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태항산을 지켜선 불멸의 영웅 진광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22일 10시22분    조회:39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진광화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9)

 
한단시섭현석문진석문촌에 있는《항일전쟁순국렬사릉원》진광화초장지.

중화대지의 하북평원과 섬북고원을 이어주며 하북성과 산서성의 변계를 이루고있는 태항산은 험준한 산령과 기이한 산봉으로 의연히 웅위로운 기상을 떨치고있다 1942년 봄, 항일전쟁시기 팔로군과 조선의용대는 태항산에서 어깨겯고 피어린 항전을 벌려 일제의 포위토벌을 물리침으로써 《5월 혈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희생된 《조선혁명가 진광화동지》는 오늘도 태항산기슭 련화산자락에 하나의 묘비로 우뚝 솟아 태항산을 지키고있다.

중산대학 학생운동의 기수

진광화는1911년에 조선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평천리(平川里) 에서 태여났다. 그의 원명은 김창화(金昌華), 1931년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조국독립에 뜻을 두고 중국으로 건너왔다. 1933년에는 광주 국립중산대학 문학원 교육학부에 입학하였다.당시 중산대학에 있는 30여명 조선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는 조선학생들을 단합시키고 진보적인 중국학생들과 접촉하면서 적극적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 진광화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그는 조선인이였지만 덕망이 높고 뛰여난 조직력으로 중산대학 당지부서기로 활약하였다. 그 시절 그는 중산대학 12.9학생운동을 주도하였고 로신서거 기념대회에 참가하여 감동적인 연설로 일제침략하에 신음하고있는 조선인민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인민들을 항일에 궐기하도록 선동하였다.

진광화는 언제나 조리정연하게 이야기하였고 원견성 있고 투철하게 문제를 분석하면서 듣는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중산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평양출신 녀혁명가 리화림은 《광주봉기우물》가에서 진광화가 하던 얘기를 먼 훗날에도 잊지 않고있었다. 《누님, 우리 조선혁명가들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의 리익이 일치하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제가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공동의 원쑤라는것과 일제의 침략을 막지 않고서는 중국인민도 조선인민과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수 없음을 깨우쳐줘야 합니다. 일제는 이미 중국 동북3성을 삼켰고 또 중국 전체를, 나아가 아세아와 전세계를 제패하려 할것입니다. 중국인민은 꼭 반일항쟁의 거센 불길을 지필것이고 그때면 우리 조선혁명가들은 중국혁명가들과 어깨 겯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금의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배우고 모든 면에서 자기를 잘 단련해야지요.》

태항산항일근거지의 당지도자

1937년 7.7사변과 더불어 중국인민의 전면항일이 시작되였다. 진광화는 중국혁명의 중심인 연안으로 진출하였다. 그는 중앙당학교에서 학습하고 1939년에는 팔로군전방사령부 정치부에서 근무하였으며 그후 진기로예변구 당학교 교무과장, 조직과장 겸 총지서기로 사업하였다.

한단시진기로예렬사릉원에 이장된 진광화렬사묘.

1941년 1월 10일, 조선혁명가들은 화북 20만 조선인들을 단합시키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을 확대할 수요에 의해 산서성 좌권현동욕진상무촌에서 화북조선청년련합회를 결성하였다. 무정장군이 회장으로, 진광화가 부회장으로 당선되였지만 당시 무정장군이 연안에 있었으므로 구체사업은 진광화가 담당하였다.

화북조선청년련합회는 전반 조선민족해방전쟁을 발동하고 중국항일전쟁에 적극 참가하며 일제를 구축하고 조국광복대업을 완성할 내용의 강령과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련합회는 전국각지에 회원들을 파견하여 지회를 설립하였으며 여러 전구에서 무장선전을 벌리고있는 의용대의 북상을 조직하였다. .

그해 6월경 조선의용대주력이 태항산근거지에 집결하였다 147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의용대를 중심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편성하였으며 진광화는 의용대 정치위원으로, 조선청년간부학교 부교장으로 사업하면서 모든 동지들을 의용대의 두리에 철석같이 뭉치게 하였다.

