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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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4-2] 조선족사회의 경제현실 진단
2008년 10월 14일 04시 26분  조회:3805  추천:56  작성자: 곽승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4장 연변과 조선족사회에 대한 현실진단



2. 경제적 측면


0. 연변경제 현실

. 개혁개방과 연변


개혁개방정책 이전 중국은 국가안보에 우선적 가치를 둠에 따라 교통 등 인프라의 여건을 무시한 채 주로 내륙지방에 국가의 기간산업망을 구축했다. 또 지방산업을 통해 지역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조달토록 하는 사회주의국가의 일반적 산업정책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동북3성 지역은 일제시대에 자리잡은 공업지대로서의 면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연변지역도 개혁개방정책 이전에는 전통적인 국가정책에 따라 내수시장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영세하지만 2차 산업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지역경제의 주력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산업규모의 영세성은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방정부의 자치권 강화, 지역별 독립성 확대 그리고 지역 간 경제교류의 활성화로 경쟁이 치열하게 되면서 지역별 산업분포와 부존자원의 차이가 지역경제 성장에 그대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연변지역 역시 그러한 정책의 영향을 받아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2차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후반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2년 한중수교는 연변지역의 산업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백두산관광 붐으로 연변을 찾는 한국관광객이 늘어나게 되자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이를 새로운 활로로 받아들인 것이다. 주정부는 2차 산업 대신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을 축으로 하여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연변에서는 2차 산업이 침체를 면치 못하게 된 반면 3차 산업은 급속히 성장하게 됐다.

연변조선족자치주 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연변을 찾은 관광객은 281만 명에 이르며 이중 해외 관광객은 18만6천명이나 되었다. 관광수입은 21억7천만 위안(2천6백억원)을 기록했다. 백두산관광과 관련한 또 다른 통계도 있다. 한 중국전문 인터넷 매체는 2007년 4월 중국의 백두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 자료를 인용, 중국측이 백두산 관광사업만으로 2005년에 관광객 50만 명으로 6천300만위안(75억원 상당), 2006년에 70만 명으로 1억위안(120억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다와 접해있지 않아 내륙 변방지역의 한계에 갇혀있는 연변지역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부터 직접적인 수혜를 입지 못했다. 1990년대 초 유엔개발계획이 추진한 두만강개발계획에 힘입어 훈춘시가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관심을 끌었으나 이 계획이 흐지부지되면서 훈춘개발도 중단됐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낙후된 지역에 대한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동북공정과 동북진흥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최근 연변지역의 인프라 구축이 활기를 띄고 있다.

. 산업별 동향

연변지역이 3차 산업 중심으로 산업편재가 바뀌었지만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몇몇 분야는 이 지역의 주력산업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백두산지역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이용한 임업과 섬유업 그리고 연초산업 등이 이에 속한다. 

연변지역은 총면적의 81.3%가 산림지역으로 되어있어 ‘장백의 임해’로 불린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중국의 주요 목재생산기지 중의 하나이다. 이를 반영하듯 연변지역은 업종별 종사 직공인수 비중이 목재채취 및 운송부문이 압도적으로 높다. 1995년 통계에 따르면 목재가공 26.3%, 제지 7.4%, 비금속광물제품 7.1%, 방직업 6.8% 등의 순이다. 특히 연변의 목재가공 및 제지공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배니아판, 톱밥판, 종이펄프, 신문용지, 가구 등이 주력 생산품이다.

섬유공업 또한 연변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규모를 갖춘 주력 산업부문으로 분류된다. 방직 편직 등의 공장들이 있으며 주로 면직물 면사 방직품 아마사 등을 생산하고 있다. 금사 마사 화섬사 화섬혼방포 내의 셔츠 등의 제품은 지속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연변지역의 제조업은 대체로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중심의 업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중화학공업 부문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기술수준이 낮고 공해유발적인 화학섬유제조업 및 프라스틱 제품 등으로 특화되어 있다. 이는 한국 등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치가 주로 노동집약적이며 공해유발 업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관련있다.

