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식의 조선족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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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 재고
2009년 11월 16일 19시 35분  조회:1261  추천:0  작성자: 장춘식
 

김창걸1)의 소설사적 위치 재고

장춘식


1.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해방 전의 작품을 논의할 때 그 대상 작품은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즉 당시 창작되어 당시의 지면에 발표된 경우(이 경우가 다수임) 당시에 창작되었으나 발표가 되지 않았다가 해방 후에 발표된 경우(윤동주의 시가 이에 해당됨)와 당시 발표되었으나 인멸되었거나 당시 창작했으나 발표되지 못했다가 인멸되어 해방 후에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 쓴 경우(김창걸의 작품이 이에 해당됨), 그리고 당시 발표되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수정하여 발표한 경우 등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원칙적으로는 첫 번째 경우의 것이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 통례이고 두 번째, 즉 윤동주의 작품처럼 당대에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당대의 창작품이 확실한 경우에도 어느 정도 연구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경우는 사실상 별로 연구가치가 없고 간혹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 우리는 김창걸을 해방 전 우리 소설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로 여겨 찬미의 미사려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조선족문학사������(연변인민출판사, 1990)에서는 그를 해방 전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다루고 있고 김호웅은 더구나 “‘간도땅’을 토양으로 ‘문화부대’의 영향 밑에 자라난 첫 향토작가이며 평생을 이 땅의 인민들과 운명을 같이 한 우리 문학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이다.”(김호웅: ������在滿朝鮮人文學硏究������, 국학자료원, 1998) 라고 하여 최고의 평가를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오늘까지도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과거 최서해, 강경애, 안수길, 현경준, 박계주 등 나중에 조선 땅에 나갔거나 일찍 작고한 작가들의 작품을 조선문학의 범주에 귀속시켜 우리 현대소설연구에서는 제외시킨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어서 현재의 시점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한다.


2.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에 대하여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에는 1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지새는 밤」과 「낙제」는 현재 발표 당시의 원문을 찾아볼 수 있으므로 현재 발굴된 작품 7편(원시 텍스트)을 그 11편에 더하면 모두 18편으로서 우리가 김창걸을 소설가로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는 결국 이 18편의 단편소설인 셈이다. 그런데 「暗夜」(즉 「지새는 밤」)와 「靑空」을 제외하면 작품선집 외의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콩트 수준이고, 앞에서 든 김창걸에 대한 평가의 근거로 된 작품은 대부분 1982년에 출판된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의 수록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선집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관건으로 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창걸은 이 작품선집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작품집을 내면서������에서 “그때의 작품 중에서 자서전적 제재의 것은 회상이 되어 스토리를 되살려 정리할 수 있었다. …시대배경도 그렇거니와 사상성도 원래의 것으로 복자(伏字)를 고쳐놓는 정도로 하려 했으나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더러는 어색하게 되었다.” 고 적고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원래의 것으로 복자(伏字)를 고쳐놓”은 것이고 어느 정도가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어색하게” 된 것일까가 문제이다.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선집에 수록된 것과 현재 발굴된 원시텍스트 가운데서 상응되는 작품을 찾아야 할 것인데, 현재까지 조사된 데 의하면 이에 속하는 작품은 「暗夜」(작품선집에서는 「지새는 밤」)와 「락제」 두 편뿐이다. 그 중에서 「暗夜」는 “복자를 고쳐놓는 정도”의 수정을 한 듯 거의 원문과 일치한데2), 「락제」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아마도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온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작품선집에 수록된 「락제」와 ������만선일보������에 발표된 「落第」를 비교해보는 것은 작품집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두 작품은 기본적인 줄거리는 큰 차이가 없다. 주인공(사이상)이 벼락같이 용원으로 승급한 용선이의 “거저 먹이면 다 된다”는 말을 듣고 뇌물을 사들고 구미쪼를 찾아가다가 차마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되돌아와 친구들과 그걸 먹으며 “나야말로 천생 락제야. 락제한 덕으로 오늘 저녁은 잘먹는다”고 했다는 것이 「落第」의 줄거리이고; 장호라는 주인공이 일본인 청년들이 쉽게 용원이 된 것을 보고 박이라는 사람의 제안을 따라 뇌물을 사들고 조장을 찾아가다가 되돌아와 그것을 “락제”한 턱이라며 친구들과 먹었다는 것이 「락제」의 줄거리다. 그런데 여기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용원이 된 사람이 「落第」에서는 용선이라는 조선인인 반면 「락제」에서는 일본인 청년이라는 점이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락제」에서는 「落第」에 없는 일본인 청년 둘이 어떻게 장호를 “선생님”으로 부르던 것이 금방 “해라” 계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에피소드를 덧붙이고 있다. 「落第」에서는 그냥 “구미쪼”에게 귤 두 궤와 술 세 병을 사들고 간다고 되어 있으나 「락제」에서는 일본인 조장에게 “코밑에 진상”을 하고자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落第」에서는 불만, 혹은 비난의 대상이 비정상적인 절차로 용원이 된 용선이라는 조선인이고 부패한 조장도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데 비해 「락제」에서는 그것이 일본인으로 확실히 밝혀져 있고 그 일본인 청년들 또한 「락제」에서는 며칠 사이에 “선생님”에게 “해라” 계칭을 쓸 정도로 간사하고 무례하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뇌물을 받아먹는 조장 또한 일본인으로 분명히 밝혀져 있음이 크게 구별된다. 이런 차이에 의해 감지되는 작품의 의미는 물론 반일적 정서이다. 다시 말하면 「落第」의 주제가 “「야마시」판”인 현실에 대한 비판인데 반해 「락제」의 주제는 그런 부패한 세상에 대한 비판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락제」는 그 주제의식에서 「落第」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락제」의 주제의식은 당대 사회에서는 전혀 공개적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히려 「지새는 밤」(원명 「暗夜」)의 경우가 당대 사회에서는 가능한 소설적 표현이 된다 하겠다.

