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계봉, 전통악기를 만드는 장인(匠人)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3일 09시56분    조회:50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계봉


가야금, 거문고, 해금, 장구, 아쟁, 퉁소…… 숱한 조선족 전통악기들이 장인(匠人)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장인은 올해 79세로 60여년간 악기제조에 전념해왔다. 단순한 목재가 절묘한 소리를 낼수 있는 악기로 변신하는데는 마음속에 가락이 있고 손에 음색이 잡히며 공구마다 정을 불어넣는것이 비법이라 장인은 소개한다. 우리의 전통악기를 만드는 인간문화재 김계봉 선생은 평생 악기와 벗하며 살아왔다.

지난 8월, 연길시 시내에 위치한 평범한 주민 아빠트에서 김계봉 선생을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터운 책들이 줄지어 놓여있는 책장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전통악기제조에 관한 질문을 던졌지만 김계봉 선생은 책장을 한참 뒤적이더니 각종 약초를 모아놓은 사전을 꺼내놓으며 한의사 집안 출신이라는 가족사로부터 이야기를 술술 풀어 나아갔다.
 
한의사 집안에서 자란 악기신동

1937년 연길의 이도하동이라는 마을에서 태여난 김계봉 선생은 대대로 한의사를 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그가 어릴 적에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자그마한 진료소를 운영하였는데 마을사람들은 크고 작은 질환이 생기면 무조건 진료소로 모여들었다. 그 시절 환자들로 북적이던 광경을 김계봉 선생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동네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에서부터 한 마을에서 살다가 같이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의 아버지도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한의사 가문의 맥을 이어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한의학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남다른 흥취를 가진 분인데 목수일을 제법 잘하여 악기를 무척 잘 만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악기들도 모두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세대로 물려받은 의사 직업을 거역할수 없어서 음악의 길로 더 나아가지 않았고 병을 고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김계봉 선생도 어릴적부터 악기제조에 무척 관심을 가졌지만 가문의 맥을 이어나아가야 한다는 전통사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의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번은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약초공부를 시켰다. 아버지가 약초를 가리키면서 “이것은 오갈피……”라고 하자 그는 필기장에 음악기호 “파”를 써넣었고, “저것은 백지(白芷)……”라고 했더니 그는 또 음악기호 “씨”를 적었다. “본업”에 몰두하지 않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화를 내려했다가 결국은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인지라 악기제조에 대한 아들의 열정을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그후 김계봉 선생은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갈 때마다 약초를 캐는 대신 목재를 고르는데 눈독을 들였다. 장백산 야생원시림에서 자란 천연목재들은 악기를 만드는 좋은 재료들이였다. 김계봉 선생은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자란 나무로 어떤 악기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지를 한눈에 감별할수 있게 되였다.

15살이 되던 해, 그는 드디어 해금을 만들어냈다. 비록 악기상점에서 판매하는 진정한 해금과 비교할 때 음색도 차하고 겉모양도 보잘것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만든 해금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부터 김계봉 선생은 악기제조에 더욱더 전념하였고 여러가지 악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전통악기를 되살리는데 몰두하다

15살 때부터 김계봉 선생은 마을에서 이미 악기제조의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후, 연길현에 위치한 고중에 입학하러 가던 날, 아버지는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소가죽으로 만든 소고였다. 아버지는 그더러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라고 고무 격려하였다. 지금도 김계봉 선생은 그때 당시 아버지가 준 소고를 가보마냥 소중히 여기고 소장하고 있다. 한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가 태도를 바꾸어 아들을 지지해 나선것은 김계봉 선생에게 커다란 신념을 심어주었다.

김계봉 선생은1958년에 연길시민족악기공장에 들어가서 오늘날까지 줄곧 조선족 악기를 만들고 연구하는데 몰두하여왔다. 연길시민족악기공장은 당시 설립된지 5년밖에 안되고 직원이 3명밖에 안되였으며 조선족 악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록 민족악기공장이라고 이름을 달았지만 사실상 일본이나 서양에서 건너온 현대식 악기를 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진정한 민족악기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조선족 전통악기제조 기예를 가르치고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세밀한 연구와 끊임없는 실천끝에 이미 실전된 조선족 전통악기들이 다시 만들어졌고 일부분은 전통을 기초로 새롭게 개량되기도 하였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고 오동나무로 만든 울림통과 명주실로 된 12개의 현을 갖고 있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괘는 기러기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족(雁足)이라 부른다. 김계봉 선생은 가야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12개의 현으로 일부 민요를 연주할 때 고음을 정확하게 낼수 없다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원인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과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경험을 전수받았다. 결국 그는 첫번째 현과 열두번째 현의 안족이 겉에 위치하여 “파”와 “씨” 소리를 내는데 제한을 받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문제의 해결책으로 현의 수량을 늘이는것 밖에 없었다. 따라서 김계봉 선생은 전문가들의 건의에 따라 21개 또는 25개의 현을 갖춘 가야금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대부분의 조선족 민요들이 가야금의 독특한 반주소리에 배합하여 부를수 있게 되였다.
 
