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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중국본사 박근태 사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8월2일 08시02분    조회: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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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중국본사 박근태 사장 인터뷰

  ▲ 박근태 사장님은 2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업해 오신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84년 대우실업 철강 1본부에 근무하다 그 해 홍콩지사 철강부로 발령을 받았다. 홍콩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하면서 홍콩 거래처 외 중국 거래처 및 중국 비즈니스 파트너 등 중국 지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홍콩에서는 주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는데 중국 지인들과 만날 기회가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중국어가 필수라는 생각에 홍콩에서 중국어 가정교사를 구해 퇴근 후, 주말 등을 이용하여 틈틈이 중국어를 배웠다. 당시에는 한중 수교 전이라 중국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그 덕에 유창하지는 않아도 열심히 중국어로 소통하려는 한국인이 좋게 보였는지 중국 파트너들과 비즈니스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중국 내륙에는 한중 수교 후 회사의 사업이 본토로 진출하게 되면서 93년 베이징을 시작으로 96년 광주, 이후 상해를 거쳐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박사장님은 인생의 황금시절을 중국에서 보내시는것 같다. 대우에 계실 때는 공업분야를 주로 다루었다면CJ에 오신 후에는 식품업, 인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생활문화관련 사업을 총괄하시고 계시는데, 이 두 쪽 사업은 성격상 너무나 다른 분야라고 생각된다, 20여 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해 오시면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아무래도 분야에 차이가 큰 것은 사실이다. 철강 등 중공업 분야를 담당하다 식품, 홈쇼핑 등 생활/문화와 밀접한 분야를 경영하다 보니 더욱 섬세해진 부분도 있고. 하지만 큰 줄기에서 중국에서의 사업을 순조롭게 풀어나가기 위한 노하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일례로 지난 20년 동안 중국에서 쌓아온 고객 및 인맥 노하우가 현재에도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특히 인간관계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저희 CJ의 대부분이 B2C사업인 점을 감안하여 현장에서 직접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기회를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판촉 여사원이나 점포 사원 등 간부뿐만 아니라 일반 사원의 의견도 들으며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지화된 링다오'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처럼 과제를 주고 수시로 확인하기 보다는 끝까지 두고 보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중국 직원들의 경우는 이렇게 과정에서 사사건건 간섭을 하기 보다는 결과를 평가하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 중국에서 사업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저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먼저 친구가 된 연후에 일을 도모한다'(先做朋友,后做生意)는 속담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이는 '꽌시(关系)'로 대변되는 휴먼네트워크의 중요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만큼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신뢰와 우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외환위기로 한국이 뒤흔들리던 때였다. 홍콩에 사는 중국 친구가 전화를 걸어 몇 백만 달러의 오더를 줬다. 상하이로 부임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외환위기까지 겹쳐 힘들지 않을까 하는 배려의 선물이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온 지인인데 그렇게까지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에 고맙고 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사업을 대할 때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 중국을 맨 처음 방문하셨을 때는 개혁개방 초기였는데, 그때 인상?

--80년대 중반 그때만 해도 번화가만 좀 벗어나도 거리에 택시보다 달구지가 더 흔할 정도로 여러모로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옷색갈들도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붉은 현수막들이 많이 걸려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지금 돌아보면 개혁개방 전의 중국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정적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중국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면 한마디로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년동안 중국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발전했지만 지금은 가속이 붙어서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작년도 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로 베이징은 서울이나 도쿄하고 크게 다를바 없다는 느낌이 들구요, 지금의 중국은 뭐라고 그럴가? 굉장히 다이너믹하고 에너지가 충분하다, 이런 부분들은 직접 만나는 지인들이나 젊은이들의 자신감에서도 쉽게 느낄수 있다.

 

 

(다시다 계정을 비롯한 중국내 CJ의 인기제품들)

▲ 박근태 사장님이 중국본사 사장으로 부임한지도 3년이 넘었는데, 중국 본사가 설립된 후 CJ의 중국사업 발전이 매우 빠른것 같다. CJ의 중국사업전략?