1998년 연변통계연감에 따르면 연변의 2차 산업 기업규모는 소형기업의 비중이 94.9%, 중형기업 4.1%, 대형기업 1.0%로 절대다수가 소형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기업별 평균자본금도 중국전체 평균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이와 같이 연변 2차 산업 기업은 규모의 영세성과 산업기술의 후진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 연변경제와 한국

연변경제는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연변경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변경제의 한국 의존도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과의 특별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의 연변지역 진출은 제한적이다. 산동성 등지의 연해지역은 물론 내륙지역인 흑룡강성 보다도 오히려 적다. 연변지역의 지리적 한계가 투자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대기업이 투자한 연변기업은 거의 없다.
남한의 절반 가까운 면적에 고작 217만5천여 명의 인구를 가진 연변조선족자치주는 2차 산업을 유지할만한 내수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데다 지리적으로도 내륙에 위치해 있어 물류수송이 어렵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연 지리적 조건과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한국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연변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은 414개로 총투자액이 23,935만 달러에 이른다.(이승률, 2007) 연변에 투자한 전체 외자기업의 실제 총투자액의 58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이다. 비중은 절반을 넘지만 내용은 그다지 평가할만하지 못하다. 연변에 투자한 한국기업은 공업 농업 식품 및 의료 위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2004년에 발표된 한 통계에 의하면 연변지역에 투자한 비교적 큰 규모의 한국기업을 업종별로 분류하면 공업생산기업이 323개로 가장 많고 농업부문이 267개로 뒤를 이었다. 그리고 요식업 43개, 부동산관련업 11개 등이었다. 지역적으로는 연길시에 투자가 집중되어 있으며 북한 및 러시아와의 국경무역이 가능한 훈춘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길과 훈춘을 제외한 지역에는 한국기업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한국기업의 연변투자는 1992년부터 시작됐다. 갑을방직(현 대경방직)이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연변에 투자했다. 이어 의류 방직 등 노동집약형 제조업체와 대우호텔 등 서비스업체가 잇따라 진출했다. 연변한국상인회에 따르면 이 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관광차 오는 한국인들은 많으나 투자하거나 정착하는 사람들은 적다. 2006년 말 현재 연변지역에 정착한 한국인은 약 1만 여명에 이르는데 상당수가 소자본을 투자한 생계형 이주자들이다.

한국기업의 연변진출은 제한적이지만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변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이다. 2006년 한 해 동안 해외에서 연변으로 송금된 돈이 무려 10억5천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중 한국에서 송금된 것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 연변경제의 미래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지방기업은 지역 내 경쟁자가 없었으므로 규모의 경제라는 경제원리가 무시되어 명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이 시장경제를 강화하면서 지역 간 경계가 허물어지게 되어 타 지역 업체들과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 지면서 연변의 2차 산업 역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제고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중국 내 역외수출이나 해외수출 등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여건을 갖추기 어려운 실정에 있어 연변 2차 산업의 제품경쟁력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가 90년대 이후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 위주의 지역경제 개발정책을 추진함으로써 2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것도 연변의 2차 산업이 위축되게 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연변의 주력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3차 산업 발전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중국정부가 길림성 산하에 직할기구를 설치해 연변조선족자치주 관할 하에 있던 백두산지구를 관할토록하고 백두산에 인접한 통화시에 비행장 건설을 서두르는 등 연변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에 부정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는 연변의 3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더욱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간 교류협력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현대아산그룹이 2008년 5월부터 직항로를 통해 백두산관광을 시작하기로 북한측과 합의함에 따라 연변지역의 관광산업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겪이다. 따라서 연변이 지금처럼 3차 산업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향후 연변은 지역 특산물과 지역적 특성을 결합한 2차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즉 연변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2차 산업 중심의 산업전략을 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2차 산업 구조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재조정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도 최근 이런 현실을 감안해 연해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되어 있는 연변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통한 IT산업을 특화시키려 하고 있다. 연변의 특성에 맞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IT산업을 선택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경제 또는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도 그런 점에서 다를 바 없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기술 및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연변은 한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활용함으로써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연변은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의 핵심지역으로서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적극 추구하고 있는 한국정부와 한국의 우수한 IT기업으로부터 선진기술을 유인하기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

