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로 태여났을가? 살아나가기 너무나 힘들다. 우리 아버지 힘이 센 탓이였을가, 아니면 우리 어머니의 “터밭”이 기름진 덕이였을가! “고추”동자 낳으셨다고 우리 어머니께서 미역국 몇사발 더 축내셨겠는지요. 바다멱도 사기 힘들었던 그 세월, 그 시골마을에서! 사람의 유전요소 DNA의 가운데서 무슨 X를 딱 하나 뽁 빼버리면 남자가 아닌 녀자가 된다는데…
전번날 무슨 모임이 있어 병풍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어느 한 농촌마을가의 탈곡장에 이르게 되였다. 북데기무지를 에워싸고 닭 한무리가 구구구거리며 북데기를 헤집고 먹이를 쪼아먹고있었다. 암탉 대여섯마리는 몽톡한 몸뚱아리를 달싹이며 부지런히 헤집고 쪼아먹고있었다. 날마다 알을 낳자니 영양보충이 필수적이겠지. 헌데 그 무리에서의 유일한 신사 — 수탉만은 목을 빼들고 휘두룩휘두룩 거드름을 피우고있었다. 뚜걱뚜걱, 이 다리에 저 다리를 껑충거리며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녀석은 눈을 띠룩거리며 주변의 “적정”을 살피기도 하고 “꾹꾹”거리면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과연 북데기 저쪽켠에 닭 한무리가 또 나타나자 웬일인지 거드름을 피우던 수탉이 길건너편으로 걸썽걸썽 달아가는것이였다. 그러자 대여섯마리의 암탉도 먹이를 버리고 그뒤를 쭈클거리며 따라갔다. 그 정경을 바라보며 우리 일행중 누군가 부러움을 참지 못해 개탄을 토했다.
“후, 저 수탉이란 놈은 얼마나 행복하겠어. 숱한 아가씨들을 거느리구…”
개탄이 나올만도 했다. 일행중에는 안해를 몇년간 외국에 보내고 “독수공방”하는 남편도 있었고 리혼당하고 혼자사는 “외토리”도 있었고 수염이 꺼츨하도록 장가못든 덜먹총각도 있었다. 녀자에 굶주려온 사내들이였다.
그 옛날, 진시황이 궁녀 3천명을 데리고 살았다니 매일 꽃밭에서 이리저리 뒹굴면서 호강부렸겠지… 아무튼 수천년 내려온 력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흐름이 남자가 녀자의 배를 타고 노를 저어온 력사였다는것이 알린다. 혹간 귀신같은 요녀들이 남자의 등을 타고 자맥질해본적도 있긴 있었다. 허나 그것은 창해일속에 불과했다. 나라를 세운 개국공신들, 진시황, 당태종, 칭키스칸, 누르하치, 모택동 모두 남자였고 영원한 진리를 내놓은 리론교육가들, 공자, 맹자, 장자도 남자였고 고대과학의 4대발명가들도 남자였고 생로병사의 길목을 지켜준 의학가들도 남자였고 불후의 고전명작을 남겨준 문학가들도 남자였다. 집집마다 양몰이를 하고 농사를 짓고 말몰이운수를 하고 장사를 하고 아이들을 깨우치는 훈장노릇, 역시 남자들이 기둥이 되여 해주었던것이다.
눈이 아프게 아득한 그 먼 옛날을 돌이켜보지 말고 가까운 공화국력사가 펼쳐쳐지면서 흘렀던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한번 훑어보자.
항미원조 제일선으로 남자들이 달려가 목숨으로 조선을 구해주었고 조국을 지켜냈다. 호조조, 초급사로부터 쭉 인민공사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이 선줄을 끌었었다. 도시에서도 직장으로 다니는 남자들이 한달로임 삼십원, 오십원으로 대여섯씩, 일여덟씩 되는 식구들을 먹여살렸었다. 그래 말바른 대로 남자들이 큰소리 치게 안됐는가! 집에서 별다른 음식이 생겨도 먼저 남편이 되고 아버지로 된 남자의 앞으로 간다. 남자들이 언제 시시하게 구들깔개를 쓸고 장판을 닦는 법이 있었던가! 남 보기가 무안해서도 채소바구니를 못들고 다녔다. 우리 “웅덩개” 마을에는 “조보톨이”라고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채소를 사가지고 마을에 들어서면 보는 사람마다 놀려주군 했다.
