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불모의 땅 사막에서 짙어가는 벼꽃향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17일 10시13분    조회:56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엄철수


처음으로 사막 벼재배에 성공한 조선족과학기술일군 엄철수연구원

기지(旣知)의 자연법칙이나 경험적 사실(상식)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이를 기적(奇迹)이라고 말한다.

사막에서의 벼재배, 얼핏 듣기에도 불가능한 일이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현 통료시)에서 일어났다. 그 기적을 창조한 사람은 연변출신의 엄철수연구원. 비록 그는 이미 퇴직한분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몽골로 오가며 기술지도를 해준다고 한다. 그는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이어 사막에서의 벼재배에도 성공함으로써 불모의 땅으로 불리우는 사막에서 벼꽃향기가 풍기게 했다.

"1994년 내만기(奈曼旗)에 장기간 거주하던 주민들은 끝내 자기들이 생산한 입쌀로 지은 이밥을 먹을수 있게 되였다." 현지 신문에 실린 기사의 구절이다.

몽골족동포들의 조선족 "바거시"
바거시(老师)는 몽골어로 선생님을 뜻한다. 1986년 당시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哲里木盟-1999년 지구급 시인 통료시로 개칭) 민족종교사무처의 초빙으로 벼재배 기술지도를 맡아서 1991년 저리무맹농업과학기술연구원에 정식 전근하고 1998년 퇴직하기까지 20여년간 엄철수연구원은 초기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 그후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혼신을 다하면서 몽골족농목민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그래서 저리무맹의 농목민들은 엄철수연구원을 두고 “엄바거시”라고 친절히 부른다.

1962년 길림농업대학을 졸업한 엄철수씨는 연변과학기술위원회 육종기술일군이였다. 1981년 그의 주도로 시작된 벼육종기술(肥水沙耕育种技术)은 자치주 과학기술연구과제였으며 1985년 지구급 감정에서 통과됐다. 그 감정이 금방 통과되자마자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민족종교사무처는 엄철수연구원을 벼재배기술지도일군으로 초빙했다.

벼재배기술일군으로 있는 기간 엄철수씨는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모를 박고 호르친좌익후기(科尔沁左翼后旗) 금보툰진 량가자촌에서 이 기술로 285무의 벼재배를 실험했는데 성공하였으며 그후 각 기(旗), 현(시)에 이 기술을 보급했다. 1987년 호르친좌익후기와 원 통료시(현급시)에서 1만여무를 보급했으며 1988년에는 호르친좌익후기, 원 통료시와 내만기(奈曼旗)에서 3만무를, 1989년에는 전 맹에서 5만여무를, 이듬해에는 보급면적이 10만여무에 달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1991년 엄철수연구원의 벼육종기술(肥水沙耕育种技术) 보급면적은 14만 2700무에 달했는데 1986년부터 1990년 사이 전 맹의 루계 보급면적은 20만무, 벼 7000억킬로그람을 수확했고 4000여세대가 빈곤에서 벗어난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원 통료시의 경우 전 통료시(현급시) 7.2만무 논가운데 비수(肥水)육종면적이 5.9만무로 전 시 논면적의 82%를 차지하는것으로 집계되고있다. 비수육종기술이 도입된후 페경환림, 페경환목(牧) 면적이 40만무에 달한다고 한다.

사막에서 풍기는 벼꽃향기
알칼리성토양에서의 벼재배에 성공한 뒤 엄철수씨는 사막의 가치를 발견하고 중국과학원 란주사막연구소의 일군들과 함께 3년간 되는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달라붙었다.

통상 벼재배는 대량의 물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수가 빠른 사막에서의 벼재배가 불가능한것으로 보고있다. “밑굽 없는 항아리와도 같은 사막, 물을 부으면 인차 스며드는 사막”에서 어떻게 벼를 재배한다고?

하지만 엄철수연구원한테서 불가능은 없었다. 아마도 력사적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례가 많아 “기적”이라는 단어가 생겨나지 않았나싶다.

엄철수연구원은 저리무맹농업과학연구원(현 통료시농업과학연구원) 기술일군들을 이끌고 중국과학원 란수사막연구소 기술일군들과 함께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달라붙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6년 사막에서의 벼재배기술은 성공을 거두었다.