실제 한국사회와 연변 조선족사회 간에 IT부문에서의 협력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연길시정부와 길림성 정보상업청 등은 2007년 9월 6-8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백산호텔에서 한중IT포럼을 개최하고 한국IT벤처기업연합회(KOIVA)와 한중소프트웨어산업단지 조성에 협력키로 합의했다. 이 포럼에서는 연길정보산업협회와 연변대학이 KOIVA와 IT인력 양성 및 교류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으며 연변대학 졸업생 1백여명을 대상으로 한국 IT기업 취업설명회도 가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는 연길시 첨단기술개발구에 36만4천평방미터 규모의 한중소프트웨어단지를 조성하고 앞으로 200-300개의 한국 IT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도문시에도 북한 IT 기술인력이 참여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연합뉴스, 2007.9.11)

연길시 IT벨리 투자관리위원회 한 책임자는 “IT가 연변의 미래”라며 “IT야말로 연변 조선족사회의 미래 먹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IT산업에 주목하는 것은 조선족동포들이 상대적으로 IT환경에 잘 적응하고 연변 내에 IT관련 교육기관이 다수 자리잡고 있는 것 때문이다. 연변 자체의 IT 인력과 함께 북한의 고급 IT인력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앞선 IT산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 한국 IT기업들이 연변을 교두보로 하여 중국의 거대한 IT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변경제의 미래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농업부문을 특화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농사짓는 일은 당장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농사를 외면하며 토지를 버리고 일거리를 찾아 대도시로 또는 한국 등 외국으로 떠나기보다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농산물 재배를 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 남방지역 등지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농촌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나 조선족 농민들이 떠난 자리를 꿰차고 묵묵하게 농사짓고 있는 한족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연변지역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콩 농사에 적합한 토질과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한국의 유수한 식품회사가 연변지역에서 대규모 콩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연변지역은 지리적으로 북한 및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변경지역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리적 여건을 활용하여 인접국가와의 월경협력을 통한 무역을 주력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대외무역액은 6억8천만 달러에 이른다. 이중 북한과의 무역이 2억5천만 달러를 넘어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의 무역도 1억 달러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다. 최근 중국은 연해주지역에서 러시아와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연변지역도 훈춘을 거점으로 한 국경무역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0. 주민생활과 소비

. 주민생활 수준

연변지역은 도시를 중심으로 2차 산업이 발달하였지만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중이 높다. 2005년 말 현재 농업인구는 76만7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35.3%에 이른다. 조선족동포들 역시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호구조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실제 상황과는 차이가 있어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족동포들의 해외 및 연해도시로의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져 한국을 비롯한 해외로 나간 조선족이 30만 명을 넘어섰으며, 연해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이 50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변에서 운영되는 한 인터넷매체는 2007년 11월 11일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2007년도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소수민족 자치주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1/4분기 GDP는 44억4천만위안(5천33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8.5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이는 길림성의 평균 성장률보다도 2.5퍼센트 높은 것이다. 연변의 급격한 성장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위해 연변 밖으로 진출한 동포들의 송금이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연해도시와 한국 등지에서 막대한 송금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동포들의 전체적인 생활수준은 높지 않다. 외지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변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연변지역의 1인당 GDP는 중국평균보다 1000위안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송출에 따른 막대한 송금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1인당 GDP가 중국평균 보다 낮은 이유는 빈부의 차가 극심한데서 찾을 수 있다. 연변조선족 내에 거주하는 83만 여명의 조선족동포들 중 14만 여명 이상이 극빈자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전국적으로 가장 빈곤한 현과 현급시 500여개를 국가급 빈곤 현 및 시로 지정해 해마다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연변조선족자치주의 6개 시와 2개 현 중 용정과 화룡 등 2개 시와 안도와 왕청 등 2개 현이 국가급 빈곤 현과 시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8월에 제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130위안(한화 약 16,000원)이 안 되는 조선족 빈곤인구가 142,682명이나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 빈곤인구의 58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다. 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내에서 조선족 극빈자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길 등 도시지역의 조선족동포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다. 일부 부유층들의 소비생활은 한국의 중산층 못지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먹고 입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자동차구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무송출로 인한 외화수입이 증가하는 것과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소비향락산업에 집중 투자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다. 문제는 연길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최저생활도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변경제가 기형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소비행태

