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학송-조선족 다산시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2월13일 20시52분    조회:87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

취재대상에 대한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문화부에 배당된 시골현장에만 내려가다가 이번에는 대상을 바꾸어 문학계로 눈길을 돌렸다. 연변문학 30년의 성과보고에서도 언급하다싶이 문학계는 개혁개방 30년 동안 그야말로 풍성한 성과를 안아왔고 그만치  성과를 따낸 문학인을 찾기도  쉬운 일이였다. 김학송시인을 찾은 계기는 금번 전국 제9회 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평의에서 시집《사람속에서 사람 그리워》로《준마상(상금 만원)》을 수상했다기보다 타의추종을 불허할 다산시인이라는 점이 더 작용한것이다.

2

김학송(56세)시인은 문학창작에 전전한 30여년 동안 26권의 시집, 에세이집을 펴낸 다산작가이다. 조선족시인중에서도 최다의 시집을 펴낸 김학송시인을 만난건 그가 근무하는 《연변문학》편집부에서다. 다음 취재의 편리를 위해서 그의 주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해가 석사연구생으로 공부하는  아들의 뒤바라지 하러 한국으로 갔는지라 요즈음은 홀아비생활이라고 서글픈 모습을 보였지만 두 벽면을 메운 서재에서 시인의 서글픔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향기가 은은히 묻어나는 노래하는 시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1952년, 도문시 월청진 화평촌(곡수촌)에서 6남매 대가정에서 남자항렬 맏이로 태여나고 소학, 중학을 마치고 시골에 하향하던 시기는 10대 후반이였다. 하방한 아버지로 하여 하향지식청년으로 되고 시골에서 논물관리원, 과학시험소조 조장으로 7년을 두루 시골을 배우다가 행운스레 장춘야금학교에가서 지질탐사를 전공으로 배운것은 그의 인생의 새로운 첫번째 전환점이였다. 하지만 배운 전업이 싫어서 도문에 와서 술담배공사, 석유공사,  보위간사, 공청단서기 등 다채로운 직업에서 헤염치다가 그후 연변대학(작가반)에 입학한것이 관건적인 전환점이 된다. 여기에서 김학송시인은 문학이라는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지금까지 줄기차게 달려온다. 도문시가무단, 연변가무단 창작조를 거쳐 현재는 월간《연변문 학》지에서 시편집으로 사업하고있다.

3  
 

흔히《문화대혁명》의 동란속에서 소년기와 청춘기를 잃어버린 홍위병 세대들을 일컬어서 우롱당한 세대라 한다. 말 그대로 저마다 혼돈씨가 되여 《볼품없이 망가진 얼룩 세월을》칠하면서 우매로 세례당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다. 김학송시인 역시 례외가 아니다. 아버지의 하방, 차도 통하지 않던 오지, 가난, 인간가치의 상실은 그의 젊은 시절의 초라한 초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세월은 후날 시인에게 김학송시인만의 시적언어 확립과 창작경지를 톱는 밑천이 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약간은 엉뚱한데가 있고 개성이 강한것만치 시창작에서도 전위에 나섰다. 시인의 말을 빈다면 자신의 경력과 천성에 맞는 언어적인 스타일을 빨리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독보적인것으로 만드는것을 소명으로 알던 시인의 시어는 쉬운 말로 말하면 벽계수가 흐르듯 경쾌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김학송의 아름다운 시어는 그의 투박한 성격과는 다르다고도 말한다. 영혼의 마찰과 울림이 담긴 소박한, 구체적 형상화의 시를 창작하고 순수하게 마음을 울리는 시. 독자와 호흡을 할수 있는 맑은시, 그러면서도 은은한 무게와 간절한 혼이 침투되여 고도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날개가 있는 시를 창작하여 《중국조선족시단에서 현대시창작의 첨단을 달리는 시인중의 한 사람으로 현대문명에 찌든 이웃도 모르는 도시 , 각박한 인심, 영악한 인간관계에 대한 항변이 여울치고… 오염되지 않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룬 인류의 요람시대를 창조하려는 갈망 숨쉬고있다.》(조성일)《김학송시인의 절대적가치에의 탐구는 기대와 고통의 련속으로서 그 서정이 아로새겨지고 … 현실적고통을 감내하는 구도적자세가 보이며 전통에의 진진한 승화와 계승의식이 투철하다.》라는 평이 쏟아진다. 한 시인의 시창작과 그의 세계는 시인의 사고의 넓이와 이 세상을 포섭하는 시각의 깊이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특히 1990년대 초기 한국체류는 시인의 문학사고폭을 넓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인은 빈번한 한국문인들과의 교류, 독서에서 의식의 변화를 추진시켰고 현대시창작실험에 대담하게 달라붙었다. 2년도 안되는 사이에 그는 한국에서 10여권에 달하는 창작시집을 출판하였고 귀국후에도 15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펴내 최다 시집출판기록과 해외 출판에서의 최다기록을 보유했다. 그의 시는 자연의 섭리와 질서속에서 인간의 내면공간의 실존적인 양태를 치렬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표출시킨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하기에 시단에 대한 기여도가 있는 시인으로 통하기도 한다.

