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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하나에 삶의 의의를 두고싶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18일 09시20분    조회: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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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안영식


전국검찰계통
1등공을 수여받은 주인민검찰원 안영식씨
"모든 사람이 책임감 하나로 살 때면 삶의 의의가 있게 되는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검찰원 전임 고발신소처 처장인 안영식씨가 지난 12월 5일 취재를 받으면서 한 말이다.

전국검찰기관 제7회 선진집단, 선진개인 평의선발에서 최고인민검찰원으로부터 개인 1등공을 기입받아 표창받은 안영식씨, 그의 20여년의 검찰사업은 책임감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였다.

교원에서 검사로의 삶의 전환
안영식씨가 검찰사업을 하기전까지는 평범한 고중교원이였다. 1984년,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한 안영식씨를 검찰이라는 사업과 인연을 맺게 한데는 어찌보면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민족구역자치가 큰 역할을 발휘했다고 나름대로 판단할수 있었다. 당시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연변1중에서 조선어문 교원사업을 하던 그는 우연하게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검찰원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연변의 검찰계통에는 민족언어사용이 능란한 기소일군이 결핍했던것, 비록 조선족자치주로서 모든 분야에서의 민족언어사용이 권장되였지만 이런저런 원인으로 조선어로 구사하고 조선어를 사용하는 검찰일군이 부족하여 불편을 가져다주었다. 마침 자치주검찰기관은 민족언어사용 및 민족언어로 된 기소사업을 중시하던 때였던지라 안영식씨는 그러한 우세 하나로 검찰기관과 인연을 맺게 된것이였다.

"솔직히 우리 민족 언어로 기소한다는것은 기타 소수민족보다도 그 수준이 앞섰다고 할수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자기의 언어문자로 사법용어를 사용하기는 연변이 앞섰다고 하지만 우리 말로 된 기소장을 작성할 때면 규범화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검찰계통의 우리 민족 언어에 대한 중시, 이러한 분위기가 교원으로 일하던 그를 한순간에 검사라는 직업과 인연을 맺게 한것이였다.

어찌보면 우연한 직업의 변천이였지만 안영식씨로 말하면 모든것은 새로운 책임감의 시작이였다.

중국의 사법시스템은 공안, 검찰, 법원 세개 분야로 나뉘고있는데 그중 검찰계통은 공안과 법원을 이어주는 중요한 중간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의 정확한 사건파악은 전반 사건의 최종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일으키게 된다.

"사건 자체를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는데는 정확하고도 충분한 증거가 기본이다. 그러한 증거를 심사하여 확인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데는 그 어떠한 인맥관계나 인정사정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검사로서의 확고한 책임감이 중요하다." 이는 안영식씨가 검찰기관에서 20여년간 일해오면서 지켜온 좌우명이였고 인생철학이였다. 그렇다보니 안영식씨를 마뜩잖게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유무의식중 “건드”리거나 득죄(得罪)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한 검사로 되는것이 인생의 기본인 안영식씨로 말하면 그 어떤 인맥적인 노여움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기소 자체가 더더욱 중요하였다. "기소 자체가 인명과 관계되는 중요하고도 큰 대사인만큼 서뿔리 결정하기보다는 모든것을 신중하게 그리고 철저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게 검사로 일하면서 지키고 부동의 자세로 실천해온 확고한 철칙이였다.

평범한 교원에서 여러 사람의 인명을 좌우지할수 있는 검사로의 변화, 그 변화는 안영식씨의 인생으로 말하면 거대한 변화였지만 안영식씨는 자기 직책에 충실한 검사로, 공정과 공평을 바탕으로 하는 검사로서 그리고 인맥보다 사건 자체를 중시하는 참다운 검사로 서서히 변화를 해왔고 20여년 동안 변함없이 그 직책을 수행해왔다.

확고부동한 책임감— 검사의 기본직책
2010년 전국검찰계통 선진집단, 선진개인 표창활동중 1등공 기입—이는 안영식씨가 검찰계통에서 20여년간 일하면서 얻은 최고의 영예이다. 이에 앞서 안영식씨는 수두룩한 영예를 받았다.

주인민검찰원 3등공 5차, 길림성 우수공무원 7차, 길림성 검찰계통 3등공, 주급우수기소인 , "길림성 우수기소인", 주로력모범, 길림성 집법감독 선진개인, 길림성 "5호 검찰간부", 길림성 "인민만족 검찰관", ---이같은 영예를 받쳐준것은 검찰사업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 책임감을 안고 뛰여온 노력이였다.

