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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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령릉원
2011년 06월 29일 11시 55분  조회:6914  추천:7  작성자: 주청룡

송경령릉원

청해

송경령릉원은 상해시 중심구에서 약간 서부인 장녕구()의 송원로(宋园路) 21호에 자리잡고 있다. 송경령릉원은 1932년에 건립되였는데 원래는 《상해만국공동묘지(上海万公墓)로 명명되였었는데1981 5 19일 송경령이 북경에서 서거하자 그의 생전의 유언에 따라 골회를 여기에 안장하자 1982 2 23일 이 릉원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들었고 1984 1 10일 중앙의 비준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명예주석 송경령릉원(人民共和主席宋庆龄)으로 명명되였다.

부지면적 이12헥타르로서 송경령기념시설, 명인공원묘지와 외국인공원묘지 및 소년아동활동구 등 네 개부분으로 조성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명예주석 송경령

1. 송경령기념시설

송경령기념시설은 릉원의 주체 부분으로서 송경령기념비, 기념광장과 송경령 조각상, 송씨 묘지, 송경령사적진렬관으로 조성되였다.

1) 송경령 기념비

송경령릉원 입구에 들어서면 넓다란 큰 길이 있는데 그 길로 한참 걸으면 릉원 큰길 중간에는 높이 3.3메터, 너비 5메터의 화강암으로 된 송경령 기념비가 한눈에 안겨온다.

 

기념비에는 등소평이 쓴 爱国, 民主主, 国际, 士宋庆龄同志永 垂不朽30자의 금빛으로 된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기념비 뒤면에는 송경령의 빛나는 일생을 적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2) 송경령 조각상

기념비 북쪽에는 면적이 2880평방메터의 큰 광장이 있는데 광장 북쪽 중간에는 송경령의 한백옥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의 높이는 2.52메터로서 송경령이 가장 풍채로웠던 50세 안팍의 형상을 조각한것인데 중국의 전통의상인 旗袍(중국 여성들이 입는 긴 원피스 형태의 전통의복)에 스리랑카를 방문하였을 때의 상의(上衣)를 입었고 머리는 뒤로 쪽지였으며 두손은 무릅우에 겹쳐 올리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여 그의 고상한 품격과 자상한 풍도를 보여 준다.

3) 송씨 묘지

송경령 조각상 뒤(북쪽)에는 송씨묘지(宋氏墓地)가 있는데 1932년에 건설당시의 면적은 145평방메터였는데 후에 그 량옆에 송경령과 리아연의 묘를 안장하면서 263평방메터로 확건되였다. 묘지 중앙에는 장방형의 화강암 묘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송경령의 부친 송요여(宋耀如)와 모친 예계진(倪桂珍)의 합장묘가 있다. 묘는 평토로 하고 그 우에 흰 대리석을 덮었다.

 

송경령 부모의 묘를 중심으로 하여 량쪽에는 대칭으로 송경령의 묘와 리연아의 묘가 있다. 1981 5 19일 송경령이 북경에서 서거하자 그의 생전의 유언에 따라 골회를 그의 부모 합장묘 동쪽에 안장하였다. 묘는 평토로 되여 있으며 길이 1.2메터, 너비 0.6메터의 화강암 묘비가 덮여 있다. 묘비에는 세로 세줄의  一八九三年 ~ 一九八一年 / 人民共和主席宋庆龄同志之墓 / 一九八一年六月四日立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쪽에는 리연아(李燕娥)의 묘가 안치되여 있는데 묘의 위치, 규격과 모양은 송경령의 요구에 따라 송경령의 묘와 똑 같게 송경령 부모묘의 서쪽에 송경령의 묘와 대칭으로 안치되였다. 그리고 묘비에는 李燕娥女士之墓 庆龄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리연아는 1911년생으로서 16세부터 송경령의 보모로 있었는데 그에게는 한차례의 불행한 혼인, 한차례의 국민당 특무와의 기편적 련애사가 있은 후 다시는 혼인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독신부녀로서 1981 2월 사망할 때까지 50여년 송경령의 보모이자 가장 좋은 벗으로 있었다. 리연아가 사망한 3개월 후 송경령도 서거하였다.

