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훌륭한 민족간부“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3월6일 15시19분    조회:797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길신 오기활기자 03-05 ]   3월 5일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의 산파, 초대주장, 200만 조선족을 대표한 연변의 얼굴 ㅡ 주덕해동지 탄생 100주년이다.
주덕해동지는 중화민족의 훌륭한 민족간부였다.

1984년 5월 12일 호요방총서기는 <<주덕해동지는 우리 당의 아주 훌륭한 동지이며 조선족의 수령>>이라며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께는 여러번 주덕해동지를 훌륭한 동지라고 말씀하셨다>>고 덧붙혔다.

<<주덕해기념비>>제막식에서 중앙정부를 대표한 황광학의 추도사는 <<주덕해동지는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걸출한 대표이며 중국 조선족 인민들이 공인하고 경모하는 지도자이며 우리 나라 소수민족가운데서도 가장 탁월한 인물입니다>>고 했다.

연변대학 김병민총장은 <<훌륭한 민족간부는 우선 자기 민족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 민족의 리익을 대변해야 한다. 자기 민족을 위할줄 모르는 간부는 비단 자기 민족의 환영을 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타민족의 존경도 받을수 없다. 이는 무수한 사례들이 증명한다>>고 했다.

1949년 2월 주덕해가 연변의 제1책임자로 부임되여 올 때 그는 연변에 기필코 조선민족이 자치권리를 행사할수 있는 자치구를 세우겠다고 결심하고 자치구창립의 구체적인 방안을 중앙과 성당위에 제기, 중앙정부의 관심, 배려로 1952년 9월 3일 연변대지에 주덕해동지가 오매불망 꿈꿔온 자치구가 마침내 힘차게 발돋음을 하였다.

연변이 문화와 교육의 고향으로 부상된것은 주덕해동지의 공로다.

1950년대에 주덕해동지는 선후하여 연변사범학원, 연변농학원, 연변의학원, 연변예술학교를 세운 뒤를 이어 김시룡(김시룡합작사 사장)을 부추켜 1955년 5월 1일 중국의 첫 농민대학인 연길현동성새벽농업대학교를 창립하였다. (1982년 여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사찰단이 동성새벽대학을 방문하고 상당한 자금까지 지원해주었다.)

1956년 주덕해동지는 북경회의에 갔다가 중앙민족학원을 찾아보고 돌아와서 우란후(몽골족)교장에게 <<중앙민족학원에는 왜 한족과 몽골족뿐이고 조선족은 한명도 없는가?>> 며 조선언어학부를 세우도록 편지를 썼다. 그래서 조선언어학부가 세웠다고 한다.

주덕해동지는 실사구시사업작풍의 전범이였다.

1962년 6월 22일 주은래총리가 연변을 방문할 때 그는 실사구시적으로 연변의 사업성과를 회보한 후 연변에 존재한 20여가지 난제를 제기하여 상급정부로부터 관개시설, 농업기계, 화학비료등 생산설비개설의 지원을 쟁취하고 입쌀, 해산물, 술, 비단, 고무, 석탄 등 생필품특수공급을 쟁취했으며 문화, 교육, 신문, 출판 등 분야에 직면한 난제들을 풀었다.

주덕해동지는 백성들이 제기하는 사소한 문제도 소홀치 않았다.

<<50년대 명포수>> 김영덕(88세, 도문)은 <<언젠가 사냥길에서 주서기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무슨 곤난이 없는가고 묻기에 량식난으로 사냥개를 키우기가 힘들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며칠후에 시량식국에서 사냥개의 <공량증>을 발급하며 그때만난 분이 주덕해라고 알려주더라>>며 지금도 주덕해동지를 종종 외운다.