--먼저 중국 소비자들은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기 이전에는 제품을 신뢰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CJ는 중국 소비자자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제품생산과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동방CJ의 'Trust Building' 마케팅 전략이 바로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구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A/S, 환불제도 외에도 홈쇼핑 체험관을 만들어 고객의 신뢰를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방CJ 홈쇼핑)

또한 중국소비자들은 구매를 결정하는 데 있어 '구전효과(口碑传播)'가 상당히 크다. 주위 사람들에 의존도가 매우 큰 반면 모르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CJ는 식품사업에서 '구전효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현장밀착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약 500여 명의 판촉사원을 한 달에 한번 귀사교육 함으로써 제품 지식 전달력과 서비스를 제고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러한 구전 효과를 통해 다시다 계정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시장점유율 25%, 리테일(retail) 경로에서 2위라는 쾌거를 거뒀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다양성의 사회이다. 56개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화적 배경 아래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와 소비 패턴도 매우 다양하다. CJ가 사업에 앞서 진출하고자 하는 지역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전략으로 저희들은 가고 있고,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로 재현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CJ는 앞으로도 중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CJ그룹과 베이징 얼상그룹 합자해 베이징 얼상-CJ식품유한책임회사 설립)

▲ CJ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중국사업이 차지하는 몫이 아주 큰것 같다. 특히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만연되고 있는 요즈음, 돌파구가 내수시장이라고 할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CJ에게 있어서 경제위기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본다. 특히 최근년래 중국시장에서 CJ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아주 눈에 띄이는데, 이런 사업에 주력하는 있는 원인?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를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내수확대정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과 저희 그룹의 방향이 비슷하다. 저희 그룹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소비재 및 서비스/문화 등 내수사업으로 중국사업 확대에 있어서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사업에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국기업 CJ가 아니라 중국에서는 중국CJ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며 중국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 기업과의 합작도 이런 측면에서 추진하는 것이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하며 서로 발전해 나가자는 것이 저희 방향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영화제, 한국에서는 중국영화제 등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개최되는 중-한 영화제 등도 이런 CJ의 사업 의지가 발현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한국과 중국이 경제협력 관계를 넘어 문화 저변에서부터 이해를 바탕으로 신뢰관계를 쌓아나가는 데도 일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베이징얼상-CJ식품회사의 제품들)

▲ CJ가 제휴를 맺거나 협력하는 중국내 기업을 보면 백옥두부, 북대황 등 거의가 이미지가 좋은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는데, CJ의 이미지전략과 맞먹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도 되는가?

--CJ의 비전이라고 그럴가, 그건 "건강, 즐거움, 편리를 추구하는 제일 좋은 생활문화기업", 이건 한국에서의 비전임과 동시에 중국에서의 비전이다.

베이징에서는 리테일 마켓의 7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백옥두부를 가지고 있는 이상그룹과 윈윈할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서 협력하고 있고 식품안전 등에 특히 중심을 두고 있다. 북대황그룹은 흑룡강성에서 아시아 최대의 곡물생산기지인데, 저희가 사실은 쌀에서 나오는 쌀겨를 원래 버리게 돼 있는데, 거기에서 단백질을 세계 최초로 추출하는 기술을 CJ연구소에서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술을 가지고 할빈의 북대황그룹과 함께 윈윈할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서 합자회사를 차렸다. 결국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중국이 가지고 있는 현지화된 제품과 어떻게 결합시켜서 중한 양국이 서로 발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저희 목표이다.

 

(CJ가 하고 있는 사회공익사업들)

▲ 실제로 한 기업은 물론 한 그룹의 경쟁력은 브랜드 이미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보는데, CJ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말씀하신대로 사회적 책임이 굉장히 중요하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서비스를 넘어 사회적 책임까지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브랜드 파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CJ는 최고의 생활문화기업을 기업의 Identity로 삼고 사업 외에도 다방면에 걸친 문화 예술 지원을 통해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으로 앞장 서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천성 대지진 재난극복 모금활동을 비롯해 직원들의 정기적인 고아원 방문 및 지원활동, 연변 해란강 문학상 등의 작지만 꾸준히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존 레논의 아내이자 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단상처럼CJ는 중국에서도 중국 인민과 함께 꿈꾸며 이를 현실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사실 박사장님은 대우에 몸담근 시간이 CJ에 몸담근 시간보다 더 긴데, 지금의 CJ가 박사장님에게 있어서는 어떤 존재인가?

--신형 엔진으로 가파른 고개를 질주하듯 한국 경제가 그렇게 달리던 시절에는 청춘을 엔진으로 세상 넓은 줄 모르고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 시절에는 실적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 젊은 시절을 지나 세상을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시기에 CJ에 들어오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는 일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식구들을 책임지고 함께 꿈을 이뤄나가야 한다. CJ는 지금 나에게 있어 가정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젊은 적 품었던 꿈을 위해 달리는 후배들을 키워내야 하고 가족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이끌고 독려해야 한다.  

