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의 성공은 남편의 사랑과 중국동포들 덕분”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23일 08시07분    조회:578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애란

지난 14일(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대강당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이 재한중국동포사회 발전에 기여한 4명의 중국동포 출신 단체장과 회사 대표들에게 공로상을 수여하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 청소년들이 함께 골든벨을 두고 경합을 버린 이날 행사에서 주관 단체인 중국조선족대모임(대표 허을진)이 특별히 마련한 시상식이었다.

이날 수상자 명단에는 (주)북경전화국 김애란 대표도 올랐다. 김 대표는 중국동포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로 현재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부근에서 6개의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16년 전 한국에 온 김 대표는 2001년 지금의 남편 차재봉 씨와 결혼해 8살과 10살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 차씨는 영등포구외국인자율방범대 회장과 (사)다문화축구총연합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다문화와 재한외국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던 남편 차씨는 중국동포였던 김 대표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다문화가정의 어려움을 직접 겪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권활동에 더욱 매진했다. 그러다 당시 사업을 겸하고 있던 남편 차씨에게 부도라는 불행이 찾아들었다.

생계가 막막해졌다. 김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김 대표는 식당과 회사 등을 옮겨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김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 홀서빙이나 잔심부름이 다였다. 당연히 임금은 박봉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의에 빠진 남편이 위축될까 봐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그렇게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오늘의 김 대표를 있게 한 인생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도움으로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휴대폰 대리점 ‘북경전화국’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월수익 200만 원의 목표를 세웠다. 그렇다고 돈만을 쫓지는 않았다. 김 대표는 돈보다는 친절과 정직을 우선했다. 그녀는 판매 마진이 높은 휴대폰보다는 대부분 중국동포인 손님들을 위해 기능이 편리하고 사용요금이 저렴한 기기를 추천했다. 결국, 그녀의 그러한 진심이 통했다. 이른바 대박이 난 것이다.

월수익이 500만 원. 목표치를 훌쩍 넘겼다.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친절하고 정직한 매장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수익은 날로 커졌다. 이후 김 대표는 ‘(주)북경전화국’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매장을 늘려갔다. 당연히 더 많은 수익이 발생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약 8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김 대표처럼 성공한 중국동포는 흔하지 않다. 김 대표가 중국동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다. 그런데 그녀가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데는 또 른 이유가 있었다.

사업이 번창하고 안정되자 김 대표가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성공하면 꼭 동포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었다. 그녀는 멀리 중국에 가족들 두고 집을 떠나온 동포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외로움을 그 누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들과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동포들의 안정적인 한국생활 정착을 위한 다양한 지원에 아낌없이 발 벗고 나섰다.

먼저 그녀는 남편이 몸담고 있는 봉사단체에 매월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또, 중국동포 노인들을 모시고 여러 차례 잔치를 베풀었다. ‘한·중 장기대회’를 열어 중국동포들에게 대한 인식개선에 노력했다. 이외에도 중국동포단체나 중국동포 대상 행사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며칠 전 대림동 식당에서 김애란 대표와 남편 차재봉 씨를 다시 만났다. 낯가림이 심한 김 대표의 표정이 시상식에서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밝아 보였다. 김 대표는 남편 차씨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전했다.

“여러 차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성공은 남편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나를 믿고 가게를 찾아준 중국동포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앞으로도 남편과 중국동포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과 믿음을 평생 돌려주며 살아갈 것이다.”

 

한국인권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학교 도서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는 조금숙선생님   《과학자가 되든 로동자가 되든 무슨 일을 하든지 착하고 열심히 하면 모든 곤난을 이겨낼수 있고 훤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는 심양시 소가툰구조선족중심소학교 4학년 3반 조금숙선생님의 교육리념이다. 그는《우리 학생세대들은 앞으로 리산가족이 ...
  • 2013-07-09
  •    할빈 국제무역복장성 패션 디자이너 영란씨   (흑룡강신문=하얼빈)김은희 기자=꿈은 환경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킬수 있는 원동력이다.   꿈은 또 한 사람의 성격, 직업, 운명까지도 개변시킬수 있다. 그가 소시적에 꿔온 '소박한 꿈'이 그를 오늘날의 할빈복장계를 주름잡는 '패션 디자이너'로...
  • 2013-07-09
  •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채택룡. 지난 2004년 6월 1일 연길공원에서 《채택룡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 제막식에서 중국조선족아동문학평론가 김만석선생은 《채택룡은 우리 아동문학에서 동요, 동시, 동화, 아동소설을 제일 처음 개척한 에누리없는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이며 자격이 당당한 중국조선족아...
  • 2013-07-08
  • 항일투사 조선족문학의 대부 불굴의 공산당원 태항산에 세워진 김학철항일문학비(2005년 8월, 뒤에 보이는 비석은 2012년 6월에 호가장보위전항일렬사기념비임) 김학철(1916-2001)은 조선민족의 해방사업과 중국혁명을 위해 영용하게 싸운 항일투사이고 중국조선족문학의 대산맥을 이룬 대표적인 작가이며 불의에 과감히 도...
  • 2013-07-08
  • 한국의 낚시술로 중국고기를 낚으며 돈농사와 자식농사를 함께 잘했다 고맙게도 정녕 내가 찾던 한국을 나들이 하는 조선족의 모델을 만난 것은 지난 6월 26일이다. 백운산(白雲山), 59세, 그는 하향지식청년(고졸생), 연변화룡탄광로동자, 해방군공정병(4년), 도문시운수공사, 도문시당위판공실, 도문시과학위원회 등 공, ...
  • 2013-07-04
  • 김병민교수. 지난 5월 14일, 신록을 재촉하는 잔잔한 이슬비가 아침부터 보슬거리고 있었다. 연변대학 낡은 캠퍼스에서 신축캠퍼스로 이어지는 길가에 함초롬히 젖은 연분홍 복사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다가갔더니 발치에 노란 개나리가 웃고 있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어른과 아이, 스승과 ...
  • 2013-07-04
  • 라치환선생 라치환선생은 중국조선족으로, 동양인으로 넘을수 없는 벽으로 느껴지던 속도스케이트 철막을 헤치고 새중국 창건이후 첫 세계우승을 따낸 스포츠 명장이다. 1941년 흑룡강성 해륜시 조가툰에서 태여난 라치환선생은 1956년 수화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속도스케이트에서의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서...
  • 2013-07-03
  • 흑룡강성 전임 정협부주석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민녀사의 이야기     2008년 6월, 항일련군 복장차림으로 항일련군 유적지를 찾은 리민녀사(자료사진). 리민 프로필 1924년 11월 5일 흑룡강성 탕원현 오동하촌에서 출생, 조선족 흑룡강성 전임 정협부주석,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해방전쟁시기인 1948년 8월 1일...
  • 2013-07-03
  • -57년간 민간문예 수집정리의 외길인생 걸어온 리룡득선생 1961년 8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였던 주덕해는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민간문예자료를 수집할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문화를 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한데서 이보다 더 절박한 표현이 또 있을가?! 개혁개방이후 홍수처럼 밀려...
  • 2013-07-03
  • ㅡ서풍현 강관화현장 인상기 프로필: 1963년 길림성 반석현 출생 1988년 심양사범대학 생물학부 졸업 1988년부터 철령시대외무역경제합작국 과원, 부과장, 과장, 부국장, 국장 2004년부터 철령시과학기술국 국장 2011년부터 철령시 청하구 구장 2012년 10월 현재 서풍현 현장, 성인대 대표.   지난세기 50€?0년대에는...
  • 2013-07-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