4) 송경령사적진렬관

릉원길 서쪽끝에는 송경령평생사적 진렬관이 있는데 길이 137메터의 기다란 집으로서 6개의 전람청과 한 개의 록화청()로 되여 있으며 400여 폭의 사진, 100여건의 실물이 전시되여 있었는데 송경령의 진리를 추구한 애국청년으로부터 혁명에 몸바쳐 최후 공산주의 위대한 전사로 된 빛나는 려정을 보아낼수 있었다. 록화청에서는 송경령의 생전의 주요하게 활동한 《국지괴보(國之瑰寶)》 등 기록편들을 방영하고있다.

2. 명인공원묘지

명인공원묘지는 송경령릉원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지면적이 약 5500 평방메터로서 주로 민주혁명시기와 사회주의 건설시기에 중대한 공헌을 한 저명한 인사 및 국내외의 널리 영향이 있는 향항, 오문, 대만지구의 저명한 애국인사와 국제상에서 위망이 있는 애국화교들을 귀장()한 곳이다

 

여기에는 신해혁명의 조기 활동가인 려중실(黎仲), 원 상해시 부시장이며 중국공상계의 우수한 대표인 성비화(盛丕), 애국인사이며 저명한 금융가인 주작민(周作民)등 사람의 묘, 그리고 이장()하여 온 항일영웅 사진원(晋元), 복단대학의 창시인이며 애국인사인 마상백(相伯), 중국민권보장동맹총간사 양행불(杏佛), 저명한 신문공작자이며 국제문제전문가이며 원 상해시부시장인 김중화(金仲) 25명 명인들의 묘가 평토로 안치되여 있고 그들의 자그마한 반신 조각상과 간단한 비문들이 새겨져있다.

 

3. 외국인공원묘지

외국인공원묘지는 송경령릉원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지면적은 7200평방메터로서 중국의 민주혁명과 사회주의건설사업에 지지를 주고 장기적으로 중국의 우호사업에 중대한 공헌을 한 저명한 외국적 인사와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참가하고 중대한 공헌을 한 외국적 전문가 밑 림시로 중국에 와서 유람, 학습, 사업하다가 서거한 각국의 저명한 인사의 묘가 있다.

 

그들로는 로신의 벗이며 일중우호협회리사장인 山完造와 그의 부인, 일본 大阪府일중우호협회 창시자이며 상해와 大阪지간의 민간래왕 발기자의 한 사람인 雨宫礼三과 그의 부인, 중국복리회 고문이며 송경령 생전의 친밀한 벗이며 미국적 전문가인 경려숙(), 걸출한 국제주의 전사이며 루마니아 의사인 가렬란(柯列然), 6, 7기 전국정협위원이며 중국외문국(外文局) 로전문가 위로시(璐诗)등의 묘가 평토로 안치되여 있고 그들의 자그마한 반신 조각상과 간단한 비문들이 새겨져있다.

 

4. 상해아동박물관

상해아동박물관은 어린이들의 애국주의 교양기지로서 송경령릉원 동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지면적이 9000여 평방메터이고 건축면적이 4633평방메터이다. 박물관의 건축외관은 네개의 조형이 각이하고 색채가 찬란하고 알록달록한 립체 기하형으로 구성되였다. 내부 공간은 지상 3, 지하 1층인데 지상부분은 진렬전시활동구로서 네개의 전시구역으로 설치 되였는데 跨越距离,摸未란 주제의 과학전시관, 상호탐색구, 주제전람구, 아동열독구로 구성되여 있다.

원내에는 수천평방메터되는 잔디밭이 있으며 3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토송(罗汉), 15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계수나무(桂花), 1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양옥란(广玉) 그리고 수백그루의 높다란 룡백(), 설송(雪松), 중산백(中山柏), 및 직경이 25cm 이상의  녹나무(香樟) 천여 그루가 있어 사계절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 그윽한 천년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20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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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5 ]

