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우리 전통음식 김치 아직도 무한한 발전단계에…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23일 07시59분    조회:680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용철



연변금강산음식유한회사는 금강산김치로 잘 알려지고있다. 이 회사의  조용철리사장은 성공적인 기업을 키워낸 기업가로 평가받고있다.

4월 9일 연길시 의란진에 자리잡은 연변금강산음식회사(이하 "금강산"으로 략함)의 김치공장을 찾아 조용철리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세계 일류 김치공장으로 건설하려는 사업구상에 흠뻑 빠져있었다.

현대설비가 갖추어진 생산직장을 돌아보고 그의 사업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김치산업의 무한한 발전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있는 기업가라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연변금강산식품유한회사는 2003년 4월에 설립되여 현재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현대화적인 조선족품미식품생산기업으로 성장했다.  10여년간 국내 여러 김치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농업산업화 성급,주급 선두기업, 전통음식의 명가, 전국전통음식 지정생산기업 우수한 식품기업임을 립증해보였다. 11년간에  그는 보잘것없는 수공작업장을 년간생산량이 6000톤에 달하는 김치생산라인을 갖춘 규모형생산기업으로 일떠세웠으며 100여가지 조선족 전통음식제품을 생산하여 국내에  600개의 직영점, 가맹점과 전문점을 갖고있는 집단형 민영기업으로 키워냈다.

지난 세기 90년초 조용철은 격정을 갖고 사업에 뛰여들었다. 6년 동안의 로씨야장사로 사업자금을 만들었다. 1997년에 조용철은 이 자금으로 귀국하여 한때 복장장사도 벌려보고 음식업에도 뛰여들고 오락업에 종사해보았지만 보람없이 일을 마쳤다.   사업고비에서 조용철은 새로운 창업방향을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조선족김치가 환영을 받고있지만 생산자들이 작은 수공업사업장에 불과한것을 생각하고 산업화,규모화,표준생산을 형성하지 못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2003년에 그는 전부자금을 투입하여 연변금강산식품유한회사를 설립하고 5명으로 수공방식을 도입해 창업에 뛰여들었다. 그는 우리 전통김치에 대해 알면서 현대화한 김치생산에 빨리 접근하고싶었다. "선진설비는 공장의 장기적인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여 김치생산흐름선을 들여와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든든한 기반을 다져놓았다." 그의 진공포장기,자재교반기, 배추초조리 등 일련의 현대화설비는 년간생산량을 높여 다른 회사보다 크게 앞섰다.

금강산은 10월에 연변공업집중구에 들어간다. "설비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는것입니다. 발전을  위한 여건을 잘 갖춰나가야 합니다."새로운 꿈을 갖고있는 조용철은 2013년 4월에 남새 일처리량이 150톤 달하는 건설대상을 연변공업집중구에다 신축하기 시작했다. 부지면적이 3.14만평방메터이고 1기 투자액이 1.2억원에 달하는 이 대상이 건설되면 년간 4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되며 판매액 2억원을 내다볼수 있다.

금강산의 김치, 깍뚜기, 깨잎은 갈수록 인기를 얻고있다. 그는 중국의 김치생산에 잘 파악하고있다. 그의 노력으로 공장의 생산액이 꾸준히 늘고있다. 지난해 5000만원에 도달하여 2012년보다 생산액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올해 생산계획도 년초 계획보다 증가한셈이다. 그는 "우리 전통음식은 아직도 발굴단계에 있음으로 기준을 높게 정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 김준환 기자
연변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