  그 밖의 작품들도 이 「락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당 정도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와서 어디까지가 당대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현재의 것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가령 “김약천선생이란, …‘독립운동’에 몸바쳐 애써온 애국지사이다.”3)라든가, “이제라도 홍대장부대로 가야 할텐데…”4), 그리고 「전형」(원명 「개아들」) 등 작품에 나오는 일제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그리고 「강교장」에서의 직접적인 항일의식 표현 등은 모두가 “현재의 것”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무빈골전설」이나 「두번째 고향」, 「어머니의 반생」(원제 「밀수」) 등의 경우는 “현재의 것”이 상당 정도 섞여들어 있으나 당대의 것이 보다 우세한 듯하다. 참고로 분석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빈골전설」에서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약 오륙십년전, 그러니 간도 개척초기의 일”이라고 하여 간도 개척 모티프임을 우선 시사해주고 있다. 김서방이 아내 박성녀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룡정촌에 이주를 가다가 무빈골에 사는 천서방을 만난다. 천서방의 만류로 무빈골에 자리를 잡는데 꾸어먹은 양식과 콩알만한 까만 약을 얻어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 반항하다가 총에 맞아 죽고 아내는 자살하여 아들만 남게 된다. 그러나 김서방은 한이 맺혀 혼백으로 나타나 간악한 중국인 지주 무빈 일가에게 복수한다는 것이 단편 「무빈골전설」의 기본 줄거리다. 이주민들이 겪는 고난과 불행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 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결말 부분에서 김서방의 혼백이 나타나 복수한다는 모티프는 경향파 작가들의 그것에 맥이 닿아있다. 지주와 소작농의 대결이라는 갈등구조에서 보면 뒤에 살펴볼 「暗夜」와도 맥이 닿는다.