15   작성자 : 감사
날자:2012-12-19 12:13:39
몇 번 상해에 갔다가 기회가 되지 않아 가서 참관 못했는데 오늘 정말 잘 읽어 보았습니다.자상한 설명으로 하여 인상이 깊은 여러 방면의 지식을 잘 학습하였습니다.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많이 올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람니다.
14   작성자 : 포럼
날자:2011-07-01 09:52:58
송경령릉원을 참관하는 기분으로 주선생님의 글도 잘 보고 여러분들이 올린 글도 보았습니다. 주선생님의 글은 릉원을 소개한 글이지 송경령의 생애를 론한 글이 아니지요. 이 글은 기행문가운데의 참관기라고 할수 있습니다. 참관기라 할때 주선생님의 글은 족한 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본문필자 본인도 말씀하셨지만 송경령의 생애를 론할 자격이 없거니와 이 글에다 그의 생애를 론한 글들을 올린다면 문장격식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식’한 사람의 댓글도 보았는데 지금 삭제 되였군요. 이 사람의 글은 본문에 대한 의론이나 건의인 것이 아니라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봅니다. 지금 조글로를 보면 이런 ‘무식’한 사람처럼 토톤을 위한 글이 아니라 악의적인 공격의 글들이 가끔 오르고 있는데 지금처럼 이런 사람의 글들을 제때에 삭제하여 버리는것은 조글로 편집원들이 아주 잘한 행위라고 봅니다. 이렇게 하여야 앞으로도 우리 조글로란 이 인터넷공간에서의 포럼을 잘 운영하여 나갈수 있다고 봅니다.
13   작성자 : 이동훈
날자:2011-07-01 04:48:03
이른 아침에 두 분 글 잘 읽고 참 좋았습니다. 청해 선생님의 글, 상하이의 한 공원을 유람하는 듯한 기분으로 둘러보고 '진심'님의 글, 역사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이러한 두 분의 관점이 서로 모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차이가 존재하나, 이것은 모순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12   작성자 : 본문 필자
날자:2011-06-30 07:35:33
‘진심’선생님께서는 력사에 관심이 많으시고 책도 많이 보신 분이라고 인정됩니다.그리고 저의 졸문을 다 읽어주시고 저의 글에 대한 건의도 제기하신데 대하여 참고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또 저에 대한 일부 비방적인 글에 대한 저의 심정도 리해를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들입니다. 사실 저는 력사를 연구하거나 어느 력사인물에 대하여 연구한적도 없고 다만 력사의 흐름속에서 공개된 언론의 글들을 좀 보았을 뿐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건의들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면 문체에 맞게 써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이 글도 완전히 문체에 맞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이 글은 려행에서 참관기에 속하는 글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런 글들은 그곳을 참관하고 그 곳에 대한 소개나 느낌을 쓸수 있는데 저는 이 글에서 느낌을 쓴 것이 아니라 송경령릉원에 대한 소개의 글만 쓴것입니다. 저는 송경령의 일생에 대하여 연구하였거나 그에 대한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기에 이 글에서 송경령의 일생을 론한 글을 쓸 자격이 없을뿐더러 만약 쓴다면 문체에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송경령 비문이 3000여자 되였는데 그것을 정리하여 개괄적을로 썼더면 더욱 좋았게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건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참고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11   작성자 : 진심,
날자:2011-06-30 02:32:10
이상 역사이야기와 관련하여, 다른 분들께서 절대 주청룡선생님을 비난하거나, 또는 누구라도 비방하고 조소하는 식의 리플은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실례했다면 이는 진심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저의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10   작성자 : 보충 말씀
날자:2011-06-30 02:28:36
제가 아닌게 아니라 많이 흥분한것 같습니다. 역사와 역사속의 인물을 쓸 때, 그리고 역사현장을 관람하고 인상담을 쓸 때에, 어떤 식으로, 어떠어떻게 썼으면 좋곘다는, 개인의 간단한 생각을 피력한다는것이 이상하게도 많이 포우티한것 같습니다. 사실 주청룡선생님의 이 송경령릉원 관람기는, 그냥 관람기로 별 문제는 없습니다. 주청룡선생님 본인이 역사를 전문적으로 전공하는 학자가 아니잖습니까. 솔직히 이 처럼 역사에 대하여, 앵무새식으로 쓰는 다른 분들도 아울러 함께 참고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좀 자세하게 제가 하고싶은 말을 한것 뿐입니다. 지금 조글로에서 서금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다닥다닥하게 올리고 있는 리함씨도 이 참에 이 리플을 읽으면서 좀 참작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청룡선생님의 이 리플마당을 사용한 점을 용서하여주십시요.
9   작성자 : 본문 필자
날자:2011-06-29 13:46:44
