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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희- 녀자이종격투기 세계 챔피언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2월11일 10시01분    조회:9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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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계를 더 놀래우련다
-녀자이종격투기 세계우승자 심영희사범

“녀자표도르”
세계우승은 누구나 해낼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꼭 해낼수 있다는 신심을 갖고 죽어도 영광이라는 정신으로 노력에 노력을 가하면서 앞으로 내달리는 강자만이 세계우승에 등극할수 있다.

이처럼 어려운 일을 심영희(1964년생)가 해냈다. 연변조선족출신인 심영희가 2007년 3월 메히꼬에서 열린 세계녀자격투기(PMA) 종합무술대회에서 우승에 등극하여 세계를 놀래웠다. 당시 상대는 심영희보다 22살 어린 메히꼬녀자격투기의 자존심인 이사벨 마르티네즈였다. 심영희는 쟁쟁한 명성을 날렸던 마르티네즈를 2회만에 KO로 꺾어놓았다.

2월 6일 오후 2시, 기자는 연길에서 심영희사범을 만나 인터뷰했다.

세계녀자이종격투기 우승이라면 성격이 우락부락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직접 심영희사범을 만나고보니 생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오똑한 코, 쌍가풀눈, 균형잡힌 몸매, 쾌활한 성미, 상냥하고 례절밝은 전형적인 조선족의 40대 예쁜 아줌마였다.

심영희는 1964년 연길시 장백향(지금의 소영향) 동신 2대에서 태여났다. 심영희는 어릴적부터 뛰여난 운동소질이 있어 두각을 나타냈다. 소학교때부터 륙상, 배구, 스케트를 즐기였으며 연길시소학교륙상경기대회가 있을 때마다 메달을 휩쓸었다. 소학교를 졸업할 때 특장생으로 연길시5중에 입학했다. 당시 교외에서 시내에 들어와 공부한다는것이 아주 힘든 일이였으며 친구들은 운동을 잘하는 심영희를 몹시 부러워했다. 심영희는 연길시5중에 입학한후 학교륙상대표팀의 주력선수로 활약했으며 길림성중학생륙상경기대회에서 여러번 금메달을 탔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심영희는 추천받아 연변1중에 입학했다. 심영희는 연변1중에서도 륙상, 배구, 야구 등 각종 운동을 빠짐없이 다 했다.

이처럼 운동소질이 좋은 심영희는 2007년에 녀자이종격투기 최고봉에 올라 “녀자표도르”라고 불리우고있다. (주: 표도르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말하는데 로씨야출신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종격투기선수다.) 심영희는 합기도 5단, 중국무술 5단, 검도 5단 총 15단에 킥복싱(散打)까지 못하는 격투기가 없다.

합기도를 접하다

기자가 어찌하여 이처럼 좋은 운동소질을 소유하게 되였는가고 물으니 심영희는 웃으면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겠지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심영희의 아버지 심종섭은 1945년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으며 194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로당원이다. 당시 심종섭은 격투를 잘 할뿐만아니라 아주 령리하여 중국인민해방군 모 부대 정찰반 반장으로 있었으며 상급에서 맡겨준 정찰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여 여러번 공을 세웠다. 후에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여 조선해방전쟁에 참가했으며 1956년에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5년 심종섭은 병으로 돌아갔다. 

심종섭은 자식들을 건강히 키우려고 아침일찍 일어나 애들을 데리고 부르하통하강변에 나가 달리기를 했으며 저녁이면 초막집 온돌우에 이불을 펴놓고 무술을 배워주었다. 령리하고 운동을 즐기는 심영희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가 배워주는 기초운동을 잘 소화해냈다.

학생시절에 심영희는 항상 힘센 아이들과 맞서 약자를 보호해주었는데 덩치큰 사내애들도 그의 상대가 아니였다.

기자는 “심영희사범은 합기도 5단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합기도이며 언제 어디서 합기도를 배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심영희는 “1988년 돈을 벌려고 한국으로 가게 되였는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합기도를 접촉하게 되였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심영희는 1988년 한국에 가서 식당일도 하고 음식배달도 했다. 어느 한번 체육관으로 음식배달을 갔었는데 벽에 걸려있는 우승띠를 멘 리각수(현재 세계격투기련맹<WFK> 사무총장)관장의 사진이 눈에 확 안겨왔다. 심영희는 너무도 신기하여 리각수관장에게 물었다. “저것이 뭐애요? 참 멋져요.” 그러자 리각수관장은 “일본에서 열린 경기대회에서 내가 세계우승을 했을 때 찍은 기념사진입니다”라며 “세계우승이 되면 이렇게 체육관을 사서 경영할수 있습니다”고 자랑했다.

