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경영신화] 1000원짜리 밥버거로 2000억을 번 자퇴"문제아"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11일 07시48분    조회:95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세린

봉구스밥버거 대표 오세린 씨는 한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한 ‘문제아’였지만 학생들의 입맛과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밥버거 하나로 전국에 903개 점포를 낸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0년 겨울.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대로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던 청년은 입김을 불어가며 꽁꽁 언 두 손을 연신 비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먹밥 장사에 나선 지 사흘째. 아직 개시도 못했다. 이틀 동안 목청을 높여가며 손님을 불렀더니 이제 호객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 오늘도 빈손으로 집에 가야 하나.” 청년이 한숨을 연방 내쉬던 그때, 길을 지나던 한 학생이 좌판 앞에 멈춰 섰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 안에 담긴 동그란 주먹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하나에 얼마예요?”

“1000원이야. 하나 줄까?”

소년이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는 순간 청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든 주먹밥을 팔게 되는구나.’ 청년은 가슴이 북받쳤다. 청년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한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먹밥을 받아들고는 달아나듯 대로를 달려갔다. 소년이 건넨 1000원짜리 한 장은 청년의 비상(飛上)을 가능케 한 작은 발판이었다.


○ 부모 기대와 어긋난 삶

청년은 장사와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학원강사인 어머니의 ‘똑똑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머리는 좋았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술, 담배를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패싸움을 벌이다 경찰서에 잡혀 가기도 했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로 성공하길 바랐지만 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공부가 하기 싫었고 장사나 하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좀 해보라고 권유하는 부모에게 “앞으로 난 장사할 건데 공부를 왜 하느냐”고 반항했다. 부모와의 갈등이 갈수록 커졌고 청년은 집 밖으로 나돌았다.

그는 집을 떠나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공부도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경남 거창고로 전학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우등생이던 친구가 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여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승낙해 주시더군요.”

당시 거창고는 기숙형 명문학교로 부상하고 있었다. 교복과 두발 규제, 학교 울타리가 없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끌린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학교를 옮겼지만 부모 감시를 받으면서도 안 하던 공부가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잘되진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을 잡고 학업에 열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졸업장이라도 받겠다던 생각은 점점 없어졌고 결국 그는 자퇴를 결정했다. 극구 말리던 부모와 선생님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학교를 떠난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출한 친구 3명과 함께 대구 서부터미널 근처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을 잡았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장사 밑천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중국집 배달원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 들고 집으로 돌아가 검정고시를 봤고 홍익대에 합격했다. 부모에게는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했지만 장사로 성공하려는 욕심이 더 컸다. 등록금으로 낸 돈을 부모 몰래 학교에서 환불받았다. 4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 고교 자퇴생의 비상(飛上)

그렇게 장사 밑천을 마련한 오세린 씨(29)는 대학이 아닌 중고교 앞을 떠돌며 떡볶이와 어묵을 팔았다. 서울, 경기, 대전, 대구, 전주 등 6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혼자 분식장사를 했다. 장사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돈이 모이는가 싶으면 금세 까먹는 날이 찾아왔다. 돈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4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는 미래가 불확실한 그의 곁을 떠났다. 장사 밑천이 10만 원쯤 남았을 무렵 오 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낼 곳이 없던 오 씨는 고향인 수원에서 주먹밥을 변형한 밥버거 장사를 하기로 했다. 수원 시내에서 학생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좌판을 깔았다. “수원 장안대로 주변에는 중·고등학교 세 곳이 몰려 있어요. 하루 지나다니는 학생만 4000명이나 됐죠. 당시 이 지역 학교 급식이 맛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학생들을 공략하면 장사가 되겠다 싶었죠.”

동네 형이나 오빠 같은 친근함이 그의 무기였다. 이름을 묻는 학생들에게 본명 대신 ‘봉구’라는 가명을 댔다.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란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은 그를 봉구 형, 봉구 오빠라고 불렀다. 봉구는 학생들의 고민 해결사였다. 때론 불량 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고민을 들어줬다. 임신한 여학생이 “수술할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여학생을 설득해 부모에게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게 했다.