당년 진광화와 함께 사업하였던 최채동지는 그를 추억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그의 얼굴은 퍽 수척해보였지만 태도는 언제나 온화하였다. 정기도는 눈에서는 하냥 부드러운 빛이 흘러넘쳤고 동지들을 뜨겁게 포옹해주었다... 우리는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 그때 진광화동지는 심한 페염으로 앓고있었다. 적들의 포위토벌이 시작되자 팔로군전선총지휘부에서는 그의 병세를 고려하여 그더러 운두저촌에 남아 백성들과 함께 산굴에 피신하여 휴양치료를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동지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겠다며 대오의 앞장에 섰다..... 포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놈들의 추격은 계속되였다...》

《5월 혈전》의 영웅적 조선의용대원들

1942년 5월 화북의 일본군주력 3만여명은 팔로군 태항산근거지에 대한 대규모 소탕을 전개하였다. 백퇀대전에서 참패를 본 일본군은 팔로군전선총지휘부를 일거에 소멸하려고 기세등등하게 포위토벌을 감행했던것이다.

24일, 팔로군사령부와 북방국, 당학교, 신화일보사, 조선의용대를 비롯한 기관일군 수천명이 마전(麻田)부근의 남애포(南艾鋪)에서 수만 일본 정규군의 포위에 들었다. 팔로군 부총사령 팽덕회와 부참모장 좌권은 분산돌파를 계획하고 지휘하였다. 정치부산하에 있던 조선의용대는 라서경주임의 지휘하에 포위돌파를 시도하였다.

산기슭으로부터 적들이 새까맣게 공격해 올라왔고 상공에서는 적기가 무차별 폭격을 들이댔다.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경위패는 서쪽고지를 점령하고 비무장대오가 이전하도록 엄호하고 조선의용대는 동쪽고지를 탈취하고 엄호》하며 하루종일 치렬한 전투를 벌렸다. 부근 십자령(十字嶺)에서 팔로군 부총참모장 좌권장군이 장렬히 희생되였다.

조선의용대는 비발치는 탄우속에서 비무장대원들이 안전하게 전이할 때까지 전투를 견지하였다. 27일 새벽 산속을 빠져나오던 의용대원들은 적들에게 발각되였다. 주요간부였던 진광화, 윤세주. 최채는 동지들을 산속에 숨겨두고 그들을 엄호하기 위해 각자 방향을 달리하며 적을 유인하여 뛰여나갔다. 산아래로 달리던 진광화는 천길 벼랑가에 몰렸다. 그는 적탄을 맞고도 계속 적을 유인하며 벼랑으로 내리뛰였다.

산허리로 달리던 윤세주도 적탄을 맞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끝내 희생되였다. 산우로 달리던 최채는 요행 동굴에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하였다. 전투가 끝난후 최채 등 대원들은 열손가락에 피를 흘리며 굳은 땅을 파 진광화와 윤세주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때 진광화는 31살, 윤세주는 41세였다.

 

5월 반소탕전이 끝난후 태항산군민들은 렬사들을 위해 성대한 장례를 치렀다. 수천명 군민들이 장례식에 참가하여 렬사들의 영령을 바래주었다. 조선의용대의 우수한 간부였던 진광화와 윤세주는 좌권장군묘소 부근에 안장되였다. 중공중앙 북방국과 팔로군 야전사령부 정치부에서는 조선의용군전사들의 사적을 각 근거지 학교 교과서와 팔로군 각 부대 전사독본에 수록하기로 결정했다.

 

1942년 8월, 팔로군 총부와 태항구당위에서는 결의문을 내여 진광화, 윤세주 등 조선의용대 영웅들을 따라배울것을 전 당, 전 군에 호소했다. 주덕총사령은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들의 생명은 영원할것이며 그들의 전투정신은 자유를 위해 항쟁하는 중국과 조선 인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라고 썼다.

팽덕회부총사령은 《중국과 조선 두 민족은 렬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속 어깨겯고 싸울것이며 일본제국주의를 전승하고 두 민족의 해방을 이룩할것》이라며 조선의용대에 경기관총 한정을 선물하였다. 기관총대에는 《공동한 리상을 위하여 우리는 영원히 함께 싸운다》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진기로예변구정부는 청장하기슭 태항산의 풍수가 가장 좋은 련화산자락에 《항일전쟁순국렬사릉원》을 만들어 좌권장군과 진광화, 윤세주 렬사의 유체를 모셨고 해방후 1950년 10월 한단시진기로예렬사릉원이 축조되자 좌권과 진광화, 윤세주의 묘소를 이장해갔다.