4

김학송시인에 대해 자상한 소개를 차치하고 굵직한 소개를 하자 해도 편폭이 모자란다. 지금까지 200수에 달하는 가사를 썼는데 그중에는 조선족들이 즐겨부르는《아버지에게 드리는 노래》,《세월은 흘러도》,《고향은 청춘》 등 노래가 있는가 하면 조선족중학교의무교과서에 《태산에 오르며》란 수필이 등재되고 소학교 6학년 의무교과서(상권) 에는 《첫눈》, 하권에는《완두밥》,《박넝쿨》이 등재되였고 1984년-19 97년 동시 《봄비》가 등재되기도 했다. 열독교과서에 실린것까지 합치면 근 20여수(편)의 시와 수필이 등재되는 호황기를 맞기도 했다.

그외에도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등산팀을 발족시킨 장본인, 수석 (기의한 돌 수집)에 특별한 애정을 쏟고 돌에도 력사와 년륜이 있고 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인이다. 수석관련전문저서도 출판했다.

개혁개방은 문화계에서 가장 빠르게 접수했고 작가들에게는 창작의 호황기를 마련해주었다. 사상의 해방과 작가들의 창작대상에 대한 자유는 문화에서의 개혁개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학송시인도  문뜩문뜩 아버지의 하방년대와 그후 개혁개방이 가정에 가져다준 문학적인 실리를 비유하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였다.

연변일보 최국철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그는 평범한 소방관이였다. 하지만 화재현장에서는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식 인물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한 조선족젊은이다. 하지만 긴급구원현장에서 뜨거운 손길로 65명이나 되는 생명을 구출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량친의 사랑을 잃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하지만 장장 8년간 독거로인들을...
  • 2007-08-27
  •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한박사를 만날수 있었다. 박사이고 군병원...
  • 2007-08-16
  • 17차 당대회 대표로 선거된 조선족 리명성 ◈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글로벌화, 다국적산업합작 등에서 중요한 성과◈ 25만자에 달하는 《중국의 경제전략》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 총화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전망 제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 안아 중국기업련합...
  • 2007-08-14
  • 조선족유치원들이 어린이류실로 고심하고있는 최근년간 해림시조선족유치원은 오히려 해마다 어린이수가 늘어나 금년들어 어린이수가 240여명(올해 졸업한 70여명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1000평방미터의  새 교수청사에 갖가지 대형 놀이기구 등을 구전히 갖춘 규모화한 유치원으로, 민족의 꽃봉오리들의 요람으로 ...
  • 2007-08-14
  • 그의 매일 일과는 축구 관련사항들로 꽉 차있다.  푸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5시 반이면 벌써 애들을 이끌고 아침훈련에 나서고 오전이면 체력훈련, 기전술훈련에 그도 함께 땀동이를 쏟는다. 애들이 문화과 수업을 하는 날에는 훈련계획을 짜고 경기총화도 짓는다. 이토록 축구에 푹 빠진 사나이―그가 바로 연길시제2고...
  • 2007-08-09
  • 아르헨띠나 최대 민영방송인 《텔레페 TV》의 뉴스 앵커를 지낸 황진이(30) 씨는 동양인 녀성으로 아르헨띠나 언론계에서 쉽지 않게 성공을 거두어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있다.미국, 카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아시아계 앵커들이 주목받는것과는 달리 남미언론계에서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수 없다. 황씨는 1998년 대학졸업직...
  • 2007-08-07
  • 연변성보국제상무빌딩유한회사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연변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가로서가 아니라 우리 연변 사람으로서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잘 안다고 자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정영채회장에 대한 필자의 인상도 워낙 연변에 와 사업에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벌고 여러가지 사...
  • 2007-08-06
  •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
  • 2007-08-02
  •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재인것이다.애득백화점에는 그런 인재가 많기에 애득의 오늘과 같은 발전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며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인재인것이...
  • 2007-08-02
  • 군대는 하나의 특수집단이다. 군대는 사람을 양성하고 사람을 단련시키며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다. 군인이란 이 특수직업은 곤난을 이겨내도록 의지력을 키워주고 인생을 더 보람있고 더 알차게 보낼수 있는 토대를 닦아준다. 1969년 19세 나이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37년간 부대생활을 해온 박성진은 《군영은 강한...
  • 2007-08-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