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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氏東國始祖의 묘소를 찾아서
2011년 05월 13일 13시 17분  조회:7937  추천:53  작성자: 주청룡

朱氏東國始祖의 묘소를 찾아서

 

주청룡

 

나의 오래 전부터의 소망이 조상이 누워 계시는 고국 땅을 밟아 보았으면 하였는데 이번에 한국정부의 좋은 정책으로 하여 고국으로 친척방문을 오게 되여 고국 땅을 밟게 되였으며 시조의 사당과 묘소도 참배하게 되여 오매에도 그리던 나의 소원을 풀게 되였다.

 

나는 중국에서 족보를 정리하느라 많은 자료를 찾으면서 끝내 우리 조선족(한국에서 말하는 朝鮮族과 韓族을 다 말함) 신안주씨(조선족 주씨는 일본)의 始租묘소가 전라남도 和順郡 綾州面 千德里 懷德洞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 내였는데 이번에 한국에 와 보니 전국 여행지도 책에도 천덕리에 주자묘(朱子廟)가 표시 되여 있었다.


3 15일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광주행 열차를 타고 광주에 가서 또 버스를 갈아 타고 천덕리로 갔다. 천덕리에 내리니 朱子廟길안내 표시가 있었다. 길안내 표시에 따라 약간 굽이 돌아 걸으니 약 500m가량 거리에 나의 시조사당과 묘소가 한눈에 안겨 왔는데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 끝내 찾았구나. 저곳이 바로 나의 시조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는 곳이구나! 우리는 절반 뛰고 걸고 하면서 사당으로 향하였다. 사당에 도착하니 사당관리 일군이 우리를 보고 마중 나왔다.

 

우리는 사당관리일군과 인사를 나누고 찾아온 사연을 말하니 그는 우리를 반가이 맞이 하고 사당으로 안내하면서 사당의 개황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다. 사당의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져 있었는데 敷地面積이 2000(6667평방메터)이고 정면에는 54개의 돌계단을 올라 崇禮門을 방불케하는 承敬門이 왼쪽에 있었고 오른쪽에는 懷德門이 있었는데 承敬門으로 곧추 들어가면 朱子廟이고 懷德門으로 곧추 들어가면 東源祠였다. 朱子廟와 東源祠는 모두 청와대처럼 청색의 기와가 얹혀진 사각으로 된 고대 건축물 모양으로 되여 있었는데 朱子廟의 건평은 21(69.3평방메터), 東源祠의 건평은10(33평방메터)으로서 1976년 6월 23 착공하여 1977년 12월 30 준공 하였다 한다. 담장밖에는 잘 생긴 소나무들이 옛 선비들의 자태로 서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 하에 먼저 사당을 참배하였다. 朱子廟는 우리 신안주씨의 一世祖上인 중국 南宋때의 저명한 정치가, 교육가, 철학가, 朱文公(1130~1200) [注解1]의 사당이고 東源祠는 우리 조선족 주씨의 시조 즉 東國始租[注解2] 청계공(淸溪公) 주잠(1194~1260) [注解3]의 사당이였다. 朱子廟 왼쪽에는 1.50m 높이의 직방체 돌 위에1.50m로 된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주문공의 銅像이 있었는데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이가 학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당에 들어 서서 우리는 속으로《第33世孫(朱熹로부터)이 조상님께 절을 올립니다.》하며

 

정중히 참배하였다. 사당에서의 참배를 마치고 나서 관리원의 안내 하에 청계공(주잠)의 묘소로 향하였다.


사당 왼쪽 산기슭에는 웅장한 분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朱文公의 증손이며 우리조선족 주씨의 시조인 청계공 할아버지의 묘소였다. 분묘는 60개의 돌계단을 10개씩 끊어 올라가 있었으며 돌로 울타리를 만들어 둘렀는데 고려시대에 군왕들이 무덤을 조성할 때 쓰는 방법으로 12간지를 상징하는 동물의 형상을 12(十二方)에 새겨 넣어져 있고 좌우에는 말과 양, 그리고 사자와 장군석, 문인석 등이 도열해 있었다. 그 뒤로는 조개 껍질 마냥 능선(稜線)이 오르다가 적당한 눈 높이에서 멈췄는데 그 위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반달모양으로 둘러 있었다. 분묘 옆에는 3.5m 높이로 된 新安朱氏東國始祖南宋翰林學士淸溪公朱濳之事績碑 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碑文略함) 우리는 여기에서 또 조상님께 정중히 절을 올렸다. 1224년 청계공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고려땅을 밟음으로 하여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천백번 무릅을 꿀고 절을 하고 싶었다.
 