  이 작품은 서두 부분에 이야기의 출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이야기는 김약천교장이 하고 박선생이 전하는것이니 나로서는 믿음성있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실지의 목격담인지 전해들은 이야기인지 오늘날 김교장마저 세상뜬 뒤여서 알길 없으나, 이제 원 이야기에 별로 붙이지도 않고 그대로 적는다.” 소위 액자소설의 구도를 갖추어준 것이라 하겠는데, 이는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혼백이 되어 나타난다는 장면을 합리화하려는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야기가 김약천교장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모두의 설명을 감안하면 반일적 혹은 계급적 의식을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약천선생이란, 간도에서 너무나 이름있는 M학교창립자로서 ‘3.13’이전에 중학교졸업생 8회나 길러낸 교육가이고, 일찍 ‘××회’회장으로 있을 때 쏘련연해주지방에도 드나들면서 ‘독립운동’에 몸바쳐 애써온 애국지사이다.” 라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복수했다는 이야기의 대목에 가서는, 자기자신은 그런 미신을 믿지 않으므로 꼭 그랬다고 말하기는 점직하나 그대로 말한다고 부언하더라는것이였다.”고 한 것은 앞에서 언급된 허탄한 이야기를 합리화하려는 구조적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출처와 관련된 모두의 설명은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총체적으로 보아 「무빈골전설」에서는 이주민의 정착이라는 모티프가 등장하기는 하나 액자 속 이야기의 모두에 “간도 개척초기의 일”라고 제시한 것과는 달리 초점은 오히려 부자와 빈자의 대결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두번째 고향」에서는 이주민들의 정착과정에 무게가 실려있다 하겠다.

  소설은 모두에에서 조선 회령에서 중국 간도에 들어오는 길에 있는 “스물네댓 되는 경철이란 젊은이가 에누리없이 열이나 되는 식구를 데리고 간도땅에 들어와 처음 자리잡은 수남촌이란 마을”을 지리적 위치로부터 주위 환경, 마을의 기본 상황, 거기서도 “간도의 첫학교라고 하는 M학교”가 있어 “간도일대는 말할것도 없고 조선이나 로씨야 연해주에서도 류학생들이 모여들어 매우 성황을 이루고있었다”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개척 초기의 이주민생활은 아니지만 새로 이주해온 주인공, “아직 북상투를 쫓은데다 갓망건을 쓴 젊은 경철이”에 대해 말하면 이주민으로서의 정착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씨그러지다가 괴운 말장에 의하여 채 넘어지지 못한 초가 륙간집”에 경철이까지 열한 조손 “삼대가 옳이거꾸로 누워자는 형편”이다. “참말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사람이 되는가? 그렇다면 타향살이가 몇해일가, 몇십년일가, 아니 몇백년일가―몇백년 산다치고―”5) 이것이 일가를 간도 땅에 이주시키고 나서 주인공 경철이가 느낀 심경이다. 그렇게 간도 땅에 이주를 오게 된 것은 “간도땅은 미운놈 기장밥 주는 곳, 홍두깨같은 강냉이이삭과 베개만한 감자를 먹”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배를 불릴 수 없는 상황에서다. 그러기에 “왜 강산이 이렇게 다른가? 이쪽에는 송림이 울창하고 양지바르고 한데, 저쪽이 마도강이라고 하지, 왜 저쪽은 저리도 펀하고 뿌옇고 자욱하고 어두운가?” 라는 아버지의 말에 경철이는 “아무려나 우리는 북으로 가게마련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서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얍지우!” “고향이야 어디 살아나기나름입지요. 살면 다 고향이 되는 법이 아닙니까?”6) 경철이의 이 말은 작품의 제2 고향의 주제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간도 땅의 정착은 바로 이 제2의 고향 건설이라는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다. 원래의 고향을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국 땅에 이주했다면 이국 땅도 역시 제2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2의 고향은 고국 땅에서의 제2의 고향과는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산천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법과 정치도 다르다. 그리고 상대해야 할 이웃도 민족이 다른 이국민이다. 이주한지 얼마 안 되어 뒷따라 이주해온 먼 일가를 유숙시킨 것이 법을 어겼단다. 객주허가를 내지 않고 손님을 유숙시켰다 하여 순경국에 끌려가 벌금 3원에 관청문턱을 넘었다고 하여 “문턱세” 2원 하여 5원이나 물어라고 한다. 겨우 사정하여 3원으로 낮추기는 하였으나 억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작품의 흐름은 크게 바뀐다. 주인공 경철이가 상투머리를 자르고 M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3.13운동에 참가하며 나중에는 의병에 들어갔다고 한다. 작가가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갔다고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작품의 전반부는 개척민의 이민 모티프를 전개해 나가다가 중반부터는 저항의 주제로 전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하면 「어머니의 반생」은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자서전적 제재의 것”이여서인지 주로 당대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인다. 아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하여 계란 장사, 옹기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소금 밀수, 면포 밀수까지 하며 고생하고 수모를 당하던 이야기로 된 이 작품은 당대 사회의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했다는 저항적 성격 외에도 이주민으로서, 특히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모진 고난과 불행을 일인칭 기법으로 친근감있게 기술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당대 사회의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함에 있어서도 여타의 작품에서처럼 당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표현이 아니라 어머니의 경력과 운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신사적 가치가 인정된다.

