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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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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값과 몸값
2017년 05월 18일 10시 55분  조회:1461  추천:1  작성자: 최장춘

      요즘 우리 사는 주변에는 갖가지 핑게를 대고 벌이는 술판이 많다. 동창생 모임이요, 직장동료 파티요, 기념행사요, 하여튼 이름이 가닿는 대로 모여앉는 장소에서 어떤 술을 쓰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다. 그저 돌림식으로 잇대는 술추렴이라면 보통술로 대충 얼버무려도 무방하겠지만 명심하고 본때있게 청하는 좌석에서 고급명주가 안 오르면 서글퍼진다.

  높은 술값이 초청 받은 손님들의 몸값을 은근슬쩍 올려주어 가슴이 뿌듯한 나머지 자세부터 고쳐앉으며 경건함을 표시한다. 오가는 말투도 체호브의 <뚱뚱보와 말라꽹이>에서 나오는 대화처럼 “이렇다, 저렇다”가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존칭어로 바꿔쓴다. 선배이든 후배이든 례우를 갖춰서 고급술을 선사한 귀인의 말씀을 잠자코 듣는 게 이미 굳어진 관례이다.

  접때 친구의 초청을 받고 파티에 참석한 적 있다. 장소가 뀀점이라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갈가말가 망설였는데 정작 가보니 웬걸 엄청 수량의 장어구이와 모태주, 독일맥주를 올렸다. 찌뿌둥하던 날씨가 갑자기 쨍ㅡ하니 해 뜨는 기분이랄가, 감지덕지해 두손 맞비비며 후한 대접을 받고보니 헤여질 무렵 저마다 황송해서 초청인의 손목을 오래도록 잡아주며 감개무량해했다.

  력대로 술문화는 태반 사회 상류층에 속해있었다. 자연재해가 련속부절히 들이닥칠 때마다 온갖 금주령을 내려 백성들은 술맛을 잊은 채 살아야 했다. 매일 흥청망청 술판을 벌리는 임금에게는 의례당당할지 몰라도 영웅호걸이나 음풍영월을 읊던 풍류인들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자신들이 정신상 받은 트라우마를 무마하려 애썼다. 그 와중에 량산박 무송이 술기운을 빌어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잡은 전설이 생겨났는가 하면 한번의 음주에 백편의 즉흥시를 날리는 리백의 신화가 세상을 희한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시대가 변하여 옛날 그처럼 귀하던 술이 백성들의 밥상에 싫을 정도로 오른다. 아침 한잔, 저녁 한잔, 누군가 명절에 들고온 고급술을 음미하면서 셈평 좋은 생각에 웃음집이 흔들흔들해진다. 어찌 보면 고급술이 더 이상 부자들의 독점물이 아닌 듯하면서도 일반인이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리유는 무엇일가. 단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 비싼 가격 때문일가?

  사실 눈덩이처럼 부풀어오른 명주가격이 저소득계층이 아연실색할 정도여서 입맛만 쩝쩝 다시기 일쑤이다. 저 비싼 술을 누가 마실가, 고개 갸우뚱 해봐도 십중팔구 구매자 본인이 마실 것 같지 않고 마시는 이들은 또한 제 돈으로 산 것인지 분명치 않다. 한때 청탁놀음이 사회 도처에서 기승을 부렸다. 어린이 유치원부터 성장하여 대학까지, 직장에서 승급은 물론 생활의 구석구석에 포도넝쿨처럼 청탁놀음이 뻗칠대로 뻗쳐있었다. 마치 거대한 치륜이 서로 이가 맞물려서 잘 돌아가는데는 윤활제가 필수인 것처럼 끊어진 사슬을 이어주며 성패를 가르는 최대 변수는 역시 술이였다.

  천마디, 만마디 말보다 한병의 고급술의 힘이 막강하다. 값진 술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요지경과 같다. 언제부터인지 술값과 몸값이 정비례 관계로 전환됐다. 술값이 오르면 몸값도 잇달아 오른다. 그라프를 살펴보면 변곡점을 모르는 불마켓 양상으로 줄곧 오르기만 한다. 인간의 허영심과 과시욕이 사회 베블런효과를 극도로 팽창시켜 고급술을 마시는 사람은 유능하고 재부를 축적한 귀중한 신분을 지닌 존재로 부상했다.

  혼사집에서 아무리 상다리 부러지게 산해진미 차려놓아도 고급술이 없으면 하객들은 시큰둥한 기색을 떠올리지만 값비싼 명주가 등장하면 벌써 흥분에 들떠 어깨부터 으쓱해진다. 먼 후날에 가서도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 참 잘 차렸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성의를 표시하려면 반드시 고급술을 대접해야 배배 탈렸던 일도 술술 풀리는 신통력을 가지지만 차원이 낮은 술은 결례가 되여 오히려 대사를 그르친다는 인식이 사회 보편성을 이룬다. 그 서슬에 가짜술 때문에 생긴 일화가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터져나와 사회 물의를 일으켰다.

  어느 량반은 평소 몸속에 배일 정도로 가짜 모태주를 마셨던 까닭에 진짜 모태주를 맛보고 가짜라고 오판해서 항간의 웃음거리가 됐다. 고급은 거룩함을 자랑하여 맹목적인 숭배를 받고 일반은 소박하고 단백해서 의미지가 없어보여 거부한다. 서로 비기며 끓어번지는 소비심리가 인간의 진국을 배척한 탓으로 사특한 기운이 술잔을 추켜든 팔뚝에서 감때사납게 불끈거린다.

  과연 공손히 서서 따르는 술잔에도 표리 부동한 그림자가 비껴든다면 괴리에 따른 우롱과 모멸감이 인간의 성실성을 맥없이 무너뜨리지 않겠는가. 술값이 부추켜준 몸값이 화려하게 포장해낸 상품처럼 인기를 누릴 때 값싼 술은 차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워낙 한토양, 한뿌리에서 태여난 쌀이건만 가격차이란 이슈가 딱지를 붙여 술가마에서 익혀져 뿜기는 냄새부터 은은한 품위를 느끼게 한다. 그런 고가의 술을 여유작작 마실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시선이 가닿는 곳의 차이는 천양지차이다.

  혹자는 뛰여넘을 수 없는 장벽에 막혀 곤혹스러운 몸짓을 드러내겠지만 하필 참새가 기어이 황새걸음을 쫓아가야 한다는 리유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인간의 원초적 본새를 감추지 말고 스스로 우러나오는 성심성의를 표현할 줄 알고 또 너와 나의 꿈의 거리를 단축하는 즐거움 속에 인간의 몸값이 약속되여있음을 굳게 믿고 살뿐이다.

길림신문 201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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