 

청계공의 묘소에서 아래로 내려 오면 또 문절공(1227~1287) [注 解4] 의 묘 소도 있었는데 묘소는 소박하게 가꾸 어져 있었고 묘 앞에는 2.25m로 된 高麗知都僉議府事謚文節朱公之墓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으며 주위는 소나무들이 둘러 서 있었다. 우리는 문절공의 묘소에 가서도 참배를 하였다. 이로서 조상들에 대한 모든 참배가 끝났다. 참배가 끝나자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사당과 묘소의 이곳 저곳을 렌즈에 담아 많은 역사자료들을 남기였다. 저녁에 사당관리일군은 우리를 열정스레 접대하였다. 식사 후 나와 사당관리일군[注解5]은 신안주씨에 대하여 흥미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도 중국에 있을 때 새로 족보를 정리하면서 많은 자료를 보았기에 이 방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 아는 것이 퍽 많아 그날 저녁 그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지 않은 력사자료들을 수집하였다. 1224년 청계공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고려땅을 밟아서부터 784년 후 그이로부터 30세손인 내가 오늘 또 다시 고국땅을 밟아 조상님들을 참배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자호감을 느끼게 되였으며 오매에도 그리던 소원을 풀게 되였고 또 적지 않은 력사자료들을 얻은 것으로 하여 무등 기뻤다. 이제 나의 후세에서 누가 다시 고국에 와서 조상님들을 참배할는지? (우리 후대들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문장격식과 편폭의 제한으로 하여 이 글에 올리지 못하므로 앞으로 다른 책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다시 한번 사당과 묘소를 돌아 보고 아쉬운 심정으로 리대우씨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능주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고 돌아 왔다.

 

[주해]

[1]  朱文公은 諡號로서 임금이 追贈한 이름이고 字는 元晦, 號는 晦庵, 이름은 熹이며 중국 남송때에 복건성 尤溪에서 출생, 漢族, 性理學을 集大成한 孔子, 孟子 다음의 大儒學者로서 그의 사상이 봉건통치계급의 수요에 적응 되였으므로 宋, , , 淸 시기를 내려 오면서 統治理念으로 승화 되였으며 조선과 일본에도 전파 되여 官學으로 되였다.

 

 

[2] 朱熹 앞의 8대 조상인 朱瑰를 신안주씨의 元始祖로, 朱熹를 一世租로, 주잠을 東國始租로하고 있다. 東國始租란 중국에서 동방의 나라 高麗로 처음 온 조상이란 뜻임

 

 

 

[3] 朱濳은 주문공의 증손으로서 1220, 남송때에 浙江 烏程의 縣令으로 있다가 杭州로 옮겼다. 그때 몽고가 침입해 들어오자 조정의 대신들은 主和論과 투항주의를 주장하자 나라를 구하려는 그이는 그들과 싸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1224, 고려 고종11년에 고려로 망명하여 全羅道羅州에 정착하여 조선족 신안주씨의 시조로 되였다.

 

[4] 文節公은 고려 충열왕이 追贈한 諡號고 청계공의 장손이며 이름은 열(), 자는 이화(而和), 호는 죽수(竹樹)며 충열왕에게 글을 가르친 스승이시였고 고려가 元나라의 지배를 받아 해마다 많은 금과 軍船을 바치는 무거운 부담을 가져 임금이 원나라 황제에게 부담을 덜어 달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해결을 못 보아 나라가 곤경에 빠졌을 때 문절공이 원나라와 교섭하여 금과 軍船을 바치는 것을 취소하여 나라를 구한 救國大臣이다.

 

[5] 사당 관리는 주자의 제27世孫 炳演(71)과 李大雨(56) 두분이 한는데 주병연은 그날 서울로 가시고 리대우씨(56)가 우리를 안내 하였는데 그는 비록 주씨성은 아니지만 주자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자원봉사로 여기에 와서 관리를 한다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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