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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조선족예술단 지휘 작곡가 황창주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7월25일 08시24분    조회: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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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락 날실로 엮어온 40년 예술인생

황창주씨는 올해까지 40년 동안 우리 음악의 외길을 고집해왔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우리 가락, 우리 음악과 함께 해온 인생이다. 

황창주씨가 민악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지난 세기 6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황창주씨는 연길에서 태여났지만 아버지가 화룡시공전소 소장으로 전근되는바람에 화룡에서 공부하게 되였다.그가 12살나던 해인 3학년때 연변예술학교에서 학생모집을 왔다. 연변예술학교를 무슨 교를 믿는 학교로 생각할 정도로 어리고 천진했던 황창주씨이지만 그는 음악적인 천부가 뛰여난 소년이였다.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한 황창주씨는 학교의 배치에 따라 가야금을 배우게 되였다.가야금으로 예술에 입문한 그는 1968년 졸업, 가야금과 8년 세월을 함께 했다. 20살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황창주씨는 화룡탄광에 배치받아 “재교육”을 받게 되였는데 갱으로 들어가 석탄 캐는 광부로 1년 반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당시 탄광에는 손풍금 하나 없어 음악엔 완전히 손을 놓아야 하는 실정이였다. 다행히“재교육”기간이 끝나 황창주씨는 화룡탄광소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교편을 잡았다. 예술학교시절 그는 가야금외에 피아노, 손풍금, 드럼봉도 배웠다. 그가 드럼봉솜씨를 펼수 있은 무대는 우연히도 연변경극단의 경극무대였다. 1970년,연변경극단에 전근된 그는 8년 세월 가야금과는 완판 다른 드럼봉으로 당시 본보기극이라고 하던 경극무대의 연주원으로 있지 않으면 안되였다.1978년 황창주씨는 연변예술학원에서 전근되여 시창청음교원을 맡았고 그 이듬해 심양음악학원 작곡학부에서 2년간 연수하게 되였다.학원에 돌아온지 1년만에 그는 또다시 연길시조선족예술단으로 지휘 겸 창작원으로 오게 되였다.이때로부터 그의 민악인생은 막을 올렸다. 이곳저곳 굴러다니면서도 우리 민족예술에 대한 집념만은 잃지 않았던 황창주씨였기에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제1임 지휘로 되자 인차 숙련된 솜씨로 우리 민악의 지휘를 맡을수 있었다.당시 악단에 단원이 37명, 방대한 규모에 모든 민족악기가 구전했다.지금도 황창주씨는 첫 공연을 하던 때를 잊지 않고있다. 1983년, 국가민위의 지도일군들을 모시고 당시 연길시로동자구락부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모든 종목이 일매지게 우리 가락과 우리 춤이라 지도일군들과 관중들은 무시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음악이 그렇게 흥겹고 무게가 있고 우리의 춤이 그토록 률동적일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26년째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지휘봉을 잡은 황창주씨는 오늘까지 근 2000여회 공연에서 민악대를  지휘, 1년에 200여회씩 지휘를 맡아야 했고 간혹 하루 3회씩 지휘를 맡은 때로 있었다. 무더운 한여름 열기가 가득찬 극장에서 하루 3회의 지휘는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머리가 어지러워나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해나른해난다.그래도 민악연주를 들으면서 신나고 즐거워하는 관중들을 보면 새힘이 새록새록 솟아났다는 황창주씨다.지금은 음악효과시설이 발달해 무용은 록음을 틀어놓는것이 통례이지만 지난 90년대까지도 무대공연은 악대가 직접 연주해야 했다.

민악은 목관악기에 단소,피리,새납,중피리,대피리,저피리이고 탄현에 가야금,옥류금,양금이며 현에 소해금,중해금,대해금이다. 그리고 타악기에 장구,징,꽹과리,북이 있다. 지금 우리 민족의 해금연주자가 엄청나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황창주씨는 말했다. 우리 민악의 명맥을 이을 후배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황창주씨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를 담고있는 우리 음악이 그렇게 아름답고 무게가 있을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피줄속에는 우리 음악 가락이 피와 함께 굽이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하기에 그는 지휘봉을 잡고 악단에 몸잠그고있으면서 근 70여부의 우리 민족 무용곡과 30여부의 민악을 위한 기악곡을  창작했다. 가야금, 해금, 피리 등 우리 민족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하모니는 관중들에게 그의 작품의 즐거운 향수를 안겨주는 그 자체였다. 특히 그중 무용곡“동동아박춤”,“장고독춤”,“녀인”,“심현”,“영각소리”등은 무용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함께 무용곡도 높은 창작경지에 올라있다. 무용곡 “심현”이 문화부 제3회 문화상평의에서 새종목상과 전국무용콩클에서 음악창작상을 수상하는 등 그는 무용곡으로만도 굵직굵직한 상을 20여차 수상했다.

대중적인 명성을 얻으려면 대중가요창작을 했어야 했지만 그는 거기엔 꼬물만치도 미련이 없이 소처럼 묵묵히 우리 음악과 무용을 위한 음악창작 외길만 걸어왔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조선족민악대 그리고 거기에 지휘봉을 잡고 우리의 악기로 우리 가락을 흥겹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로 만들어내는 황창주씨는 선후로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실무단장, 예술고문으로 활약했고 연변음악가협회 부주석직도 맡고있다. 북경 등 전국 각지에서 조선족민악을 찾기 위해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을 찾고 황창주씨를 찾는다.그만큼 그는 민악예술에서 자기의 위치를 당당히 가지고있지만 늘 겸양의 자세로 요청과 가르침을 웃으며 맞아준다.그는 북경무용대학, 중앙민족대학에서 전국콩클에 참가하기 위해 무용곡을 써달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써준다.그만큼 그는 우리 민족의 음악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늘 빠쁜 나날을 보내고있다.

김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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