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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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매력
2013년 07월 10일 09시 44분  조회:1442  추천:0  작성자: 홍천룡
생활·예술·천당

미술의 매력

홍천룡


한여름, 차를 몰고 연길로부터 동불사까지 시속 백메터쯤으로 달리면 기분이 아주 상쾌해진다. 길량켠으로 시원스레 쫙 펼쳐져나간 파아란 논밭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것이다. 참, 사람의 눈이란 이상하고 신비스럽다. 벼한포기를 눈앞에 갖다놓으면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

길가의 야초같은 곡식포기구나 하는 생각밖에 더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수천수만포기로 가쭌하게 똑같은 키로 자라나고있는 장면이 눈앞으로 쫙 끝없이 펼쳐져있을 때에는 소리없는 충격을 받게 되는것이다. 너무나도 장관이구나! 헌데 그 장면을 가까운 밭머리에서 바라보는것과 먼 산중턱에 올라서서 바라보는것이 감각이 다르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정지된 상태에서 바라보는것과 달리는 승용차나 렬차의 차창으로 바라보는것이 또한 감수가 다르다. 그다음 자연적으로 현실에 처한 장면을 직접 보는것과 그 장면을 사진이나 그림에 옮겨놓은것을 간접적으로 감상하는것이 또한 기분적으로 다르다.

그밖에 그런 장면을 매일과 같이 보던 때와 몇년, 혹은 몇십년사이에 한번씩 보았을 때의 감흥은 완전히 다른것이다. 똑같은 장면이라 해도 또한 내가 자라던 고장에서 보았을 때와 멀리 이국타향에 가서 보았을 때의 감정도 완전히 다를수 있다. 왜서 이럴수 있을가? 필자도 모르겠다. 아마도 미술이나 촬영과 같은 시각예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는걸 보면 종이장에다 규범적인 “ㅏ, ㅑ, ㅓ, ㅕ…”를 쓰기전에 먼저 락서같이 아무데나 대고 마구 갈기고오리고 하는것을 볼수 있다. 대개 아이들은 글씨쓰기를 배울 때 글씨쓰기보다 그림그리기를 더 좋아한다. 제일 그리기 쉬운 동그라미를 하나 쳐놓고 제나름으로의 생각에 따라 그것이 태양일수도 있고 선생님의 얼굴일수도 있고 축구뽈일수도 있고 사과알일수도 있다. 아이들은 그림그리기를 통해 객관사물을 관찰하고 감지하고 모방하며 그걸 표현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객관사물의 법칙을 터득하고 정감교류를 하게 되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때문에 이 시기에 아이들의 그림그리기를 잘 이끌어주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그 아이들이 다 미술가나 화가가 되는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지력개발에는 촉매작용을 놀수있는것이다. 당년에 우리 반 아이들가운데서 그림을 특별히 잘 그리는 아이들이 몇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정치적동란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미술시간이 정치활동으로 대체되여버리는 바람에 그들의 천부적인 재능이 하얀 안개로 소리없이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대부분 아이들을 놓고 볼 때 미술공부는 걸음마를 떼놓고 익히지 못한 상태로 절름발이 되고말았다. 미술에 대한 흥취도 없어졌고 미술에 대한 상식도 배우지 못했고 미술을 한낮 심심풀이장난으로만 우습게 여기게 되였다.

당시 공원소학교운동장남쪽에는 게딱지같은 초가집 몇채가 질서없이 들어앉아있었는데 그 가운데 유표하게도 콩크리트로 지은 일본식주택 한채가 덩그랗게 자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 집의 주인이 다름아닌 예술학교교장이며 저명한 화가이신 석희만선생님이였다. 좀 왜소한 체구에 강마른 나그네였는데 사람들, 지어 학교에서 지엄하게 보이던 교장선생님마저도 그를 보면 허리가 불거지도록 굽썩거리는것이 우리 애들의 눈에는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사람들의 주고받는 말에 의하면 석희만선생님이 젊었을 때 두부를 그린것이 일본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소묘전시회에서 대상을 타게 되였고 그걸 계기로 그이도 미술계의 새별로 떠오르게 되였으며 당시 조선족총각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내는 일본색시를 안해로 맞아들이는 혼인까지 이루었다는것이다. 두부를 그려서 상을 타다니?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는 일이였다.

