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주먹’ 사나이 박차룡의 멋진 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29일 10시59분    조회:409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차룡
박차룡의 어릴적 소원은‘취득'이 였지만 지금은‘놓기', 즉 후대의 육성사업에 전념한다는 것.
 

타고난 씨름군, ‘천하장사’

운명이랄가 박차룡(1958년 생)은 태여날 때 부터 씨름 장사의 천부적 기질을 가지고 태여난것 같다. 태여나자마자 저울에 떠보니 몸무게가 4.5키로그람, 먹는 것이 귀했던 50년대에는 극히 드문 현상이다.

그런 기질을 타고나서 그런지 어려서 부터 류달리 힘도 쎘고 애들 씨름 장난에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었다고 한다. 70년대 농촌에서 일하면서 여러차례 씨름경기에 참가했는데 수차 우승을 차지했고 그 덕으로 소도 몇마리까지 타면서‘천하장사'로 린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박차룡은 "그때 내 몸에서 솟아나는 힘은 참… 소도 몇번 재낄만한 힘이였습니다."라고 웃으면서 그때를 회고한다.

올해 6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글이글 타는듯 정기나는 그의 두눈에는 무예에 대한 욕망과 열정이 차넘치고 있었다. 박차룡은 “우리의 전통 무술을 계승하고 발양하는 것이 곧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명감으로 불타오른다.

어릴적에 박차룡은 씨름이나 유도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힘과 승리'에 대한 타고난 승부욕만은 특별히 강했다. 그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관련 체육 시설들이 잘 보급 되지 않을 때라 운동이거나 몸을 키울 곳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박차룡은 아령 대신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근육을 키웠고 심지어 김치움에 철봉을 두개를 걸어놓고 평행봉으로 삼고 운동했다.

박차룡의 꿈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였다.“저희 집이 체육학교 부근에서 살았는데 운동선수들이 참 멋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운동원들이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그 모습이 하도 멋져 꼭 운동원으로 되여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첫 스승은 이름난 김수태선생이다. 김수태선생의 제자들은 대부분 길림성의 원로급 운동선수들이다. 박차룡의 타고난 승부근성과 불도젤처럼 일단 결심만 하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김수태선생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런 박차룡에게 그는 자기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그렇게 다년간의 피타는 노력으로 박차룡은 소년체육학교에 입학하게 되였고 마침내 운동선수의 길을 걷게 되였다.

씨름판의 동북호랑이가 전국 챔피언으로

70년대에 이르러 박차룡은 의미 길림성내 유명한 씨름, 유도 운동선수로 성장했고 씨름판에서 “동북 호랑이”로 불리웠다. 그만큼 씨름에서나 유도에서 힘과 기술을 겸비하고 날파람이 있어 적수가 없었다. 마침내 1981년에 안휘성 합비에서 개최된 전국유도경기에서 박차룡은 86키로그람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를 회억하면서 박차룡은 “결승전을 앞두고 오른팔 인대가 찢겨졌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고 말한다. 감독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포기를 권고했으나 박차룡은 붕대를 감고 경기를 견지했다.

몸서리치는 아픔을 참으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부상투혼”을 보여준 박차룡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하나하나의 적수들을 물리치고 결국 전국 우승을 하게 되였다.

하지만 박차룡에게는 평생 아쉬움이 남았다. 그번 대회의 주최측에서 상장을 발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름자가 적혀 있는 상장을 주지 않고 대신 메달만 발급했다. 더 아쉬운 것은 그 메달마저 이사하면서 분실됐다.

“아쉬움이 많습니다. 전국 우승을 했는데 증거가 없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대회때 찍은 단체 사진과 1981년도의 스포츠 년감에서 <우승자: 박차룡>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1981년도의 스포츠 년감을 보니 “전국 선수권대회가 5월 11일-16일까지 안휘성 합비에서 개최되였고 상해, 료녕, 길림, 북경 등 17개 대표팀에서 135명의 운동선수가 참가하였다.”고 밝혀져 있으며 ‘86kg급 1등 명단'에‘박차룡'이라는 이름이 적혀져있었다.

그러다가 1994년 제7회 전국체육운동대회에서‘중국씨름’항목이 취소되면서 박차룡은 선수생활의 은퇴를 선언하고 길림체육학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되였다.

박차룡은 원 길림성체육전문대 유도 감독, 장춘시공안국 순경방폭지대 무술총감독, 길림성체육학원 무술 객원교수, 길림성유도협회 부회장을 력임하면서 사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뛰여난 기여를 했다. 또 민주동맹회 길림성위 문화위원회 부주임, 길림성륙군포병예비역정치부 부주임 등 사회직무도 맡아하면서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또 미남형인 그는 여러 영화에도 출연했다.

 
(자료사진 박차룡 제공)
60대에도 계속되는 무혼(武魂)인생

박차룡이라고 하면 장춘시의 체육계는 물론‘주먹세계'에서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예가 출중하고 정직과 신용을 지키고 인품이 좋고 제자들이 많은 사람으로 정평이 난‘멋진 조선족사나이'이다.

박차룡은 씨름과 유도만이 아니라 격투기, 호신술 등 여러가지 무예에도 정통했다. 그는 폭력이나 과시용으로 무술을 련마했던 것은 아니라 무술 속에 담긴 진리와 무술정신을 추구하는데 심취되였다.

