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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세계화 꽃피운 연변 ‘코스모’ 김송월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7월21일 11시13분    조회: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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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송월



김송월 대표

구수한 연변사투리를 쓰며 왁자지껄 사무실을 찾은 세 여인. 언제 봐도 친근감이 넘치는 분들이다. 연변을 호령하는 여장부다운 모습이 물씬 풍긴다.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의 후예들을 만나는 것처럼 설렌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대규모 한식당과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김송월 대표이다. 김순옥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회장 등이 동행했다.

한식세계화의 대표적인 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두 사람은 동지이자 자매와 다름없어 보인다. 지난 5월 31일 상명대학교에서 개최한 한국외식경영학회 심포지엄에 참석해 ‘외식경영대상’을 수상하고, 한식당 성공사례 발표를 하고 왔다며 싱글벙글 이다. 인터뷰에 응한 김송월 대표는 동행한 김순옥 회장에게 공을 돌렸다.

백두산 기슭 첫 조선족 동네 여인에서 연변 한식당의 대모로

김송월(58세) 코스모 대표. 그녀의 공식명칭은 연길우의유한회사 이사장이다.
그녀는 1956년 백두산 기슭 첫 조선족 동네인 길림성 안도현 만보향 홍기촌에서 태어났다. 일제 때 만주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를 따라 두만강을 건넌 아버지는 그곳에 터를 잡으셨다. 시골에서 마냥 순박하고 예쁘게 자란 그녀였지만 연길시(延吉市)로 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는 시골출신으로서 연길시민이 되는 것은 대학가기보다도 더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연길로 나오게 된 계기는 그녀의 미모와 연관이 깊다. 당시 연변일대를 주름잡던 남편은 결혼을 위해 연변일대 조선족 여인 중 눈에 맞는 아가씨를 찾기 위해 시골 구석구석까지 누볐다고 한다. 그런 드라마 같은 남편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그녀를 요식업계로 이끌었다.
그녀의 사업 성공의 힘은 ‘가족’으로부터 나왔다고 했다. 당시 남편은 연길에서 운수관련 기업체에 근무하고 있었다.

“제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남편의 뒷바라지와 시댁식구들의 도움이 컸어요. 남편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뒤에서 항상 제가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김 대표는 남편과 사이에 1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쌍둥이 딸을 낳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문밖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강보에 쌓인 어린 아기가 있어 데리고 들어와 1주일간을 키웠다. 친어머니가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고아원으로 보내려 했으나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차마 손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가족회의 끝에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가족에 대해 김 대표는 하늘이 그녀 가족에게 보내준 보배로운 선물이라며 자랑이 대단했다.
큰 딸은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고, 작은 딸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어머니의 일을 거들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30여 년간 이 사업을 해오면서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어요. 우리 직원들은 저와 같이 30여년을 동거 동락해온 분들이 대부분이고,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 이들 직원들에게 식당을 하나씩 차려줄 생각입니다.”

김 대표와 같이 30년 이상 지내온 직원만 20명이상이고, 20년 이상 된 직원만 해도 50여명이나 된다. 이들은 김 대표에게 큰 자산이며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들이다. 정과 배려, 신뢰로 묶여진 ‘코스모공동체’가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변의 대표적인 한식 브랜드 ‘코스모’

김 대표가 내세운 회사 브랜드 ‘코스모(考世茂, cosmo)’는 포르투갈어로 ‘대우주’를 뜻한다. 30여 년 전 창업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꿈을 향한 행보를 보면 코스모란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이미 이 브랜드는 중국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연길에서 중화요리와 일반 한식 위주의 식당을 운영해오던 그녀가 전통한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5년 한국을 방문하면서부터다.

   
 

“2007년 한국에 와서 전통한식을 접하면서 ‘한식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전통요리에 문화와 상품가치를 넣어야 한다는 점을 배운 것이죠. 색감과 그릇,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거친 고춧가루를 쓰는 연변과 달리 부드럽고 가는 고춧가루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어떤 그릇에 음식을 담느냐에 따라 음식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한식의 가치와 그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연변전통요리와 한국 전통요리와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연변의 한식전통요리가 시골 옛 장(醬)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의 전통요리는 현대적 맛이 많이 가미된 것 같아요. 물론 세련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연변에 남아있는 연변전통요리 맛에 한국식 한식문화를 덧입힌다면 한국으로 역수출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김 대표는 연변에 한식문화를 전파하고 한식세계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식재료와 식기 등을 한국에서 수입해 전통적인 한식 가치의 창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연길우의유한회사 산하에 ‘우의식당’과 ‘연변코스모호텔’, ‘코스모식당’과 ‘코스모민속가든’그리고 ‘연길고려호텔한식관’ 등 총 5개의 한식관련 식당과 호텔, 민속관을 경영하고 있다. 직원만 370여 명에 이르고, 좌석은 약 3,000석으로 연매출은 100억 원에 이른다.