전통기예를 수호하고 전승해나가자

60여년간 민족악기제조의 일터에서 꾸준히 노력한 끝에 김계봉 선생은 이미 80여종의 조선족 전통악기를 제조하는 기예를 장악하였다. 또한 연길시민족악기공장은 조선족 악기생산의 중요한 기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김계봉 선생은 민족악기제조의 기예를 계승 발전하는데 대해서 늘 마음속에 우려를 갖고 있다. 그는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민족악기를 다룰줄 아는 인재와 악기제조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양성하는것이라 강조했다. 왜냐하면 현재 만들어낼수 있는 악기는 80여종이지만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악기는 30여종으로서 많은 악기들이 다룰줄 아는 사람이 없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악기제조의 기예를 전수받는데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경제적 효과를 단시간에 창출할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꽁무니를 빼는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김계봉 선생은 우리의 민족유산을 보호하고 발양하는데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퇴직후에도 그는 매일과 같이 공장에 나와서 직접 악기제조를 지도하였고 전문적인 일군들을 배양하는 동시에 기예를 문자로 정리하는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그는 수십년간 쌓아온 실천경험에 근거하여 조선족 악기제조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문자로 기록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언젠가는 책으로 묶어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9년 국가급 인간문화재로 선정된 김계봉 선생은 조선족 전통악기의 유구한 력사와 독특한 지위를 강조하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승하고 발양하는데 뛰여들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제기하였다.▣

<중국민족>2016년 1호/글 김향덕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조선어방송넷 2010-12-22 글 : 김학송 (전 연변극단 서기 겸 업무단장, 현재 연변가문단 창작실, 편극, 문학편집, 서류당안실 주임, 행정당지부서기)] 리영근(1930.12-2010.9)웃음의 빈 자리  —고 중국 조선족 문화거장 표연예술가 리영근선생을 추모하여  지난 2010년 9월 2일 웃음의 왕별 고 리영근...
  • 2010-12-29
  • 전국 발로 뛰며 정보 수집해 내년 2월 출간 예정(서울=연합뉴스2010-12-28 ) 구정모 기자 = 국내에서 중국동포들이 운영하는 상가의 연락처를 한데 담은 주소록이 최초로 발간된다. 중국동포들을 위한 신문인 한중법률신문의 김용선(34) 편집국장이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팔아 공을 들인 결과다.국내에 머무는 중국동포가 40만...
  • 2010-12-28
  • 《조선족의 독서무심에 그만 실망했습니다!》《독서삼매》 최고령수상자 송해숙인터뷰 [길림신문 2010-12-28 오기활 기자]도문에 《독서삼매(讀書三昧)》하는 70대 녀성이 있다. 독서삼매란 《책읽기에 골몰한다》는 뜻이다. 중국조선족 대문호 김학철선생은 《사람이 늙어가면서 쓰고 버린 건전지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려...
  • 2010-12-28
  • 고향건설을 사명으로 여기고[연변일보 2010-12-28 조창호 기자] —연변형봉시정공정유한회사 총경리 조동주씨 고향의 유기입 연변형봉시정공정유한회사 총경리 조동주(42세)는 고향에서 창업하여 고향마을의 유기입쌀산업과 관광산업의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있다.조동주는 화룡시 숭선진 태생이다.  1986년에...
  • 2010-12-28
  • 만성 C형간염과 2형 당뇨 관계 연구에 전력 (흑룡강신문=하얼빈2010-12-23) 허문호 기자= 길림성 훈춘시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사업하는 리종섭(44세) 주임은 만성 C형간염과 2형 당뇨간 관계, 신경내분비와 면역학 등 연구에 두각을 내밀고 있다.   리종섭 박사는 1989년 길림성 장춘베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변의...
  • 2010-12-24
  •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부부 공동의 가사.양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국가개입을 통한 교육비 부담이 대폭 줄어들면 저출산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하는 중국 옌볜 출신의 김범송(44.金范松)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흑룡강신문 논설위원으로 재직중인 김 교수는 이달 초 연구서인 '동아시...
  • 2010-12-21
  • 미술학원의 비전을 그리며[연변일보 2010-12-16 리련화 기자] -—연변대학 미술학원 리승룡원장을 찾아  미술학부 설립 60돐 행사 기획 그리고 연변대학 미술학부 창시자이자 저명한 화가인 석희만선생 서거 10주기 기념 행사를 준비중인 미술학원이 여느때보다 분망하리란것은 자명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빽빽...
  • 2010-12-17
  • [연변일보 2010-12-14]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저명한 조선족 고고학자 김창주—김창주교수 "고고학은 상상력의 학문 재미있는 보물찾기 사람들은 고고학을 페쇄적이고 딱딱한 학문이라 생각하고있지만 평생을 이 학문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200만년전 인류생존의 흔적을 발견하고 ...
  • 2010-12-15
  • 시인이며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상무부주석인 리성비의 이야기20대시절부터 시를 써서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하고 꼬박 10년간 연변작가협회 시창작위원회 주임직을 력임한적 있는 리성비씨  1990년대에만도 선후로 5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전도유망한 청춘파시인중의 한사람으로 자랑을 떨쳐가던 그는 최근년에 와서 길림성민...
  • 2010-12-14
  • 비엔나 황금홀에서    음악문화에 대한 심층리해가 뛰여난 예술인재 만든다  '동북 호른의 왕' 김룡백 수석 호른연주원 (흑룡강신문=하얼빈2010-12-10 채복숙 기자) 중국 문예계에서 ‘동북 호른(圆号)의 왕’으로 통하는 조선족 연주자가 있다. 흑룡강성가무극원의 수석 호른연주원...
  • 2010-12-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