조선족사회는 한족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소비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태는 개혁개방 이전보다 이후 더 심화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개혁개방 이전에 조선족 농민은 논 위주로 농사를 지었던 반면 한족 농민은 밭농사 위주로 농사를 지었다. 따라서 조선족 농민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윤택했다. 그러나 조선족 농민은 과소비 성향 때문에 겉으로는 풍족해 보였으나 실제는 저축을 하지 못하는 등 궁핍하게 살았다. 반면 한족 농민은 겉으로는 조선족보다 수입이 덜해 빈궁해 보였지만 실제는 근검절약하여 저축을 하는 등 오히려 여유있는 생활을 하였다.

조선족의 이러한 생활습관은 개혁개방 이후 더 심화됐다.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이 연해도시나 한국 등지에 나가 비교적 큰 돈을 벌었으나 비생산적인 부문에 많은 지출을 함으로써 경제력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말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선족 농촌의 경우 연인원 6,000여명이 한국 등 외국에서 일해 몇 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그중 3분의 1정도가 비생산적인 생활소비에 탕진했다.

연변에서는 조선족의 과소비행태를 한족과 비교하여 전하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연변에서 조선족이 택시를 타지 않으면 택시기사가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족들은 여간해서 택시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한족은 3명 정도가 모여도 심사숙고한 후 택시를 타지만 조선족은 걸어서 갈만한 거리도 혼자 택시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또 조선족은 돈이 생기면 그때그때 다 쓰지만 한족은 장롱 깊숙이 모아둔다. 그래서 겉보기와 달리 조선족이 한족들에게 돈을 빌린다고 한다.

이런 과소비 행태는 연길시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서 있는 소비향락산업에서도 반증된다. 다방 발마사지방 술집 등이 연길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주 고객은 조선족동포들이다.

조선족사회의 과도한 소비성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우리민족의 낙천적인 성격과 가무를 즐기는 성향을 들 수 있다. 옛날부터 우리민족은 가무를 좋아해 때마다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겼다. 이러한 전통은 연변 조선족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3.8국제부녀절, 5.1절, 6.1국제아동절, 8.15노인절, 9.3자치주성립기념일 등 주요 기념일을 기해 주민들이 함께 가무를 즐기고 있다. 이런 기념일에 한족들은 특별한 가무를 행하지 않는다.

최근의 과소비행태는 돈을 쉽게 번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애써 고생해 돈을 벌었으면 그만큼 절약하고 의미있게 사용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흥청망청 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게 되고, 돈을 다 쓰고 나면 또 벌면 되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조선족의 과소비행태를 이들의 이민성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한반도에서 이주한 조선족들이 중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에 따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영주이민자로 인식하기보다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이주한,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으로 간주함으로써 그때그때를 즐기는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조선족의 이러한 과소비행태는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이러한 소비문화를 생산적인 것으로 바꾸지 않는 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맺기가 역설적으로 연변 조선족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은 한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0. 연변 경제의 문제점

. 지역 및 계층 간 부의 불균형

연변지역과 조선족 사회의 경제적 여건은 매우 극단적으로 나뉜다. 지역적으로는 물론 계층 간에도 부의 불균형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연길을 비롯한 몇몇 도시는 번성하고 있는 반면 여타 농촌지역은 점점 빈궁해지는 지역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주민들의 경우에도 연해도시나 해외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하지만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겹쳐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지역 간에는 물론 주민들 사이에도 빈부의 차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적으로 몇몇 도시만 번성하고 있는 현상은 연해도시와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발전되고 또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연길 등 도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번 연변지역 조선족동포들의 경우 자신이 성장한 곳보다 연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 경향이 많다. 이는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도시화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연변의 경우 보다 빠르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역 간 불균형 발전과 함께 조선족사회 내에서도 부의 편중현상이 심각하다. 개인 간 부의 불균형은 개개인의 능력보다 한국과의 연고가 있느냐의 여부와 직결되고 있다. 즉, 한국에 연고가 있으면 한국을 방문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찾게 되는데 정상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돈을 버는 사람에 비해 힘은 더 들며 돈은 더 못 버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한국을 방문하려다 잘못되어 돈만 날린 사람이나 한국을 방문한 후 불법체류자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한국방문을 추진하다 사기를 당해 고통 받은 사람들이 한때 1만5천명에 달했었다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과의 관계가 연변과 조선족사회의 전체적인 부를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 관광 및 소비향락 산업 편향성