그는 수년 전부터 주변을 돌아보며 사회에 대한 재능기부에 나섰다. 어려서 두 주먹으로 씨름판을 누볐다면 이제는 그 주먹으로 사회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교사직에서 퇴직하고 길림성경찰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초빙, 길림성내 경찰들의 무술교관으로 되여많은 학생들을 양성해냈다. 한편 사회 각계 인사들을 위해 무료로 무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주말이면 지역 문화관과 합작해 무술을 가르친다.

 
(자료사진 박차룡 제공)

“기업가나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간부들가운데 저의 제자가 많습니다.”박차룡은 수줍음을 타면서 자기는 제자들에게 무술을 배워줄 때 단순히 호신술만 배워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인생의 진리에 대해 더욱 많이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은 박차룡을 더욱 존경하며 영원한 스승으로 모신다.

박차룡은 “무술은 운동이기도 하거니와 일종의 정신”이라고 말하면서 “동양맛이 나는 중국 무술을 계승하고 그것을 발양해야 하는 것이 자기의 책임이자 앞으로 계속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누구나 처음부터 성공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공한 뒤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지요. 어릴적의 소원이‘취득'이였다면 지금의 소원은‘놓기'입니다. 즉 지금 저는 후대의 육성사업에 전념하는 것을 인생의 직책으로 간주합니다.”

박차룡의 무술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부풀어오르는 대목이다.  

멋진 “주먹” 사나이의 멋진 인생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

/길림신문 정현관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신흥공업집중건설과 관련 계녕 기자물음에 답변 연변신흥공업집중구계획의 실시와 관련한 주정부의 소식공개회에서 연변신흥공업집중구관리위원회 계녕주임은 환경보호, 자금해결 등 초점문제와 관련하여 기자의 물음에 대답, 특히 각현, 시 개발구지간 대상건설에서 쌍방은 경쟁자이면서도 합작파트너로 될것이라고 밝...
  • 2006-11-21
  • 연길시조선족예술단 김철단장 《연변아리랑》으로 우리만의 선률을 우리 민족은 《아리랑민족》이라할만큼 각 지방에 천차만별 선율과 각양각색의 내용을 담은 《아리랑》민요가 수없이 많다. 하다면 연변《아리랑》은 대체 어떤 선율을 탄 《아리랑》이여야 할가.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단장 김철선생은 한국민요는 깊고 짙고...
  • 2006-11-17
  • 국내외에 유명한 중국해양대학 한국어학부의 창시인이며 이름난 번역가인 리룡해교수를 만난것은 바닷바람이 시원한 향항동로에 자리잡은 중국해양대학 한국어학부교무실에서였다. 1980년에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리룡해교수는 청도에 진출하기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번역국에서 국장으로 사업, 당시 연변주내에서 가장 젊...
  • 2006-11-13
  • 중국조선족중학생백명백일장 후원자 김의진 리란 부부를 만나 제2회중국조선족중학생《아리랑》컵 백명백일장 참석차 연변을 찾은 북경일진위업투자고문유한회사 김의진리사장과 부인 리란녀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그들의 짙은 민족애와 민족적사명감에 한껏 매료되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하잖아요...
  • 2006-11-10
  • 한국 대구시인학교 주최 문학행사에 연변 시인 석화(48) 씨가 초청돼 특강을 진행한다. “문학의 고유한 향기뿐 아니라 우리말도 지켜야 하는 것이 연변 문학의 과제입니다.”시인 석화(48) 씨가 전하는 연변의 우리 조선족 문인들의 고민이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찾기로 귀결된다. 이는 ...
  • 2006-11-08
  • 기자(이하 기로 약함):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1979년에 일본에서 태여나 지금까지 줄곧 민족 무용을 전공해온 재일 조선인 이미순씨를 저희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미순(이하 이로 약함):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북경무용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미순이라고 합니다. 기: 이미순씨는 지금까지...
  • 2006-11-07
  • 그녀의 꽃을 보면 인생이 보이고 인간의 내심세계가 보이고 한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꽃은 관상용장식품으로서의 그냥꽃이 아니다.그녀의 마음이 담긴 부드러운 손길이 닿은 꽃은 그녀를 닮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된다. 만인의 화려한 련인 장미꽃으로부터 이름없는 잡초, 지어 보잘것 없는 지푸라기라도 그녀의 손...
  • 2006-11-03
  • 북경백마강음식오락쎈터 김정섭총경리를 만나 수도 북경에서 《백마강》하면 모두 인정해준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고 실력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일전에 중국조선족기업인경험교류회의 참석차로 북경에 갔다가 북경백마강음식오락쎈터 김정섭총경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백마강쎈터는 지금 북경에만 하여도 6개 분점이 있는데...
  • 2006-10-26
  • [img count='200' img] 최규하(崔圭夏) 전 한국 대통령(향년 88세)이 22일 오전 로환으로 별세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한국 전직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최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께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7시 37분께 영면했다. 지난 7월 미수(米壽...
  • 2006-10-22
  • 14개 종목 국가,성,주급 과학기술연구 수행 십년간 10여억원 경제효익 창출 연변농업과학기술연구원 생물기술연구소 부소장직을 맡고있는 현춘길(40)연구원은 대학졸업후 십여년간의 생물과학기술연구에서 나라의 공백을 메운 빛나는 연구성과를 이룩함과 아울러 10여억원의 경제효익을 창출하여 연변주의‘10.5’기간 특수...
  • 2006-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