“그럼 녀자도 할수 있습니까?” 

“물론 할수 있죠. 아가씨도 운동을 했는가봅니다.” 

“네, 어릴 때부터 아주 좋아했습니다.”

음식배달을 하는 20대 중국아가씨가 이렇게 나오자 리각수관장은 심영희더러 발차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심영희는 선자리에서 준비동작도 없이 발차기를 했다. 리각수관장은 힘있고 표준적인 심영희의 발차기동작이 마음에 들었다. 심영희는 리각수관장의 손을 꼭 잡고 “전 여기서 배우고싶어요. 꼭 열심히 수련하겠어요. 하지만 학비만은 싸게 해주세요.”라고 사정했다. 리각수관장은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온 20대 중국아가씨가 운동에 이처럼 애착심을 갖고있는것을 보고 너무도 감동되여 수련하라고 했다. 이때로부터 심영희는 리각수관장한테서 합기도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합기도란 중국어로 “合 道”라고 하는데 맨손이나 단도, 검, 창, 봉(棒) 따위를 사용하는 호신술이다. 공격보다는 수비를 위주로 하며 관절지르기와 급소지르기를 특기로 한다. 

심영희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체육관에서 합기도를 수련했다. 심영희는 수련할 학비를 마련하려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찾아서 했다. 지어 녀자의 몸으로 건축현장에 나가 모래치는 일도 했다. 온 하루 모래를 치고나면 팔굽이 마비되여 바로 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하고싶으면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심영희의 굳은 의지를 꺽지 못했다. 낮에 고된 일로 너무 지치여 한발작도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체육관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디에서 힘이 솟구치는지 심영희는 땀을 흘려가면서 열심히 수련했다.

이전에 취미로 운동을 즐기였지만 한국에 와서야 확실한 무덕(武德)정신을 배우게 되였다고 심영희는 말했다. )
무예를 수련하려면 례의정신이 밝아야 하며 정직하고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할수 있다는 정신력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하면 된다. 남들이 할수 있는 일을 내가 왜 못하랴!” 심영희는 합기도를 수련하면서 이와 같은 정신을 키우게 되였다. 당시 한국에는 시합이 많지 않았다. 리각수관장은 피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수련하는 심영희를 불러놓고 안타까와하면서 “앞으로 크게 발전하려면 그래도 미국으로 가야 하오. 미국엔 인재가 많고 또 시합도 자주 진행하오. 그러니 기회가 있으면 미국에 가서 그 꿈을 실현하오.”라고 차근히 일깨워주었다.

그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심영희는 더 큰 무대를 찾기 위해 1999년 34살 늦은 나이에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으로 떠날 당시 심영희에게는 남편과 아들까지 있었지만 세계우승이 되고싶은 그의 도전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미국에서의 이종경투기인생 성공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심영희는 ABCD마저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물론 경제적여유도 없었다. 그는 미용실에서 고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한달에 800딸라밖에 안되는 수입이였으며 그중 절반은 집세였고 나머지 돈으로 영어학습, 격투기수련,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날마다 우승이 될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떠한 좌절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학생시절에 운동만 해온 심영희는 공부가 싫증났지만 생계를 위해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시간만 있으면 TV를 켜놓고 전문 어린이들 프로만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씩 따라 읽고 따라 쓰면서 영어를 배웠다. 지어 밥을 먹다가도 영어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수저를 내던지고 영어사전을 뒤지였다. 이렇게 노력한 보람으로 현재 심영희의 영어수준은 상당하며 미국사람들과 마음대로 대화를 나눌수 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심영희의 입에서 영어단어가 툭툭 튕겨나왔는데 연변출신이 맞느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심영희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이종격투기인생을 시작했다.

이종격투기(  格斗技)란 다른 종류의 격투무술을 하는 선수들끼리 모든 싸움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격투기인데 종합격투기라고도 한다. 즉 차고 때리고 조르고 꺾는 등 인간이 사용할수 있는 모든 기술이 허용돼 지구상의 스포츠중 가장 잔혹한 종목이라고 불리우고있다. 하여 이종격투기는 근성, 정신력, 기술만으로 소화할수 있는 운동이 아니며 체력이 뒤받침되지 않으면 10전 10패가 필연이다. 