상규벼재배의 기질(基质)에 대한 요구가 양분을 함유한 토양이고 수상벼재배의 기질에 대한 요구가 물이라면 사막에서의 벼재배가 기질에 대한 요구는 바로 모래였다. 사막벼재배는 무토재배의 기술원리를 리용, 침수가 심한 사막땅에 비닐박막을 펴 침수를 막으면서 육종, 모내기에 이르기까지 모래를 기본적인 자질로 삼는다고 한다.
중국과학원 자연및조화발전국은 검수를 거친 뒤 “중국과학원 문헌정보쎈터의 검색과 분석을 거쳐 이 기술은 국내에서 처음이고 국제적으로도 선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검수의견에서 밝히면서 “이 연구성과는 과학적인 의의가 비교적 크고 비교적 훌륭한 응용발전전망을 갖고 있기에 그 지역의 빈곤해탈, 치부와 생태환경개선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 시험, 시범, 보급을 진일보 확대할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또 유엔사막화방지공약집행비서처는 “사막생물경제권육성기술”, “사막박막부착벼재배기술”을 국제사회에 널리 보급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당면 통료시적으로 사막에서의 벼재배면적은 5000무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986년 내몽골자치구 저리무맹에 초빙되여서부터 엄철수씨는 저리무맹(현 통료시)의 대부분 모래밭과 알칼리성밭을 전전하며 각종 연수(강습)반 400여기에 직접 강의를 나섰다. 엄철수연구원은 통료시 몽골족농목민들에게 있어서 “백과전서”와도 같았다.

농민들에게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다년간 루적한 벼재배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그림으로 보는 알칼리성땅에서의 벼재배(盐碱地看图种稻)”, “사막벼재배기술” 등 책자를 출판했으며 늘 휴대용 기술수첩을 갖고다니면서 농목민 수중에 발급한다고 한다.

“소수민족을 위한 소수민족의 봉사 무한한 영광”
소수민족으로서 모든 기술과 정력을 바쳐온 엄철수연구원에 대해 내몽골자치구와 몽골족인민들은 잊지 않았다.

1992년 엄철수씨는 저리무맹당위와 행정공서로부터 “민족단결진보선진개인”으로, 1995년에는 “생산실천가운데서 공헌한 상”을 받았으며 이듬해 재차 저리무맹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칭호를, 1997년에는 내몽골자치구 당위와 정부로부터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으로 평의되였으며 1998년에는 저리무맹당위와 행정공서로부터 “과기흥맹 특별상”을 받았다.

1996년 그의 주도하에 실시된 “사막에서의 벼재배 및 보급응용”대상은 국가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받아안았으며 이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빈곤부축판공실로부터 “진화(振华)과학기술빈곤부축상”을, 1997년에는 중국과학기술발전기금회로부터 “사막 산업발전 특출공헌상”을 받았다.

중앙텔레비죤 “동방시공”은 사막에서의 벼재배에 성공한 그의 사적을 보도했고 광명일보는 “물을 얼마 부어도 침수되는 사막에서 불가능하다던 벼재배가 엄철수씨에 의해 개변됐다”고 보도했으며 중국교육텔레비죤 “대자연속으로”프로그램도 그의 사적을 보도했다. 특히 자치구사막벼재배현장회의에서는 현장을 고찰온 당시 국무원 강춘운부총리의 긍정을 받기도 했다.

중국과학기술계의 대부의 한분인 전학삼도 1996년 당시 중국과학기술자협회 류속 서기처 서기와의 서신에서 엄철수연구원의 사막벼재배를 언급하면서 이는 사막산업(沙产业)의 커다란 희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치주정부도 그를 잊지 않았다. 1991년 자치주정부는 엄철수씨에게 “연변조선족자치주 특등로력모범”칭호를 수여했다.

엄철수씨가 퇴직한지도 어언 십여년, 하지만 그는 여전히 통료시 농목민들을 위한 농업기술보급을 위해 걱정하고있다. 2006년 그는 “사막에서의 감자고산재배기술”을 연구한데 이어 2007년 깐치카진(甘旗卡镇)에서 시범육종했는데 풍작을 따냈다.

“소수민족으로 소수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는데 스스로도 무한한 자긍심을 갖는다”는 엄철수연구원. 이제는 통료의 집도 처분하고 연길로 돌아온 그지만 해마다 내몽골로 달려가 사막지대의 농목민들을 위해 기술지도를 하고있다.

