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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자-민족음악의 맥 잇는 인간문화재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4월5일 11시00분    조회: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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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인간문화재
- 남도민요 판소리의 보유자 강신자 그리고 그의 민족성악발성체계


단아한 자태에 투명한 피부, 녀성미가  흐르는 우아한 모습, 도저히 70고개에 오른 녀성이라고 믿기지 않는 강신자교수는 실제 나이보다 퍽 젊어보였다.


2001년 한국 서울에서 있었던 《제3회한국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에서 강신자교수의  제자들인 최려나가 외국인 최우수상, 변영화가 대상을 안아오면서부터 남도민요 판소리의 명인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해서부터 지난 2006년에는 전국청년가수 CCTV콩클에서 변영화가 토속창법조 은상을 받아안으면서 더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지난해에 산서에서 열린 전국적인 민가콩클에서 토속창법 은상을  받은 박소연학생이 지난 연변TV음력설야회에서 《고향의 꿈》을 초고음으로 완벽하게 불러 센세이숀을 몰아왔고 최려령학생은 2010년 전국청년가수 CCTV콩클에 참가할 길림성의 유일한 대표로 선정되여 신선한 화제거리를 던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자를 빛나는 성공에로 이끌어준 스승 강신자교수가 20여년간 고심히 연구 개발한 중국조선족 민족성악발성법이 이젠 많은 전문가들과 관중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이르러 중국조선족의 민족성악학과건설에서 관건적인 한몫을 담당하고있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강신자교수만의 특유의 발성체계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된것이다.

고희를 바라보는 년세임에도 아직도 한주일에 30시간씩 활발히 교수를 하면서 남도민요 판소리를 고집하는 외길을 걷는 인간문화재 강신자교수의 발성훈련체계는 재래의 민속음악의 한갈래로부터 중국조선족전통음악유산으로 발돋움하게 되고 민족성악학과건설에 이바지하는 가운데서 개발되고 체계화되였다는것이 음악리론전문가들의 보편적인 평이다.

중국의 유일한 남도민요 판소리 보유자 강신자

기자: 50년대 말, 남도민요 판소리지망소녀였던  강교수님께서는 당시 민간예인이였던 판소리의 전수자 박정렬(녀)에게서 판소리를 전수받은 유일한 수제자였다면서요?

강신자: 맞아요. 천입민족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제일큰 집거지인 연변땅에는 반도의 북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았던데 비해 남에서 온 이주민들은 얼마 없었던 까닭에 남도민요 판소리 보급이 전혀 이루어지지를 못하였지요. 따라서 판소리에 대한 료해나 흥취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의식중에 판소리는 탁성이란 인상이 고작 전부였지요.

예로부터 전통적인 남도창법은 창자(唱者)가 수년을 기약없이 깊은 산중에 들어가 목에 피가 터질 정도로 독공을 거쳐 득음(得音)을 하는것을 기본으로 했기에 무리한 수련으로 인하여 성대가 파렬돼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초인간적인 노력끝에 기량을 닦게 되면 비로소 소리군으로 자리를 굳혀갈수 있었거든요.

기자: 1987년 연변예술학교에서 남도민요학과를 설치할 때 강교수님께서는 적임자로 지목이 되여 예술학교로 전근해오게 되였다면서요?

강신자: 네, 연변예술학교에 전근되여 1989년 김월녀를 수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저의 남도민요 판소리교수생활이 시작되였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남도민요 판소리에 대한 깊은 료해가 없었던 저는 무작정 저희가 그렇게 전수받아왔듯이 학생들에게도 남도민요 판소리란 어떤것인가를 스스로 느껴지도록 감성적인 방법으로만 가르쳤지요.

