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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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 별찌 • 룡
2013년 06월 21일 08시 34분  조회:1729  추천:0  작성자: 홍천룡

귀신 • 별찌 • 룡

홍천룡


누구나 천진란만했던 동년시절을 겪어왔을것이다. 저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하게만 보이는 동년시절, 야- 그 시절엔…

그 시절에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왔든 잘먹고 호강스레 살아왔든지간에 동년시절은 그립기만 하다. 등산하다가 촐랑거리는 시내물에 시원히 발을 잠구면 어쩐지 동년시절이 그리워진다.

동년시절에 나는 옛말을 듣기 좋아했었다. 특히 귀신옛말이라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무서워서 오돌오돌 떨면서도 들었다. 내가 살던 공신촌”웅덩개”마을에서는 정구형님이 귀신옛말을 귀신같이 했었다. 여름 밤, 검푸른 하늘에 별들이 총총할 때면 정구네 마당가엔 쑥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그 주위에는 늘 마을의 조무래기들이 눈이 초롱초롱해서 빙 둘러앉는다. 코를 훌쩍거리는 놈, 쑥연기에 콜록거리는 놈, 별놈들이 다 있다. 그러다가도 옛말이 아슬아슬한 정절에 이를 때면 녀석들 코물이 허옇게 드리워도 훌쩍거리지 않았고 쑥연기가 자오록해도 콜록거리지 않는다. 한번은 정구형님이 “… 그 야밤삼경에 솨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갈대밭이 량쪽으로 쫙 갈라진거야. 바로 그때였지…” 라고 하였을 때 뒤쪽에 앉은 “코풀레기”가 “귀신이다!”라고 소리질렀다. 순간,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밤바람에 옥수수잎이 우수수 떨리는 소리만 소름 끼치게 들려올 뿐이였다.
“어디?”

“저기!”
그 녀석이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켰다. 모두들 고개를 쳐들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빨간 불티같은것이 가늘고 긴 꼬리를 감추며 밤하늘에 금을 긋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것이였다.

“야-” 저마다 나지막하게 감탄을 뽑았다.
“귀신이 아니고 별찌야.”
정구형님이 해석해주었다. 허지만 나는 별찌가 귀신이 아니라면 하늘에 있는 귀신이 별찌에 불을 달아준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빨갛게 타번지고있었는데… 귀신이 못하는 노릇이 없잖아! 귀신옛말을 들어보면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바다밑에서나 사람이 못하는 노릇을 귀신이 하고있었던것이다.

소학교 3학년 때 어느 한 교학시간이였다. 강선생님이 낡은 사회에서는 제국주의, 관료자본주의, 봉건주의 등 3대큰산이 로동인민의 머리를 지지리 억누루고있었는데 압박이 있는 곳엔 반항이 있기 마련이라며 결국 누가 이 3대큰산을 뒤엎었겠는가 하는 계발성문제를 제기했었다. 누군가 얼마나 큰산이였는가고 묻자 선생님은 자연적인 모아산이나 히말라야산과는 비교할 바도 못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인 산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눈이 머룽머룽해서 대답을 못하고있었다. 내가 한창 귀신옛말에 빠져있을 때라 별로 생각도 없이 심드렁해서 “귀신!”하고 내뱉았다. 와! 하고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뭐, 귀신?”
“예!” 나는 당당하게 긍정했다. 그 어마어마한 큰산을 귀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뒤엎을수 있단 말인가!
“이 동무의 세계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학후에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오시오.”
선생님의 얼굴은 대뜸 배추잎처럼 퍼러딩딩해졌다.
하학후에 교무실에 들어서니 선생님이 나를 세워놓고 호되게 꾸짖는것이였다. 어찌나 달달 볶아댔는지 곁에 남선생님이 보아주기 민망했던지 한마디 끼여들었다.
“허허, 그 학생의 상상력이 기발하구만. 귀신까지 련상시키다니. 그렇지 뭐, 당시 3대큰산을 뒤엎기 위해서는 귀신이 있었다면 귀신도 끌어당겼을터였지. 모택동이 단결할수 있는 력량을 다 쟁취하여 통일전선을…”
“최선생, 계급관념으로 학생의 세계관을 개조시켜주고있는 이 엄숙한 마당에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 예? 선생은 그래…”
그 남선생님이 연신 팔을 내둘렀다.
“됐소됐소. 나야 뭐 그게 그저 그렇다는거지. 허허.”