올해도 이달 중순이면 또다시 내몽골로 가게 된다는 엄철수연구원. 그의 여생은 여전히 사막에서 농목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벼꽃향기를 풍기는 사업에 바쳐가고있는것이다.

사막에서 피여난 벼꽃 그리고 그 향기는 몽골족과 조선족 인민의 따뜻한 정처럼 향긋한것이였다.


연변일보 전윤길기자

파일 [ 4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현재 북경에 거주하고있는 김선씨(1959년)는 조선족녀류화가이다. 3년전 친구의 소개로 연길의 한 커피숍에서 김선씨를 만나면서 그녀를 알게 됐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있는 김선씨는 13년전부터 해마다 한두번씩 연변에 와 생활을 체험하고 미술소재를 축적한다. “저는 2002년 음력설부터 련속 3년간...
  • 2015-03-06
  •         현재 북경에 거주하고있는 김선씨(1959년)는 조선족녀류화가이다. 3년전 친구의 소개로 연길의 한 커피숍에서 김선씨를 만나면서 그녀를 알게 됐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있는 김선씨는 13년전부터 해마다 한두번씩 연변에 와 생활을 체험하고 미술소재를 축적한다. “저는 2002년 ...
  • 2015-03-06
  • 딸깍딸깍 의족을 신은 강혜씨,장애인 재활을 돕는 일 하게 된 사연 강혜 1974년생 조선족 장애인 의족을 전문 생산하고 의족착용 장애자들의 재활을 돕는 장춘엔도라이트(恩德莱)재활기기회사 총경리 ... ... 이번 취재대상이다. 딸깍딸깍&nb...
  • 2015-03-04
  •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 길림성진흥총회 회장 신봉철을 만나본다 기자의 인터뷰를 받고있는 길림공상학원 신봉철서기 신봉철을 취재하면서 조선족사회에서 들은 가장 많은 평가가 《보기드문 조선족 재직간부》라는것이다. 그와 함께 사업했던 여러 단위와 부문의 여러 민족 동료들도 한결같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은 훌...
  • 2015-02-26
  • 브레이크 없는 휘황한 질주 “흑룡강신문”사 길림성특파원 겸 길림성 지사장 윤운걸선생   편집자주;윤운걸 기자는 일찍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변대학 부속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의사로 근무하다가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그의 말대로 하면 의사는 한사람의 병을 고치지만 언론인...
  • 2015-02-16
  • 항일연군의 살아있는 전설 이재덕 글/ 김 호 림   “오늘 동무들이 여기에 와서(온 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녀는 약간은 어눌한 우리말이지만 아주 똑똑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꼭지를 뗐다. 그녀는 일행이 갖고 간 우리말 잡지 “중국민족”의 글을 별로 망설이지 않고 쉽게 읽고 있었...
  • 2015-02-16
  • 중국우수창신기업가 및 중국민족산업련합회 부회장으로 당선   연변BO예술환경미디어유한회사 리사회 회장 리성남은 일전 북경에서 있은 중국민족산업발전포럼에서 중국민족산업련합회 부회장으로 당선되고 《중국우수창신기업가》의 영예를 받았다. 2월 4일 기자는 연변BO환경예술미디어회사 사무실에서 길림성 유일...
  • 2015-02-06
  • [서울=동북아신문]중국동포 아마추어 예술가 70여명으로 만들어진 예술단체가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제문화예술진흥회(이하 진흥회, 회장 최애순)다. 진흥회 회원들은 5~60대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열정은 그 누구에 못지않게 크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연습실에 나와서 노래면 노래, 무용이면...
  • 2015-02-05
  • 한국충북대 물리학과 최설매 씨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1300여명중 1등 40세 만학도… 전학기 만점 기록 “조선족학교 살리겠다”일념 도전 하루 15시간 연구실 붙박이 생활   낯선 한국 땅에서 ‘조선족 학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꿈을 일궈가고 있는 연변 동포가 있다. “고향...
  • 2015-02-04
  • 조선족 로큰롤(摇滚, 록이라고도 함, )가수 최건은 1986년 북경 로동자체육관에서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一无所有)》를 불러 전 중국을 뒤흔들었다.  2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 매일 신인가수들이 등장하고 매일 새 노래가 울려퍼지며 매일 새로운 진전이 있는 가운데 최건은 여전히 로큰롤의 대표가수로 시대와...
  • 2015-02-02
‹처음  이전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