“저 주제를 좀 보우. 두룽두룽 사들고 다니는 꼴을. 그래도 수캐라구 덜렁덜렁 달구다니겠지.”
부부간이 다 출근하는 쌍직공호에서도 남자들이 부엌간일은 하지 않았었다. 혹간 석탄부에 가서 석탄을 밀차에 실어온다거나 량식공급소에 가서 배급을 타오는 등 힘든 일엔 좀 나서기도 했다.
농촌에서도 역시 그러했다. 부부간이 함께 생산대밭에 나가 콩김을 매고 들어와서도 남자는 담배를 말아물고 휘적휘적 백양나무그늘밑에 가서 이웃집 나그네들과 장기를 두지 않으면 한담에 세계형세를 론한다. 녀자는 밥을 짓고 돼지죽을 끓여먹이고 밀린 빨래나 바느질을 한다. 우리 외가집동네에 박씨라는 나그네가 있었는데 모두들 그를 “둥글소”라고 불렀다. 검실검실한 얼굴에 눈이 부리부리했다. 그림책 “수호전”에서 나오는 리규를 방불케 했다. 기운이 무진장인 그는 겨울철목재부업에 가서는 언제나 특등공수를 받았었다. 일생에 그는 곰같은 아들을 다섯이나 련이어 빵빵 찍어냈다. 동네에서는 모두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남자들이 어깨를 살구고 호기를 부렸던 세월이였고 남자들이 남자노릇을 할수있었던 세월이였다. 그 세월이 지난 세기 80년대까지는 쭉 내리흐른것 같았다. 우리 집 안해가 82년도에 첫 아이를 아들로 낳고 88년도에 두번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였다.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증세를 종합분석해본 결과 또 아들이겠다는 짐작이 갔다. 우리 집 로모께서 아주 반가워하셨다. 헌데 병원에서 해산한 다음 간호원이 산실로부터 나오며 “그 집은 딸입니다”고 알렸을 때 우리 집 로모께서 강렬한 반응을 보이며 의혹을 금치 못하셨다.
“아들이라구 하던데 왜서 딸이우? 거 혹시 바뀌우지나 않았는지…” 간호원이 절대 그럴수 없다고 설명했다.
“후— 서운하다. 같은 값이면…”
그 세월에 부대끼여 늙어오시면서 남자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강하게 박혔으면…가히 리해될만한 로모의 심정이였다.
크게는 나라의 정사로부터 작게는 집안의 자질구레한 가사에 이르기까지 전반 사회적인 방향판이 남자들의 손에서 돌아가면서 운행되였던 세월이였다.
남자들에게는 풍요로운 황금가을과 같았던 그 호시절이 차디찬 눈바람속에서가 아니라 훈훈한 봄바람속에서 지나가버리게 되였다. 누군가 “봄바람에 잠자던 여우들이 깨여났다”고 비유했다. 좀 저속적인 비유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추향을 빗대고 긁어대는 소리였다. 개혁개방이 되면서 출국문이 활짝 열렸다. 녀자들이 보따리를 꿍쳐 이고지고 외국나들이를 하더니만 목돈을 안고 돌아왔다. 한다하는 남자들이 직장에서 몇년간 꾸벅꾸벅 일해도 벌어내지 못했던 목돈을!
90년대 중반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연변통용기기계공장의 웅장한 건물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와그르르 무너져내렸다. 그 먼지가 포연처럼 하늘로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수백명 직공들이 자호감에 넘쳐 출근했던 공장이다. 그 무렵에 연길시내의 수많은 공장굴뚝들이 사라져버리면서 연길시는 점차 상업도시, 소비의 거리로 변해갔다. 남자들의 일자리가 적어지고 녀자들의 일자리가 많아졌다. 너도나도 장사에 나선다고 허둥대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장사마당을 바다에다 비유했었다. 그래서 “하해(下海)”바람이 불었다. 다같은 장사를 하는데 녀자와 남자가 달랐다. 남자가 하면 본전까지 밀어넣을 때가 많았고 녀자가 하면 본전없이도 돈만 잘 벌었다. 참, 묘했다. 뭐 해석할 도리가 없다. 장사에서는 돈을 버는것이 도리이니까. 그래서 녀자들 손에서 돈이 다슬어빠지게 되였다. 남새장사를 하는 아줌마의 수입이 어느 기관의 처장이나 국장의 월로임보다 더 높을 때가 있게 되였다. 맑스주의 리론에는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결정하고 경제토대가 상층구조를 결정한다는 진리가 있다. 한 가정내에서도 아마 경제라는 지레대가 결정적인 작용을 노는것만 같다. 남자가 지레대의 이쪽을 꾹 누를 때에는 녀자가 허공에 둥둥 뜨고 녀자가 지레대의 저쪽을 꾹 누를 때에는 남자가 허공에 둥둥 뜨게 된다. 녀자들 손에 돈깨나 쥐여지니 집안이 요란스럽고 사회교제가 요란스러워졌다.