후에 강선생님이 어머니를 찾아 단단히 침을 놓은것 같았다. 어머니의 단속에 나는 옛말 들으러 가기 힘들어졌다. 우리 어머니도 귀신은 몰라도 미신은 은근히 믿어온 터였다. 내가 자주 앓는다고 점은 얼마나 쳤고 “방토”는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소학시절에 나는 몸이 약해서 늘 앓음자랑을 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연길시내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다. 5학년 여름방학에 어머니는 명신골에 용한 의사가 있다는 풍문을 듣고 또 나를 데리고 갔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까까머리에 흰안경을 코등에 건 의사가 녀환자의 배를 만지며 곁에 앉은 령감과 롱담을 걸고있었다.
“녀자들의 배를 슬슬 어루만지며 벌어먹는 내 팔자도 괜찮지.”
“또, 또, 쌍소릴…”

내 차례가 되였을 때 그 의사는 나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나의 뒤통수를 툭 쳐주는것이였다.
“이 녀석이 기가 절반 죽어있구만. 이름이 뭐지?”
나의 본명은 “홍순룡(洪淳龙)”이였다.
“어허, 이름이 틀려먹었어. 룡이란 놈은 순박하지 않아. 순수한 놈도 없고. 돼지주둥이에 소대가리에 뱀꼬리에 두루두루 합친 놈이여서 하늘땅 치며 우쭐렁거리는거야. 이름부터 고쳐. ‘순’자를 빼고 하늘 ‘천’자를 넣지.”
그리고는 아예 “홍천룡”이란 이름으로 처방을 떼주는것이였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이튿날로 파출소에 가서 내 이름을 고쳤다. 정말 귀신이 곡할 일이였다. 그때로부터 장장 40여년동안 나는 크게 앓아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입원해보지 못했고 몸에 수술칼 한번 대보지 못했다.

그런 연고가 있어서인지 어떤 때는 정말 귀신이 되여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옛날에는 귀신이 하늘에서 별찌를 가지고 놀았지만 지금은 사람도 달나라 별나라로 날아다닌다. 그게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우주공간으로 별찌처럼 날아다닐고!

지금 아이들은 귀신옛말을 듣지 않는다. 허지만 “해리포터”같은 환상소설이나 텔레비드라마는 죽기내기로 본다. 그런 소설과 드라마의 장면을 두루 스쳐보면 그제날 귀신옛말과 흡사한데가 많다. 아이들은 그런걸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키운다. 우리 민족의 후대교양에도 “귀신옛말”같은 교육이 따라갔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지금 아이들은 학교에 붙으면 교과서가 눈을 가리워주고 시험이 수족을 비끌어매준다. 이런 교육체계를 부정하는것은 아니지만 부동한 기질에 부동한 천부에 부동한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는 부동한 양성대책이 따라가야 할것 같다. 글로벌시대에 우리 민족이 세계선진행렬에 당당하게 들어서자면 아이때부터 “귀신”이 되여보겠다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키워주고 별찌처럼 날아다닐수 있는 날개를 키워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귀신”이 많이 나올수 있고 “귀신”들의 왕인 “룡”도 나올수 있는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상수상자명단에는 우리 민족의 이름이 단 한사람만이 올랐다. 평화상을 수여받은 김대중대통령이다. 그밖에 넓고도 넓은 과학분야와 문학방면은 공백이다. 전 민족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아이들이 판에 박은듯한 공식속에서 양성된다면 영원히 “귀신”이 나올수 없고 “룡”이 나올수 없고 노벨수상자가 나올수 없게 된다. 귀신이 되여보겠다는 많은 “귀신”들이 요람속에서 요절되여가고있다. 가슴아픈 일이다.

나는 이미 쉰고개를 넘은 사람이지만 다시한번 “귀신꿈”을 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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