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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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
2008년 09월 15일 08시 36분  조회:3313  추천:91  작성자: 곽승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3장 연변‧조선족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1. 동북아시아시대의 중심으로서 연변


0.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


. 역사 속에서 보는 지정학적 가치
연변은 근현대사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충돌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중국대륙의 변방에 위치해 있지만 반도국가인 한반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의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웅변한다.

연변지역에서 주변 국가들 간의 갈등은 20세기 초 러일전쟁 만주사변 그리고 일제의 항복 이후 중국 내 국민당정부와 공산당세력간의 국공내전으로 이어진다. 연변지역 갈등의 역사에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일본까지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한민족은 특히 이 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이곳을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장소로 활용했다.

또한 일본 패망이후 이곳에 자리잡은 한민족들은 중국공산당을 도와 국민당정부와의 내전에 참여해 중국공산정권 수립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49년 10월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것은 북한지역에 공산정권이 뿌리를 내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분단과 동북아시아에 냉전체제가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중소분쟁이 격화되면서 소련과 중국은 이 지역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한 베이징 주재 미국기자에 의하면 1973년 소련은 세 차례에 걸쳐 동북지역 침입을 기도했으며 미국이 인공위성 관련 사진을 베이징에 제공하고 구소련에 압력을 가해 이러한 기도를 단념시켰다고 전한다. 소련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홍면기 박사는 “동북지방을 지배함으로써 신강‧몽골‧한반도를 지배하고 일본에 직접적 위협을 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핵심지대를 장악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예증”으로 설명한다.(홍면기, 2006)

지정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근현대사에서 몇차례 힘의 공백상태에 있었다. 첫 번째는 청나라가 이 지역을 봉금지대로 설정해 무인지대화 했던 시기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 말엽까지로 이 지역은 사실상 청나라와 조선간의 국경지대로 기능했다. 이러한 힘의 공백상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한반도와 중국 산동성 등지에서 한민족과 한족 등이 이주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이후 일제의 노골적인 한반도 침략으로 삶이 고단해지면서 한민족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연변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다. 18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민족 월경이주자들은 1910년 무렵 십만 명에 이르게 됐는데 이로 인해 조선과 청나라는 국경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벌였다.

두 번째는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이후 한민족에 대한 치안을 명분으로 이 지역에 군대와 관료를 파견해 직간접 통치를 한 시기이다. 당시 중국당국은 국력이 쇠하여 변방인 연변지역에까지 통치력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한데다 일본이 만주침략을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도협약도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했다. 결국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켜 이 지역을 점령, 만주국을 수립했다.

세 번째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일제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물론 미국과 소련 등이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곳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으로 이미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던 북한과 연변에 자리를 잡은 조선족동포들은 중국공산당을 지원해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결국 북한과 연변의 조선족은 20세기 중반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패권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 한민족 인적․물적 교류의 무대
연변에는 네 부류의 한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북한 국적의 조교, 한국 국적의 재외국민,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제3국 국적의 외국국적동포 등이다. 북한국적의 조교는 현재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국적의 재외국민 수는 2007년 말 현재 1만 여명에 이른다. 외국국적동포는 수백명정도이다. 연변지역이 한민족 교류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한민족이 연변에 모여 살고 있는 것은 연변의 역사성과 함께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철조망으로 단절되어 있어 왕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변지역에서는 제한적이지만 북한과의 직접 소통도 가능하다. 조선족동포나 북한국적자인 조교들은 비교적 간단한 절차만 갖추면 통행이 가능하며 제3국 국적의 외국국적동포들도 일정한 여건만 갖추면 어렵지 않게 통행할 수 있다.

연변은 남한과 북한간의 소통을 위한 교류의 장소가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남한과 북한  사람이 만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다. 어떤 유형의 만남이라도 과정과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연변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다. 실제 연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남북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학술교류도 한 예이다. 대체로 연변의 조선족 학자들이 중국측을 대표해 참여하는 남북한과 중국 간의 국제학술회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연변지역은 또한 1990년대 중후반 북한주민들이 기아로 허덕일 때 한국이나 제3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북한에 살고 있는 친인척을 만나는 재회의 장소였다. 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부모형제자매를 아름아름 수소문하여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나 또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연변지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변은 앞으로도 한민족이 이산의 아픔을 달래는 만남의 무대가 될 것이다. 

. 북한으로 가는 통로
중국 국적의 조선족은 물론 북한 국적의 조교는 중국과 북한을 왕래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물론 연변에 친인척이 있는 북한주민들도 연변방문이 용이하다. 지리적으로 연변과 가까운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지역 주민들은 물론 평양 등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자주 왕래한다. 연변이 북한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인 셈이다.