봉구의 사업전략은 적중했다. 밥버거가 싸고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은 학교 급식대가 아닌 봉구의 좌판으로 몰려들었다. 입소문이 쫙 퍼지자 밥버거는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됐다. 인력사무소에서 파출부 6명을 고용해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밥버거를 만들었다. 하루 판매량이 1000개를 훌쩍 넘어섰다. 많을 때는 1700개까지 팔았다. 밤새 밥버거를 만드느라 잠을 거의 못 잤지만 힘이 펄펄 솟았다.

아예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밥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봉구는 인근 학교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이 됐다. 한 학교 측이 불법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구청과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1년 만에 학교 앞 장사를 접었지만 학생들로부터 문자메시지 1000여 개를 받았다. ‘봉구 형, 힘내요! 응원할게요.’


○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변신

학교 앞에서 쫓겨난 봉구는 2012년 3월 수원역 뒤편에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작은 가게를 차렸다. 가게 이름은 ‘봉구스(Bon Gousse) 밥버거’. 프랑스어로 ‘맛있는 한입거리’란 뜻이었다. 장소를 옮겨도 학생 손님들은 봉구의 밥버거를 찾아왔다. 하루 수입이 1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잘되자 주위에서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봉구는 그해 8월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순조로웠다. 월세 30만 원짜리 가게를 운영하던 봉구는 2호점을 낼 때 비싼 임차료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입지가 좋은 만큼 매출도 크게 늘었다. 7호점까지 직접 운영하거나 가까운 지인에게 운영을 맡겼던 봉구는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생기자 8호점부터 가맹점을 내줬다.

가맹점은 경기 안양, 안산시 등지로 확대됐고 광주, 부산까지 뻗어나갔다. 1호점을 세운 지 5개월 만인 같은 해 8월에 100호점을 돌파했다. 올해 9월 현재 전국에 903개 점포가 봉구스밥버거 간판을 달고 있다. 지난해 전체 가맹점이 올린 매출은 2000억 원이나 됐다.

중국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봉구스밥버거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에 올해 11월 입점할 예정이다. 봉구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신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 “너희들의 부자이웃이 될게”

힘든 일도 적지 않았다. 한 업체가 밥버거 제조 방식을 베껴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돈이 없을 때 쌓았던 우정도 잃었다. 오 씨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고 어릴 적 가장 친했던 동네 친구를 사업에 끌어들였다가 돈 문제로 갈라섰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건강도 잃었다. 올해 2월에는 간밤에 찾아온 뇌졸중 때문에 몸 오른쪽이 마비됐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이송된 오 씨는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잦은 음주와 과도한 흡연, 회사 경영에 대한 압박감이 갑작스러운 발병의 원인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오 씨는 4년 전 자신의 밥버거를 처음 사간 유모 씨(22)와의 인연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당시 봉구스밥버거 단골이던 학생 수십 명과 ‘번개 모임’을 갖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오봉구의 호소문’ 덕분이었다. 봉구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이 청년사업가로 성공한 그와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었다.

“봉구 형, 술 한잔 사주세요ㅋㅋ”

“물론이지. 날 기억하는 사람은 전부 모여라!”

어느덧 성인이 된 유 씨가 메시지를 보내자 봉구 형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번개’ 요청을 했다. 지금의 봉구스밥버거를 있게 한 단골 70여 명이 모이자 그는 좌판에서 밥버거를 처음 팔았던 그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돈을 많이 벌어 그런가…. 요즘 내가 변했다는 얘길 많이 들어. 하지만 난 아직 학교 앞에서 너희들과 장난치고 고민하며 밥버거를 팔던 봉구 모습 그대로야. 예전처럼 매일 보진 못하지만 항상 기억하고 있어. 너희들의 부자이웃이 될게.”