  그러나 아무리 “현재의 것”이 적게 섞여 들어온 경우라고 하여도 어느 정도의 정신사적인 가치는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을 당대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왈가왈부하며 작가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김창걸의 해방 전 소설을 논의할 때 현재 확실하게 발굴된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정확한 학문적 자세라 할 것이다.


3. 단편 「暗夜」에 대하여


  지금까지 김창걸의 작품을 논의할 때 거의 모든 논자들이 「暗夜」를 김창걸의 대표작으로 꼽고있고 또 해방 전 조선족 소설창작의 가장 큰 성과작으로 평가하고 있다.7) 여기에는 이 작품의 가치 자체 외에도 다른 작품은 당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상황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작품구조의 엄밀성이나 표현의 생동성, 주제의식의 전형성 등 면에서 볼 때 ������김창걸단편소설선집������에는 「暗夜」를 능가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여도 「暗夜」의 가치는 여전히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여진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갈등을 이룬 양대 세력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점, 즉 계급적 대립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나갔다는데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양복쟁이신사보다도 보리마당질에 보리거스러미를 잔뜩 뒤집어쓴 내 얼굴이 고분이에게 더 좋은 것은 회박을 뒤집어쓴 거리계집보다도 보리방아 찧고 보리겨를 담뿍 쓰고 나온 고분이 얼굴이 나에게 더 어여쁘고 더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뾰죽구두 짜리에게 장가 못 갈 것이나 고분이가 양복쟁이한테 시집 못 갈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이긴 하다. 그러니 촌사람은 촌사람끼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가 늘 좋은 법이다.”8) 이는 이 작품의 주제를 분석할 때 흔히 인용되는 예문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형상적으로 잘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 작품에서는 그러한 갈등을 주인공인 명손이라는 시골 젊은이의 시점에서 고분이라는 처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관련시켜 전개시킴으로써 보다 리얼리티를 획득하고있다. 이러한 분석은 다수의 평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매매혼인이라는 사건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고 싶다. 즉 고분이는 빚 때문에 외통눈이 남가가 아니면 나이 오십에 아들이 없어 소실로 고분이를 사려는 윤주사에게 팔려가야 할 운명이다. 최령감네 빚을 변리까지 일백오십 원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령감은 딸을 팔아 부자가 되였기 때문에 그에게서 얻은 빚은 도무지 미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응, 네놈의 딸은 궁녀더냐, 선녀더냐, 대감집 규수더냐? 이놈아, 내 돈도 딸을 팔아 모은 돈이다. 네 자식만 딸이더냐? 나두 다리 저는 놈에게 후실루 딸을 줄 때에는 생각이 좋지 못했다. 내 딸은 썩은 호박새낀 줄 아느냐?” 이것이 최령감의 빚을 갚지 않으면 안된 이유가 되는 셈이다. 우리 민족 이주민들이 간도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얼마나 가슴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보여준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최령감은 자신의 지난날의 아픔을 또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전가(轉嫁)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갈등이 다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와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쳐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이는 「지새는 밤」의 결구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성호는 “특히 소설의 주인공 청년 남녀의 야간도주는 비록 그것이 소극적이고 자연발생적이기는 하지만, 그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부정(否定)하고 현실극복의 자세와 저항적 의지를 표명함에 있어서는 커다란 문학적 의의를 산생시킨다. 그리하여 작자는 야간도주를 하고 있는 그들의 앞길에 밝은 미래를 제시하였던 것이다.”9)고 평가하고있다. 대체적으로 정확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자세히 따져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연애위기의 해소라는 시각에서 보면 주인공의 행위는 적극적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제기한 가난의 문제, 즉 부자와 빈자의 갈등의 문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났다. 돈주고 고분이를 사려던 윤주사에게 분풀이를 했다고 하여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반항은 반항이지만 계급적 반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분이가 아니면 그는 또 다른 처녀를 사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분이가 야밤도주를 하면 고분이네 집에서는 고분이를 팔 수가 없다. 그러면 빚은 여전히 남아있게 되고 계속 갚지 못하면 끊임없이 변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최령감은 또다시 딸 팔아 모은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을 칠 것이며 고분이의 아버지는 그것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간단히 야밤도주의 길을 택하고 만다. 야밤도주는 주인공의 단순한 분풀이나 연애위기의 해소에 지나지 않으며 빈자와 부자와의 갈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각한 모순을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 혐의가 보이기 때문이다.


