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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을 추억하여》(1)한락연을 연구 선전하는 새로운 출발점(1)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9월19일 07시56분    조회: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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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경사의 해에 즈음하여 본사 편집부는 중국 조선족으로서 중국공산당원의 첫 사람인 한락연의 사적을 소개하고저 한다.

오늘부터 본지는 민족출판사에서 편찬한 도서 《한락연을 추억하여》(총 72편)에서 20편을 골라 편역, 게재한다.

《한락연을 추억하여》는 최룡수교수가 주필을 맡고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전문 한락연을 기념해 쓴 글로 묶은 책으로서 국내외의 저명한 학자, 당정 지도일군, 전문가, 교수, 예술가 및 가족들이 한락연을 회상하고 한락연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글들이 수록되여있다.

1898년 12월 룡정촌 토성포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서 1947년 7월말에 서북에서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한락연은 고향인 룡정 사람들로부터 룡정이 낳은 가장 훌륭한 아들이라고 불리우고 조선족들로부터 중국 조선족이 낳은 가장 걸출한 혁명가, 정치활동가, 예술가로 불리운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전임 주임인 리덕수동지는 한락연을 ‘조선족 중공당원의 첫 사람’, ‘봉천 당조직 창건에 참가한 첫 사람’, ‘사진관을 엄호로 하여 우리 당이 길림성에 정보소를 건립한 첫 사람’, ‘조선족으로 국제 반파쑈투쟁에 참가한 첫 사람’, ‘조선족 장군 첫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락연을 추억하여》의 게재는 각 지역에서 한락연동지를 깊이 연구하고 광범위하게 선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참고자료와 의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본사 편집부

―도서 《한락연을 추억하여》의 재판 설명

○박건일(중국사회과학원 아태와 글로벌 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 박사생 지도교수, 원장조리)

독자들 앞에 놓여진 《한락연을 추억하여》라는 이 책은 1998년에 첫 출판되였는데 약간한 수정과 보충을 거쳐 이제 다시 출판한다. 이는 한락연동지를 연구, 선전하고 따라배우는 데 중요한 현실적 의의가 있다.

1947년 7월말, 한락연이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뒤 서북지역에 있는 그의 친구들은 많은 애도문장을 써서 란주와 적화 등 지방의 신문에 실었다. 그 뒤로 1950년 새 중국 성립 1주년을 경축하면서 중앙인민정부 문화부에서 그의 화전을 개최한외에 한락연에 대한 국내 신문과 잡지들의 언급이 점차 뜸해졌다. 한락연의 이름은 세월 속에서 근 30년을 잠자다가 지난 세기 70년대말부터 다시 력사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락연 자화상

그 때는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로간부들에 대한 억울한 사건, 꾸며낸 사건, 잘못 처리된 사건들을 시정하는 작업이 잇달아 전개되였다. 동북3성에서 많은 로동지들의 조기 혁명생애에 대해 재조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약속이나 한듯 한락연의 이름이 늘 등장, 이는 지방 당조직과 당사 연구부문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1982년, 《사회과학전선》 제4기는 〈진정한 혁명가—루이 ·애리동지가 한락연을 론함〉이라는 제목의 문장을 실었다. 이를 시작으로 중공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의 적극적인 활동하에서 일찍 한락연과 함께 일했던 많은 로동지들이 다투어 기념문장, 추모문장을 썼다. 이어 1988년 12월과 1993년 11월, 그의 그림들이 북경에서 전시되였다. 1998년 12월 한락연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북경에서 다시 한번 한락연의 화전이 개최되였다. 동시에 최룡수교수가 주필을 맡은 《한락연을 추억하여》 초판이 발행되였다.

한락연의 사적은 국외의 주목도 받게 되였다. 1993년 10월, 중한 수교 1주년에 즈음하여 중국미술관과 한국방송공사(KBS)는 서울에서 련합으로 한락연화전을 펼쳤다. 《한락연을 추억하여》의 출판은 한락연에 대한 한국 관련측의 주목과 연구를 추동했다. 2005년, 한국 《신동아》 잡지는 〈비단의 길에 묻힌 조선족 화가 한락연〉이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같은 해, 당시 한국 대통령이였던 로무현은 표창장을 발급, 민족독립을 위해 바친 한락연의 뛰여난 기여에 대해 확인하고 표창했다.

2011년, 중국공산당 창립 90돐을 경축하기 위해 중국미술관은 한락연화전을 거행하고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도 룡정시에서 한락연 기념활동을 거행하고 ‘한락연연구회’를 조직 설립, 《한락연 기념활동 문헌집》을 출판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와 정부, 룡정시당위와 정부는 한락연을 선전 학습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본지 당조직의 사상건설과 사회주의정신문명건설의 하나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았다. 2015년 8월, 한락연에 관한 드라마,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의사일정에 올랐다. 이 배경하에서 나는 ‘한락연연구회’의 요청을 받고 각 지역과 각 방면의 연구력량을 조직하여 한락연을 더한층 전면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임무를 짊어졌다.

빠리 개선문 앞에서의 자화상(유화 90cm × 60cm, 1932년)

한락연(韩乐然)은 1898년에 중국 연변 룡정촌(지금의 연변주 룡정시)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원명은 한광우(韩光宇)였고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즐겼다. 청소년 시절, 그는 영국인이 장악하고 있는 룡정전화국과 세관에서 일하면서 영어, 일어, 로어 등 여러가지 외국어를 재빠르게 익혀나갔다. 1919년 3월, 그는 일본식민자들에게 반항하는 ‘3.13 운동’에 참가했고 그 뒤로 일본식민자들과 반동군벌의 박해를 피해 쏘련으로 갔다.