지금 《항일전쟁순국렬사릉원》은 혁명전통교양기지로 되고있다. 2004년 4월 이곳에 《조선의용군기념관》을 새로 축조하여 조선의용군의 영웅적 혁명정신과 애국주의, 국제주의 정신을 기리고있으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국내외 벗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


길림신문 김청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지난 2001년 10월 7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정판룡교수는20세기 중국 조선족이 낳은 가장 우수한 문화지성인중의 한사람이며 저명한 문학교수, 교육가이고 문학평론가, 산문작가이자 사회활동가였다.   정판룡 프로필:     1931년 10월 2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항교리에서 출생 1949년 연변대...
  • 2013-07-24
  • "결혼이주여성들은 늘 도움을 받고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주민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제 몫을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남편을 만나 정착한 중국 국적의 조선족 박경희(40) 씨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주민...
  • 2013-07-23
  • -개원시조선족중심소학교 남춘매교원의 교육리념 학생들을 지도하고있는 남춘매선생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더 잘해주었더라면 더 훌륭하게 자랐을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 못다한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주려 합니다.》 이는 료녕성 개원시조선족중심소학교 1학년 담임교원 남춘매선생...
  • 2013-07-23
  • 실험의기를 소개하고있는 료양시조선족학교 정옥향선생님 《우리 학교, 우리 학생을 위한 일이라면 누가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또한 한푼의 보수도 따지지 않고 선뜻 나서는 선생님이십니다.》료녕성 료양시조선족학교 정옥향선생님에 대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한족학교에서 조선족학교로 전근 1992년...
  • 2013-07-22
  • 로기순박사 고명한 의술과 고상한 의덕을 갖춘 의학가로 살아 생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의—로박사》로 불리우면서 존경을 받았고 세상뜬후에는 자신의 유체까지 연변의학원 병리표본실에 바쳐 의학연구에 헌신한 사람, 그가 바로 세계 조선족의 제1대 생화학자이며 중국조선족 의학교육의 선구자인 로기순박사이...
  • 2013-07-22
  • ㅇ2006년 3월 7일 길림신문사를 찾은 성인대 전임 부주임 리정문(중간사람). ㅇ2006년 3월 7일 장백산잡지사를 찾은 성인대 전임 부주임 리정문(중간사람). ㅇ길림신문 장춘이주 좌담회에 참가한 리정문부주임(왼쪽사람). 리정문 프로필 1940년 5월, 길림성 부여현에서 출생. 1961년 9월-1968년 2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학...
  • 2013-07-22
  • 정규창교수   일요일 발표예정 정규창교수는 유명한 진단학전문가이며 연변의학계 원로이며 룡정의과대학(후에 연변의학원으로 발전했음)의 주요창시자이다. 정규창은 1917년 10월 1일 조선 평안남도 숙천의 한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세살때 부모를 따라 오늘의 룡정시 세린하 수북촌에 와서 자리잡았다. 그가 ...
  • 2013-07-22
  •   —세계스포츠낚시연합 윤태근회장 일가견 (흑룡강신문=하얼빈) 진종호기자= 방대하고 무질서하며 무조직상태에 처한 세계 낚시계를 하나로 묶어 세계 5억 낚시 동호인들의 최대 축제인 낚시월드컵을 5회째 개최해온 세계스포츠낚시연합(WSFF) 윤태근 회장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통일된 조국에서 낚시...
  • 2013-07-19
  • ㅡ한국 하나은행 심양 서탑지행 태영화지점장 흑룡강성 밀산태생인 태영화(1969년 생)는 소학교 4학년때 부모따라 료녕으로 이주, 1991년 심양사범대학 국제무역전공학부를 마치고 심양 교통은행 국제부에 배치받아 업무골간으로 활약했다. 지난 2004년 외국계은행으로는 최초로 심양에 진출한 한국 하나은행의 지성규 초대...
  • 2013-07-19
  • 오태호선생오태호선생은 1928년 12월 24일, 길림성 연길현(현 룡정시)광개향 후동촌에서 출생했으며 1944년 룡정제2국고를 거쳐 1950년 10월에 연변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연변대학을 졸업한 후 오태호선생은 연변일보사의 기자로 취직하면서 1986년 4월 정년리직하기까지 장장 36년간 연변일보사, 연변인민...
  • 2013-07-1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