4. 단편 「靑空」에서의 현식인식의 자세 문제


  전성호는 김창걸의 「靑空」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소설 「靑空」은 우리 민족 ‘간도’ 이주민들의 극도의 궁핍에 의한 타락의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물론 이 소설은 뒷부분에 가서 당시 ‘만선일보’에서 권장하던 이른바 ‘금연운동’에 야합하여 주인공이 금연을 맹세하고 새 인간이 되려는 정신면모를 보이고 있다.”10) 어떻게 보면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원래 “한달에 이십원도 못되는” 월급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 학교 교사였는데 “돈을 만이 모여서 사회를 위하야 더 조흔 일을 하”고자 “올치 못한 길을 것는 친구를 최후지 채직하는 경춘이”이의 간곡한 만류도 마다하고 교사 노릇을 그만두고 아편장사를 하는 관식이라는 한 마을 친구를 찾아간다.

  돈벌이를 떠나는 “나”의 목적은 꼭 금전에 양심을 빼앗긴 것 같지는 않게 보인다. “첫재로 먹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지만은 가정생활에 잇서서 물질적 구속을 밧고서는 사회를 위하야 쥐리만큼도 할 수 업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으로는 몃만 원 돈을 감이 쥐기만 한다면 세상이  놀래인 훌륭한 일을 하리라 생각햇다.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이삼 층 벽돌집에서 술 먹고 게집에 지고 하는 생활을 동경하야 돈을 모흐련다면 차라리 굼고래도 나지 안켓다. 나는 이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는 고사하고 늘 경멸햇든 것이다.” “나는 올흔 길을 위하야는 수단(手段)을 가리지 안는다고 미덧든 것과 가티 돈 모흐는 길을 위하야는 그 수단을 가릴 수 업다고 미덧다. 그것은 모흔 다음에 갑잇게 쓸려는 욕망에서라고 변명햇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하겠다고 하는 “세상이  놀래인 훌륭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돈벌이에 나서서 처음에는 아편장사는 아편쟁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관식의 충고대로 아편을 팔기만 하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편에 탐닉하여 아편중독자로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내에게마저도 아편을 강요하여 중독자로 되게 한다.

  그러던 “나”는 “나”를 아편장사에 입문시켜준 관식이가 아편중독자가 되어 아내를 팔고 자신마저 기차에 치워죽자 재생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집에 돌아왔으나 금연이 여의치가 않자 아내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때의 “나”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다시 살어난다면 첫재 아편금단운동을 하고 십어 어 방법으로 할가는 아즉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업스니---어면 중독자들 맨들가 하는 것은 만이 생각햇으나---알 수 업으나 무조건하고 그것부터 하고 십다.”“천행으로 다시 살어나기를 바랄런지도 모르겟스나 그 한 가닥의 희망은 든든이 부고 잇다. 그러면 이 사회는 나를 다시 용납하여 줄가. 내가 좀먹게 한 이 나라가 나를 바더 용납하여 줄가.”

