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연-연변가무단 차세대 성악배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4일 21시30분    조회:105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노력으로 인기를 창조해가는 박연


아리랑 노래 함께 전해온 토장
녀성들의 손으로 깨끗이 전해왔네
민들레씨앗처럼 세상에 날려
민족의 슬기로 대를 이어가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우리 민족 토장
세월과 더불어 영원히 전해갈
민족의 자랑

2008년 8월 22일에 펼쳐진 제4회 연변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에서 연변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 회가로 선정된 《민족향기 토장향기》(김계월 작사, 동희철 작곡)를 불러 문예공연의 첫막을 아름답게 장식한 청춘파가수 박연. 10여년전 연변대학 예술학원 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할 때부터 최려나, 현성해, 김선희, 변영화 등과 어깨나란히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청춘스타트》, 《주말극장》, 《음력설야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서 노래실력을 자랑하면서 연변조선족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현재 연변가무단의 성악배우로 되여 보람찬 무대인생을 살아가고있다.
   
강신자선생님과의 인연

노래인생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해 문의하자 박연은 “제가 노래로 초보적인 성공을 안아올수 있게 된것은 강신자선생님의 가르침덕분이랍니다.”라고 말하면서 계몽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치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흥취가 있은 박연은 소학교시절 도문철도자녀소학교 무용대에 들어가 춤을 추면서 장차 무용가가 될 꿈을 키웠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그로서는 춤으로 성공할수 없는것이 문제였다. 뒤늦게야 이를 알게 된 부모님들은 귀여운 외동딸을 꼭 예술가로 키우고싶은 욕심에 나어린 박연이 연길로 오르내리며 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학부의 강신자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노래를 배울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여 소질이 있는 무용 대신 노래를 배우게 된 박연은 처음에 음악기초가 없는건 물론 다른 애들보다 소리가 연하고 질기지 못하며 노래통이 두텁지 못해 성공여부를 장담할수 없었다. 고맙게도 경험이 풍부한 강신자선생님이 얼굴이 이쁘장하게 생긴데다 감정표현을 척척 드러낼줄 아는 박연이 성대를 잘 다스리고 꾸준한 노력을 경주한다면 무대에서 인기를 누릴수 있겠다고 믿어주면서 가르침에 정성을 쏟았다. 박연 또한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주일에 한두번씩은 꼭꼭 연길행차를 하면서 부지런히 배우고 련습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보람으로 박연의 노래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제고를 가져왔고 2년후인 1992년에는 마침내 연변대학 예술학원 소학반에 입학하는 행운을 잡았다.

박연이 예술학원에 입학한후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모로 왼심을 써주면서 성악기초, 음질 등 면에서 조건이 비교적 우월한 동학들과의 거리를 줄일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해주기에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의 지도아래 자기의 부족점을 미봉하느라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 박연은 얼마후부터는 최려나와의 2인창, 최려나, 현성해와의 3인창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청춘스타트》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라지오방송을 위해 연변에서 창작된 아동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6년제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할 때 박연은 최려나, 현성해와 함께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전국청년가수대상콩클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때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날이나 이들 셋을 집에 데려다 표정이나 손동작 하나 실수없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게끔 지도해주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신자선생님이 매일 점심까지 해먹이며 정성껏 지도해준 덕분에 이들 셋은 그번 콩클에서 3인창으로 길림지구 1 등의 영예를 따내였다. 비록 결승단계에서 미역국을 마시기는 했지만 그번의 실천은 그후의 노래인생에 도움이 컸다고 한다.

박연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에 취직한후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모로 관심해주면서 텔레비죤화면을 통해서라도 노래를 듣게 되면 꼭 전화를 걸어와 “소리는 좋아졌더라. 그런데 좀 더 웃어야겠다”라는 식으로 조언을 주는것을 잊지 않고있다. 
            
짝궁이 좋아

지금까지 독창보다는 최려나와의 2인창, 최려나, 현성해, 김선희, 변영화와의 합작으로 된 3인창으로 인기를 많이 누린 박연은 십여년의 노래인생에서 가장 큰 수확은 최려나와 같은 짝궁을 만나게 된것이라고 고백했다.

강신자선생님의 지도아래 백지에 그림을 그리며 노래공부를 시작한 박연이 소녀시절부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청춘파가수의 하나로 알려지게 된것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하던 시절인 1997년에 연변TV 뉴스종합채널의《주말극장》프로그램에서 최려나, 현성해와 더불어 3인창을 선보이면서부터였다.

이따금 청소년프로그램인 《청춘스타트》에 출연하다가 처음으로 《주말극장》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이들 셋은 이날 한국가요 《즐거운 아리랑》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때로부터 그들의 3인창이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는 인기종목으로 지목되여  《음력설야회》, 《아리랑극장》, 《연변창작가요제》, 《사랑으로 가는 길》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학교의 각종 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였으며 라지오나 텔레비죤방송의 《매주일가》프로에 나가게 될  창작가요를 불러달라고 청을 드는 작곡가들이 하나둘 찾아들게 되였다. 

