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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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특미-돼지고기
2009년 05월 08일 09시 25분  조회:854  추천:36  작성자: 홍천룡

삼겹살(五花肉)하면 돼지고기중에서도 막등고기여서 값도 제일 눅었다. 돈이 없고 썰썰할 때면 삼겹살 둬어근 떠다가 시래기국이나 끓여서 생활개선을 하군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값이 껑충 뛰여 둬어근 사자면 십원짜리 석장쯤은 메쳐야 한다. 식당에 가봐도 돼지고기료리가 잘 나간다고 한다. 값이 비싸지니 아마 맛도 덩달아 달라진 모양이다. 나는 돼지고기가 눅을 때나 비쌀 때나 다 맛있다. 세상에 맛있다는걸 두루두루 검식해봤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돼지고기가 제일이다. 언제나 아무렇게나 해먹어봐도 늘 구수하고 만만하다. 맹물에다 삶아 소금에 찍어먹어도 맛있고 양고기뀀처럼 구워먹어도 고소하고 지어 소고기생회처럼 회를 쳐서 먹어도 물씬한 감이 난다. 언제나 편안하게 맛있게 먹을수 있고 수시로 영양보충도 할수 있는게 돼지고기이다. 우리 나라 공민들의 부식물해결에서 돼지고기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지난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30여년전에는 돼지고기도 쌀처럼 공급제를 실시했었다. 매인당 매달 어떤 때는 반근, 어떤 때는 한근반, 돼지고기국에다 이밥을 말아먹는 날이면 명절이였다. 농말국수에다 흰살된살 반반인 돼지고기를 넓쩍넓쩍 썰어넣고 국을 해놓으면 서로서로 땀을 흘려가며 후르륵 후르륵 들이마셨다. 거침없이 련달아 말려들어가는 속도에 돼지고기맛이 우려나오는것일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아마 신선도 그 맛은 다 모를 터였다. 어느 결에 후딱 해치우고는 숟가락으로 사발밑굽을 달달 긁으면 뜨거운 가마목을 지키느라 면상이 시루떡이 된 어머니가 흡족해서 한국자 더 떠준다. 그 맛, 그 정, 그 행복감!

그 세월에는 제때에 고기맛을 보지 못해 영양실조로 키도 크지 못하고 몸도 푸들지 못했던 아이들도 많았고 지어 질병에 걸려 모대겼던 아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당시 제일 무서운 병은 결핵이였다. “결핵병은 돼지고기만 제때에 먹어도 떨어지는건데…”라고 한탄하는 로인들의 말씀을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일여덟살쯤 되던 해라고 기억된다. 설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달라재”라는 깊은 시골마을로 친척방문가게 되였다. 아버지가 꼬댕꼬댕 언 돼지고기를 내 팔뚝만치나 샀고 거기에 량식공응점에서 탄 밀가루를 반주머니쯤 가지고 갔었다. 그집에서 그걸로 물만두를 빚었다. 언배추도 서너통 들여다 푹푹 썰어서 넣었다. 배추가 너무 많이 들어가 서벅서벅거렸다. 별로 맛이 없었다. 허지만 더덕더덕 기운 옷견지들을 되는대로 걸친 그집 식구들은 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볼이 미여지게 먹고있었다. 꼬박 3년만에 물만두맛을 다시 본다며 그집 큰어머니가 감개무량해 하였다. 한창 정신없이 먹고있는데 뒤고방쪽으로부터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련달아 울려나왔다.

“에그머니야, 깜박했구나. 그 맛부터 먼저 보느라구…”

큰어머니는 둥깃한 몸을 비틀며 김이 서려오르는 가마안에서 물만두를  꺼내 한사발 담았다.

“누군데요?”

내가 무엇이나 물어보고 알고서야 시름을 놓을 때였다.

“오냐, 네게는 누나벌 되는 앤데 그만 몹쓸병에 걸려서…”

나는 물만두가 먹고싶지 않던차라 발딱 일어나 그 사발을 쥐여들려고 했다. 누나벌 된다고 하니 보고싶기도 했었다. 헌데 어머니가 말없이 내 팔소매를 와락 잡아당겼다. 어찌나 힘주어 당겼는지 나는 그 자리에 풀썩 물앉고말았다. 큰어머니가 서글프게 웃었다.

“다른 사람은 그 방으로 못들어간단다. 내가 가져다줘야지.”

큰어머니는 사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웬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뒤고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누런 종이로 완전도배되여있었다.

오후에는 싸락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그때 나는 뒤울안에서 멀찌감치 그 누나를 보게 되였다. 낮다랗게 드리운 초가집처마밑으로 자그마한 뒤고방뙤창문이 달려있었는데 네모난 변두리에는 하얀 성에가 끼여있었고 중간 부분이 동그랗게 녹아있었다. 아마 그 누나가 바깥세상을 내다보느라 입김으로 녹아낸것 같았다. 그 동그란 거울속같은 유리창에 하얀 얼굴에 하얀 이발이 나타나며 얼른거렸다. 우리를 보고 웃는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서 보려고 하니 그집 둘째 누나가 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안돼. 가까이 가면 병에 전염된단다.”