  물론 아편, 즉 마약 흡입 혹은 중독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당시 만주국 전역에 걸쳐 아편중독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였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중독자와 관련된 작품이 상당수 보이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 하겠다. 그러나 “내가 좀먹게 한 이 나라가 나를 바더 용납하여 줄가”라는 표현은 당시 만주국의 국책의 하나로 되었던 금연운동에 동조한 흔적이 너무도 뚜렷하다. 특히 「靑空」이 당시 ������만선일보������의 신춘문예에 3등으로 당선된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만선일보������에서 실시했던 禁煙文藝作品大懸賞募集의 광고문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阿片의 斷禁은 我國 建國以來의 重要 國策으로서 이래 그 完遂에 官民 全力을 傾注하야온 結果 建國第十年을 맞이한 今日 그 成果는 顯著한 것이 있고 國內의 民生은 이로 말미암아 面目을 一新하였습니다. (中略) 建國十周年 紀念事業으로서 排煙拒毒의 警鐘을 울리며 다시 各種의 事業을 計劃하야 最後의 完璧을 期하랴함에 伴하야 本社에서는 本國策에 協力하고자 禁煙文藝作品의 一大懸賞募集을 하기로 되었아오니…(後略)11)


  비록 「靑空」이 발표되던 1940년보다는 한 해 뒤인 1941년의 것이어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겠으나 여기서 “阿片의 斷禁은 我國 建國以來의 重要 國策”이라고 한 걸 보면 신춘문예작품현상모집에도 상당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김창걸 자신도 「붓을 꺾으며」에서 언급하고 있다.


  원체 나의 작품이 당선된 데는 약간의 곡절이 있었다. 당시 어떤 작품이 당선되는가를 미리부터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현재 당국의 정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여서는 안되고 될 수 있는 대로 썩 좋다고 하면 그럴수록 “합격”된다는 것이다. 이 “진리”를 나는 알고있었으나 그 정도를 딱히는 몰랐다.

  아무래도 당선은 돼야 하리라고 생각한 나는 그 “비위”에 맞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표준”으로 원고를 올리 훑고 내리 훑고 하면서 마치 현 사회가 “태평성대”인 듯이 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그런데 한번은 목단강에서, 한 아편중독자-그도 사회운동을 하노라던 사람이 중독자로 되어 헌 마대를 걸치고 다니다가 목숨을 끝맺는 것을 보고 「그의 끝장」이란 작품을 써 신문사에 보내었다. 그런데 신문사의 학예면 사람들에게서 “필봉을 낮추어 쓰라. 발표될 가능성여부를 생각해서 쓰라.”는 편지가 왔다.12)


  그리고 작품에 “수일 전에 관식이가 마대양복을 입고 구두를 두 켜레나 훔처가지고 어 모히 파는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혹 「그의 끝장」이란 작품과 소재상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사실상 만주국의 국책에 동조했거나 적어도 “‘비위’에 맞춰” 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겠다. “공립학교로 개편된 후 교장으로 건실히 교육가의 참된 길을 것는 경춘이” 등 여기 저기서 볼 수 있는 체제 협력적인 문구들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된다.13)


5. 기타 소설 작품


  이제 남은 작품은 「거울」(������만선일보������, 1940.7.14-16), 「天使와 妖術」(������만선일보������, 1940. 7.19-20), 「소고기」(������만선일보������, 1940.7.21-23), 「“마리아”」(������만선일보������, 1940.8.6-7) 등 네 편인데, 그 중에서 「거울」이 단편소설이고 나머지는 콩트 수준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 중에서도 적어도 「거울」 한 편은 「暗夜」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나긴 여름 여물기전부터 감자알갱이를 파다가 겨우 연명한 최첨지는 가을철을 잡어들어 배고픈 고생만은 그래도 얼마 눅처젓다.” 그러나 세월 덕분에 그만큼 농사가 된 것도 최첨지에게 있어서는 간도 들어와 삼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밧은 말할 것도 업지만 소도 업시 남의 밧을 좀 어더 지은 농사”여서 “일시 먹을 것은 생겻스나 당장 치위는 닥처오는데 헐벗은 몸이 문제다. 아이들지 다섯 씩구 솜옷을 하여입을려면 올 가튼 물건갑으로는 일년농사를 다 팔어도 어림도 업다.”