1990년 검찰기관에 들어와 사업해서 20여년 동안 그는 기소처에서 사업하면서 도합 140여건의 큰 사건을 맡아 처리하였는데 잘못된 사건으로 처리된것이 한건도 없었다. 특히 그는 기소처에서 일하는 동안 력사적으로 남아내려온 난제사건 12건중 8건을 직접 도맡아 처리하고 4건의 사건해결에 참여함으로써 "책임감만 있으면 풀지 못할 매듭도 없다"는 인생철칙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그러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업무적수준으로 문제의 기본을 보아내지 못한 점도 있었고 다른 사람을 득죄하기 싫어 방치해둔 사건도 있었으며 법률적조건의 불완벽함으로 그리고 해결난도가 확실히 커 일시적으로 해결하기 힘들었던 사건도 있었다.” 확실히 사건마다 쉽게 처리할수 있는 사건이 아니였고 난제가 분명했다. 하지만 안영식씨는 모든 난관을 타개하면서 그 모든 사건들을 독자적으로 혹은 여럿이 함께 노력하여 해결하였다.

"착오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것을 방지해야 하지만 죄가 분명한 범죄자를 그냥 내버려두거나 법망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되며 색출해야 할 사건을 그냥 넘겨버려서는 안된다." 이는 안영식씨가 검찰사업에 몸담그면서 지켜온 인생철학이다.

"검사로서 공정하지 못하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수 없고 사심을 갖고 사건을 처리한다면 공정한 처리결과를 가져올수 없다. "

사심이라면 인맥, 친맥 등과 련관되여있지만 안영식씨는 인맥이나 친인척관계보다는 법의 공정성에 기준한 책임감을 중시해왔고 이를 지켜왔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안영식이 사건을 맡으면 사정을 봐달라고 할 여지조차 없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안영식씨의 이른바 "사정"은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정"보다 달랐다.

"어느 한 사람의 사정을 봐준다면 실제 피해를 본 피해자의 사정은 누가 봐줘야 하는가?",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데 실제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의 그 '사정'은 누가 봐주어야 하는가?" “억울하게 당하고있음이 분명한데 권력이나 어떠한 관계때문에 그냥 당해야 한다면 그러한 사람의 ‘사정’은 누가 봐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그는 맡은 사건마다 인맥,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정"보다 증거를 위주로, 기본으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소에 림해왔고 그를 토대로 "인정사정"없이 사건을 처리해왔다.

2001년, 안영식씨는 한차례 비법모금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하게 되였는데 다섯달 남짓한 심사가운데서 그는 모든 공휴일이나 명절을 제쳐놓고 사건처리에 몰두하면서 도합 415권의 서류철, 270여부의 서면증거자료, 2600여부의 증인증언을 심사, 실사하였는데 그 과정에 대량적인 철같은 증거들을 확보하여 사건을 법정기한내에 심사완료하였다. 100여명 방청자가 참가한 공개재판에서 두 피고의 공술번복에 그는 철같은 사실을 하나하나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마땅한 법적제재를 받게 하였다.

시간을 더 거슬러올라가 1996년 안영식씨는 당시 자치주를 들썽이게 하였던 한차례 강탈, 강간 사건을 취급하게 되였다. 당시 피고인 김모는 연길시에서 무려 28차에 달하는 강탈, 강간 사건을 저질렀고 심지어 하루밤에만 2~3건의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한 범죄혐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김모는 심사기간 심장병을 리유로 보석치료를 받고있었다.

이러한 사실에 실제 피해자들의 심정이 어떠할것임을 잘 알고있는 안영식씨는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히고싶었고 범죄자를 법적으로 징벌하고싶었다. 하여 그는 심장병전문가를 찾아 자문한 뒤 의문스러운 점을 지도부에 반영하고 직접 범죄혐의자에 대한 정확한 신체검사를 실시함으로써 근본 심장병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냄과 아울러 반달여 시간을 들여 단서를 찾고 증거를 확보하여 한 내부인원이 돈을 받고 위법처리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사건은 하나하나 기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두룩하였다.