‘진신’님의 글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송경령은 1893년도 1월 27일생입니다. 그러니 서거를 하실 때는 아마 88세였을것입니다. 송경령은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서 국내외에 영향력이 있는 많은 사업을 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송경령아동기금회’도 성립하였구요. 저는 ‘진심’님의 말씀하신 이야기를 전혀 들은적이 없습니다. 가령 ‘진신’님의 말씀하신대로 비서와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결혼등기를 하지않았다면 합법적인 부부관계가 성립되지 못하기에 송경령의 재산이 법률상에서 그들의 공동재산을로 되지 못하기에 비서가 그것을 상속할 권리가 없게 됩니다. 이상 저의 소견을 말씀 드립니다.
8   작성자 : 진심
날자:2011-06-30 02:08:10
주청룡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괜히 이런 리플을 달아서 주청룡선생님이 말밥에 오르는것을 사과드립니다. 위에 무식님의 리플 내용에 대하여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주청룡선생님은 송경령릉원을 돌아보시고, 눈에 보이는대로의 릉원 풍경을 잠깐 소개하였을 뿐입니다. 본문 자체가 송경령에 대하여 무슨 연구를 진행하거나 또는 송경령의 인생에 대한 어떤 약전을 쓴것도 아니고, 다만 릉원에 가보니 어떠어떻더라, 누구누구의 묘비도 함께 있더라...단지 이런식으로 소개한데 지나치지 않을 뿐입니다. 결코 비난받아야 할 글은 아닙니다. 제가 리플 달아드린것은 다만, 어떤 역사에 대하여 또는 역사인물에 대하여 쓸때, 그의 겉에 드러난 치장에만 현혹하지 말고, 이면을 들어가보는 배우고, 또 관방의 공식적인 소개에만 빠지지말고,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이 인물과 연관되는 또 다른 인물들의 회고록이나, 또는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역사속의 인물과 어떻게 엮어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한 역사인물의 입체적인 모습과 그 윤곽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청룡선생님은 송경령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관방에서 공식적으로 소개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은 하나도 모르며, 또 의론할 자격도 없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결코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밝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리플로 말씀드리고 있는 이 글이 결코 전문적인 논문이나 연구자료 아닌 이상, 일일이 주해와 주석을 달아드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송경령에 대하여 많은 부분 언급이 나오고 있는 사람들의 회고록이나 자전기록은, 대부분 중국인민출판사와 중국문사자료 출판사에서 공개 발행한 책들입니다. 그가운데 료승지의 회고록도 들어있습니다. 주청룡선생님의 역사현장 답방기나, 또는 탐방기, 또는 관람기가 좀 더 깊이 있고, 무게 있으며, 또 읽는 독자들에게 많은 정신적인 식량을 제공할수 있는 글로 되자면, 당나귀 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쓰지말고, 송경령의 릉원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송경령의 부모님 묘지들도 이리로 이장되어 온것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문화대혁명기간에는 홍위병에 의하여 묘지가 파혜쳐진 이야기도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기간에 송경령이 당했던 그의 굴욕적인 인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소개가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또 송경령이 공산주의자로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의 열애를 받는 인물로 되기까지, 그가 치러야 했던 인간적 고뇌와 그의 인생의 희생에 대하여 슬쩍슬쩍 교대하는 식으로 나갔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잃는것이 있으면 얻는것이 있고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이 있는 법입니다. 송경령에 대한 평가는 중국 관방에서 내리고 있는 평가외에도 해외 화인들, 그리고 대만에서 내리고 있는 평가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건국초기 모택동에게 이용될대로 이용되고, 이용가치가 사라질 무렵의 문화대혁명시기에 모택동으로부터 당하였던 송경령의 인생굴욕은 이만저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론 모택동이 송경령 한사람에게만 이런 굴욕을 주었던것이 아닙니다. 모택동은 자기를 도와 나라를 일으키는데서 불멸의 공훈을 세웠던 대부분의 혁명가들과 국가지도자들을 때려잡았습니다. 감옥에 갇우고, 병치료를 해주지 않고, 정치적으로 모욕을 주고, 육체적으로 핍박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결코 새삼스러운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등소평은 특히 송경령이 당했던 굴욕을 마음 아파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등소평은 복권되고나서 될수록 송경령을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하였지만, 송경령과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행복은 그에 대한 처우나 또는 정치, 생활 등 이런 분야의 환경개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주요한데, 더욱이 송경령의 경우, 그에 대한 평가작업은 중구정부 한쪽에서만 추진해서 제대로 바로잡혀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련이 무너지고나서 러시아가 단계별로 전세계 역사학계를 향하여 공개하고 있는 공산국제관련 문서들에서 송경령과 관련되는 자료들도 나왔습니다. 이 자료들에 근거하여 적지않은 학자들이, 국민당내에서 공산당을 위하여 간첩활동을 하였던 사람으로 송경령의 직위가 제일 높았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않습니다. 