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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랑의 완곡어 (외 6수)
2023년 09월 07일 15시 22분  조회:28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날보고 ‘미워’하는 말이

참으로 미워서 미운 것이라면

그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

절망끝에 실련하련만

오히려 그 ‘밉다’는 말에

그대를 더욱 억세게 포옹하며

사랑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그 밉다는 말이

곱다는 뜻의 반의어기때문이다

 

사랑은 무엇이기에

미움조차도 이렇게 따뜻이 녹여

어머닭이 알을 품은 듯 따뜻한 체온이

온가슴에 찌르르 젖어들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밉다’는 소리에

더욱 상대방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한다

어린애가 일부러 응석을 부리 듯 투정을 하 듯

가슴에 품은 사랑의 뜻을 ‘미움’으로 에돌려

내놓는 성숙한 녀인의 완곡어법에서

 

 

그물2

 

죽음이 가까울수록 늘어나는 그물들

그 안에 갇힌 물고기처럼

이제 내 몸은 자유로울 수 없다

아프지 않게 그물을 펴는 다리미는 없나?

세월따라 늘어나는 주름을  훌훌 걷어버리든가

아니면 해묵은 종이장 찢 듯

찢어버리든가하고

자유를 살면 얼마나 좋을가만

이제 나로서는 그물을 걷어낼 힘이 없다

그럴바엔 차라리 남은 인생 그물과 함께 동행하자

세월이  씌워준 저 천연의 장애물ㅡ

이것도 헤택이라면

살아있는 것이 내게 준 해택이 아니냐

 

 

진달래

 

하늘에서 내려왔나

땅에서 솟아났나

저기 저 하얀 고무신 사뿐사뿐

마른 나무가지 헤치며 산비탈 내려와

쉬고있는 연분홍 옷차림의 고운 녀인들

더러는 키낮은 잡목림곁에

더러는 이슬묻은 바위 우에서 땀들이고 있네

해마다 오월 제철이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약속없어도 찾아와

온 누리에 봄의 시작을 알리는

그 누구보다 반가운  천사들

아름다운 옷차림에서 풍기는 향내음에 폭 젖어

산도 새 산이 되고 계절도 새 계절이 되네

 

 

종소리

 

목청좋은 개구쟁이 아이들이

훤하게 뚫린 구멍으로

저저마다 숨어들어 나올 줄 모른다

장난에 취했다가

볼기짝을 맞고서야 그제야

뛰쳐나오면서

아프다고 따앙 땅 소리를 지른다

 

 

 

고드름

 

립춘대길- 세월은 분명

봄계절에 들어섰건만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봄의 도래를 막아보려고

눈과 얼음으로 겹겹이

방어선을 두른 겨울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 그리하여

아직 년소한 봄은 겨울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특수부대를 무어 유격전을 벌린다

겨울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으슥한 골짜기

처마밑 아찔한 벼랑을 타고

야금야금 봄의 전령병들 하강하나

겨울의 깊이로 침투할 낭창들을 꼬나들고

일렬 종대로 늘어섰다

 

 

봄1

 

봄은 통 큰 엿장수할매

물기가 뚝뚝 흐르는 엿가락을

누구든 마음대로 맛보라고

처마밑에 죽 늘여 놓았다

 

봄은 부지런한 찜질방아줌마

꽁꽁 언 몸뚱이들에 뜨거운 김 발라준다

또한 봄은 곰탕집 주방장

료리솜씨도 일품이다

옹근 겨울의 통뼈를 썰지도 않고

통채로 가마안에 집어넣고

삶는다 질질 기름이 나오게 고아서

흐늘흐늘해진 고기덩어리

배고픈 바람이 부지런히 날라다

여윈 계절을 몸보신한다

 

 

봄 2

 

처마밑에 왈랑절랑 락수물소리

누가 두드리는 휘몰이 장단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종일

두드려도 힘도 안드는 듯

 

때로 봄은 장난기 심한 개구쟁이 아이처럼

시끄러운 존재다

길이란 길은 모조리 헝클어놓고

제멋대로 락서를 한다 아무렇게 갈겨놓은 글씨들이

여기 비뚤 저기 비뚤 세상은 온통 락서의 흔적

 

그러나 봄은 역시 고마운 존재다

저 눈녹아 거밋거밋 때오르고 거친 들에

누가 새옷을 해입일 것인가

재봉사 봄이 스스로 짊어진 의무다

돌돌돌 고르로운 물소리

재봉기 도는 소리

 

봄은 또한 화가다

재료나 종이를 탓하지 않는 화가

겨울이 남겨준 낡고 초라한 풍경을

새것으로 바꾼다

푸른 붓 톡톡 찍어

연변일보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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