필자는 주덕해탄신 100주년을 맞으며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간부는 자격이 없다. 주덕해처럼 민족을 위해 헌신할줄 아는 간부야말로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할수 있다>>는 최채(제1임부주장)동지의 말씀과 <<최채동지의 이말씀은 그의 유언이고 민족의 리더로서의 그의 좌우명이며>> <<우리 민족간부들이 나아갈 앞길을 밝히는 등대다>>라는 김병민총장의 말씀을 전체 우리 민족간부들에게 추천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현대무의 창시인 조선족무용가 김성   [신화사  2011-10-06 길신종합]알려지지 않은 변성수술 전후의 모습 1968년에 출생한 중국 조선족무용가 김성은 1995년 북경의과대학 정형외과병원에서 변성수술을 거쳐 남성으로부터 녀성으로 변신, 그는 이름난 현대무용가로서 국내외서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200...
  • 2011-10-07
  •       프로 진행중인 리철용(왼쪽사람) 라지오방송프로의 조선족사회자(主持人)가 중국신문상 2등상을 수상했다. 북경인민라지오방송국의 우수사회자인 리철용(방송명 方达, 40세)이 《희토를 배추값에 팔았다니…》라는 제목으로 뉴스탐방프로를 성황리에 사회한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 8월에 있은 제...
  • 2011-10-03
  • 주칭다오 대한민국총영사관 동포업무 담당 오세천 영사 인터뷰   비교 우세의 포기는 자멸의 길        중국 관련법규에 편입되는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오세천 영사 프로필   주로스안젤레스총영사관         주루마니아대사관  &nb...
  • 2011-09-30
  • 한창 열연중인 강일수씨(오른쪽 사람)    “일본놈”에서 “촌장”으로 새로운 도전   [연변일보 2011-09-27 허국화 기자] 장춘영화제작소 강일수씨를 만나보다 “새중국영화의 요람”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종합성적인 영화제작소인 장춘영화제작소...
  • 2011-09-27
  •     연변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새 연변사람》    유대진프로필 1959년 10월 10일 한국 충남 논산군 출생 한국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 졸업(1990년) 미국 이민(1993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국제대학 심리교육학과 수료(1996년) 미국 샌프랜시스코 한이 TV뉴스 앵커(1995년―1996년) 일요시사 신문...
  • 2011-09-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09-21  리덕권 기자] 료녕사회과학원 조선반도연구소 소장 김철(1966년생)씨는 조선반도 특히 조선에 대한 깊은 연구로 국내 조선반도연구학자들속에서 점차 전문가의 지위를 굳혀나가고있다.   1989년 료녕사범대학 정치학부를 나와 심조1중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철씨는 1994년...
  • 2011-09-21
  • [길림신문 2011-09-19 최승호 기자] 재한중국동포축구련합회 곽용호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 서울, 가리봉동, 대림동 조선족 밀집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을 보느라면 《재한중국동포축구련합회 회원모집》광고를 심심찮게 볼수 있다. 이를 보느라면 역시 우리 민족은 축구를 떠나서 살수 없는 민족이구나 하...
  • 2011-09-19
  • [길림신문 2011-09-14  김룡 김청수 기자]지난 9월 2일, 왕청현 제18차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가 열리던 날 왕청현행복사회구에 거주하고있는 리강춘씨는 선진개인으로 표창받게 되는 기쁨을 안고 이른 아침 5시반부터 민족복장을 떨쳐입고 대회장에 입장하였다. 드디여 8시가 되여 뢰포가 울리며 대회의 개막을 알림과 ...
  • 2011-09-14
  • [길림신문 2011-09-08 전춘봉 기자]충주시중국재한교민협회 정춘실회장을 만나     정춘실회장    서울에서 고속뻐스로 1시간반 달려 충북 충주시에 이르니 벅적거리는 서울보다는 퍽 아늑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부터 이곳에는 청주호,월악산국립공원을 비롯해 아름다운 명소가 많다는 소문...
  • 2011-09-09
  • [길림신문 2011-09-08 전춘봉 기자]《한중 컴퓨터》 박광현사장의 창업이야기     《한중 컴퓨터》의 박광현사장 서울 지하철 대림역 8, 9, 12번 출구로 나가면 입구에 《한중컴퓨터》라는 간판이 한눈에 안겨온다. 누가 봐도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위치다. 대림동을 비롯한 기타 조선족동포 밀집지역에 ...
  • 2011-09-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