송경령이 국민당중앙집행위원의 신분으로 있으면 공산국제 비밀조직과 거래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는 송경령이 국민당내에서 공산당을 위하여 활동하였던 최고 신분의 간첩이였다는 또 다른 설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자료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국제의 비밀자료들이 오늘날 공개되기 시작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결과적으로는 송경령은 공산국제 시절부터 이용당하여 왔다는것을 긍정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택동과 주은래에게도 이용되여왔고, 다시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에는 대만과의 해외통일전선사업의 일환으로 등소평에게도 또 이용되어 왔습니다. 이는 중국 혁명의 선구자인 손중산의 미안인에 대한 정치권자들의 예의가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보다는 송경령 자신의 무모함을 단적으로 드러낸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솔직히 송경령은 손중산의 부인으로,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에서 모두 존경을 받고 인정받을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송경령 본인이 조금만 지혜로왔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수 있었을것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대만과 해외역사학자들의 눈에 송경령은 손중산에게 오명을 들 씌운, 아주 지혜롭지 못하고 평생동안 이용만 당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대하여서도 외면할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하여, 그리고 역사속의 인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적어도 역사의 겉면과 이면을 이야기하여야 하는것이 가장 주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착오를 범하게 됩니다. 과거에 우리는 림표를 비판할때, 림표가 모택동을 반대하고 모택동을 암해하려고 했던 반혁명집단 우두머리로만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림표의 겉면이였고, 또 관방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식적인 교대일 따름입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관방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많은 학자들, 작가들이 림표의 곁면 뿐이 아닌 이면을 이야기할수 있게 합니다. 이럴때 똑똑한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의문을 가질수 있습니다. 림표가 왜 반혁명집단입니까? 문화대혁명기간에 모택동이 행한 것들이 중국인민을 도탄속에 빠뜨린 반인륜적인 행위였다고 비판하지 않고 무엇입니까! 그러면 이런 모택동을 반대한것이 반혁명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사실은 어떠합니까? 림표는 근본상에서 택동을 반대하였던 일도 없고, 비행기타고 도망치기 직전까지도 림표는 드팀없는 모택동의 충실한 지지자이며, 협력자였습니다. 다만 모택동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할가봐, 부랴부랴 도망치다가 재수 없게 비행기 사고로 죽었던 것 뿐입니다. 지금 새롭게 또 발굴되고 있는 자료에 근거하면 림표는 원래 북경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림표의 비행기가 북경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은래가 직접 오법헌에게 지시하여 가로막게 하였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림표의 비행기는 북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창황하게 소련쪽으로 도주하다가 연료가 모자라 떨어지고만것입니다. 이는 모택동과 주은래사이의 정치투쟁에서 림표가 희생물로 당한것이라는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란 바로 이러합니다. 파고파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들이 다시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실례로 든다면, 작년에 천안문 광장에 공자 상을 세웠다고, 한때 전 중국의 학자들이 떠들썩했습니다. 이와관련하여 조글로에서도 공자 상을 천안문광장에 세운 중국 관방의 의도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추측하면서 칼럼을 썼던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올해 접어들면서 건당 90주년을 맞는 홍색물결은 이 공자 상을 밀어냈습니다. 중국공산당 내 보수좌파들의 힘은 공자 상을 세운지 불과 1년도 안되여 그것을 철거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진형형인 정치현상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합니다. 하물며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한 독자들의 시선도 정치의 수요에 따라서 끝없이 여러가지로 바뀌게 되는것입니다. 송경령이 세상을 뜬지도 30여년 되었지요. 