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한문화교류에 내 춤도 한몫'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2월29일 14시14분    조회:102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재일동포무용가 서울·동경정명자한국예술연구원 정명자원장 6세때부터 현재까지 춤만을 위해 살아온 서울·동경정명자한국예술연구원 원장 정명자(48세)씨, 춤으로 인한 그녀의 수많은 희로애락은 진정 그녀의 힘이자 아픔으로 발전, 승화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4일 중한문화교류행사차로 처음 할빈을 찾은 그녀의 공연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가 그런 마음속의 고뇌와 번뇌속에서도 우아하게 풍기는 몸짓, 눈짓에 한참은 무아의 경지를 느꼈을줄로 안다. 서울 영등포가 고향인 그녀는 이미 다섯살때부터 춤군의 기질을 드러내보였는데 아무 노래나 나오면 몸을 흔들어대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이미 작고)는 그러한 그녀한테 야단을 치기는커녕 오히려 무용학원에 다니도록 권장했는데 그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한국국립국악고등학교와 일본도쿄공예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20여년전 도일하여 일본을 중심지로 두면서 한국의 바탕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한일 량국을 자신의 춤범위로 넣고 열정적인 활동을 펼쳐오고있는데 지구촌 한겨레사회에서는 재일동포무용가로 불리우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간문화재 명인들인 정명숙, 리동안, 리매방, 김숙자, 박병천 등을 스승으로 전통춤을 섭렵해온 그녀는 1986년 데뷔공연을 가진후 매년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18회에 걸친 정기 개인발표회를 가져왔는데 1994년 전주 대사습놀이 무용부문에서 수상하여 두각을 나타낸 뒤를 이어 1994년, 1995년 련속 한국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에는 한국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한국대통령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던 그녀가 왜 하필 도일하여 재일동포무용가로 변신하였을가? "원인은 두가지랍니다. 첫째는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져 실망한 나머지 류학을 결심했지요. 두번째로는 춤 다음으로 좋아했던 사진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고종사촌이 도쿄에 살고있어서 훌쩍 건너갔지요. 일종의 도피심리가 작용했나 봅니다." 이후 일본도쿄공예대학 사진기술학과를 졸업한후 그녀는 무용 불모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일본땅에 한국무용을 전파하겠다고 결심하고 도쿄에 한국민속예술연구원을 차려 본격적인 보급에 나섰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일동포들을 주로 가르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인들도 한국무용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는데 현재까지 그녀의 손을 거쳐간 제자들이 무려 4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20여년간 일본에 살면서 한국의 전통무용을 전파하는 문화대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한편 이번 중한문화교류행사연출을 기획한 할빈예당문화회사 정성남사장이면 그녀의 오빠, 그런 연줄로 할빈을 찾게 되였다는 그녀는 이제 새해부터 할빈을 반경으로 중국에서의 한국전통무용보급에 나설 생각을 품고있었다. 중한문화교류라면 모든 각 분야가 포함되여야 한다는게 그녀의 지론. 따라서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우리 민족의 유명한 음악가 윤이상선생의 명언을 곱씹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자 신철국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의료기계 틈새시장을 겨냥한 사나이커시안의료기계 문진수사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선미 기자 = 지난 7일 할빈시 도리구의 커시안(옵毆갛)의료기계사무실에서 300여명이 모인가운데 126명 로인(조선족 1명)들에게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가득 차려 조선족 전통습관으로 환갑잔치를 마련해주어 뭇사람들의 칭찬...
  • 2009-11-13
  • 추억의 언덕우에 살아 숨쉬는 옛 씨름왕—당년 평강벌 무적의 힘장사 고 방창직옹 20세기 60년대에 연변에서 씨름왕으로 마도일이 소문났다면 그보다 훨씬 앞선 40년대, 50년대에 벌써 평강벌에 위치한 서성, 팔가자 일대에서 소문난 씨름장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 방창직옹(100세)이다. 지금도 70여세 되는 로인들...
  • 2009-11-12
  • 중국 유일의 조선족자치현…관광강현 만든다장백조선족자치현 정형일현장을 만나본다정형일 프로필: 1966년10월 장백현에서 출생길림공학원 화공공정학부 졸업길림대학 철학사회학원 연구생 졸업싱가포르남양리공대학 관리경제학 박사학위 획득선후로 장백현규소토공업회사 부공장장, 공청단현위 부서기, 십일도구향 ...
  • 2009-11-12
  • 조선족 기업, 韓中의 다리가 되다 수교 17년 이래 한중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지난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은 이래 더욱 폭넓은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피부로 와 닿는다.중국 중앙정부의 적극적 민족정책 아래 중...
  • 2009-11-12
  • 중국의 최대 조선족마을 만든 사람 —심양시 만융촌 당위서기 겸 촌주임 박승택씨 만나본다   (흑룡강신문=하얼빈)'전국문명촌'의 영예를 안은 만융촌은 전통의미의 초가삼간 마을이 아니라 도시의 대형아빠트단지를 방불케 하는 도시화된 현대화마을이다. 촌에는 무려 82개의 기업이 유치되여 있으며 촌소학교에는 ...
  • 2009-11-10
  • 중국조선족사회의 진로... “조선족사회의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나의 밀어버릴수 없는 사명” ㅡ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정신철연구원의 추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 교수인 정신철(51)씨는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많은 성...
  • 2009-11-10
  • 20세기 중국조선족문화의 일대산맥연변대학 전임 부교장 고 정판룡교수를 회고한다 ○ 정판룡은 20세기 중국조선족이 낳은 가장 우수한 문화지성인중의 한사람이며 저명한 문학교수,교육가였으며 문학평론가, 산문작가였으며 사회활동가였다. 정판룡 프로필: 1931년 10월 2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항교리에서 출생1949년...
  • 2009-11-10
  • —청도아혁회사 창업편린 청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청도맥주를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와 익숙한 고장이다.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하면서 연해개방도시로서 청도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집거지로 이미 자리를 굳혀가고있다. 중국조선족이 근 20만, 한국인들이 10여만명에 달하여 불완전한 통계에 의해도 우리 겨레가 30...
  • 2009-11-10
  •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우리 나라 농업문제를 전문 연구하면서 대학생양성에 일신을 몰입하고있는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는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우리 민족의 농업문제전문가이다.연변농학원에서 사업하다가 한국 충남대학교와 한국 경북대학교에서 선후로 농...
  • 2009-11-10
  •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소비문화는 선도해야 한다"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인터뷰 현지인 상대 헬스방, 방갈로 셔틀차량 운영 신 모델 (흑룡강신문=하얼빈) 투자금 300만 위안을 들여 전체적으로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고 최신 한국 설비를 도입한 신금천사우나가 지난 10월 25일부터 이창구 흑룡강로에서...
  • 2009-1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