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편단심 과학연구에 심혈 몰붓는 "농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7일 09시10분    조회:437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기건


옥수수교잡종연구에서 공백을 메운 장기건교수

연변농학원 졸업생중 첫 류학생, 길림성 농학전업의 첫 외국박사, 연변농학원에서 교수직함을 취득한 첫사람, 농학원졸업생가운데서 농학원 원장을 담임한 첫사람···
80고개를 바라는 훤칠한 키골의 장기건교수, 안경너머로 비쳐오는 침착하고 사색적인 부드러운 눈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친근함과 자상함과 더불어 한눈에도 전형적인 인테리라는 느낌이 안겨왔다. 또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과 열정으로 반세기 넘는 과학연구, 교학생애를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첫 사람"이라는 당연함과 "첫 사람"이 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엿볼수 있었다.

고난의 유년시절…자연을 품에 안고
장기건교수는 1932년, 왕청 대흥구진의 한 빈한한 가정에서 세형제의 막내로 태여났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8살 때 어머니까지 여의였으며 형님, 누나들마저도 몸쓸 병으로 떠내보낸 그는 어린 나이에도 누구하나 따뜻한 손길도 눈길도 주지 않았던 외톨이였다. 이런 그를 감싸주고 안아준건 오직 대자연이였다.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 누워 자연이 선물한 매 하나의 생명체를 호기심 가득해 바라보노라면 그속에 푹 빠져 그 순간만은 친인들을 잃은 아픔도 자신의 외로운 신세도 모두 잊군 하였다. 그때부터 장기건교수는 생물이라는 개념도 모른채 자연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열심히 공부했다.

1947년 왕청련합중학교를 졸업한 장기건교수는 당시 그곳에 고중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외지에 가 고중을 다닐 상황이 아니여서 잠시 학업에 대한 꿈을 접고 만 16살 되는 해에 왕청현 쌍하진의 한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학교에서는 워낙 머리가 총명한데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교학을 깐지게 하는 그를 대흥구중학교에 추천했다.

그한테도 드디여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꿈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을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장기건교수는 대흥구중학교에서 추천하고 통일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해 1953년, 연변농학원에 입학했다.

류학…닦지 않은 길로 향해
기회는 늘 준비된자에게만 찾아온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지 3년 되는 해, 그에게 쏘련류학의 기회가 찾아왔다. 외국류학이 하늘에 별따기인 시기인지라 정치심사, 신체검사, 성 및 전국통일시험을 거치는 겹겹의 관문이 장기건앞에 놓여졌다. 당시 전국 각지 대학교와 과학연구단위에서 모두 자신들이 내노라하는 "선수"들을 추천했고 우리 성에서도 장기건교수를 포함한 50명을 추천했다.

그후로부터 기회를 잡기 위한 공부와의 사투가 벌어졌다. 반년 동안 집에 오가는 시간도 아까와 교원실을 집으로 정하고 낮에는 교학을 하고 밤이면 안해과 함께 밤을 패가면서 공부를 했다. 안해는 그의 든든한 뒤심이자 "조수"였다. 같은 전업을 선택한 안해는 갓 돌을 넘긴 아들을 시집에 맡겨두고 자료를 찾아주고 서류를 작성해주며 그와 함께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반년간의 고생끝에 장기건교수는 길림성 5명의 합격자중 유일한 한명으로 되였다.

그러나 중국과 쏘련의 관계가 파렬되면서 그는 국가의 배치에 따라 루마니아에 류학가게 되였다. 로어는 그나마 류학통지서를 받은후 반년 동안의 학습을 통해 조금은 대화를 할수 있었지만 루마니아어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언어였다. 한주일간의 돌격식학습으로 가장 기본적인 생활용어만 기억한채 1960년 9월 13일, 그는 루마니아로 류학을 떠났다.

5년남짓한 류학기간 장기건교수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농학원에서 밤낮없이 공부에만 몰두했다. 대사관에서 주말마다 조직하는 정칙학습외에는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면서 모든 여가생활을 보냈다. 루마니아 류학에서 그는 옥수수잡교종과 자교계친본의 생물학연구에 종사했다. 당시 옥수수잡교종과 생물학 연구가 세계적으로도 갓 흥기한 학문인지라 어려움도 많았다. 5년간의 노력끝에 그는 루마니아 농학박사학위를 취득, 33살라는 젊은 나이에 연변대학 농학원 졸업생중 첫 류학생으로, 길림성의 첫 농학전업 외국박사로 되였다.

중국에 돌아오자 중국농업과학원에서 러브콜이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농업과학원은 예전부터 과학자들을 키워내는 용광로이고 요람이며 과학자로 되려고 꿈꾸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흡인하는 희망봉이고 전당이다. 그러나 학생때 입당을 했었고 학교에서 추천해 류학까지 가게 된것을 늘 고맙게 생각했던 장기건교수는 유혹을 물리치고 연변농학원에 돌아왔다.