오 씨의 이름은 세상 세(世), 이웃 린((린,인)) 자를 쓴다. 세상의 이웃이 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오 씨는 봉구스밥버거의 법인명을 ‘부자이웃’으로 지었다.

동아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상지시신합작슈퍼마켓유한회사  천정희(44세)총경리는 류통령역에서 지역간 민족간 협력을 사업지침으로 삼고 선후로 3개 체인점을 오픈시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상지시신합작슈퍼마켓은 연변국제무역회사에서 620만원 투입하여 일떠세운 대흑룡강 첫 체인점이다. 올봄 그는  본부의 파견으...
  • 2007-07-04
  •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정말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지난달 29일 중국 톈진(天津) 난카이(南開)대에서 관리학(행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용선(64)씨는 2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졸업에 대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이씨는 이번에 난카이대...
  • 2007-07-03
  • 조선족기업이 국제시장에 진출 미국과 한국의 굴지의 대형슈퍼마켓 월마트, 이마트 등에 BABY, E.BASICS, AIR―WALK, EXR  등 유명브랜드를 직수출하는 청도성원(盛源)복장유한회사. 이마트에 판매하는 단일품목 제품의 70%가 중국의 조선족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진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청도성...
  • 2007-07-02
  • 매하구시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한 최영복(36세)은최초의 한국가발회사의 보통일군에서 오늘은 중국 가발업계에서 서로 쟁탈하는 발군의 가발디자이너로 성장하였다. 1992년 미술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생활이 너무 구차하여 대학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매하구시 영승촌의 최영복. 그의 재능을 몹시 아끼던 중학시절의 담...
  • 2007-07-02
  • 연길시실험중학교 조선어문 교원 류서연교원은 교육사업에 종사한 21년간 모든 정열을 학생들에게 몰부어왔다. 진지한 사랑으로 두번째 생명을 류서연교원은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교원사업에 종사할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학급담임사업에서 항상 어머니다운 사랑으로 학생제일, 사랑제일을 실천해왔다. 류서연교...
  • 2007-06-28
  • 연변작가협회시가창작위원회, 연변작가협회평론위원회, 연변작가협회아동문학창작위원회에서 공동 주최한 '정몽호 문학세미나'가 지난 6월 21일에 연길시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세운 정몽호선생의 평생을 기리는 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세미나 사회...
  • 2007-06-28
  • 24일 점수선이 발표된후 연변 주 리공과류 장원이 연변1중의 임려화학생임을 알고 인츰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흥분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연길시10중에서 초중을 다니며 수학써클에서 재능을 뽐내온 임려화는 연변1중에 입학할 때에도 수학특장생으로 추천받았다. 우수생들이 운집해...
  • 2007-06-27
  • 올해 674점의 높은 성적으로 연변주 문과장원을 차지한 허춘옥으로 하여 고향인 도문시 석현진은 흥분의 도가니로 끓고있다. 석현사람들은 《개천에서 룡 난다더니 우리 석현에 봉황이 날아올랐수다》하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느라 분주하다. 석현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1중에 입학하여서부터 줄곧 앞자리...
  • 2007-06-27
  • 흑룡강위성텔레비전방송국에서 주최한 '일명경인(一鸣惊人)'프로에  출연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몰아왔던 흑룡강민족직업학원의  손광익부원장(조선족)이 흑룡강민족직업학원의 조선어문학교육에 관련해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학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손:흑룡강민족직업학원의 전...
  • 2007-06-19
  • 《발은 들고 허리는 굽히고…》, 장춘남호공원 서쪽문에 들어서면 인라인 스케트를 배우는 20명가량 되는 꼬마들을 볼수 있다. 생기발랄한 꼬마들속에서 60여세 돼 보이는 한 로인이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표준동작을 배워주느라 여념이 없다. 취미로 스케트타기를 배워 선수가 되고 감독이 되여 나라를 위해 우수한 ...
  • 2007-06-1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