쏘련에서 한광우는 조선의 조기 사회주의자인 리동휘선생을 알게 되였다. 반년 뒤, 그는 리동휘를 따라 중국 상해로 왔고 리동휘가 첫 국무총리를 맡은 ‘대한민국림시정부’에서 보안업무를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닌의 방조하에 리동휘는 자기가 창립한 민족주의정당을 무산계급정당으로 개편했고 한광우는 첫기 당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상해에서 전차회사에 임직해있다가 레닌이 자금을 지원하여 건립한 인쇄공장에서 일하던 한광우는 류해속(刘海粟)이 창설한 중국의 제일 첫 미술학교인 상해미술전과학교에 시험쳐 입학했다. 그 사이에 그는 중국공산당의 초기 지도자인 채화삼을 알게 되였으며 그의 영향을 받아 중국공산당에 가입, 중국공산당의 창립 초기에 입당한 첫 조선족과 회화예술가로 되였다. 1924년, 한광우는 우수한 성적으로 상해미술전과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그는 당중앙의 파견을 받고 동북 봉천(심양)으로 가 당조직 창건 사업을 시작, 이 때 그는 한락연으로 이름을 고쳤다. ‘봉천기독교 청년회’ 간사인 염보항의 방조하에서 그는 봉천미술학교를 설립하고 이를 엄호로 하여 중공 북방국에서 파견해온 동지들과 함께 봉천에서의 첫 중국공산당 조직을 창립했다. 한락연의 영향을 받아 장학량의 딱친구 염보항도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혁명의 길에 들어섰으며 우리 당의 가장 저명한 지하공작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양호성 장군이랑 함께(1937년)

1925년, 당중앙의 지시에 따라 한락연은 할빈에 가 중학교 미술교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중국공산당과 쏘련공산당, 공산국제의 비밀련락 사업에 종사했다. 그는 쏘련에 가서 훈련을 받으며 여러가지 사진기를 리용하여 정보를 얻는 뛰여난 기술을 장악했고 할빈, 가목사, 목단강, 수분하 등 지에서 사진관을 엄호로 하는 정보소를 건립했다. 이런 정보소들은 또한 주은래, 라장룡 등 대표들을 안전하게 모스크바로 다녀오게 하였으며 중공 6차 대회에 참가하는 데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1929년초, 한락연은 치치할에 전이하고 시정공정처 직원의 신분으로 계속하여 당이 맡겨준 중요한 사명을 수행했다. 룡사공원에는 그가 설계한 서양식 ‘격언종’이 지금까지도 우뚝 서있다. 1929년, 리립삼의 ‘좌경’ 모험주의의 착오적인 지도하에서 우리 당의 도시 지하활동이 공개화되였고 이로 하여 그는 비밀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였다. 당조직의 비준을 거쳐 같은 해말 그는 상해에서 프랑스로 향했다. 그는 ‘루브르미술학원’에서 류학한다는 공개신분으로 당을 위해 비밀사업을 계속했다. 1931년 ‘9.18 사변’이 폭발한 뒤 그는 기세 드높은 재유럽 화교 반일애국운동에 참가했다.

1937년, 그는 《빠리석간》 촬영기자의 신분으로 ‘서안사변’ 후에 프랑스를 고찰하고 있는 양호성 장군을 인터뷰하며 알게 되였다. 같은 해 10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기타 청년들과 함께 양호성 장군이 려객선을 타고 향항으로 돌아오도록 호송했다. 프랑스에 있는 8년 사이 그는 프랑스공산당의 활동에 참가했으며 화가의 신분으로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공산국제의 활동에 참가했고 에스빠냐의 내전도 고찰했다.

부인 류옥하와 함께(1939년)

향항에 체류하는 기간, 그는 《문회보》 등 주요 언론과 접촉했고 범장강 등 언론인들과도 알게 되였다. 그 뒤로 그는 국민정부가 소재하는 무한에 가 주은래와 동필무동지가 령도하는 ‘동북항일구망총회’(‘동총’으로 략칭)에 가입하고 당조 성원으로 되였다.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중국 항일전쟁 원조를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사업에 종사했다. 그 사이 그는 한폭의 거대한 항전 선전화를 창작, ‘강한관’ 청사 벽에 걸어놓아 끝까지 항전하려는 무한 군민들의 결심을 크게 분발시켰다. 대외원조를 쟁취하기 위해 그는 경상적으로 ‘미국해군청년회’에 출입하면서 스노, 스메들리, 루이·엘리 등 항전을 지지하는 여러 나라 벗들과 사귀였다. 그는 또한 비밀리에 4명의 조선혁명자들을 연안으로 갈 수 있도록 배치하기도 했다. 그 사이 그는 ‘무한기독교 녀청년회’의 향촌부 총간사인 류옥하(刘玉霞)와 사랑하게 되였고 결혼까지 했다.

1938년, 그는 전선기자로 대아장대첩과 서주포위돌파에 참가했고 또 국민혁명군 정치부 제3청에서 조직한 작가와 예술가 방문단에 참가하여 연안을 방문, 모택동의 접견을 받았다. 이듬해부터 그는 당의 파견을 받고 리제심이 책임진 ‘국민정부전지당정위원회’에서 소장 지도원을 맡고 항전 전선인 산서 동남부 국공 량군의 합작을 감독했다. 그는 류감, 위립황, 범한걸 등의 국민당군대의 방어구역과 팔로군의 팽덕회, 좌권이 인솔하는 전선 총부 및 려정조부대 사이를 오가며 정황을 알아보고 보고를 작성, 또한 국민당군대 고급 장령에 대한 항일통일전선 사업을 비밀리에 전개했다.

(다음에 계속)

/번역: 《길림신문》 최승호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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