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 전자부품 공급업계의 선두주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27일 08시41분    조회:83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남화섭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 남화섭리사장

특별기획-감동조선족 걸출인물(20)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86)

남화섭(南华燮)프로필

1963년 내몽골 울란호트 출생

1983-1987 내몽골대학 계산기전업

1987-1990 내몽골자치구통계국 공무원

1990-1992 중국국제신탁투자회사 직원

1992-1996 심수시투자자문서비스유한회사 무역부 경리

1996-현재 심수시하루야(和路元)전자유한회사 리사장

1999-현재 북경하루야전자기술유한회사 리사장

1999-현재 상해하루야전자기술유한회사 리사장

2004-현재 심수하루야과학기술유한회사 리사장

2007-현재 길림화원부동산개발유한회사 리사장

2013-현재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운영리사회 비서장

광동성조선족기업계 대표단 일행으로 연변대학을 방문한 남화섭리사장(오른쪽 세번째) 

중국의 개혁개방 특히는 시장경제의 급격한 발전은 지난 30여년간 중국인들의 생활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고 부를 축적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동방의 유태민족》으로 불리는 우리 민족의 많은 사람들도 시장경제의 거대한 조류속에서 기회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발빠르게 국내 대도시, 연해지구와 해외로 대량 진출했으며 낯설고 물선 이국과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고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중에는 자신의 근면한 로동, 출중한 지혜와 대담한 용기로 억만재부를 창조한 기업가들이 속출했다.

심수하루야전자유한회사는 지난 1996년에 설립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20년의 발전과정을 거쳐 지금은 년간 매출액이 10억원을 상회하는 업계의 굴지회사로 성장했으며 심수 본사외에도 북경, 상해, 장춘, 청도 등지에 지사 또는 판매처를 갖고있는 국내 일류 고신기술기업으로 부상했다.

《국가기관에 있으면서 자신의 전도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이삼십년 일해도 기껏해야 국장급밖에 가지 못한다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공직을 팽개치고 심수행을 결정하게 됐다.》남화섭리사장은 처음 공무원직을 버리고 하해한 자신의 동기를 이렇게 피력했다.

내몽골 울란호트가 고향인 남화섭리사장은 고향에서 초, 고중을 마친후 1983년 내몽골대학 전자학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으며 대학교 졸업후 많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공직인 내몽골통계국에 배치받았다. 80년대말 90년대초는 우리 나라의 도시화가 비약적인 발전단계에 진입하던 시기라 물가지수, 주민평균수입지수 등을 비롯해 많은 통계수자들이 필요했다. 따라서 전공이 컴퓨터인 남화섭은 통계국에서 보배덩이로 받들렸다. 하지만 성격이 진취적인 남화섭은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기관생활이 어쩐지 따분하게 느껴졌으며 젊었을때 한번 바깥세상을 편력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싶었다.

광동성조선족기업계 대표단 성워들과 함께 연변대학을 돌아보는 남화섭리사장(가운데 사람)

그러던차 그한테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1989년에 중국 중신그룹 심수지사에서 인재를 공개초빙한다는것이였다. 이 소식을 접한 남화섭은 주저없이 초빙에 응했는데 합격했다. 그리하여 단위에 사직서를 내고 혈혈단신으로 남방행 렬차에 올랐다.

심수의 중신그룹에 근무하는 몇 년간 그는 투자항목부서에서 국외 투자회사들에 서비스와 시장조사를 제공하는 컨설팅분야를 맡았다. 우리 나라 개혁개방의 전초기지일뿐만아니라 전자산업이 국내 여느 곳보다 앞선 심수에서 전자부품시장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아낸 그는 1995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서기에 나섰으며 1년 남짓한 기간의 준비 끝에 1996년에 한방전자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전자부품무역회사가 적지 않았으며 경쟁도 만만치 않았다. 청화동방, 청화동원 등 회사들은 인재, 규모와 실력 면에서 다른 회사들을 훨씬 릉가했다. 회사 설립초기 그의 회사는 그 자신과 회계, 출납을 포함하여 통 털어서 3명에 불과했으니 모든 여건이 상기 회사들에 아예 비할바가 못되였다.