연변은 90년대 중반 한국으로부터 관광객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는 경제정책을 2차 산업 대신 관광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연변의 관광산업은 한국인이 주 대상이었다. 한국인들의 연변에 대한 향수와 백두산에 대한 경외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남방지역의 중국인들도 백두산지역에 대한 관광에 가세하면서 관광수요는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어 관광산업은 연변지역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관광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소비향락 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일차적으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한국과 연해도시에서 돈을 벌어온 조선족들이 앞을 다투어 소비향락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또 이용함으로써 소비향락 산업은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연길시내에 음식점과 함께 다방 발마사지방 등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연길시는 2004년에 소비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중국의 100대 발전도시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개개인이 외국에서 벌어오는 돈의 액수가 적어 기업형 투자를 하기에 적합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자본으로 투자할 것을 찾다보니 소비향략 산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으로부터 송금되는 돈이 넘치면서 주민들의 씀씀이가 커져 상대적으로 소비향락 산업이 호황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기도 하다. 둘째, 특별한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조선족사회의 분위기도 소비향락 산업에 돈이 몰리는 이유이다. 투자비가 적을 뿐 아니라 인건비가 싸 운영비가 적게 든다는 것도 이런 심리를 부채질 하는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셋째, 연변지역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인 점을 들 수 있다. 연변의 전체면적은 남한의 절반에 가깝지만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불과 2백17만5천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농업을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산업 발달을 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관광산업과 소비향락 산업 중심의 이러한 연변경제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이 백두산관광을 위해 2008년 5월부터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국에서 직항로를 이용한 백두산관광이 이루어지면 연변지역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또 백두산지역 관할권이 길림성 산하 특별기구로 이관되고 백두산 인근의 통화시에 공항이 건설되고 있다. 이럴 경우 연변 관광산업의 주 대상인 한국인과 남방지역 중국인 모두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 한국 의존 심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지역적 범위에 비해 인구밀도가 현저히 낮다. 남한면적의 42퍼센트가 넘지만 인구는 고작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대부분의 조선족동포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며 안분지족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후 한국과 새로운 관계맺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들에게 한국은 마음속에 그리던 모국일 뿐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신천지였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너나할 것 없이 금광을 찾아 서부로 달려가듯 조선족 동포들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몸과 마음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동포들은 조선족 전체 인구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3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약 7만 여명은 결혼이주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돈을 벌기위한 노동이주이다. 약 3만 여명은 불법체류자이다.

중국 내 한국관련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조선족동포들도 적지 않다. 산동성을 비롯한 연해도시에 약 50만 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 중 다수가 한국과 관련된 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의존도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 연변과 조선족사회에 대한 현실진단 글싣는 순서 
1. 정치적 측면
0. 중국의 정치민주화와 연변
0. 조선족동포의 정치의식
0. 조선족자치주의 미래
2. 경제적 측면
0. 연변경제 현실
- 개혁개방과 연변
- 산업별 동향
- 연변경제와 한국
- 연변경제의 미래
0. 주민생활과 소비
- 주민생활 수준
- 조선족의 소비행태
0. 연변경제의 문제점
- 지역 및 계층 간 부의 불균형
- 관광 및 소비향락 산업 편향성
- 한국 의존 심화
3. 사회문화적 측면
0. 인구 문제
0. 사회적 일탈 문제
0. 민족교육 문제
0. 정체성 문제
0. 가치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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