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창호- 연변민족예술가협회 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월10일 08시41분    조회:953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일보 2011-01-10 허국화 기자]
역경속에서 음악은 정신적기둥이 였다
—김창호선생 음악인생 편린

기자가 찾아갔을 때 김창호선생은 한창 컴퓨터앞에 앉아있었다. 회원들의 작품을 편집하는중이였다. 김창호선생은 기자에게 《음악과 문학》라고 적혀진 잡지를 건네줬다. 김창호선생이 회장을 맡고있는 중국민족예술가협회 연변분회인 연변민족예술가협회에서 꾸리고있는 문예종합계간잡지였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음악과 문학》잡지의 편집을 맡고있는 김영자선생이 잡지의 편집에 관해 토론할것이 있다면서 찾아왔다고 한다. 김창호선생이 연변일보에서 취재하러 왔다고 소개하자 김영자선생은 책꽂이에서 김창호선생의 작품집을 꺼내면서 김창호선생은 5분이면 작곡을 완성하고 곡마다 특색이 살아있고 중첩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김창호선생은 웃으면서 그건 다 어릴적의 “풍부한” 생활경력때문이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반혁명, 조선특무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김창호선생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지주, 부농, 력사반혁명분자, 탐오분자들로 조성된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였고 양몰이, 소몰이, 변소치기 등 궂은 일을 해가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김창호선생은 음악에서의 재능을 보였지만 반혁명가정이라는 루명때문에 농촌마을의 선전대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마을에서 사는 리종진선생과 십여리 떨어진 향양마을에서 사는 오영선생한테서 음악지도를 받을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김창호선생은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악기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짬만 나면 독서를 했다고 한다. 김창호선생이 독서를 하면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홍위병들이 반란하러 온다고 하여 바삐 책들을 울면서 태웠는데 반천이 넘어서야 탔다면서 그때에 책은 다른 종이에 비해 오래 탄다는것을 알았다면서 웃는것이였다.

이 모든것들은 김창호선생이 작곡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그는 감각이 예민하여 주제를 빠른 시간내에 포착했고 가사의 정감을 정확히 표달할수 있는 운률이 머리에 떠올려 즉석에서 작품을 마무리짓군 했단다.

1985년에 이르러 김창호선생은 4년간 중국통신음악학원 리론작곡전업에서 공부하면서 음악리론에 대해 정규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후로 그는 작곡뿐이 아니라 음악작품에 대한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김영자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김창호선생은 협회에서 조직하는 학습반에서 음악창작과 음악리론에 대한 강의도 진행한다고 한다.

자습으로 작곡가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창호선생은 작곡을 계속 하는 한편 지방문화예술이 사라져가는것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고저 바삐 돌아치고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중국민족예술가협회에서 김창호선생을 상무리사로 초빙한다는 전화였다.

김창호선생이 다년간 1300여수의 작품을 창작해왔고 그중 우수한 작품은 국가, 성, 시에서 많은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물소리 새소리”, “부모님”, “생일 축하해요”, “연변녀자”, “보석가락지” 등을 꼽을수 있다. 그리고 작곡집 《새소리 물소리》, 《연변녀자》, 문학전집《랭혈동물과 인간》, 유머어집 《김창호와 유머어》, 음반 《김창호작곡집》 등 도서와 음반도 펴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광동지역 모바일 부품 선두주자 [심수 할루야전자 올들어 매출 실적 1억 2000만달러] 조선족 기업인 남화섭 총재(42세)가 이끄는 심수 할루야전자유한공사는 중국 최고의 모바일 부품 판매, 개발회사로의 비전을 꿈꾸며 이 분야에서 광동지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고신기술 분야의 부품 수출입 무역이 주업인 이 회사...
  • 2005-09-07
  • [정의의 부를 위한 사업] —한국 '731부대죄증'연구소 소장 허유선생 인터뷰 '저가 중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731부대에 대한 료해는 교과서나 영화를 통해 약간 아는 정도였습니다. 1990년도 사업차로 중국에 왔다가 중국의 731죄증진렬관을 참관하게 되였는데 그때 일제침략군의 잔인무도한 폭행에 격분을 금치 못했...
  • 2005-09-06
  • 중국 문단에서 어색한 세대로 불리우는‘70후’ (70년대 생을 말함) 작가들은 상하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군체로서 4년전부터 ‘미녀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였을뿐 실력파들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70후’작가군체에 ‘미녀작가’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력파도 없지 않았으며 ‘미녀작가’속에서도...
  • 2005-09-06
  •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이웃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과의 내왕이 밀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의 위치도 두드러집니다. 일찌기 공화국이 창립되기 전인 1940년대에 이미...
  • 2005-09-05
  • 베이징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한국부 엄춘연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기로 약칭함) 엄춘연(이하는 엄으로 약칭함) 기: 안녕하십니까? 엄: 안녕하십니까? 기: 바쁘신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본인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립니다. 엄: 저의 회사는 베이징시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 회사라고 하는데...
  • 2005-09-05
  • 기: 오늘의 문화현장에서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부장으로 다년간 활약하면서 많은 텔레비죤문예프로를 제작하셨고 또한 많은 훌륭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신 고창모선생님과 이야기를 자리를 함께 했다. 음악에 뜻을 두게 될 때는 언제부터였는지? 고: 집의 부친이 바이올린을 켰고 삼촌이 첼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
  • 2005-09-05
  • 베이징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김영 지배인과의 인터뷰 [img count='1' width='350' img] 사회자: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전통산업의 양적 팽창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산업에 대해 아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IT산업의 육성을 21세기초 국가의 중점산업 발...
  • 2005-09-01
  • 중앙민족대학 김명숙 선생님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전부 기로 약칭함) 김명숙(이하는 전부 명으로 약칭함) 기: 올해 7월이면 학생들이 졸업이잖아요. 현재 반급의 32명 학생들의 취직 방향은 어느정도 실현돼 가고 있습니까? 명: 취직은 학생들이 아직 자기가 취직한 자리를 공개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한두달 정도...
  • 2005-09-01
  • 중국기업문화촉진회 조선족연의회 김정섭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자)안녕하십니까? (사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녜, 오늘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주시고 방송국까지 찾으시여 감사합니다. 백마강음식점 하면은 베이징에서 참 오래됐다는 인사을 받게 되는데요, 최초 영업을 시작한지는 언제지요? (사장) 백마강음식점은 19...
  • 2005-09-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