북한으로 향하는 통로로서 연변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에 숨통을 열어주는 대북교역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폐쇄사회인 북한에 새로운 문물과 정보를 전파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실질적 담당자는 물론 조선족과 북한국적의 조교들이다. 연변에 연고가 있는 북한사람들이나 두만강을 넘나드는 꽃제비들도 제한적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연변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족들이 북한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중교역에서 조선족과 조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보따리 장사의 수준이지만 연변에 연고가 있는 북한사람들도 직접 교역에 나서기도 한다.    

보도에 따르면 2006년 상반기에 연변의 대외무역 총액은 3억6천7백만 달러였는데 이중 대북무역액이 1억2천4백만 달러였다. 연변지역 전체 무역액의 3분의 1이 북한과의 교역인 셈이다. 

연변지역에서 북한을 상대로 사업하는 한국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한국사람이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조선족동포들과 합작 형태로 이루어진다. 북한의 농수산물을 사들여 연변에서 가공하여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주된 사업형태이다.

연변지역이 북한으로 통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북한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연변에서 활동한다. 한국사람도 있고 또 제3국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아예 북한을 염두에 두고 연변에 들어왔지만 일부는 연변지역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왔다가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접하고 이들을 함께 돕는 사람들도 있다.

. 변경지대로서 월경협력의 장
연변은 남으로는 백두산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으로는 러시아 연해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북한 및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경계선의 총길이는 768.5km이며 이중 북한과는 522.5km, 러시아와는 246km이다. 북한과 중국 간의 경계를 이루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총 1,334km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 두만강과 압록강 수계로 이루어져 있고 육계는 불과 45km에 불과하다.

두만강은 중국의 연변과 북한의 함경북도 및 양강도 지방과 연해 있다. 압록강은 중국의 길림성 및 요녕성 지역과 북한의 양강도 평안북도 자강도 지방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압록강 접경지대는 현재의 연변과는 상관이 없지만 과거 서간도지역이다.

북한과 중국은 월경협력을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 상에 모두 17개의 출입처(口岸)를 두고 경제문화적 관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중국에서 구안(口岸)은 출입통로, 출입처, 통상구, 교두 등으로도 불리며 세관, 변방부대(출입국 관리), 검역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북한과 중국 간 출입문제는 2001년 체결한 “변경 출입처 설치 및 그 관리제도 협약”에 근거하고 있다.

북중간 출입처는 권하-원정, 사타자-샛별, 도문-남양, 개산둔-삼봉, 삼합-회령, 남평-무산, 고성리-삼장, 쌍목봉-상두봉, 장백-혜산, 임강-중강, 청석-운봉, 집안-만포, 노호초-위원, 태평만-삭주, 단동-신의주(육로), 단동-신의주(철로), 단지항-신의주항 등이다.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해 동안 출입처를 통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은 34만명,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은 12만 명에 이른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나갈 수 있는 출입처가 있다. 이곳은 연변과 러시아 연해주를 이어주는 한편 연변이 최단시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동춘해운이 러시아의 자루비노항과 속초를 오가며 연변의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연변지역은 두만강 하구의 약 15km가 막혀 해상로가 봉쇄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연변지역은 훈춘을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1860년 베이징 조약이전까지 지금의 연해주 지역은 중국의 관할 하에 있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진한시대 이후 민간에서는 훈춘으로부터 염주(鹽州)-호시네도-일본까지의 항로를 <동북아시아의 비단길>로 불렀다. 그리고 이 노선을 따라 일본으로 34차례, 일본은 중국으로 13차례나 왕래했다.

북경조약으로 연해주지역이 러시아영토로 귀속되었지만 중국은 두만강하구를 이용하여 동해상으로 나가는 해상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1886년 이른바 <중-러훈춘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중국 기선이 두만강을 출입할 수 있도록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두만강 입구가 봉쇄된 것은 1938년부터이다. 일본이 연변지역을 강점해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연해주지역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데 이어 두만강마저 봉쇄한 것이다. 이후 연변지역은 해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잃고 내륙지역으로 고립되게 되었다.(차철구․한수영, 1994)


 제3장 연변‧조선족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글싣는 순서
1.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연변
0. 연변지역에 대한 이해
- 연변의 유래와 지역적 범위
- 자연지리적 환경
- 사회문화적 환경
0. 동북아시아역사를 통해 본 연변
- 주변국들의 연변지역에 대한 관심
- 청의 봉금정책과 봉금지대에 대한 해석
- 백두산정계비의 진실
- 일본의 개입과 간도협약
- 북․중 간 국경조약
0.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
- 역사 속에서 보는 지정학적 가치
- 한민족 인적교류의 무대
- 북한을 향하는 새로운 통로
- 변경지대로서 월경협력의 장
2. 변경문화의 체현자로서 조선족
0. 한민족의 연변이주
- 조선족 명칭의 유래 및 현재적 의미
- 해방 후 중국에 정착한 조선인들
- 한민족 연변이주에 대한 인식
0. 조선족의 위상과 역할
- 북한변화의 촉매자
- 남북관계의 매개자
- 한중협력의 중재자
- 동북아시아 미래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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