 

 

(중국에서 진행한 CJ의 엔터테인먼트사업들)

▲ 중국에서 사업하고 생활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

--중국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식품개발이나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에서 신제품을 개발해서 반응이 좋았을 때이다. 최근에 저희가 중국의 영화배우 장자이와 한국의 영화배우 소지섭이 함께 <非常完美>라는 영화를 찍었다. 그 영화가 8월 14일 중국 전역에서 방영이 되는데, 중국인들을 위한, 중국 현지인들을 위한 제품, 식품이나 엔터테인먼트 등 프로젝트를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눈높이에 맞게 개발해서 내놓았을때 반응이 좋았던 거…그리고 최근 2년전에 <맘마미아>라는 뮤직컬 오페라를 15일간 상영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저희가 자신을 얻어가지고 작년에 올림픽 폐막식 기념으로 <종극사명>이라는 무언극을 한국의 유명한 최철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연극배우들은 30명 전부 흑룡강성 써커스단의 중국배우를 뽑아서 국가대극원에서 두번 올린 적이 있고… 그걸 토대로 해서 중국과 한국을 잇는 문화행사들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http://www.ckywf.com/news_2007/data/xiezhen_1/1249553032.jpg

 

(CJ가 중국에서 하고 있는 외식사업) 

▲ 많은 사업을 하고 계시는데, 사실 사업에 열중하다 보면 가족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텐데, 사업과 가족간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고맙게도 아내가 양보하고 이해해주는 부분이 많다. 아무래도 잦은 출장과 빡빡한 일정으로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손을 꼽을 정도이지만 오히려 아내가 일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있고, 초기에는 가족들 모두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었을 뿐더러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짧더라도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이해의 바탕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항상 집사람한테 감사하고 있다. 참고로 저희 애들은 아들만 둘이 있는데 저하구 중국에 오래있어서 큰 애는 베이징대학 광고학과를 졸업했고 작은 애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해서 지금 둘다 서울에 있다. 저하구 중국에서 20여년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국에 베이스를 두고 중국과 관련된 비지니스를 하지 않을가 보고 있다.

그래서 저희 애들한테 제가 항상 얘기하는건 21세기 세계는 중화권의 세계이고 세계 금융위기가 접어들면서 중국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한 시기가 점점 다가오기 때문에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중국을 알지 못하면 전 세계 글로벌 인재가 되기 어려울거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제가 지금까지도 저희 그룹내 신입사원이나 과장들이 중국에 출장을 오게 되면 영어는 기본적으로 다 할줄 아니까 중국어 할줄 아는 사람 손들어 봐라, 중국어를 꼭 배워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오시면서 아쉬웠던 점은?

--아쉬웠던 점은 한국의 기업가나 많은 분들이 중국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고, 현재 한국의 유학생이 6만명이 중국에 와 있고, 중국의 유학생도 4만명이 한국에 가 있고, 그래서 이런 한중간의 우수한 인재들을 저희 한국기업뿐아니라 중국기업들도 함께 양성해야 되지 않나, 그래서 저희 그룹같은 경우에는 4만명 한국에 가 있는 중국유학생들 중 우수한 졸업생들을 뽑아서 저희 그룹에 한국에서 현지 채용해서 1,2년간 트레이닝 시켜서 다시 중국에 재배치하는 그런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중국기업들도 한국의 유학생들을 채용해서 현지에서 많이 양성하고 그런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앞으로 저희도 그런 한중 양국간의 학생들과 중국전문가들, 한국전문가들을 서로 많이 보완하는데 노력하고, 서로간에 작은 일가지고 문화와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인터넷상에서 서로 충돌하고 하는건 제한했으면 좋겠다.

▲ CJ의 향후 중국사업비전?

--CJ는 중국을 전초기지로 하여 글로벌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려고 하고 있다. 2013년이 저희 그룹의 60년 되는 해이다. 그래서 '2013년 글로벌 기업 CJ' 로 거듭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비전을 이루는 데 있어 중국은 전초기지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역량을 중국 현지로 이전하는 한편 중국 사업의 현지화, 인재의 현지화를 가속화하며 중국 속의 CJ로 거듭날 것이다. 그 외에도 건실한 중국 기업들과 전략적 합자를 통해 윈윈의 사업모델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이로써 CJ는 탄탄한 중국 사업을 기반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기업 CJ, 전세계인의 건강하고 즐겁고 편리한 생활에 기여하는 CJ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중국국제방송 200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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