누군가 미술시간에 모주석을 그린다는것이 호박골에다 머리털을 몇대 꽂아놓고 그 아래에다 “모주석 만세!”를 번듯하게 써놓았다가 “새끼반동”으로 몰리워 밤낮 눈물코물을 쥐여짰다고 한다. 만약 모주석을 멋있게 그려서 상을 탔다면 그건 그럴듯한 소리겠는데 두부를 그려서 상을 탔다니 우리로서는 황당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콩알같은 일본놈들이 콩으로 만든 두부밖에 모른다고 비꼬아치기도 했다. 아닐세라 우리의 비꼬음이 맞아떨어진 셈이 되였다. 2년후에 그집 일가가 그 으리으리한 콩크리트집을 내놓고 로투구농촌으로 내려가게 되였다. 어느 핸가 학교에서 조직한 로투구만인갱참관을 갔다가 우리또래 몇몇이 그 집을 찾아가게 되였던것이다. 우리는 그집 둘째 아룡이와 한학년동창이였던것이다.

그 집은 렴명촌이라는 마을뒤끝쯤 해서 도랑물곁에 있는 허술한 농가에서 살고있었다. 아룡이를 만나 그동안 그립던 정을 나누고 작별을 고하는데 저쪽 도랑둑으로부터 싯누런 초모자를 꾹 눌러 쓴 석희만선생이 호미를 쥐고 터벅터벅 걸어오고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어린 나이에도 좀 별랗다는 감이 들었다. 그처럼 어마어마했던 분이…
길가에 나와 뻐스를 기다리면서 누군가 우스개를 피웠다.

“아룡이네 아버지가 지금에 와서 진짜 화가가 된거야. 호미를 거머쥐고 지구에다 그림을 그리고있잖아.”

그렇다! 화가가 농민이 될수 있고 농민도 화가가 될수 있었던 시대였다. 저 푸르른 전야를 누가 그려내고있는가? 호미자루를 거머쥔 농민들이 그려내고있는것이 아닌가! 누구나 다 화가가 되여 이 지구땅떵어리에다 자기의 “작품”을 발표할수 있지 않는가! 저 렴명촌어귀를 병풍처럼 막아서서 훈훈한 미풍에 흐느적거리며 춤추고있는 백양이랑, 그 사이를 에돌아 흐르는 도랑물이랑, 거기에서 뛰노는 개구리랑, 보기만해도 토장국냄새가 진하게 풍길듯한 저 초가집이랑, 그 둘레를 비뚤써 막아주는 강냉이대배재(울바자)랑, 그 배재굽상공에서 자리다툼질 벌리는 꼬추잠자리랑… 그려내기만 하면 다 명작이 될것만같은 농촌풍경이다. 뻐스에 앉아 눈길을 차창밖으로 던진채 나는 이런저런 자아감상에 빠졌다. 수채화같은 농촌점경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화가가 농촌으로 쫓겨나가고 미술학과가 교학에서 밀려나간 세월이였지만 미술이란 이 예술이 의연히 아이들을 매혹시키고있었다. 그 시절 우리반에는 두 남자아이가 그림그리기에 푹 빠져있었다. 당시 학교의 매일 첫시간은 “날마다읽기(天天读)”였는데 “모주석어록”과 “로삼편(老三篇)”을 학습하는 시간이였다. 학교에서 제일 엄숙한 교학시간이기도 했다. 쏠락패들도 얄개를 피우지 못했고 손장난질도 못했다. 그런데 두 “꼬마화가”만은 제 할 노릇을 제대로 하고있었다. 연필로 소묘에 능란한 만호는 꽁다리연필을 쳐들고 엄지손가락끝을 연필꼭두부분에 댄채 왼쪽눈을 지긋이 감고 교단에 서있는 선생님을 겨냥해서 엄지손가락끝을 올리고 내리며 무언가 조절한다. “목측법”을 쓴다나! “목측법”을 쓰면 선생님얼굴의 길이와 넓이를 정확하게 측정해낼수 있다는것이였다. 우리도 그걸 본따서 선생님의 얼굴을 측정해보려고 여러번 시도해보았으나 도저히 측정해낼수가 없었다. 한번은 어느 수학시간에 얼굴이 동글납짝하게 생긴 녀성교원이 들어왔었다. 교학이 절반쯤 진행되였을 때 대여섯명되는 남학생들이 동시에 연필꽁다리를 쳐들고 선생님을 겨냥해서 선생님의 의혹을 자아내게 되였고 그중 한 학생이 지명받고 일어서게 되였다.