  최첨지 일가가 얼마나 째지게 가난한 살림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 서두의 장면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자와 빈자의 절대적 대결의 국면은 전개되지 않는다. 가난 자체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어 최첨지는 “소곰과 석냥이 러진 것도 큰문제지만 그 보담도 넉마 견지나 사기 위하야 나무 한 짐을 잔 질머지고 장으로 갓다.” 그러나 소금과 석냥을 사고나니 넝마 견지도 살 여지가 없다. 그는 출출한 김에 호주 한 잔을 걸치고는 세상이 미워져서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망할놈들 가트니라구, 네놈들은 머시게(무엇이) 잘나서 거들거리구 응 돈푼이나 잇스문 다 되는줄 아나? 원 세상이 곤두루 설나니 어 취한다, 취해”

  최첨지는 누구에게라고 지정도 업시 장판을 흘겨보고 잇섯다. 세상 사람을 모다 욕하고 리고 물어고도 십헛다.14)


  자신의 가난이 사회의 불합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급적 대립은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만인게”(萬人契)라고 불리는 유민채표를 꺼내놓는다. “웃마울 박주사네두 만인게 썻다가 마저나서 만원을” 탔다는 데 욕심이 생겨 산 것이다. “맑은 하늘에 이 잇지비. 우리네가튼 가난뱅이를 마처 안주문 그래 돈잇는 놈만 마처날텐가” 하는 것이 최첨지의 주장이다. 그러나 복권은 꼴등에도 당첨이 되지 않는다.


  “괜히 청에나 싸다 여먹을 걸 일년내 고기리 한 번 못 어더먹는 신세에”

  하고 안해는 두덜거리면서 뒷방 아랫목 문지속에 파뭇친 어진 거울을 차자 몽당치마로 한 번 문지른 다음에 최첨지 안해는 불숙 내밀엇다.

  “엣수 쎅경(거울)이나 보우. 만원이 꿈으루 굴러들어올 신순가”

  “원 이웃말 박주사는 별루 낫든가 흥, 하기는 아래두 이 아랫수염에 어 재물 붓기는 틀렷서”

  “벌서 섹경으 밧드문 일원도 안 일헛지비”


  결국 가난의 원인은 신수 팔자에 있었던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요컨대 가난의 제시라는 점에서는 경향파 문학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으나 그 가난의 원인이 사회적 불합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팔자 탓이라고 한 데서는 계급문학의 흔적을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최첨지가 세계와의 대결에서 취한 태도는 겨우 “(안해와) 서로 처다보면서  모를 웃음을 웃”는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체념, 즉 숙명론적인 현실순응의 태도라 할 수 있다. 「暗夜」의 주제의식에서 한 걸음 퇴보한 것임에 분명하다.

  「“마리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는 카페 여급인 마리아와 시골 신사의 엇갈린 인생 태도를 통하여 시골과 도시의 삶을 대결시켜놓고 있다. 물론 마리아의 불행한 운명을 제시함으로써 작가의 지향은 시골의 삶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두 문명의 대결을 주제 해결의 중심에 놓고 있음은 분명하다.


  거리의 전등, 자동차, 라디오, 네온, 아스팔트, 고루거각, 파마네트의 물결, 그리고 돈, 돈… 그것들 문에 거리로만 모여드는 이 사나이와 가튼 촌사람들이나 거리의 퇴폐적 생활에 실증은 극도로 늣기면서도 인생의 본향(本鄕)으로 돌아갈 수 업는 자긔나 무엇이 다르랴.15)


  두 문명의 대결은 바로 이런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마리아는 여학교 졸업반 시절 최라는 사내와 죽자살자 했고 그와 관계를 가지면서 학교에서도 퇴학을 맞고 집에서도 쫓겨나 그 사내와 살림을 시작했으나 둬달 후에 나타난 사내의 본처에게 쫓겨나 카페의 여급이 되었었다. 그녀는 이제 도시 문명에는 진저리를 느끼며 보리밥을 먹어도, 베치마 입어도, 김을 매면서도, 나무를 베면서도, 파마네트를 못하면서도, 뾰족구두를 못 신어도, “오도꼬”와 연애를 못해도, 즉 도시 문명의 모든 즐거움을 버리고서라도 시골에 가고싶어 하나 갈 수가 없다. “농촌으로 갓섯자 닭의 무리에 병아리가치 되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카페에 온 시골 신사는 마리아 같은 “네에쌍”이 있어서, 즉 인용문에 제시된 도시의 찬란한 유혹이 있어서 “남을 잡지 못해 배만 알는데두”, “모든 죄악만이 넘치는 곳이래두”, “매독균이 우글우글 하는 곳이래두” 도시가 좋다고 한다. 인생은 짧은 것이므로 촌구석에서 썩을 수 없으며 순간이라도 극락이나 천당에서 살겠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 도시 문명을 “모든 죄악만이 넘치는 곳”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농촌에 돌아갈 수 없다고 한 점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승급시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록 “촌사람덜은 거리루 못 와서 병나구 지랄”한다고 한 점에서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도시 문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주인공 “마리아”의 타락의 원인이 사회적인 원인에서가 아닌, 개인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되어있으므로 그것을 사회 비판적인 작가적 태도에 연관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정 세태적인 의미가 더 짙다 하겠다.