나는 병에 걸린 사람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왜 가둬두고 있을가 하는 생각에 애처러운 감에 젖어들었다. 그때 어머니가 와서 다짜고짜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집 식구들이 우르르 다 나왔다. 큰어머니가 달려와서 나의 호주머니에 지페 한장을 밀어넣었다. 그걸 어머니가 다시 꺼내 큰어머니의 손에 꾸겨주었다.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서로 손을 잡고 밀고당기고 했다. 그러다가 그 지페가 하늘거리며 눈우에 떨어졌다. 그제야 둘은 서로 손을 뗐다. 어머니의 눈에도 큰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그 돈을 주어 큰어머니의 바지호주머니에 밀어넣었다. 큰어머니가 더는 참지 못하고 끄억-끄억- 흐느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다음 누나의 병이 떨어지면 다시 놀러오너라. 밤잠이라도 재워서 보내야 하는건데…”

동구밖은 새뽀얀 눈보라속에 잠겨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팔을 끌며 그 속으로 향했다. 나는 한참씩 끌려가다가는 눈보라속으로 희미해지는 마을을 뒤돌아보군 했다. 그 속에서 하얀 얼굴에 하얀 이발이 얼른거리는것만 같았다…

썩 후에야 나는 페결핵에 걸린 그 누나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는것을 알았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집식구들에게 전염된다고 동생들과도 함께 놀지 못했단다. 그날 아버지가 가지고 간 돼지고기와 밀가루로 빚은 물만두를 먹고 너무나도 맛있다며 한사발만 더 먹고싶다고 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돼지고기를 고까짓걸 사가지 갔다고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그 누나가 치료는 제대로 받지 못했어도 돼지고기만 자주 먹을수 있어도 죽지는 않았을텐데…

그 세월에는 돼지고기가 귀한 때라 농촌에서도 가가호호 돼지를 길렀고 도시직공호에서도 돼지를 기르는 집들이 있었다. 우리 건너집 종구네가 손바닥만한 울안에다 돼지를 두세마리씩 길렀는데 여름이면 악취가 코를 찔렀고 파리떼가 무리로 웽웽거렸었다. 그래서 아래웃집사이에 늘 말썽이 생기군 했었다. 남들이야 욕설을 퍼붓든말든지간에 그집에서는 악을 쓰고 돼지를 길렀다. 당시 돼지 한마리를 푸등푸등 살찌워 식품공사에 바치면 값은 값대로 받고 장려로 사료용 겉옥수수 한마대를 더 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집집이 쌀알이 귀할 때라 겉옥수수 한마대면 집안살림에는 큰 보탬이 되는것이였다.

간혹 어느 집에서 기르던 돼지가 병이 들었거나 혹은 특수정황으로 말미암아 돼지를 엎어놓고 추렴할 때가 있게 된다. 그럴 때면 온동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모두 나와 그 주위를 빙 둘러싼다. 흥분된 백정들이 번뜩이는 칼을 휘두르면서 괜히 희떠웁게 서로 소리를 먹이며 분위기를 돋군다. 맨나중에 창자를 끄집어내여 처리할 때에는 발그무레한 콩팥을 떼내 도마우에다 놓고 싹싹 저민다. 그러면 김이 몰몰 피여나 정말 맛갈스러워 보인다. 백정들은 술을 한두모금씩 쪽쪽 내고 그걸 소금에 뚝뚝 찍어서는 턱을 잔뜩 쳐들고 입안에 밀어넣는다. 야, 얼마나 맛있을가! 곁에서 그저 보아주기에는 참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입안에서 군침이 돈다.

개혁개방이 되면서 돼지고기공급제가 취소되였다. 마음대로 사다가 마음대로 해먹을수 있게 되였다. 어머니가 하루이틀이 멀다하게 신선한 돼지고기를 사다가 국도 끓이고 채도 볶았다. 매일 명절을 쇠게 되여 꿈만 같았다. 가끔 그 친척집 누나가 세월을 잘못 만나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은 페결핵에 걸려도 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마음대로 먹을수 있는 세월이니깐. 지난 세기 50-60년대에는 중국공민의 평균 수명이 50세가량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70세가 휠씬 넘어 세계선진수준에 거의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돼지고기의 공헌이 컸다.

나는 지금도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다. 배안에 곱이 찼는지 예전처럼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자주 먹는다. 돼지고기가 느끼하다고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먼저 잘 익은것으로 한입만 뚝 떼서 입안에 넣고 꼭꼭 씹어보시라. 느끼할가 말가 얘싹할가 말가 한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하다고. 세상특미— 돼지고기! 나는 계속 그걸 먹으며 건강을 지켜보련다. 나 뿐만 아니라 전국인민이 그걸 먹으며 건강을 지켜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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