 하남분공사이다.   "백지장 한장의 두께와 같은 선택의 차이라도 결과는 판판 다르다. 일단 자기의 선택이 정확하다고 인정된다면 두말없이 밀고나가야 성공 한...
  • 2012-04-23
  •   샤타로 기록한 이민사, 렌즈에 담아 십여년   집단이주사 다큐멘터리사진작가 리광평선생 인터뷰   7개 현(시), 34개 향(진), 94개 마을… 500여명 이주민 취재 민족사에 가장 비참했던 강제 집단이주사… 왜 증발했나?   글 사진: 신철국 박군걸 기자 “리광평”. 초면에 스쳐...
  • 2012-04-23
  •  “내가 하는 일, 우려란 없다”    -- 연길은포유한회사 리사장 박련순 인터뷰   사진 박군걸  글 한뫼       한곳 우물만을 파라는 말이 있다. “지지이항”(持之以恒)으로 해석할 수 있다. 꾸준히 한 곬으로 흘러들어가라는 말이다. 사람의 정력과 시간과 ...
  • 2012-04-05
  • 한국시장? 내 무대는 중국대륙 연변주 민족기업으로 선정 한국시장 눈길 돌릴 생각 없어 최고급 제품은 조선 수출   밭고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본다는 말이 있다. 편벽한 오지에 살면서도 천하에 뜻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수 있겠다. 지난 주 만난 최경심(崔琼心) 사장이 떠오른다. 허름한 회사건물, 온전한 간...
  • 2012-04-05
  • 이향란(왼쪽) 동사장과 신화춘(오른쪽) 총경리가 의료기 도입식 날 후희민 교수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흑룡강신문=칭다오) 김명숙 기자 = 지난 3월 17일, 공군칭다오요양원 강복치료센터내에 "무통증 척추 감압치료중심"을 설립하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1대당 300여만 위안에 달하는 미국제 스파인매드척추감...
  • 2012-04-0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