  「天使와 妖術」과 「소고기」의 경우는 더구나 거의 시정 세태소설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소고기」에서는 추석 전날, 전에 이름을 알다가 누구의 소개로 만난 K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자게 되고 다음날, 즉 추석날 아침에 들어온 아침상에 K의 국그릇에는 소고기가 많이 담긴 반면 “나”의 국그릇에는 “소고기 기름 이지 고기점은 겨우 하나 둘 하고 아모리 헤어보아야 에누리 업시  석 점”이 놓여있어서 K가 얼굴이 붉어지고 그 아내의 행위를 “배곱파 울어도 젓을 주고 배불러 울어도 젓을 주는 조선 어머니들의 전통을 그대로 받”은 것이라고 변명하였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남편 사랑 때문에 손님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사회적 의미는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시정 세태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天使와 妖術」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이 둘을 가진 명환이라는 사내가 아내와는 이혼하기로 약속하고 금자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나중에 보니 명환이가 나가고 있는 회사 사장의 맏아들과 함께 활동사진 구경을 갔다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금자는 나의천사가 아니”라 “돈만 잇스면 누구나 안흘 수 잇는 뭇사람의 천사엿”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다시 조강지처에게 돌아간다는 결말에서는 역시 사랑의 윤리를 확인한 것 외의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상의 네 편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전기 작품의 사회 비판적 문제의식이 약화 내지는 사라지고 시정 세태에 빠져버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6.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 규명


  이상에서 우리는 김창걸의 해방 전 소설작품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번째 유형에서는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의 소설사적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았는데, 비록 더러 “당대의 것”이 주류를 이루는 작품이 있기는 했으나 다수 작품에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1982년 간행 당시 작품으로 가치를 가지는 외에 일부 정신사적인 의미에서 참고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방전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 김창걸을 논의한 거의 모든 논자들이 중요한 자리에 놓고 분석하고 있는 「暗夜」를 살펴보았는데, 작품 구조의 치밀성과 묘사의 형상성 등 면에서, 그리고 주제적 성향에서의 저항성에서 충분히 인정이 되지만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흠집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별로 논의가 되지 않은 단편소설 「靑空」을 분석해보았는데, 만주국이라는 일제 괴뢰정부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체제 순응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滿鮮日報������에 발표된 기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 일부는 「暗夜」의 연장선상에서 현실 비판적 성격이 더러 인정되기도 하나 다수 경우 시정 세태적인 성향이 짙게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중국 조선족 소설문학이 형성 발전한 시기는 1930년대 중반인데, 이 시기는 일제 통치의 말기에 해당되며, 따라서 이때의 작가로서 철저한 반일적, 반체제적 성향을 지니고 활동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의 체제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성향을 지닌 작가라 해도 그러한 작품을 발표할 수가 없었다. 문학사, 특히 발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소설사의 경우 연구 대상은 자연히 지면이나 다른 형태로 공개 발표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당시 발표되지 않은 작품으로 작가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올바른 학문적 태도가 아닐 것이다.

  김창걸도 안수길이나 현경준 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저항적인 작품도 있지만 체제 협력적 혹은 현실 순응적 작품도 있고 순수 시정 세태적인 작품도 창작 발표하였다. 그러니까 김창걸을 해방 전 우리 조선족 소설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로 지나치게 과대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최서해나 강경애, 안수길, 현경준과 더불어 김창걸도 해방 전 우리 조선족 소설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역사적인 기여를 한 작가임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김창걸과 그의 소설작품에 대한 정확한 자리 매김이 되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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