시장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그는 사장 겸 판촉원으로 열심히 뛰여다녔다. 오늘은 상해, 래일은 북경 하는 식으로 국내 여러 도시들을 제집 나들듯 했다. 외지에 나가있는 시간이 심수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그 당시 많은 전자부품무역회사들은 돈이 되는것이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경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방전자는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초창기부터 전문성을 강조했다. 회사는 초창기부터 전지표시기 부품 판매에 주력했으며 국내 랭장고회사, 에어콘회사, VCD회사와 유관 연구기관을 집중 공략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유관 회사들중 제일 처음으로 《전자제품시계》, 《전자기술응용》 등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고있는 전문지에 광고를 내고 회사를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회사 설립후 2년만에 시장판로를 개척하고 년간판매액을 6, 7백만원에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투입이 많고 리윤률이 낮다보니 180만원의 적자를 보았다.》

회사는 난관에 부딪쳤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견지해내갔으며 회사의 진로를 적극 모색해나갔다. 회사관리, 고객서비스 등 여러 면에서 애쓴 보람으로 회사는 업계 지명도가 날로 높아졌으며 판매실적도 업계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되자 일본 샤프전기, 산요전기. 한국 삼성전자 등 국외의 유명한 전자회사들에서 주동적으로 제품판매를 의뢰해왔다. 한방전자는 특히 1998년에 삼성전자회사와 합작관계를 맺고 삼성전자제품의 화동지구 독점대리판매권을 따냄으로써 비약발전단계에 들어섰다. 1998년에 회사의 제품판매액이 2000만원을 초과했고 1999년에는 8000만원에 달했으며 2000년에는 1억원을 돌파했다.

연변대학 공학원에서 강연을 마치고 대학생들과 함께.

회사의 발전수요에 따라 남화섭리사장은 1999년에 회사명칭을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로 바꾸었으며 회사 업무도 전자표시기 부품판매로부터 반도체 판매령역에로 확장했다.

그후 2002년부터 핸드폰표시기 부품 분야로 진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에 따라 회사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으며 2005년에는 판매액 10억원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심수시 도심의 노란자위에 1300평방메터에 달하는 본사 사옥도 갖추었다.

현재 련상, 남방고과, 과건 등 국내 굴지의 핸프폰 생산기업들에서는 모두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로부터 핸드폰 부품을 공급받고있다.

사업에서 성공한 남화섭리사장은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에도 적극 참가하고있다.

남화섭리사장은 1990년 처음 심수에 왔을때부터 친분을 쌓아온 최용균회장 등과 함께 2006년에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현임회장 리철호)를 발족해 다년간 부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해오고있으며 항상 미래지향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련합회 발전을 공동모색해나가고있다.

그는 현재 광동성조선족기업가협회 부회장외에도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운영리사회 비서장, 중국조선족음악가협회 리사, 중국조선족과학자협회 리사, 《중국민족》잡지 특별고문 등 많은 사회직무를 맡고있는 남화섭리사장은 협회 행사나 모임에 해마다 수십만원의 거금을 헌납하고있다. 조선족의 문화가 계승되고 발전하려면 문화사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그는 책임감과 사명감 있는 기업인답게 조선족 발전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있는것이다.

현재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는 년간매출액이 10여억원에 달하고 직원이 140여명에 달하는 업계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 2008년에는 전국10대전자제품공급업체로 평의됐으며 심수시고신기술우수기업으로 당선되는 영예를 받았다.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는 10여년간의 발전을 통해 현재 경영범위가 핸드폰, 디지털카메라, MP3과 MP4 부품, 액정텔레비죤 및 모니터 부품, 위성접수기부품 등에로 확대되였으며 국내 VFD표시기 부품의 50% 시장점유률을 차지하고있는 한편 국내 2000여개 통신회사, 과학연구단위 및 설계회사와 장기간의 업무련계를 맺고있다. 이밖에도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는 다년간 연구개발에 많은 정력을 몰붓고있는바 현재 전문 연구개발인원이 근 40명에 달하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연구설계능력이 업계의 선두위치를 차지하고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다원화발전의 일환으로 의료기기부품 분야에 진출했으며 5000만원의 년간판매 목표를 세워놓았다. 현제 사회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건강욕구가 날로 높아지고있으며 유관 의료기기 부품은 수요가 꾸준히 증가될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감안하여 심수시하루야전자유한회사에서는 의료기기 부품 5개년 계획을 제정하고 2015년부터 1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목표를 제정하고있으며 회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있다.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초대회장이며 중앙민족대학 교수인 황유복에 따르면 사학회 설립초기 사학회의 운영비용을 지원해줄 우수한 조선족기업가들을 물색하던중 지인과 함께 찾아온 남화섭리사장은 황유복교수와의 단 한번의 접촉끝에 조선족기업가들을 동원하는데 나서겠다고 응했다.

