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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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려행기 [15]
2020년 01월 24일 20시 49분  조회:4579  추천:0  작성자: 주청룡
 서유럽 려행기 [15] 

서재에는 탄호이저(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독일의 중세 때에 기사이자 음유시인인 탄호이저가 마녀의 유혹에 빠져 관능의 포로가 되였으나 애인 엘리자베트의 순수한 사랑과 그녀의 죽음에 의하여 령혼의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의 모험담을 그려놓았으며 큰 응접실에는 백조의 기사(중세 유럽에서, 봉건 영주에 딸린 무사) 로엔그린(바그너의 랑만적 오페라)과 그의 아버지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꾸며 놓았다. 4층 음악실 벽에는 성배의 왕인 파르시팔(중세의 아서 왕 전설에서 성배를 찾으러 나선 기사)의 생애를 묘사 한 벽화로 채워졌는데 모두 바그너의 음악에 나오는 인물들이였다. 이런 벽화들을 보노라면 루트비히 2세가 다분히 바그너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벽과 바닥에는 그림이나 장식이 없는 곳이 없고 푸른색의 둥근 천장은 별들로 장식했으며 붉은 반암으로 만든 둥근 기둥이 그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루트비히 2세의 침실은 특히 호화롭다. 루트비히 2세는 노이슈바인슈타인성을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성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가구와 장식을 구입했다. 여기에 당대의 최신 과학기술을 리용한 시설들도 있었는데 수세식 화장실, 중앙난방시설, 음식을 나르는 선반, 엘리베이터 등 전기를 리용한 각종 시설은 물론 전화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뾰족탑, 망루, 인공동굴을 갖추고 있다. 높은 산 우에 세워진  이 성은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전설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성 곳곳에 백조를 주제로 한 구조물이 있어 “백조의 성”이라고도 한다.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워낙 총애한 나머지 국고를 랑비하고 바그너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국민들과 궁정 관리들은 바그너를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1885년 바그너에게 바이에른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해마다 여러 곳에 궁성 건축을 위해 약 150만 마르크를 사용했는데 그 정도로는 그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트비히 2세는 국가 예산마저 랑비하게 되고 결국 반대자들에 의해 1886년 6월 9일 금치산자(자기 행위의 결과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 일정한 자의 청구에 의해 가정 법원으로부터 자기 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할 수 없도록 법률적으로 선고를 받은 자)로 선고를 받았다. 네 명의 정신과 의사는 루트비히 2세를 검사하지 않은 채 정신병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설하려는 것 자체가 정신병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하여 그는 강제적으로 퇴위당하였다.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서 강제로 퇴위당한 후3일 만에 루트비히 2세는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죽음은 자살로 공식 발표되였으나 실제로는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92년 완성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 했다.

루트비히 2세는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다고 자신이 죽으면 성을 허물어 버리라고 유언을 했고 한다. 당시에는 나라의 재정을 돌보지 않고 성을 짓는 데만 빠져서 ‘미친 왕’이라 불리우며 강제퇴위를 당하였고 그는 죽음으로 끝을 맺었지만 성은 허물어 지지 않고 그의 광기 덕분에 지금은 훌륭한 관광명소로 되였고 후손들은 관광 수입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다.  

호엔슈방가우 성(旧天鹅堡)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서로 마주 볼수 있는 또 하나의 성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호엔슈방가우 성(旧天鹅堡)이다.




호엔슈방가우 성

이 성은  원래 중세 때 지어진 기사(중세 유럽에서 봉건 령주에 딸린 무사)의 성이였는데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다가16세기에 이르러 당시의 기사들이 전부 사망되고 호엔슈방가우 성은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게다가 1800년 ~ 1809년 나쁠레온전쟁에서 엄중하게 파괴된것을 왕이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립한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이곳이 지세가 좋다고 하여 1832  ~ 1836년에 걸쳐 신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되였다고 한다. 이 성은 실제로 왕 내외의 거처로 사용되였고 루드비히 2세가 이곳에서 자랐는데 그는 이 성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아름다운 성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게 되였고 후날 왕이 된 후에도 이곳에 머물며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건설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밤에 본 호엔슈방가우 성

 
내부의 구조를 보면 지금은 기도대청, 당구유희청, 왕후의 화장실, 왕후 서재, 왕후의 일상생활을 하는 방, 국왕의 탈의실, 침실, 기사방, 응접실, 음악실, 도서실 등이 있다.
 
기도대청은 원래 무기실과 물마이는 곳이였으나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신고딕 양식으로 기도실로 재건되였으며 지금도 여기에서 일요일과 명절이면 성제(聖祭)를 거행한다.

당구유희청은 원래 왕의 접견을 받을 때의 대기실이였으며 이 실내 벽화는 당시의 기사 로엔그린의 전설중의 정경을 그린것이였는데 형식상에서는 랑만주의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 퓌센에서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호엔슈방가우 성의 관광은 이로서 끝이 나고 호텔로 향하였다. 


 


퓌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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