1992년 19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연변음악가협회 회원들을 초대하여 회보공연을 가졌을 때 진성을 바탕으로 생소리로 부르는 남도민요 판소리는 되려 학생들의 성대를 파괴시킨다고 뜻밖에 《남도민요 판소리를 학과에서 없애치워야 한다》고 할만큼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랭대를 받는 가운데서도 당시 민족음악학부 주임이였던 방룡철(오래오래 앉으세요 작곡자)선생의 지지와 고무가 큰 뒤심이 되여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10년을 기다려주세요! 그때 다시 봅시다.》고 울분에 차 속으로 웨쳤지요.

10년을 기약하고 야심찬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사실 박정렬선생한테서 판소리를 전수받을 때부터 재래식의 굵은 탁성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발성방법이 그닥 과학적이지 못한것임을 침통하게 느껴왔어요.

랑만의 시절, 벨칸토창법과 양악기의 매력에 빠져서 민족음악의 중요성을 터득하지도 못한채 방황하고있는 저에게 《연변에서 남도민요 판소리의 유일한 계승자로서 반드시 이 갈래를 살려야 한다. 우리 민족 음악을 우리가 계승하지 않고 누가 계승하겠냐?》고 하시던 김태희교장의 호소는 너무도 절절한것이여서 중국땅에서 남도민요 판소리의 유일한 제자립장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민족음악유산을 지키고 부흥시키는 과업이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한편 어떻게 하면 탁성을 제거하여 남도민요 판소리창법을 풍격적특징을 그대로 보존하며서도 보다 맑은 소리로 부를수 없을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소리의 개변을 위해 발성을 연구하기 시작했거든요.

기자: 전통음악을 계승한다고 해서 옛날의 낡은것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부단히 변화발전하는 시대맥박에 적응할수 없으며 현시대 사람들의 심미추구에 만족을 줄수 없어 이에 따르는 연구가 필요했을텐데 강교수님께서는 교수방법면에서 어떤 탐구를 하셨는지요.

강신자: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에서는 벨칸토창법이 성행했지요. 가성을 바꾸어부르면 어떨가 하는 생각에 저는 중앙음악학원 엽패영(叶佩英)선생한테서 2년간 수업을 받고 학교에 돌아온 뒤 소리를 갈아가지고 몇년동안 줄곧 수업에만 열성을 몰부었지요.

한해 또 한해 무수한 실천과 실험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소리형태(질)부터 개변해야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였습니다. 부단히 교수실천을 총화하고 허심탄회하게 다른 성악교원들의 의견청취도 하면서 자신을 제고했지요. 몇년간의 교수경험에 따르면 부모의 리혼으로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 극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패률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미 졸업한 최리나, 김선희, 박연, 김해연, 변영화, 박소연 등이 좋은 실례로 될것 같습니다.

저는 전통의 계승(继承)과 전승(传承)에 있어서 옛날의 연창형식이 현대 사람들의 호감과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고있음을 파악하고 현대인의 미감에 맞으면서도 전통적인 판의 흥을 그대로 이을수 있게 무대에서의 짜임새나 행동거지에서도 변화를 시도했지요. 그래서 부채와 같은 소도구의 리용으로 맛과 멋을 살렸거든요. 최근에는 가야금병창도 곁들여서 표현의 다양화를 추구했구요.

통속가곡은 감정표달이 직설적이고 절제된 학원파의 예술가곡의 표현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즉흥적이며 인간내면의식의 직설적발로인 동시에 섬세한 정서적표출이 농후한 특점을 갖고있지요. 그래서 저는 또 학생들의 음악감각을 키우기 위해 통속가곡도 꺼리낌없이 수용했습니다...

이렇게 강신자교수는 전통적 남도민요 판소리 원유의 선률, 장단의 풍격특징을 그대로 보전하면서도 우리 민족의 심미추구에 맞는 보다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가창형식과 표현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우리 민요를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민족음악의 한갈래로 다지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강신자교수의 민족성악발성체계

기자: 강교수님께서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우리 민족 전통적인 남도민요 판소리를 현시대 대중들의 심미특점에 맞는 음악형식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하여 원 전통 남도민요 판소리의 풍격과 민족특색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초에서 보다 구성지고 맑은 소리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창법연구를 거듭한 토대에서 우리 전통창법을 개혁하여 다른 창작가곡도 부를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고 할수 있는데 강교수님의 민족성악발성체계의 정수인 《선률발성법》에 대해 말씀주시죠.