개관정리가 되었다고 보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6.25전쟁이 공산주의 진영에서 먼저 진행한 침략전쟁이였다는, 산더미같은 자료들이 바로 공산주의 종주국가였던 소련에서부터 모조리 공개되여 나온 지금에도 중국 관방에서는 침략전쟁이였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도당이 먼저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김일성은 이에 반격하였던 것이며 중국인민지원군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관방의 공식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관방의 공식적인 견해는 이렇지만 관방에서는 또 한편으로 학자들이 매체에 나와 실제로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먼저 침략한것이 사실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그리고 역사의 진실에 정치의 절충(타협)현상입니다. 송경령뿐만 아니라 앞으로 많은 역사적 현안들이 공개되면서, 이 역사과 관련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적업에서 정치적 절충현상이 드러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송경령도 틀림없이 그가운데 한분이 될것이라고 믿어맞이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앞장에서 먼저 선도해야 하는것이 바로 주청룡선생님같으신 분들입니다. 직접 송경령의 릉원을 다녀오지 않으시고 어쨌습니까! 좀 더 깊이 있게 사고하고, 좀 더 깊이 있게 자료를 조사하고, 책임적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글에서 의문을 많이 제출하여야 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쓰신 글과 사진을 보았으면, 독자들은 그냥 송경령은 정말 대단하구나, 젊어서는 손중산의 부인이였고, 공산당과 국민당의 투쟁에서 공산당을 선택함으로써 말년에 이처럼 영화와 영예를 누렸었고, 또 죽어서도 이렇게 전문적인 개인의 이름으로 된 릉원에 모셔졌구나... 이렇게밖에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주청룡선생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학문도 오래 하신 분이 아닙니까. 관방에서 소개한것외에 아는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는 관방에서 소개한 것 외의 것에 대하여서는 의론할 자격도 없다고 딱 잘라서 변명하시는데, 그러면 그동안 주청룡선생님이 써오신 많은 좋은 글들에 대하여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인이 어떤 소리를 내면, 따라서 똑같은 소리를 내는 동물이 있습니다. 그게 앵무새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7   작성자 : 이상하다
날자:2011-06-30 00:30:28
주선생님은 스스로 그런 것을 의론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는데 저 ‘무시’한 사람은 무었 때문에 저렇게 떠 들가?
6   작성자 : 진심님
날자:2011-06-30 00:20:55
이런 력사와 관계되는 글은 그 근거적 자료를 잘 밝혀야 한다
5   작성자 : 금해
날자:2011-06-30 00:19:21
나는 주선생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거기에 무슨 잘못 올린 글이 있는가? 남을 비하하는 사람이야말로 스스로 자기가 저속한 인간이라는 것을 폭로할뿐이다
4   작성자 : ww
날자:2011-06-30 00:12:43
이런 파악이 없는 글을 올리지 마시요 딱 질색입니다
3   작성자 : 본문 필자
날자:2011-06-30 00:11:15
저로서는 제가 잘못 올린 글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제가 잘못 올린 글을 딱 찍어서 지적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검토하여 보겠습니다.
2   작성자 : 고맙습니다.
날자:2011-07-01 00:16:17
여러분의 글 잘봤습니다.다만 중대차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심중을 기해서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왜 그러냐 이는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정치 혹은 어떤 목적으로 한 사람을 부각한 일들을 비일비재로 나오고 있으니 우리의 이른바 기행문이라고 횡설수설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조심해야 할 문제라 보고 싶습니다.주청룡 씨의 발론은 민주언론에서 문제시 안됩니다만은 언론에서 오도되기 때문입니나.왜나하면 충분한 자료 근거가 없이 즉흑적인 글,또 어학자의 시각을 떠나 즉흥적으로 어떴소 하는 식의 글들은 궁극적으로 조선족의 의사소통즉 주류언론의 소통을 막는 자세밖에 볼 수 없습니다.제주도 방언도 세종대왕의 창제 글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연변인들의 말을 정당하다고 혹은 ...우리 연변인들이 한국사회에 왜 적응 못하는지 ?이런 분석을 잘하세요 .그것이 바로 경제창출에서의 문화인들의 진언이 아니겠습니까?쓸떼없는 자존심은 삼가하시고 돈창출에 열심이나 하세요 고금 동서로 거지같은 사람은 종래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한마디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이지 걸레를 빨아서 양복은 만들지 못합니다"
1   작성자 : 본문 필자
날자:2011-06-29 23:34:19
‘진신’님, 저의 졸문을 읽으시고 긴 댓글을 올리시였는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격동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송경령에 대한 경모의 심정으로 송경령릉원을 찾아 참배하고 릉원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진심’님의 글을 보면 대부분 중국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저 자신은 중국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의론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諒知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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