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황범송-굵직한 력사현장 렌즈에 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2월26일 08시48분    조회:84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령수인물촬영사진기자 황범송씨 

황범송씨의 저택 응접실 벽 한가운데는 등소평, 강택민 그리고 조남기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 석장이 각각 걸려있다. 사진기자로 일해온 황범송씨가 세월속에 남긴 큼직큼직한 자취들을 말해주는 사진들이다. 그는 1952년부터 선후로 연변일보사 사진기자, 연변박물관 사진기자 그리고 중공연변주위 정보처, 비서처, 보밀실 등 부문들에서 일해오면서 나름대로 령수인물사진촬영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다.

어린시절 혈혈단신으로 단돈 1전도 없는 무일푼으로 집을 나서 사진기술배우러 구름처럼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그 세월 그는 사진기자가 꿈이였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인생행보는 마침내 그를 사진기자 행렬에 들어서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해 황범송씨는 32살, 연변일보사 사진기자였다. 1962년 6월 2일, 주은래총리가 부인 등영초동지와 함께 연변시찰을 왔다. 주은래총리의 시찰촬영을 당시 연변일보사 기자들인 강찬혁, 김홍국, 황범송 그리고 연변의학원 엑스레이촬영기술자 채기혁 그리고 사진관을 경영하던 남진우씨가 맡았다. 주당위 부서기였던 전인영은 주은래총리에게 드릴 례물로 사진첩을 드려야하니 사진을 잘 찍으로고 신신당부했다.

주은래총리는 연변체류기간 연변농구공장,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연길시 신풍대대 등곳을 시찰하였다. 황범송 등 촬영을 책임진 사람들은 뻔질나게 달아다니면서 력사에 남길 장면들을 렌즈에 담고담았다. 황범송씨는 주은래총리와 근거리에서 만났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보아왔다. 검박하고 인민군중을 대함에 부드럽과 상냥한 주은래총리의 형상은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이러한 형상들은 그때 사진기자들이 남긴 귀중한 사진들로부터 보아온것이다. 주은래총리는 자기의 돈으로 표 두장을 사고 연변가무단 공연이 시작된뒤 남몰래 입장하여 나무걸상에 앉아 관람했고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올라가 배우들을 격려해주었다. 사회를 맡은 조순녀씨한테 다가간 주총리는 생활이 어렵지 않느냐며 첫마디부터 민생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연변시찰시 주로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많이 연구했던것이다. 또 자기 방에 놓은 과일을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밤참은 지참하여 온 옥수수와 수수를 가루낸 미수가루였다. 연변빈관에서 자발적으로 모여온 군중들을 접견하던 장면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연변지도일군들과 합영을 끝낸 주은래총리는 빈관앞뜨락에 헤아릴수없는 사람들이 모인것을 보고 이층 베란다로 올라갔다. 그는 먼저 전인영동지에게 조선말로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은뒤 베란다에서 손을 저으며 군중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고 조선말로 말했다. 황범송씨는 이 장면을 놓칠세라 샤타를 눌렀다.   


장백산에서 등소평을 찍은 유일한 사진기자


1983년 8월 13일, 등소평동지가 전용렬차로 사평에서 이도백하로 향했다. 그 전날 주당위 비서장 김동기가 황범송씨더러 우리 나라에서 제일 영향력있는 수장이 오시니 지금 차를 타고 이도백하림업초대소로 가서 기다리라하면서 사진기자는 당신뿐이라고 했다.

이틑날 도요차승용차를 앞세우고 30여대 차량행렬이 나타났다. 장백산천지와 배운봉에서 유람객으로 가장한 황범송씨는 몰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등소평동지가 사진기자는 일절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등소평동지가 황범송씨가 사진 찍는걸 발견했다. 조남기서기와 김동기비서장이 력사당안을 남기기위해 찍는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사정해서야 황범송씨는 정식신분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서렬에 따라 조남기서기는 다섯번째에 섰다. 연변의 수장이 등소평동지와 마주 선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가고 궁리하던중 황범송씨는 조남기서기의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조남기서기가 알아채고 등소평동지가 걸상에서 일어서자 최림주장을 데리고 와서 등소평동지의 옆에 나란히 서서 연변의 상황과 백두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등소평동지의 맞은쪽에 성당위 강효초서기가 서로 오른쪽에 조남기서기와 최림주장이 섰다. 이렇게 력사적인 사진이 탄생했다.


강택민총서기가 따라 준 한잔 술


강택민총서기는 선후로 연변에 두번 다녀갔다. 강택민총서기가 올 때마다 사진촬영을 맡은 황범송씨에게는 잊지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장백산스키운동장빈관에서 있은 일이다. 강택민총서기는 독방에서 식사를 하고 기타 수행인원들과 사업일군들은 홀에서 부페를 먹었다. 그때 강택민총서기가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부페의 음식들을 둘러본뒤 술병을 손에 들고 사업일군들에게 한잔씩 권하기 시작했다. 황범송씨한테 다가온 강택민총서기는 로기자가 수고 많으시다면서 잔에 따라서 술을 권했다. 여느 술과 같은 한잔 술이지만 나라의 최고수장이 친히 권하는 술이라 술잔에 담긴 그 의미는 강일수도 호수일수도 있을것이다.

황범송씨는 주덕, 동필무동지들의 시찰사진도 찍었고 김일성주석의 유럽 8개국 방문시 도문을 경과할 때도 력사적인 사진을 찍었다. 그는 선후로 륙정일, 박일파, 양상곤 등 당시 부총리급이상 수장들의 현지시찰사진뿐아니라 국외의 귀빈들의 사진도 찍어 력사에 남겼다.

황범송씨는선후로《중국조선족연변화책》, 《중국조선족화책》, 《연변녀성》, , 《중국연변》, 《주덕해화책》, 《조남기화전》 등 화책을 출간했고 또 많은 중국조선족관련책들에 사진을 제공했다. 현재 그는 왕청현력사전람관을 꾸리기위해  바삐 보내고있다.  

김인선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