“동무, 구들도 닦지 않고 뭘했슴꺄? 온하루 목이 빠지게 사구려를 불렀는데 또 집에 와서 구들까지 닦아야 함꺄?”
낮에 어쩌다가 친구를 만나 어정쩡하게 보냈더니 저녁에는 안해의 “빗깡대질”에 찍소리 못하고 볼기짝을 내맡겨야 하는 남편!
“또 돈? 없어요. 하루건너씩 생일이요 모임이요 하며 군스럽게 구네. ”
(이거야말로 그저 어쩌라니!)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이 소리없이 운다. 허나, 할수없는 일! 그 손바닥만한 얼굴에 체면을 세우려면 빈손으로는 갈수 없다. 그래서 “여보!” 하고 안나가는 웃음을 낯에다 흙탕물 바르듯 하는 남편! 비굴해지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다.
이런것쯤은 웬만하면 다 참을수 있다. 남자이니까! 남자의 속이 얼마나 넓은지 녀자들 한번 그안에 들어가 뽀트놀이나 해보시라! 더욱 참기 어려운것! 처가집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 정성을 몰부었는데, 자기부모님께 그만큼 해드렸으면 나라임금님도 감동되여 진작 “효자동”감사패를 하사했을터인데, 열가지를 잘하고 딱 한가지 일에 된살(살코기)쪽으로 사가야 할것을 흰살(비게)쪽으로 사갔다고 비양거리는 소리!
“당신도 남잡니꺄! 시시하게스리.”
남자의 자존심을 밑뿌리채로 뽑아버리고 칼질한다. 남편을 통해 자기 동생을 어디로 전근시켜달라고 부탁했던 일이 소기했던대로 되지 않아도 앙탈이다.
“동무도 남자입니까! 고만한 일도 못하는 주제에.”
설밑에 남편보고 무얼 어떤걸로 사달라고 했는데 그만 그 남편이 호주머니사정이 딱해서 다른걸로 바꿔 사게 되여도 고양이 락태상이 된다.
“자기야, 남자야! 째째하게스리.”
남자란? 남자란 무엇이냐?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것이 오늘날 남자냐? 죽으라고 해도 꺼저버리라고 해도 참기만 하는것이 이 세상 남자냐!
곡괭이 휘둘러 밥벌이 하고 주먹을 내둘러 시비를 가르고 피를 휘뿌려 강산을 지키던 영웅시대는 지나갔다. 소나기뒤끝의 잠풍한 날씨에는 개굴개굴 개구리소리만 요란하다. 털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사자의 울부짖음도, 무거운 멍에를 지고 허연 입김을 내뿜는 황소의 영각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무송이 되여보고 싶어도 범이 다 달아났다. 지금은 사람이 범을 피하는것이 아니라 범이 사람을 피한다. 관운장이 되여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무찌르고 싶지만 적토마가 달릴만한 전쟁터가 없다. 수풀처럼 일어난 층집때문에!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충격적인것이 본능이다. 대부분 영웅이 되고싶은 생각을 가지고있을것이다. 허나, 영웅도 미인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오늘에 와서 진정 효험을 보는것 같다. 남자들의 영웅기개를 떨칠수 있는 적토마가 달릴수 있었던 전쟁터가 없어지니 고요한 화원속의 꽃송이들이 송이송이 피여나 그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있다.
어쩌다가 간혹 고급술집에서 한병에 수백원씩 하는 모태주나 오량액술을 한두잔 마셔보고는 유한 그 맛에 감취되여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우리 남자들이다. 그대들, 품위있는 녀자들의 화장실을 엿본적이 있는가? 목이 길고짜른 화장용크림병이 여라문개씩 갖춰져있다. 한병에 역시 수백원내지 수천원씩 한다. 그걸 아침저녁으로 치고 바르고 문대고 닦고 한다. 보지 않았으니 눈이 까집혀지진 않겠지만. 고급옷매장에 가보시라. 한벌에 수만원씩 하는 밍크외투를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사간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것이 없다고 시뚝해서 입을 삐쭉거리면서!