이곳을 찾는 고객의 80%이상이 중국인(한족)들이며, 중국 중앙정부에서 온 국가급 지도자들이나 정협(정치협상회) 주석 등 정부나 성급(吉林省級) 고위 지도자들이 즐겨 찾는 만큼 연길에서는 아주 대표적인 전통한식요리 전문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식의 표준화가 한식세계화의 지름길

김 대표는 1986년 단돈 2,000위안을 빌려 시어머니와 함께 ‘우의식당’을 개업했다. 요리법을 배우기까지 숱한 고생을 거듭하며 100여 석 규모의 식당으로 키워냈다. 초기 주 메뉴는 중국식 연회요리가 대부분이었으나, 조선족은 물론이고 한·중 수교이후 김치와 된장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자 한식의 비중을 점차 늘려갔다.

   
▲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 소수민족(조선족) 대표로 참가, 연변전통음식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조선족의 요리가 점차 한식으로 발전돼가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우의식당은 2011년 8월에 재건축해서 2,000석을 갖춘 대형식당으로 탈바꿈해서 1층은 한식당, 2층은 예식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한식업에 뛰어든 것은 2002년 무렵이에요. 1998년에 매입한 ‘코스모호텔’을 증축한 후 인테리어를 한국식으로 바꿔 한식, 중식, 일식 등 음식점과 호텔을 겸하여 지금의 ‘코스모식당’을 오픈하게된 것이죠. 한식당은 오픈했지만 식재료를 구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한국행 비자를 받기 어려웠기에 한국 식재료를 구하려면 중국 국내에서 수입시장으로 유명한 요녕성 심양시(沈陽市)까지 왕복 30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사왔어요.”

이렇게 시작된 ‘코스모식당’은 2005년 김 대표가 한민족여성대표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전환기를 맞이했다. 한국에서 접한 한식의 맛과 모양을 보고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2006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김순옥 회장의 도움으로 한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전통한식에 대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한국 방문 때마다 잊지 않고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최대로 꼽는 서점 ‘교보문고’라고 한다. 그녀는 교보문고에서 한식관련 요리책들을 전부다 구입하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다 읽거나 일일이 메모를 했다. 때론 김치박물관에서 필요한 책을 수집하기도 했다. 유명한 한식당에 있는 각종 메뉴판과 안내책자를 수집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를 통해 한국의 한식요리전문가를 초청해 교육을 받아가며 전통한식의 맛을 유지하면서 한식을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개발하는 데 지난 수년간 몰두해왔다.
이런 노력덕분인지 사업이 날로 번창해 2008년 5월, 100억 원을 들여 연길시 근교의 명산인 모아산 기슭에 연면적 6,300㎡인 지하1층 지상5층의 1,200석 좌석을 갖춘 한옥모양의 민속가든을 완공했다. 현재 지하는 주차장, 1층부터 4층까지는 한식당, 5층은 호텔로 운영해오고 있다.

   
▲ 연길시 근교 명산인 모아산 기슭에 자리잡은 '코스모민속가든' 전경과 내부 모습.

김 대표는 지난 30여 년간 음식업에 종사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종업원과 함께 주방에서 일했다. 주방장화를 벗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솔선수범하며 직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또 최고의 음식 맛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재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일 새벽 4시면 새벽시장에 나가 신선한 재료들을 구매해온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 음식재료 못지않게 김 대표가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전통음식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으로부터 ‘한식은 아무 재료나 쓰면 안 되고, 표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한식 재료의 표준화 작업을 시작해 하나씩 진행해가고 있어요. 또 한식을 담는 그릇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한식에 필요한 전통식기 등을 한국에서 직접 수입합니다.”

해마다 열리는 세계한상대회 때는 한꺼번에 1억 원이 넘는 식기와 식자재를 구입해가기도 한다. “도자기가 발달한 중국이긴 하지만 한식에는 한국산 그릇만 사용하고 있어요. 한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김 대표는 한국에서 들여간 식기와 식자재들도 판매하고 있다. “한식 그릇을 전시했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판매를 시작했어요. 이천 도자기를 비롯해 남원 목기, 한 벌에 30, 40만원 하는 거창-오브자 유기그릇,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까지 판매하는데 음식장사 못지않게 그릇장사도 재미있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한·중 수교이후 한식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긴 했으나, 한식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초창기에는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을 파는 정도여서 상품화된 한식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조선족의 발전은 한국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연변의 전통요리가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연변전통요리방식들을 살려 사용하고 있어요. 장류제조에서도 한국과 달리 만주지역의 좋은 콩을 원료로 약간 다른 방식으로 숙성시키기 때문에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새콤달콤한 물냉면이나 쌀로 빚은 만두나 소금을 넣지 않은 떡 등은 연변에만 있는 우리 민속 전통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한식의 표준화로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한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고 점차 그 지경이 넓어지고 있다며 자랑했다. ‘코스모민속가든’이 연변지역 최고 음식점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러한 연유이기도 하다. 한식의 맛과 문화, 가치가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 여인으로서 조선족전통요리와 제대로 된 한식문화를 펼쳐보겠다는 꿈이 실현되고 있는 현장이다.

