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매하구시 영풍촌 당지부서기 장석철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13일 08시23분    조회:92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매하구시 영풍촌의 당지부서기 장석철씨는 성공한 향촌기업인으로, 새농촌건설 선줄군으로,  자녀교양에 성공한 아버지로 1인3역의 역할을 잘해  주위의 화제로 되고있다.

매하구시의 최대 조선족기업 운영

매하구시 번화가에는 3000여평방메터 영업면적을 가진 5층짜리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이 있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원 조선족식당)》은 매하구시에서 가장 큰 조선족기업으로서 조선족들이 대사를 치르는 장소이다.

1984년 10여명 조선족들이 손잡고 헐망한 초가집에서 매하구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불고기집인 매하구시조선족식당(현 봄철고려식당)은 지금 영업면적 3000여평방메터에 직원 60여명이 되는 대형조선족식당으로 발전하였다. 이 식당을 이끌고있는 코기러기가 바로 매하구시조선족기업가이며 영풍촌당지부서기를 겸하고있는 장석철경리이다.

2003년 매하구시 도시건설의 수요로 매하구시 조선족식당이 원 자리에 새로 건설되고 원 직원과 재산외에 5명의 투자자가 가담하여 식당이름을 《봄철고려식당》으로 바꾸었다.

식당영업면적이 확대된데다가 매하구시에 대형식당들이 많이 일떠서면서 음식업계의 경쟁은 치렬해졌다. 이 식당에서 경리를 여러번 바꾸었지만 경영난을 타개하지 못하였고 후에는 할수 없이 식당 일부분을 한족에게 임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매하구시 조선족들은 식당의 운명을 안타까워 했고 식당 종업원들은 수심속에서 나날을 보내였다. 식당종업원들은 식당출로를 해결할 사람은 매하구시조선족식당 초창기 직원의 한사람이며 여러 해 동안 기업을 운영해온, 공산당원인 장석철뿐이라며 그가 식당운영을 맡아줄것을 갈망하였다.

《봄철고려식당》 전체 직원들의 추천속에 식당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장석철은 2006년 4월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사령탑을 잡게 되였다.

장석철(56)경리는  2년간은 조선족식당의 물품구입원으로 근무하였고 1986년부터는 자체로 식당도 꾸리고 잡화점도 꾸리였다. 1990년부터는 3만여원을 투자하여 잣가공공장을 꾸리기 시작, 초창기에는 공장직원이 10여명이였으나 후에는 80여명으로, 공장부지 1000여평방메터, 공장건물 300여평방메터에 이르는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1997년까지 식당, 잡화점, 잣가공공장 등 여러 가지 기업을 운영하면서 장석철은 기업운영방법을 익혔고 일부 자금도 축적하게 되였다. 2003년 매하구시 조선족식당 확건시 장석철은 이 식당에 80여만원을 투자하여 투자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전체 직원들의 기대속에 《봄철고려식당》의 총경리로 된 장석철은 식당의 이미지를 돌려세우고 영업액을 늘리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몰부었다. 식당에 들어오는 물품의 질을 보장하고저 아침 일찍 직접 시장에 나가 물품을 골라 구입하였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소고기는 당날 잡은 애송아지고기를 직접 선택하였다. 매하구시내의 식당들을 찾아 그곳 식당의 음식맛을 보면서 장점을 배워 《봄철고려식당》의 음식맛과 메뉴를 개진하면서 봉사질을 개선하고 경쟁률을 높이였다. 식당의 주요메뉴는 불고기인데 독특한 구이방법으로  적쇠우에 종이를 펴 숯불연기를 피하면서 고기를 굽는 방법은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만의 노하우이다.

지금 식당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 아우성치는 현실에서 장석철경리는 직원들을 집식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로임을 올려주고 복리대우를 개선하고 영업액 증가에 따라 장려금도 후하게 발급했다.

장석철경리의 탐구적인 경영방법과 전체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금 《봄철고려식당》의 영업액은 전보다 20% 장성하였고 이 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 많이 증가되였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1층과 2층의 불고기좌석은 3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수 있는데 매일 점심과 저녁에는 손님들이 차고 넘치며 400여명을 용납할수 있는 3층 연회청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명절때면 환갑, 결혼 잔치로 차고 넘치는바 한달전에 예약해야 한다.

《벼종자마을》의 서기

장석철은 식당경영의 바쁜 나날에도 시간과 정력을 영풍촌사업에 돌리고있다.

영풍촌은 원래 150여호에 인구 580여명, 경작지 1500무를 가진 조선족촌이였다. 지금 촌에는 100여호에 인구 300여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100여명이 로인협회 회원이다.

장석철은 부대에서 입당한 로당원이다.  2001년 3월, 촌의 서기로 당선된 장석철은 일찍 촌민대회를 소집하고 땅을 사사로이 타촌 촌민에게 양도하지 못하며 집도 함부로 팔지 못한다는 촌민규약을 정했었다. 한데서 지금까지 90% 이상의 토지가 본촌 촌민들에 의해 경작되고있다.   영풍촌에는 벼재배전문가 김일규의 일풍벼종자유한회사가 있어 전 촌이 벼종자재배를 위주로 하는바 《벼종자촌》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촌 촌민들의 벼재배수입은 비교적 높고 벼판매난도 모르고 살아가고있다.