《그후 남화섭리사장은 북경동화원의료섭비유한회사 리사장인 남룡 등 조선족기업가들을 나에게 추천했고 남룡을 리사장으로, 남화섭을 비서장으로 하고 10여명의 우수한 조선족기업가들로 구성된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운영리사회가 설립되였다》면서 황유복교수는 《남화섭리사장은 사학회의 설립에 큰 공헌을 한 〈원로〉중의 〈원로〉이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기자 《중국민족》잡지사 리호남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합뉴스2006.01.08 07:00:20]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 미국 시카고 근교의 브레들리 대학에서 35년 간 교수로 봉직하고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재미 원로학자 황인관(76) 박사. 재미동포 인터넷신문 `민족통신'은 8일 반세기 넘게 한반도의 평화통일안으로 영세중립론을 주장해왔던 황 박...
  • 2006-01-08
  • 황유복교수를 찾아간것은 지난 12월 9일 오전, 오후에 곧 있게 될 그의 수필집 《사랑의 사회학》 출간식과 이튿날 있게 될 《제10회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 준비로 너무나 다망한 때였다. 이를 헤아려 일정이 끝나기를 기다릴가고 생각하다가 행여나 하고 인터뷰를 청탁드린것이 선뜻 승낙을 받을줄이야! 반가움...
  • 2006-01-08
  • 신형근 주칭다오(靑島)총영사의 부인 김금룡(52)씨가 `2005 감동 칭다오 10대 인물' 후보에 올랐다. 6일 총영사관에 따르면 '칭다오 10대 인물'은 23명의 후보 중 전화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투표와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오는 18일 오후 칭다오 방송 QTV-1을 통해 발표된다. 신형근 총영사는 이날 "아내가 자원봉...
  • 2006-01-07
  • “바둑에는 휴전선이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나 국외에서나 갈라진 남과 북의 마음을 바둑으로 이으려는 노력하는 재일동포가 있다. 구쾌만(81) 재일본조선인바둑협회 회장은 바둑을 통해 남과 북의 교류, 민단과 총련으로 나뉜 재일동포 사회의 화합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기원이 주는 문화공로상을 받기 위해 5일...
  • 2006-01-06
  • [원제: 이쑤시개 먹을수도 있나?]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있으나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는 일개 미물인 이쑤시개로 국가발명특허까지 낸 민영기업가가 있다. 연변록환실업유한회사의 오흥록경리(43살)는 3년간의 연구를 거쳐 100% 전분으로 된 일회용이쑤시개를 개발, 2004년 3월 국가급발명특허를 얻어냈다....
  • 2006-01-05
  • 신춘문예 당선 60세 작가 박찬순씨 한국에 온 조선족 청녕의 비극을 다뤄 예순… 잔치는 시작됐다 - 本社신춘문예 소설부문 최고령 당선 박찬순씨 "요즘 누가 나이 60에 환갑잔치 하나요… 젊은 작가엔 감각, 나에겐 경험이 있어" “젊은 작가를 기대했을 텐데 죄송해서 어쩌나….”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부문...
  • 2006-01-04
  • [연합뉴스 2006.01.03 07:00:21] 왕길환 기자 전화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는 중국판 `사랑의 리퀘스트'로 불리는 연변TV의 `사랑으로 가는 길'에 4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성금을 낸 조선족 청년이 있어 화제다. 고춧가루 배달 동포 강철수씨 매달 60위안(7천500원)씩 4년 동안 `강씨 형제(小康兄弟)'란 이름으로 이...
  • 2006-01-03
  • [연합뉴스 2006.01.02 07:00:00]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거주하는 동포 김영군(미국명 와이 케이 김) 사범이 이민생활을 담은 영문 자서전 `성공의 선택'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민족뉴스부 기사참조/문화/ 2006.1.2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거주하는 동포 김영...
  • 2006-01-03
  • [연합뉴스 2006.01.02 06:30:08 왕길환 기자 = 2년 연속 골든 글로브 최우수 TV드라마상 후보작에 오른 `로스트'(Lost)에는 출연배우 김윤진과 대니얼 대 김 외에도 한류를 이끈 한인이 한 명 더 있다. 지난 6월 두번째 시즌을 맞아 합류한 작가 김수진 (미국명 크리스티나 김.여)씨가 그 주인공. 그는 조지타운대 영문학과...
  • 2006-01-03
  • [중앙일보 2005.12.31 06:08:26] 재일동포 인권운동의 구심점으로 활동해 온 김경득 변호사가 12월 28일 밤 일본 도쿄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56세.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고인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30일 조촐히 치뤄졌...
  • 2006-01-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