한 여름철, 연길시내 거리바닥에 웬 고급승용차가 이렇게 많아졌는가고 살펴보다가도 눈이 데꾼해질 때가 있다. 앙골라 양머리처럼 굽실굽실 파도치는 금발머리를 휘날리는 미녀들이 차를 몰고있지 않는가! 그것도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말이다. 이거 촌놈이 맨하탄거리에 잘못 들어서서 헤매고있지나 않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한번은 한 부동산개발회사로 일보러 간적이 있었다. 두루미같이 끼끗한 남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리사장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저으기 놀랐다. 주당위 서기사무실이나 주정부 주장사무실보다 얼마 더 엄엄하고 호화스러웠다. 그보다 더 놀란것은 컴퓨터뒤로부터 서서히 쳐드는 얼굴이였다. 곱게 화장한 새파란 아가씨의 부용홍안이였다. 요렇게 젊고 고운 아가씨가 이 사무실주인이라고 하니 어쩐지 주눅이 들어 엉거주춤 자리에 앉아도 속이 편안치 못했다. 헌데 외모와는 달리 녀리사장의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여났고 종합판단능력이 대단했고 일처리가 과단했다. 지도자로서의 성숙과 로련함을 남김없이 과시했다.
“강비서, 이 분이 이번 행사에 우리와 합작하실분이예요. 외출할 일이 있으니 차를 대기시키세요. 그리고 저를 대신해서 이분을 접대하세요. ”
그녀의 지시를 받은 강비서의 접대가 얼뜰하지 않았다. 탄복하지 않을래야 탄복하지 않을수 없다.
경제령역 뿐만 아니라 기타 당정기관, 과학, 군사, 체육 등 모든 령역에서 중견작용을 놀고있는 녀성이 많아지고있다. 사회지성인으로 자라고있는 녀성들이 늘어나고있다. 녀류시인, 녀류화가, 가수, 탤런트…
중국체육계에서는 “음성양쇄(阴盛阳衰)”라는 말이 돌고있다. 녀자축구, 녀자배구는 세계의 앞자리를 다투고있으나 남자축구, 남자배구는 늘 꼬라지수준에서 맴돌고있다. 무슨 사물이나 가장 리상적인 상태는 균형을 잡는것이다. 문제는 그 균형을 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람의 인체내에서도 음양균형이 파괴되면서 모든 질병이 산생된다고 한다. 우리가 병이 나면 약을 먹고 수술을 하고 휴식도 하고 운동단련도 하는것은 역시 그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까마아득했던 그 먼 옛날, 원시적인 모씨사회가 해체되면서부터 사회적인 성관계는 계속 한쪽으로 기울어져왔었다. 수천년간 녀자가 남자의 지배를 받아왔었고 그것을 하늘이 점 찍어준 운명으로 간주해왔었다. 그 운명으로 녀자는 세세대대 내려오면서 씨를 받고 종자를 염글어내는 “터밭”에 불과했고 남자들의 놀이개감으로 전락되여왔고 가무를 돌보는 보모역을 놀아왔었다. 자유와 평등이 없었다. 그 자유와 평등을 위해 수많은 개명지사들과 녀류활동가들이 녀성해방의 길을 모색하고 더듬어왔었다. 지어 자기의 몸을 바쳐가면서! 허나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그것이 잘 실현되지 못하고있다. 남녀평등이란 진보적인 사람들의 주관적인 념원이다. 진정 그것을 실현시키자면 객관적조건이 따라가야 한다. 즉 경제가 고도로 발전되고 사회가 고도로 문명개화되여야 한다. 농경시대에서는 부녀들에게 해방의 길을 열어줄래야 줄수가 없었다. 오늘날 녀자들이 좀 기를 펴고 남자들과 어깨겨룸하면서 제할 노릇들을 할수 있게 된것도 우리의 경제가 그만큼 발전했고 문명이 그만큼 개화되였고 사회가 그만큼 진보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남자들의 자존심을 꺾어놓았고 우리 남자들의 속을 상하게 하였고 우리 남자들을 섧게 만들고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리혼률이 늘어나고 가정이 흩어지고 무직업자가 늘어난다. 녀자의 발길에 채운 남자들 슬프고 분하다. 녀자를 멀리 보낸 남자들 녀자의 품이 그립고 사랑에 목마른다. 슬프고 분하다고 고독하고 그립다고 가슴만 치며 한탄만 할가. 술로 분을 삭이고 담배로 고독을 태워버릴가! 주눅이 들고 고민에 빠지면 정신상태가 돌아지기 마련이다. 정신상태에 탈이 생기면 인체내의 질병요소들을 공제하고있던 제동기가 스스로 풀려진다. 내리막길에서 제동기가 풀려지면 차가 어떻게 될가! 가뜩이나 짧은 우리 남자들의 수명을 우리 자신이 더 잡아끌고있다. 그래서 동구밖의 페교가 된지 오랜 학교마당에 나가 비술나무에 달아맨 종이나 치고싶다.