장석철서기는 촌에 로인들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로인협회에 27무의 논을 내주어 그 수입으로 활동경비를 마련하게 하였고 지난해에는 로인협회 활동실과 게이트볼경기장까지 마련해주어 로인들이 유쾌한 만년을 보내게 하였다. 그외에도 로인협회 대형활동때마다 개인적으로 일부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선생같고 친구같은 아버지

장석철과 부인 안순애는 1녀 2남을 두었다. 장석철은 우로는 년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7명의 식솔이 가난했지만 화목하게 지냈다. 후에 장사를 하고 기업을 꾸리면서 부유해지고 가정살림이 윤택해졌지만 자녀교양은 늦추지 않았다.

아들딸이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그는 집에다 《학습과 생활 평의란》을 꾸려놓고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붉은기를 달아주고 5원의 장려금을 주는 가정평의제도를 실시하여 자녀들의 학습을 격려하였다. 자녀들은 받은 장려금을 정기저금하였는데 고중을 졸업할 때 그들의 통장에는 2000여원씩 쌓이게 되였다. 또한 집에서 작식제도를 정하고 자녀들의 기상, 아침단련, 식사, 등교 시간과 저녁의 휴식시간을 제도화하여 자녀들의 생활을 규칙화시켰다. 한편 아버지로서 또한 친구처럼 자녀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자녀들의 심신건강을 지켜왔다.

큰딸 장연옥은 대학졸업후 지금 매하구시재정국에서 사업하고있다.  큰아들 장봉학은 길림대학 법학학부에 입학, 졸업후 북경의 한 변호사사무소에 취직했으며  중국정법대학의 석사연구생에 합격되여 지금 석사공부 과정, 작은 아들 장봉국은 길림대학 시장판매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지금 소주시의 모합자기업의 책임자로 근무하고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있지만 명절때마다 매하구에 와서 부모를 찾아 뵙고 매주마다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면서 효도하고있다.

리창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할빈공업대학 컴퓨터학원 다지능로봇연구센터 주임 홍병용교수를 찾아서로봇축구는 ‘자그마한 플렛폼우에서의 기술전쟁’, ‘인공지능을 발전시킨 리정비’, ‘로봇사회의 축도’등 미명을 갖고 있다. 세계적 범위에서 수많은 과학가와 기술일군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할빈공업대...
  • 2008-08-09
  • "한국-중국 가교 역할에 힘든 줄 몰라요"프레스센터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 백미향씨 "중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어요." 8일 저녁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어가 공식 통역 언어로 채택된 첫 올림픽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전세계 기자들이 총집결한 메인프레스센터(MPC)에도 조선족 여...
  • 2008-08-09
  •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호흡이 곤난한 환자로부터 머리 다친 사람, 원인을 모를 갑작스러운 복통 그리고 심장이 멎어버린 환자까지… 언제 어디에서 어떤 환자가 실려올지 모르기에 응급과의 의사들은 항상 긴장된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환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생명이기에 응급과의 의사들은 가장 적...
  • 2008-08-08
  • "13만7000km성화봉송 그 자체가 드라마"중국동포 김련남 씨 중국80개 도시 돌며 동고동락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중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5월 4일. 하이난 성 싼야에 도착한 성화를 보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아, 정말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구나.”그런 그가 8일 개회식에서 다시 눈물을 흘릴 것 같...
  • 2008-08-08
  • 무지개꿈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북경대학입학생 엄소천과 그의 가정을 엿본다 ○ 김성철 금년도 룡정고중 졸업생 엄소천 학생의 가정에 경사가 났다. 엄소천 학생이 총점 648점, 전 주 문과류 7등의 성적으로 무난히 북경대학에 입학한것이다. 엄소천학생이 물론 아주 우수하지만 특별히 지력상수가 높아 리해가 남달리 빠른...
  • 2008-08-07
  •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돈에서 찾고 누군가는 사람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바로 스스로가 희망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니, 충분히 알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17년 전 두 아들을 떼어놓고 한국행을 택했던 윤애자씨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말한다. 내 안에 희망이 있고 길은 거기...
  • 2008-08-04
  • 1929년에 4형제중 셋째로 태여나 일찍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고 19살때 1급전투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에 사는 정관채﹙80살﹚로인이다.정관채로인은 13살나던 해인 1942년에 어머니와 동생을 조선에 남겨두고 형님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화룡현 이도구에 이사왔다...
  • 2008-07-30
  • (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중국이 안방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종합우승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같은 민족인 남북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기대할께요" 2008 베이징올림픽에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강혜옥(姜惠玉.22)씨는 신세대 대학생답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 ...
  • 2008-07-29
  • 한평생 동심과의 “앵코”타기 청소년언론인, 아동문학가 윤정석 “앵코 앵코 난좋아요/ 앵코타고 솟아보면…”여러세대를 거쳐 우리의 동심을 습윤히 적신 동요이다. 이 동요의 작사가 조선족청소년언론인이며 아동작가인 윤정석(尹精錫)은1927년8월5일 연길현6구 장재촌에서 태여났다...
  • 2008-07-29
  • 우리 가락 날실로 엮어온 40년 예술인생 황창주씨는 올해까지 40년 동안 우리 음악의 외길을 고집해왔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우리 가락, 우리 음악과 함께 해온 인생이다.  황창주씨가 민악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지난 세기 6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황창주씨는 연길에서 태여났지만 아버지가 화룡시공전소 소장으...
  • 2008-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