안영식씨는 주인민검찰원 기소처에서 취급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중대한 사건인만큼 “사건을 정확히 심사하고 판단하고 실사하는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그러한 사건을 취급하면서 정확한 증거를 위해 하나하나의 사건을 사심이 없고 공정한 선에서 확실하게 심사하고 판단하고 때로는 공안기관에 증거수집을 재요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증거수집에 나서기도 한다”면서 “기소 자체가 인명과 관계되는큰 대사인만큼 모든것을 신중하게 처리할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12건의 사건도 그러했다. 어떤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였는데 그중의 어떤 사건은 죄가 있음에도 억울하다고 수년간 신소해온 사건이였다. 신소자 역시 한두해가 아닌 수년간 억울함을 호소한 사건이였지만 당시 법적인 구석,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방치되여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사건 역시 안영식씨 및 동사자들의 책임감으로 하나하나 해결되였던것이다.

안영식씨가 사건처리에서 확실한 증거, 철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데는 “증거가 명확해야 억울한 사건, 잘못된 사건이 나타나지 않게 할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책임감에서였다.

실제행동으로 보여준 “인민의 충복” 형상
사법대오의 렴결, 이는 만백성이 요망하는 사항이고 공직인원들이 “인민의 충실한 공복”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표준이라 할수 있다. 20여년간 검찰기관에서 일해오면서 안영식씨는 진정 렴결이 무엇인지, “인민의 충실한 공복”이 무엇인지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느해인가 안영식씨는 한건의 중대한 강탈, 살인 사건을 취급하게 되였는데 범죄혐의자의 가족은 지인을 통해 안영식씨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침 안영식씨는 단위로부터 새로 주택을 분여받았는데 “일을 잘 처리하면 대신 집을 장식해주겠다”는것이였다. 그러한 요구가 안영식씨로부터 단연 거절받게 되자 가족은 트럭에 량질목재를 가득 실어서는 안영식씨의 집부근에 하차해놓기도 하였다. 그때 안영식씨는 “사건이 어떻게 판결될지는 사실을 바탕으로 법률에 따르는것이지 나 한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것이 아니다”며 “그같은 행실은 법에 대한 우롱이고 자기에 대한 목욕”이라며 단연 거절했다.

또 한차례 중대한 사건처리에서 지난 세기 90년대 당시로서는 큰 액수라고 할수 있는 5000원을 거절한 사례, 지인이나 안영식씨의 동창, 친구를 통해 사정을 부탁하는 사례, 심지어 위협공갈사례도 수없이 겪었지만 항상 법률의 공정성을 위한 책임감을 안고 렴결한 검찰일군으로 20여년간 일해왔던것이다.

취재중에도 여러번 핸드폰벨이 울렸는데 그중에는 사정을 봐달라며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전화도 끼여있었다.

사실을 벗어난 범죄혐의자들의 “억울함”에는 가차없이 대응하면서도 실제 직면한 억울한 사건은 각고의 노력을 들여가면서 해결을 기하였다.

지난 2001년 5월 10일, 연변일보는 1면에 “정씨로인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사건은 1985년에 발생한 사건이였는데 당시 피고인의 부친은 처리결과에 불복하고 십여년간 신고를 거듭해왔다. 주와 시 관계 부문 련석회의에서도 처리결과에 문제가 존재함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였다. 나중에 자치주정법위원회에서는 신소사건을 주인민검찰원에 넘겨 재심사하도록 했다. 검찰원지도부의 위탁으로 사건을 맡은 안영식씨는 10여명 증인의 증언을 일일이 대조하고 해당 증인들을 다시 질문하는 등 반복되는 실사를 거쳐 사건의 공동점, 부동점과 의심점을 찾았으며 이를 해당 련석회의에서 반영하였다. 결과 10여년 끌어오던 신소사건은 원만한 해결을 가져오게 되였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게 되였다.

검찰일군으로 일하는 20여년간 그가 등록한 검거, 고발 사건은 572건에 달하고 접대한 검거, 신고인은 연인수 500여명에 달한다.

20여년간 집을 “려관”에 비유할 정도로 잦았던 출장, 교통 상황, 수단이 좋지 않아 여러명이 찦차 한대에 뒤엉켜 사건처리를 위해 뛰여다녀야 했던 때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좋아진 교통환경과 교통수단, 하지만 사건처리를 위한 노력만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 기소처,반탐오회뢰처,고발신소처 부처장, 처장직에서 물러나 새로 구성된 검찰위원회 전직위원으로 임직중인 안영식씨, 비록 이전처럼 사건처리수는 적지만 사건의 엄중성, 중대성은 더욱 많고 높아졌다.그러나 공정하고도 공평한 집법을 견지해나가는 그의 신념은 항상 열정으로 차넘친다.



연변일보 전윤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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