뗑! 뗑!
“친구들, 상학종이 울렸습니다. 오늘은 특별생리시간이여서 남학생들만 들어오십시요!”
그리고는 이렇게 강연하고싶다.
남자들아, 왜 이 세상에 남자로 태여났느냐? 남자로 태여난바엔 좀 남자답게 살아보자!
우선 곁에 안해가 없는 남자라면 래일 옷매장에 가서 옷부터 사라. 자기의 체격과 년령에 알맞고 남보기에 시원해보이거나 깔끔해보이는 옷을 골라라. 남자의 자신심을 세우고 키우는데는 세가지가 있다. 즉 좋은 안해, 좋은 가정, 좋은 옷이다. 지금 안해가 없으니 좋은 가정이 있을수 없다. 허나, 좋은 옷은 돈을 주고 살수 있다. 돈이 없으면 꿔서라도 사라. 그리고 자신심부터 세우라.
그다음 녀자의 눈에 나서 녀자의 발길에 채울 위험이 있는 남자라면 래일부터 녀자의 비위를 발라맞추느라 애를 쓰지 말라. 비위를 맞춰주느라고 하면 점점 더 업수임을 당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녀자를 잃고만다. 자기의 개성을 내세우고 자기의 매력을 살려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외고집만 내세우라는 말은 아니다. 여기에 유모아적인 예술이 수요된다.
그리고 남자라면 자기의 흥취와 애호에 따라 한두가지 기능을 닦아야 한다. 례를 들면 장기에 흥취가 있는 사람이 장기를 귀신같이 놀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할노릇이 없어 심심풀이로 당구를 치던 친구가 있었는데 후에는 프로급이 되여 어느 한 시합에서 상을 타게 되였고 녀자들이 안겨주는 꽃묶음을 받게 되였고 인생길을 완전히 바꾸게 되였다. 애호에 따르는 노릇이라면 자그마한 진보에 자그마한 칭찬에도 심정이 한없이 즐거워진다. 심정이 즐거워지면 녀자에 대한 한도 풀리고 세월에 대한 원망도 풀린다.
또 그리고 남자라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안해나 자식에 대한 책임감에 앞서 자신에 대한 책임감부터 있어야 한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고 먼지만 툭 털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인데 무엇으로 어떻게 책임진단 말인가?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에게 제일 흔한 것은 시간이고 거기에 따르는 고독이다. 시간을 밑천으로 삼으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 흔한 시간을 푼푼히 투자해서 자질양성비로 쓰고 항목개발에도 써보노라면 큰일이 벌어지고 대박이 터질 때가 있게 된다. 그것이 5년후이든 10년후이든 20년후이든… 시간을 길게 잡을수록 대박이 더 크게 터질것이다. 래일 당장 안해가 리혼하겠다고 납뜨든, 래일 당장 녀자의 발길에 채우게 되든, 시간만은 놓치지 말고 틀어쥐면서 진정 자기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밖에 나간 강아지도 시간이 지나면 배고파서 돌아오는 법이다. 가령 더 큰 비게덩어리에 반해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나는 강아지라면 다시 부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강아지는 일반적으로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녀자들도 일반적으로 첫사랑, 첫 감정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대가 진정 남자라는것을 알아봤을 때에는 돌아서지 말라고 해도 돌아선다.
이상 “약처방”을 떼놓았으니 누구든 써보고 싶으면 써보시라. 약은 써야 약이 된다. 섧다고 울면 녀자들의 동정을 살수 있는가? 섧다고 술만 마시면 녀자들이 술을 사오는가? 동정으로 마음을 끄는 시대는 지나갔다. 녀자도 남자의 앞에서만이 값이 간다. 이 세상 남자들아, 우리 좀 즐겁게 살자. 우리의 즐거움으로 비싸지는 녀자들의 즐거움을 사오자!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