기자는 “현역으로서는 할머니라고 말할수 있는데 어떻게 체력을 유지합니까?”라고 물었다. 심영희는 “이 운동을 하려면 체력이 첫째입니다. 비록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전 항상 20대라고 생각하며 늘 체력을 올리려고 훈련을 견지하고있습니다. 기자선생님, 저의 팔을 잡아 보세요.”라고 말하면서 팔을 내밀었다. 기자가 호기심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보니 박달나무처럼 단단하였고 근육도 돌덩이와 같았다.

심영희는 1년 365일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산으로 뛰면서 강도높은 훈련으로 체력을 다진다고 소개했으며 차력도 련마했는데 승용차가 배우로 지나갈 정도라고 했다.

2003년 직업무대에 입문한 심영희는 통산 48번 출전에 45번 승리하는 성적을 올리며 2007년 3월 드디여 세계우승에 올랐다.

심영희가 세계우승에 등극하기까지는 눈물로 얼룩진 길이였다. 선천적으로 신체조건이 좋은 흑인을 비롯한 외국선수들과 당당히 싸워 이기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경기중 상대에게 맞아 생이발이 빠져나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너무 괴로와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리려다가 로인이 속상해할가봐 걱정되여 억지로 참고 또 참으면서 고통을 이겨냈다고 한다.

심영희의 어머니 김정순(72세)로인은 딸이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해주었고 처음으로 한국을 떠났을 때에도 외손자를 잘 돌봐주겠으니 걱정말고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라면서 큰 힘을 주었다. 딸이 메히꼬에서 열린 경기대회에서 드디여 세계우승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기뻐하면서 경기장면을 찍은 CD 40장을 사다 마을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한상을 푸짐히 차려 독보조로인들을 대접했다. 로인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이는 “심씨가문의 영광뿐만아니라 고향의 영광이고 연변의 영광이우다”라고 자랑하면서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고 한다.

무술도장 열고 후배양성

심영희는 미국과 메히꼬 곳곳을 다니며 각종 무술과 차력시범을 선보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미국대통령상까지 받아안았다.

심영희는 미국에서 경호원자격증을 획득하였는데 재미백의동포중 녀자로서는 첫번째이다. 2007년 2월 한국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2박 3일동안 항상 박근혜대표의 바로 뒤에서 경호를 책임졌다. 

미국에 있는 중국조선족들은 경기장에 나선 심영희의 모습을 보면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재미조선족뿐만아니라 미국과 메히꼬 관중들도 동방에서 온 “무서운 녀자”에게 열렬한 박수로 고무격려해준다고 한다.

심영희사범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팬들이 싸인을 받기 위해 한두시간 줄서는것은 기본이며 재미동포들은 그녀를 “민간외교관”이라고 자랑하고있다. 그럴 때마다 심영희는 아주 자호감을 느끼지만 겸손하게 그들을 보고 “경기를 계기로 세계에 백의동포를 알릴수 있다면 오히려 저에게 영광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심영희사범은 현재 미국 로스안젤스에서 무술도장을 차려놓고 후배양성에 힘을 다하고있다. 이 무술도장에는 현재 200여명이 수련하고있는데 대부분 외국제자들이라고 한다.

심영희사범이 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4가지 덕목은 백절불굴, 례의, 정신, 극기다. 심영희사범은 200여명 제자들에게 무술이 결코 “싸움”이 아니라는것을 강조하며 “무술은 남을 이기기 위한것이 아니며 자신을 이기는것”이라고 일깨워준다고 했다.

심영희사범은 또 “장애인쎈터”를 찾아가 무료봉사를 해주면서 그들에게 “나도 할수 있다”는 정신을 키워주고있다.

심영희사범은 현재 로스안젤스 중국동포협회 부회장직을 맡고있으며 중국동포들이 조직하는 각종 행사와 운동대회, 해마다 진행되는 “음력설맞이야회”에 적극 참가하며 후원을 해주고있다.

심영희사범은 “무술의 길은 끝이 없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세계를 더 놀라게 할 생각이다”고 다짐하면서 세계우승자가 되고나서도 계속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을 뛰면서 훈련을 견지하고있다.

"하면 된다.항상 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꼭 챔피언을 하리라는 정신으로 했던 같습니다. 새로운 계획이라면 새 선수들을 더 많이 육성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영화쪽으로도 발전할 생각이고 프로모터로 뛸 생각입니다."

무술합계 15단 “무서운 녀자” 심영희사범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신문 태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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