강신자: 저의 《선률발성법》 은 반음씩 올라가는 서양의 벨칸토발성법을 인용하면서도 그냥 모음 몇개만으로 발성을 하는것이 아니라 다년간의 교수실천을 통해서 열심히 실천하여 엮은 30여개의 민요나 판소리선률을 도입한 발성훈련을 말합니다. 장단적, 가락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있는 이 《선률발성법》은 소리의 위치에 대한 감각을 키워줌과 동시에 음악감각과 장단감각을 함께 키울수 있어 보다 효과적이지요. 저는 발성의 기본은 소리의 모임점이 한 위치에서 탄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음과 음사이를 지날 때 이음새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흔히 발성훈련시에는 고음을 어렵잖게 넘기지만 지정된 노래에서의 고음은 잘 소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의 선률발성법에 특점이 있다면 곡마다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고음발성이 가사와 선률, 장단이 곁들여진 체화된 훈련으로 다스려져있기때문에 실제 연창에서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며 아울러 남도민요 특유의 억양과 굴림, 미분음처리와 변화다양한 장단의 멋을 터득함에 있어서 지름길의 역할을 한다고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린학생들에게는 음악감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반드시 정확한 위치에서의 농음을 고의적으로 훈련시키군 합니다...

했기에 성악리론학자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 조인복선생은 말한다.

강신자교수의 《선률발성법》은 중음, 고음을 막론하고 진성만을 리용해도 구성지면서도 맑은 소리를 낼수 있도록 하는것이 특징적이다. 환성구훈련에서의 그만의 특이한 해결법으로 진성이 고음구를 원활하게 넘길수 있다는 점도 그 어느 성악교수법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이라 하겠다. 음계발성과 결합된 선률발성법은 음악감과 장단감각을 동시에 키울수 있어 보다 효과적이며 민요선률의 억양과 장단을 원숙히 장악하고 연창표현의 형상성을 놓이는데도 자못 큰 의의가 있다. 이는 강신자교수의 성악교수법에서 중추적역할을 한다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러한 민족성악발성체계의 소유자였기에 강신자교수의 제자들인 김현자학생이 1999년 11월 남녕에서 열린 제9기 《공작새》컵 소수민족성악콩클에서 민족창법 3등상을 받았고 같은 해에 김화학생이 한국 제1기 《장흥가무악제전》에서 외국인 판소리 대상을 받은 뒤를 이어 최려나학생과 변영화학생이 2000년 11월 한국 제2기 《장흥가무악제전》에서 각기 외국인 판소리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고 변영화학생은 2001년 한국아시아 한민족축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리고 최련화, 박연, 김선희 3인조가 2002년 연변청소년TV콩클 길림성경연구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강화학생이 2003년 9월 한국 아시아 한민족축제에서 민요부 금상을 받았으며 변영화학생은 2003년 11월 남녕에서 열린 전국 민족예술절 제2기 중화민족예술콩클에서 민족창법 우수상, 2004년 원단 CCTV서부민요성악콩클에서 토속창법 1등상, 2006년 7월 전국청년가수콩클 개인종목결승전에서 은상을 받았고 박소연학생은 2009년 9월 산서에서 열린 전국 민가 및 토속창법콩클에서 토속창법 은상을 받았고 강신자교수 자신은 2006년 10월 CCTV문예쎈터, 중국무용가협회, 중국음악가협회에서 공동주최한 제1기 CCTV 《중국민족민간가무제전》에서 민족문화예술유산 보호계승 특수공헌자로 《공헌상패》를 받았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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