“동무, 시간에 왜서 연필을 쳐들고 춤을 추오?”
얼굴이 홍당무우가 된 그 아이가 우물쭈물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만호동무가 배워준 ‘목측법’으로 선생님의 얼굴이 원형인가 타원형인가 측정해보는라구…”

와! 전 교실이 떠나갈듯이 폭소가 터졌다.
만호는 자기의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곱게 그렸고 자기의 마음에 안드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우습꽝스럽게 만화를 그려서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낼 때가 많았다. 지어 녀자애들마저도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는 입을 싸쥐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만년필을 쓰기 좋아하는 영칠이는 구호글씨체같은 글자를 새기길 좋아했다. 그는 “혁명을 위해 분투하자!”, 혹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라는 그 당시 류행되였던 호언장담을 만년필로 굵게 새겨서는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마치도 지금 한다하는 서예가들이 자기가 써낸 붓글씨를 귀한 손님에게 증송하듯이 말이다. 그걸 받은 아이들은 무슨 귀한 선물이라도 선사받은듯이 그걸 얼마간씩 귀중하게 간직해두었던것이다. 지금 나에게도 그가 당시 그려준 그림과 글씨가 있다.

좋은 일에 훼방이 많다고 그림을 좋아하는 기특한 아이들이였지만 당시에는 교학파괴행위로 인정받아 비평도 많이 받았었다. 그린 그림이 압수되여 찢겨지기도 했고 교무실에 불리워가서 벌을 받기도 하고 검토서를 써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그 “고약한 버릇”만은 떼질 못했었다.

졸업하고 그들도 수천수만의 지식청년들처럼 “재교육”을 받으러 광활한 천지로 나가게 되였다. 고달픈 농사일에 시달리며 어설푼 집체호생활에 부대끼면서도 그들은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만호가 있는 북대집체호에 놀러갔다가 만호의 궤짝을 들춰보고 놀랐었다. 궤짝안에 옷견지나 일용품이 들어있는것이 아니라 몽땅 그가 그린 그림이 꽉 차있었던것이다.

농촌에서는 일이 사랑이다. 일만 잘하면 다 곱게 보는것이다. 그림그리기도 한층 차원이 높은 일이다. 허지만 농촌에서는 농민으로서 그림그리기에 빠져있는 사람을 썩 곱게 안보았었다. 만호가 한 궤짝이나 되는 그림을 그리면서 뒤등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겠는가 하는것이 상상되기도 했다.

후에 그들은 도시에 들어와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만호는 연변산천을 누비며 민족특색이 짙은 시골풍경화를 많이 그려냈고 영칠이는 정교한 뿌리조각품들을 많이 내놓았다. 그들 둘은 다 그어떤 전업학교도 다녀본 적이 없었고 지어 강습반같은데도 기웃거려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주렁진 열매를 따낼수 있었다. 만호는 한국서울롯데전시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개인화집도 출판해냈다. 영칠이는 전국뿌리조각예술품전시대회에서 련속 3년, 련이어 금상, 은상, 동상을 안아오기도 했다. 나는 이런 동창생들이 있음으로 하여 긍지감을 느낀다.

그들은 생활속에서 예술에 감화되였고 생활속에서 자신의 심신을 도야시켰고 생활속에서 예술의 기량을 닦아냈고 생활속에서 예술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창작하면서 생활속에다 자기들 예술의 천당을 짓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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