한식 민속체험관 건립과 ‘류수촌’ 개업

‘코스모민속가든’이 현재 연변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한식당이기는 하나, 한옥모양을 약간 가미한 것 일뿐 한옥은 아니다. 김 대표는 건립당시 한옥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제대로 된 한옥을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한식 전문식당을 구현하기 위해 그녀는 지금 음식과 그릇, 그리고 전통한옥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문화가 담긴 고급 한식당을 준비하고 있다.

   
▲ 지난 5월 31일 상명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외식경영학회(회장 박대섭, 오른쪽)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송월 대표가 '외식경영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지금의 ‘코스모민속가든’ 옆에 3층짜리 한옥을 건축 중에 있다. 내년 5월 18일 개장을 목표로 한 이 건물 1층에는 민속식품가공공장, 2층에는 전통음식박물관, 3층에는 민속체험관과 전시관이 들어설 것이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연변지역 고급 한식전문식당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는 한편, 한식 세계화의 통로가 되길 꿈꾸고 있다.

“중국인(한족)의 한식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한식을 접하게 되었고, 백두산 관광코스의 일환으로 들르는 곳이 우리 ‘코스모민속가든’인데, 이곳에 와서 최고의 한식을 맛보고, 식기 등을 관람하며 한식을 새롭게 접하고 있는 것이죠. 내년 5월에 한옥 민속체험관까지 오픈하면 중국에서 최고의 한식문화 전문센터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고급화된 ‘코스모민속가든’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중국 고위층이나 공무원들이었다면, 이제는 일반 대중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 한식세계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한식세계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미숙함을 지적했다. 한식 재료를 한국에서 수입하려고 해도 높은 물류비 때문에 애로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중개무역상인들의 농간도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한식의 표준화와 관련해 김 대표는 한국정부의 역할, 특히 한식재단의 선도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한식재단에서 해야 할 일들을 현지인들이 표준화를 하려고 하니 경험도 지식도 부족하기에 쉽지가 않았다.

“중국에도 한식을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많고,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중국어로 된 한식조리사 표준 교재가 없어요. 그러니 한식 조리사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중국에서 한식 조리사를 채용하려고 해도 현재로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어요. 한식재단에서 한식 홍보 팸플릿이나 가이드북 같은 것만 만들지 말고 한식의 표준화작업과 외국어로 된 한식 조리사 관련 교재제작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쓴소리를 했다. 그녀는 또 “한식 조리사 자격 시험도 ‘한국어능력시험’ 보듯이 해외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정부가 한식세계화를 구호만 외치고 있지,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교민정책 전반에 걸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점사업이 바뀌는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한식전통요리 전문점 ‘류수촌’ 1호점을 개업했다. ‘류수촌’의 개업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연변에서 간직하고 있는 연변전통요리에다 한국에서 배운 한식문화를 접목해 한국으로 다시 들여와 선보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한식세계화의 시금석을 놓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류수촌’의 대표적인 음식인 ‘연변냉면’은 도토리가루와 메밀가루로 만든 면과 한우사골에 12가지 한약재를 넣어 우려 낸 육수로 만들어 그 맛이 일품이다. 냉면에 들어가는 양념 또한 연변식이어서 아주 독특하다.

   
▲ 2014년 4월,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에 오픈한 '류수촌' 개업 축하케익절단. (우측부터 김송월 대표, 공호진 대표, 김순옥 회장)

연변냉면의 인기는 이미 지난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서 검증받은 바 있다. 당시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는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소수민족 대표로 선발되어 냉면, 불고기덮밥, 백두산나물 등을 선보여 상해시 요리협회로부터 ‘엑스포봉사특별요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현재 ‘류수촌’의 성공적인 진출에 탄력을 받아 한국에서의 프랜차이즈화를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지난 30년간 요식업을 해오며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작은 가게로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함께해준 직원들과 소풍갔을 때가 제일 기쁩니다. 그동안 직원들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잊을 수가 없어요. 모든 직원들께 감사하고, 뒷바라지 해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할 뿐이죠.”

   
▲ 2013년 제9회 중국 연길 두만강지역 국제투자무역박람회에서 '코스모'가 준비한 대형 전주비빔밥.

‘코스모’ 브랜드 식당은 중국정부 검사반이 단 하나도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위생적이어서 다른 식당의 모범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연변지역 중국동포들의 식당 이미지가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한민족정체성을 잃지 않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려는 김송월 대표. 최고 품질의 식재료와 최고의 맛 그리고 정성과 신뢰를 통해 전통한식문화를 꽃피우는 그녀의 큰 꿈은 ‘코스모공동체’에서 영글어가고 있다.


세계한인신문  글 김도균 기자/사진 최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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