이렇게 3인조 성원으로 소문을 놓게 된 박연은 《할빈의 여름》예술제에서 최려나, 변영화와의 3인창으로 1등을 따내였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매주일가총결산》에서는 현성해와 함께 2인창 《샘물골처녀》로 1등상을 받아안았으며 2003년에는 최려나와 함께 당시의 연변가무단 단장인 박세성을 따라 한국 남원시에서 열린 《춘향제》에 참가, 남원국립국악원 가수들과 더불어 정채로운 공연을 펼치여 환영을 받았다.

1992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소학반에 입학해서부터 줄곧 최려나와 한학급에서 공부하고 졸업후 함께 연변가무단에 배치받아 계속해서 2인창을 하게 된 박연은 최려나와 둘도 없는 단짝으로 가까이 보내고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쁨을 같이 나누고 고민이 있으면 힘을 모아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는 둘은 인젠 어머니들까지 친하게 지내면서 절친한 사이로 되였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

사회에 진출한후의 감수에 대해 물었더니 박연은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서 자기는 언제나 행운아라고 속심을 터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연변가무단지도부와 합창부의 선배님들이라고 한다.

연변가무단에 취직한후 공연에 참가하는것을 주업으로 삼게 된 박연은 텔레비죤프로에 많이 출연하던 학창시절에 비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텔레비죤프로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몇번이고 다시 촬영할수 있지만 무대공연은 련습이 없기때문이였다. 평소에 많이 듣고 배우고 공연이 있을 때면 선배들의 출연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장점을 배워두기는 했지만 무대에 올라서면 어쩐지 생각대로 되지 않아 큰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어느 한번 순회공연을 나가서는 반주테프에 맞추어 《새타령》을 부른다는것이 그만 《남원산성》을 불렀다. 잠간후에 틀린것을 발견했지만 중도에서 다시 부를수도 없어서 눈을 감고 야웅하는식으로 끝까지 불러내려갔는데 우연한 일치라 할가 반주가 맞아떨어져서 관중들은 가수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난생 처음 그렇게 큰 실수를 저지른 박연은 퇴장하자마자 울먹이면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자리에 있던 선배들은 야단을 치거나 책임을 추궁할 대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지도부에서 활동공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준 덕분에 박연은 연변가무단의 《천년아리랑》 등 가무공연에서 최려나와 함께 《제비타령》을 부르기도 하고 연변가문단을 대표하여 한국에 가서 《세계한민족아리랑축제》에 참가, 서울국립국악단 가수들과 함께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연변가무단이 2008년 북경올림픽개막식전의 공연에 참가할 때에는 최려나, 김선희와 셋이서 무용쏠로( 唱)를 담당하기도 했다. 

소분대공연을 나가서는 독창도 하고 대학교 3학년때 자비로 예술양성쎈터의 조선예술가를 모시고 가야금연주를 배운 밑천으로 가야금방창에도 참여한다는 박연은 2008년에 본직사업임무를 출중하게 완수하여 선진사업일군으로 평의되기도 했다.     

가정에서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라난 박연은 그래도 제일 고마운 사람은 어머니라고 말했다. 원래 도문시의 량식부문에서 사업한 어머니는 시장경제시대에 들어선후 단위가 해체되면서 로임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형편이였지만 딸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작심, 도문철도에서 전공으로 일하는 남편의 얼마 되지 않는 로임으로 투자가 많이 드는 노래공부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왔다.

소학교 2년에 중등전문반 6년까지 8년간 노래를 전공한 박연은 크고작은 행사들에 불러주는 사람이 많고 돈도 어지간히 벌게 되자 “중등전문학교학력을 가지고서도 밥을 벌어먹을수 있는데 꼭 본과학력을 따내겠다고  4년이란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생각하면서 가정생활도 그닥 유족하지 못한데 부모님들께 효도하는셈치고 공부를 그만하고 사회에 진출한 타산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학만은 꼭 다녀야 한다고 하면서 억지다짐으로라도 공부를 계속 시킬 잡도리를 했다. 당년에 어머니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대학본과에 진학하고 자기의 힘으로 학비를 마련하면서 공부를 견지한 박연은 사회에 진출한 지금에 와서야 딸을 좀더 큰 재목으로 키우려고 로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것 같다고 실토정하였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박연은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가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더욱 많은 지식을 배우고싶다고 대답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의 하나인 판소리가 연변에서 공간을 잃어가는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박연은 이제 한국의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나서 연변대학 예술학원시절 강신자선생님한테서 배운 판소리와 한국판소리의 장점을 받아들인 연변대중들도 접수할수 있는 독특한 창법을 모색하기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