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농악무의 스승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1월17일 16시30분    조회:75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하태일

10월중순의 하루 한 낯선 녀성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연변문공단에서 농악무를 배워줬고 연변예술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변의 농악무에 관한 보도나 론문에는 우리 아버지의 업적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전화를 받은 즉시 북경에 살고있다는 60여세의 언니와 연길에 살고있는 동생 자매들을 만났다. 사연은 이러했다.

하태일(河兑镒)선생은 1906년 경상남도 남해군 동천리의 한 농민가정에서 셋째아들로 태여났다. 가난때문에 학교문앞도 못 가본 소년 하태일은 다행히도 어릴 때부터 농악무를 가르치는 고향의 전통에 힘입어 7세부터 농악무를 배웠다. 그것도 농악무중에서 가장 인기높은 상모춤을 배워 그 어느 아이보다 뛰여나게 춤을 잘 추는 춤군으로 자라났다. 매년 추석이나 설명절이 돌아오면 소년춤군은 농악대를 따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공연하러 다녔다.

1936년 하태일선생은 식구를 이끌고 《북간도》라 부르는 지금의 연길시에 와 등짐을 풀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연길시내에서 땅을 파고 상수도를 설치하는 고된 육체로동을 하면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일이 없을 때는 경상남도에서 이주해온분들이 모여사는 지금의 서시장북쪽에 있는 친구네 집에 모여 농악놀이를 했다.

1951년 비오는 어느날, 하태일선생에게는 반가운 일이 생겼다. 그때 연변문공단에서는 민족문화예술을 발전시키라는 당의 지시와 자치주 주장이신 주덕해동지의 직접적인 배려로 연변문공단 김태희단장이 나서서 민간연예인들을 초빙했는데 하태일선생도 그 민간예인중의 한분이였다. 그때부터 연변문공단에서는 《매일 저녁 양마차로 아버지를 모셔가 배우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치게 하고는 양마차로 집에 모셔왔다》. 얼마후 그는 문공단원에 채용되였다.

연변문공단의 저명한 발레무용가 조득현선생은 그때부터 하태일선생한테서 한보한보 농악무를 배우면서 그 농악무를 무대공연 프로로 개편, 창작하게 되였다. 하태일선생은 농악무를 가르치는 한편 젊은이들과 함께 주와 길림성, 동북3성의 문예콩클무대에 올라 여러차례 상을 탔다. 1957년 국가문화부에서 주최한 전국무용대회에서 연변가무단에서는 농악무를 무대에 올려 조득현선생은 농악무 안무우수상을 받았고 하태일선생은 주연 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모주석 등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았다.

1957년, 주덕해주장의 관심과 배려하에 연변예술학교가 창립되였다. 연변문공단에서 무용교원으로 50세를 훌쩍 넘긴 하태일선생은 1959년 7월부터 연변예술학교 무용교원으로 전근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태일선생은 춤군이면서 소리군이여서 《춘향전》,《진도아리랑》 등을 썩 잘 불렀다.

1975년 9월, 농악무의 스승인 하태일선생은 그 소중한 농악무유산을 후대들에게 더 많이 전수하지 못한 유감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하태일선생의 딸들이 연변무용계와 문예계의 여러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니 이러한 《옛말》을 모두 잘 알고있었고 그외에도 생동한 《옛말》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에 얻은 교훈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아직 이러한 력사적인 조선족문화예술인물 특히는 이미 세상을 뜬 인물을 발굴하고 상세한 기록과 연구를 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는것이다. 현재 우리앞에는 여러가지 력사저작이 펼쳐지고있지만 력사인물에 관한 더욱 구전하고 학술적가치가 있는 저작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혁명투쟁시기 력사인물에 대한 연구는 많은편이지만 반면 문화예술인물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적은것도 사실이다. 더우기 지금의 열린 세상에서 많이 흩어져 살아가면서 이러한 연구사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영원히 되살릴수 없는 흠집을 남길것이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정리함에 있어서 그 뿌리를 정확히 찾아내고 그 문화유산의 전승과정을 되도록 정확하게 밝혀내여 문화유산의 력사적인 흐름을 밝히고 계속 전승하는것이다. 민요 《아리랑》, 《도라지》, 《노들강변》 등은 어떻게 우리에게 전승되였을가? 《농악무》, 《장고춤》, 《물동이춤》 등은 어떻게 전승되였을가? 《춘향전》, 《심청전》 등 고전은 어떻게 전승되고 무대에 올려졌을가? 이러한 과제는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깊이 진행될뿐만아니라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런 문화유산들이 대중속에서 계속하여 전승되게 하는것도 아주 중요한 사명이다.