일편단심 "농인" …빛나는 과학성과
하루를 이틀맞잡이로 쪼개여 쓰면서 피땀으로 조각한 "박사"학위를 한가슴 벅차게 안고 조국에 돌아온 장기건교수, 자신이 배운 모든것을 활화산처럼 폭발시켜 크게 해보려는 마음만 갖고 교편을 잡은지 반년밖에 안됐는데 "문화대혁명"이 터졌다. 5년 동안 그는 그렇게도 하고싶던 옥수수의 자교와 잡교실험을 할수 없었고 일부 반대파로부터 무능한 "양박사"로 몰리우기까지 했다.

장교수는 그래도 속으로는 언젠가는 내가 배운 소중한것들을 끄집어낼수 있는 날이 올것이라는 확신으로 옥수수에 대한 연구만은 놓지 않았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1970년부터 나라에서 농업에 대한 중시와 함께 룡정시 조양향 삼성대대에서 옥수수교잡종과학연구를 했다. 실험을 할수 있게 하는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과 고마움을 안고있었던 그는 삼성대대에서 살면서 매일 10여리 산을 넘어 실험기지를 오갔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몇년후 섬성대대는 연변지역의 옥수수잡교종기지 선진으로 되였다.

1970년 겨울, 과학연구주기를 단축하기 위해 그는 또 해남도에서 "남하번식,대수증가(南繁加代)"사업을 하게 되였다.그후로부터 4년 동안 그는 겨울이면 해남도에서 연구를 하면서 연변농학원의 남하번식기지를 건립했다. 이렇게 몇년간의 연구끝에 장기건교수는 1973년에 "옥수수교잡종성상유전규률"이란 연구론문을 "유전통신"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06-14 김창영 기자]자서전 《고난의 발자국》에 그려진 리수철선생의 삶의 궤적                이 세상을 떠난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된다면 그 사람은 값진 삶을 살았다고 할수 있다. 취재차 봉성시조선...
  • 2011-06-15
  • 민족을 빛낸 당원들(10)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13) 북경화공대학 박사생 지도교사, 학술위원회 주석 김일광교수 (1933년생)는 ‘군자론’ (群子论)을 창시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널리 응용하여 독특한 연구성과들을 거둔 저명한 학자이다.그는 2009년, 공화국 60주년 공훈인물 60명에 선정돼 기념우표에 ...
  • 2011-06-14
  • 북경 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 공신ㅡ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 이끌고 7년 땀동이 [길림신문 2011-06-14 리철수 기자]북경의 조선족동네로 소문난 망경, 매주 토, 일요일이면 중앙미술학원 교내운동장에서는 어김없이 여섯 게임의 순 조선족축구선수들로 무어진 축구시합이 조직된다. 전원 조선족들로 무...
  • 2011-06-14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0)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에너지는 마음속에 있다서울성형외과 김금화 원장 인터뷰     김금화 원장 프로필   1987년9월~1991년 9월 가목사의학원 졸업   1994년 하얼빈시미용과학기술연구회에서 진수   1998년~2002년 한국 여러 성형미용...
  • 2011-06-12
  • 개혁개방 1번지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 심수월드옥타 남기학지회장을 만나[인터넷료녕신문 2011-06-10 리덕권 기자]지난 4월, 한국 서울에서 있은 월드옥타대회기간 기자는 월드옥타 심수지회 남기학지회장을 만나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의 상황을 소개받았다.   개혁개방전, 자그만한 어촌이였...
  • 2011-06-10
  •      (흑룡강신문=하얼빈) 고 정판룡 교수( 1931. 10 -2001. 10)는 연변대학의 첫 박사생지도교수로서 20명의 문학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고 연변대학을 현대적인 종합대학으로 일떠세우는데 거대한 기여를 했다.   1949년 17세 나이에 연변대학에 입학,1980년 연변대학 부교장으로 임...
  • 2011-06-09
  • 연매출 1600억원 비결? 현지에 맞추되 끌려가진 말라한국서 들여온 LCD에 소프트웨어 결합 판매빠른 정보망 부품 표준화로 중국 시장에서 정면 승부"중국에 진출한 한국 IT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경영기법을 더 진화시켜야 합니다.삼성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5점 만점에 1점도 주기 어려워요"최근 서울 광진구 워커힐...
  • 2011-06-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02)1936년 5월 25일 새벽, 할빈기차역에 도착한 렬차에서 지식분자 기질이 다분한 젊은 부부가 내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조직이 할빈에 파견한 김문철(조선족), 도개손 부부이다.   이때부터 김문철은 중공할빈시위서기를, 도개손은 시위선전부장을 맡았다.   1934년 4월 당조직이 파괴...
  • 2011-06-02
  • [길림신문 2011-06-02 박명화 유경봉 기자]농민기업가에서 그룹회장으로 되기까지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8) 장춘대화그룹 리사장 리규광을 만나    리규광(李奎光) 프로필 1952년 5월 22일 길림성 서란시 출생 1969-1980 농업기계공장 로동자 1981-1984 길림성농업학교 학생(일본어 학습) 1985-1986 일본자비...
  • 2011-06-02
  • 청도 조선족들에게 예술의 향기 주고저 [길림신문 2011-06-01 통신원 손운관 ] -청도시조선족진달래예술단 엄정숙단장의 이야기 청도시에는 근 20만명에 이르는 조선족이 살고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많이 살고있는 곳에 우리 민족 예술단이 없다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엄정숙은 청도시 조선족들에게 우리 민족 문...
  • 2011-06-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