올해 7월, 《연변인물연구회》가 연변인물과 중국조선족인물 연구의 대장정을 위해 닻을 올렸다. 앞으로 《연변인물연구회》가 실사구시적이고 력사적이며 넓은 시각으로 연변의 인물과 중국조선족인물들을 발굴하여 권위적인 《인물록》, 《인물평전》, 《인물전기》 등 책자와 인물영상다큐를 펼쳐낼것이라 믿는다.

김희관(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국장)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겨레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음악인생 음악인생 60여년에 노래 500여수 펴낸 동희철선생을 찾아서   60여년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직전부터 음악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음악인재를 양성하고 수많은 명곡들을 지어 세인을 감화시켜 존경을 받는 음악인이 있다. 바로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음악부 주임사업을 하다가 ...
  • 2012-03-31
  •   단동시내에 자리잡은 “고려거(高麗居) 복춘점”, “고려거 빈강점”, “해당관” 등 대형음식체인점은 단동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본 유명한 음식점들이다. 이 음식점들의 주인은 박상화(38세)씨, 3개 체인점을 소유한 주인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아담한 체격에 예쁘장한 얼굴...
  • 2012-03-30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1   동북농업대학 강효문 동물의학박사 (흑룡강신문=하얼빈) 마국광 기자, 리흔 실습생 = 동북농업대학의 강효문( 42세. 사진 ) 동물의학박사가 동물약물 연구개발 분야에서 활약하고있다.   길림성 돈화시 출신인 강박사는 1995년 연변대학 농학원 축목전업을 졸업, 2003년 서울대학 ...
  • 2012-03-28
  •   칼과 가위로 승부를 건 사나이 ㅡ심수항영오금제품유한회사 서정파사장 “좋은 선배와 친구들이 있다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로서는 력부족인것을 좋은 선배, 친구들이 있어서 공장도 꾸리고 사업도 확장시켜 나올수 있었지요.” 겸양지덕의 모습을 보이는 서정파사장, 한사람을 사귀더라도 ...
  • 2012-03-27
  • 2차대전이 결속된후 조선반도는 본의 아니게 외세에 의해 국토가 두동강남으로써 재중동포들은 근 반세기만에야 비로소 반도 남반부의 모국과 교류할수 있었다. 직접 총칼 들고 일제와 싸웠던 투사들은 대부분 저세상으로 떠나간 뒤 다행히 모국에서 그 후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쳐 현재까지 수백명에 달하는 재중...
  • 2012-03-27
  • 연변음악교육의 견증인 라혜주선생을 만나 연변주창립초기 제1대 음악교원 수백명의 음악전문인재 배양 87세 고령에도 피아노치기는 빠질수 없는 일과의 하나라는 라혜주선생. 올해 87세(1926년생)인 라혜주선생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 창립 경축대회에 참가한 일원으로 력사의 견증인이다. 당시 연변사범학교에서...
  • 2012-03-26
  • [기획30]사람은 인간적인 냄새가 나야 제맛 —연길고려원술집 림룡춘총경리의 기업경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 연길고려원술집 림룡춘(林龙春)총경리 프로필 1960년 길림성 화룡시 용화향출생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감사 연변전통료리협회 리사 연길성보국제상무청사유한회사 부사장 력임 연길애득백화유한회사 총경리...
  • 2012-03-26
  •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군사암호를 연구해오면서 엄청난 기술발명으로 이름을 떨쳤던 남상호교수(73세), 그의 암호연구는 단순한 비밀을 해독하는 단계를 훨씬 뛰여넘어 정보문명시기를 겪고있는 오늘 인터넷세상을 바꾸어가는 획기적인 전자암호연구에 이르고있다.  미래 인터넷세상을 안전하고 청결하며 고...
  • 2012-03-26
  •   3월 15일, 기자는 연변범서방프라스틱유한회사 조광훈(58) 총경리를 인터뷰했다. 조광훈이 어떤 인물인가를 한마디로 소개하면 공장장(경리)원로, , , 이다. 그의 이런 별호는 이렇게 해석된다. 그는 1986년 32살에 도문서 제일 어린 공장장(도문시민족비닐공장)으로 선발되여 지금까지 줄곧 도문시민족비닐공장, 도...
  • 2012-03-26
  • 80고령에도 창작활동을 견지 500여편의 작품 창작 왕청2중 교정에 세워진 《첫수확》노래비앞에서 [길림신문 2012-02-28] 지난 세기 60~70년대에 지식청년들에 의해 널리 불려지면서 조선족가요계를 풍미한 노래중의 하나가 바로 《첫수확》이다. 40,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열창되고 있는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세형(80세)...
  • 2012-02-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